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제자의 가르침 - 최정현
지난 5월은 여러 가지 행사로 유달리 바쁜 달이었다. 평소에도 별로 건강하지 못했던 나는 과로한 탓인지, 학생들의 매스 게임 연습을 보고 있던 어느 날 드디어 심한 두통과 빈혈이 일어나 일찍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자리에 누워서도 이것저것 학교 일만 걱정이 되어, 아들을 불러 놓고 몇 가지 내용을 학교에 전하라고 이르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30년 전에 가르친 제자의 전화였다. 학교에 전화를 하니 편찮으시다 하여 걱정이 돼 걸었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은 지 한 시간도 안 지나 누가 찾아왔다. 전화를 걸었던 제자였다. 목소리만 듣다 얼굴을 대하니 더욱 반가웠으나, 한편 아픈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제자는 내 딸에게 부엌 좀 안내하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가만히 누워 계시기만 하라는 것이었다.
이 생각 저 생각 옛날의 제자 모습을 머리에 그리며 누워 있자니 지나온 세월이 꿈만 같고, 제자가 저토록 중년 부인이 되었으니 나도 이제 정말 늙었구나 하는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제가가 상을 차려 들여 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북어국이었다. 뜨거운 김이 얼굴에 닿는 순간 나는 콧등이 시큰해졌다. 제자도 돌아가고 그녀의 정성 덕분인지 나의 건강도 빨리 회복되었다. 며칠 후, 새벽같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바로 그 제자였다.
"오늘이 선생님 생신이시죠?"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해마다 맞는 생일이지만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나에게 생일다운 아침이 특별히 있을 수 없었기에 모두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우리 가족은 제자가 준비해 온 음식으로 즐거운 잔치를 벌였다. 어느 날보다 부푼 가슴을 안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아들딸들이 대문 밖까지 나와서 배웅을 했다.
"어머니, 안녕히 다녀오세요."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분명히 내 아들딸들은 그 제자의 성의에 감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붐비는 차 속이었지만 내게는 새로운 용기가 샘솟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길이 그래도 보람찬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제자는 자식들에게만 교훈을 준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뭔가 가르침을 준 셈이다. (서울여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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