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단칸방에서 머리를 맞댄 밤 - 이명해
그래, 바로 오늘이었다. 10년 전 오늘, 마지막으로 고추장독을 트럭에 싣고 동구 밖까지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손을 흔들어 주던 날, 언니와 난 트럭 앞자리에 앉아 손을 흔들며 좋아했다. 충혈된 눈으로 한 번 또 한 번 뒤를 돌아보시는 어머니는 내 손을 놓지 않으셨고, 트럭 뒤에 앉아 고추장독을 붙잡고 있던 아버지는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외양간에 여물통을 새로 손질하고 싸리문도 뜯어 내고 돌담을 쌓은 지 1년도 못돼서였다. 네 아들 중 셋째 아들로 지게 지는 법외엔 땅밖에 모르며 수십 년 간 그곳에서 터를 잡아 오셨던 아버지께서 며칠째 농협 직원이 다녀간 후 그렇게 큰 결정을 내리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 큰아버지께선 산더미처럼 불어난 놀음 빚에 급기야 남은 재산을 남의 손에 넘기셨다. 그 충격으로 돌아가신 큰아버지의 짐은 모두 아버지가 떠맡으셨다. 아버지는 그후 수년 간을 이자 갚느라 해질녘까지 밭에서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젠 그 이자마저 눈덩이처럼 불어나 더 이상 갚을 형편이 못되자 마침내 집을 내놓고 옷깃 한 번 스쳐 본 사람 없는 낯선 이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단칸방에서 세 자매가 나란히 머리를 맞대던 그날 밤, 새로이 떠나 온 낯선 도시에 마냥 부풀어 잠 못 이루던 내가 돌아누웠을 때 빨간 성냥 불빛에 떨리는 손 위로 아버지의 눈물 자국이 보였다. 그날 밤 아버지가 흘리신 눈물은 고향집 텃밭 두엄 속에 묻힌 씨앗처럼 조용히 내 마음속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리고 이렇게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하는 어른이 되어 언젠가는 고향의 그 집에 돌아가 살게 될 희망으로. (숭의여전 문예창작과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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