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최영철 - 처음이자 마지막,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형
사랑이여 그대들 잠시라도 마음 아프게 혼자서는 돌아설 수 없구나 그대들 부러 쭈빗거리며 저녁상을 차리고 숟갈 놓기 바쁘게 먼 길 떠나려 할 때 부디 억센 손길로 막아다오 우리들 안타까운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다 막차를 보내고 추위에 떨며 내밀히 서성거린다 그대들 아름다움에 이 밤 몸 섞지 못하고 쓴 담배 나눠 피우며 불 꺼진 들판과 다함없이 팔 벌린 어둠으로 버려진 채 바라보면 세상은 끝없어 들판 속 어둠에도 한가닥 길은 있으나 사랑이여 우리 어찌 나아갈 수 있으랴 그대들 숱한 그리움 바람으로 흩어져 긴 밤 내 떠돌게 할 수 있으랴.
- 시 "이 세상 사랑에게"전문
모든 사랑은 언제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0년 전쯤에 쓰여졌을 마을 앞의 시를 다시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읍으로 가는 버스는 언제나 빨리 끊어졌다. 그녀를 바래다주기 위해 늦은 저녁 도시의 동점에서 버스를 타고 가며 어쩌면 돌아오는 버스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의 현란한 불빛들을 지나 어두운 들판을 달리고 있을 즈음에는 이 길을 되밟아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예감은 불길한 추측이 아니었다. 우리가 간 길을 단 한발자국도 되밟을 수 없다는 것을, 한번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도시에서 읍으로 가는 늦은 저녁길은 멀리 점점이 뿌려 놓은 불빛을 쫓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앞의 암흑을 헤치며 가는 길이었다. 우리가 목마른 그리움으로 당도할 길이 어디인지, 그길의 끝에 어떤 미래가 그려져 있는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던 길이었다. 그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는 완행 버스 뒤칸에 앉아 우리는 그 길의 도착지를 말없이 그려보곤 했다. 20대초의 한창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의 종점이 호화롭기를 우리는 바라지 않았다. 세상의 명리가 하나도 우리 앞에 주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그 몇 개의 호화로운 명리 때문에 그에 값하는 시련과 절망을 주시려거던 차라리 아무것도 주지 않으셔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저 아득하고 조용한 들판과 산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해서 오랫동안 평화로울 수만 있다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두 시간쯤 걸렸던 읍에 버스가 당도하면 늦은 밤이었다. 도시의 밤은 늦을수록 맹렬한 야성을 내뿜는 법이지만 읍의 밤은 어둠과 함께 둥지 속으로 몸을 웅크리는 순응의 시간이었다. 도시의 밤이 어두울수록 눈에 불을 켜는 맹수를 닮는다면, 읍의 밤은 일몰과 함께 날개를 접는 착한 초식동물을 닮는다. 우리는 어두워졌기 때문에 더 싸한 내음이 나는 읍의 냄새를 맡으며 바람난 초식동물처럼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늦은 귀가길을 종종거리며 가는 어른들과 구멍가게에서 군것질거리를 사가는 아이들, 낮부터 추해 있었을 법한 술꾼 몇 명, 그리고 이들의 옆을 느리게 지나쳐가는 바람 난 강아지들을 제외하고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밤길이었다. 어느 땐 용케 막차를 탈 수 있었고 어느 땐 돌아갈 버스가 없었다. 그런 날 밤은 읍 중심의 파장한 시장 근처 선술집에서 막걸리나 소주를 마셨다. 20대에 마신 술의 대부분은 진퇴양난의 폐쇠회로를 지나는 듯한 불안한 조짐들을 안주삼아 마셨을 것이다. 버스를 놓치고 읍의 허름한 장거리에서 술이나 마실 수 있었던 밤은 그래도 차라리 행운이었다.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오는 밤은 갑자기 혼자가 되어버린 무서운 외로움에 몸서리를 쳤다. 저 번쩍거리는 도시의 불빛 사이를 지나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무데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강을 넘으면서 시작되는 현란한 물결들과 자동차와 상가의 불빛과 아우성을 치며 달려드는 소음에 진저리를 치며 나는 내 방으로 숨어들었다. 내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컴컴한 방문을 열고 들어가 스위치를 올리면 방 한 귀퉁이에 그녀가 앉아 있을 것 같았다. 앉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아니면 봄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다. 왜 하필 서울이었는지 모르겠다. 세상 끝까지, 아니 세상 밖으로,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저 세상으로 같이 건너가기 위해 그 열차를 타고 있었다. 별로 많이 심각하게 생각해 본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주거지를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옮기듯이 훌쩍 그렇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을 하면 내가 기특하게 여겨진다. 일생에 겨우 얻을까 말까 한 깨달음의 끝자락을 어찌 그렇게 단숨에 결행하려 했을까. 그 생과 사의 난해한 의미를 단칼에 잘라 보려 했던 용기는 사랑의 힘이요 절망의 힘이었다. 사랑은 모든 절망을 물리치는 것이지만 절망은 또 모든 가식을 물리친다. 절망의 극한에서 사랑은 진실해진다. 절망의 진퇴양난이 용기를 만든다. 그때 우리의 가출이 사랑이었는지 절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앙갚음이나 자학은 아니었다. 우리를 가로막은 세상을 원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왠지 마음이 편안했다. 전날밤 나는 내가 차고 있던 온전한 시계를 동생의 고물시계와 바꾸었다. 부디 이일이 온전하게 성사되더라도 이일로 하여 아무도 상처받지 않기를 빌었다. 우리는 그저 편안하게 야간 완행열차를 탔고 기차안에서 잠깐 아는 이를 만나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내려선 서울의 새벽은 낯설고 차가웠다. 미명과 함께 떠 있는 높고 낮은 건물들은 섣불리 우리의 마지막을 받아 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마지막의 수렁으로 우리를 던져 버림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열어 보려 했던 욕심이 만만찮은 일이라는 걸 깨닫게 했다. 일부러 텅빈 주머니로 길을 나섰던 우리는 그저 무료하고 힘없이 서울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날 저녁 어떤 친구와 늦도록 술을 마셨는데 아무런 이야기도 하기 싫어진 나와 그녀에게 그는 계속 시비를 걸었다. 술주정 같기도 하고 투정 같기도 하고 세상 밖으로 도망가려는 우리를 붙잡으려는 완강한 손길 같기도 했다. 참다 못한 내가 그랬던 것 같다. "뭐냐. 뭘 어쩌란 말이냐." 그 친구의 주정은 세상이 내게 뭐라고 해대는 웅웅거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아직 세상은 뭐라고 분명하게 내게 일러주지 않고 이처럼 웅웅대기만 했다. 도대체 날 보고 어쩌라는 것인지. 이틀쯤 서울의 낯선 거리를 쏘다니면서 여기는 참으로 사람이 마지막을 보낼 만한 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강이나 바다가 보이는 곳이면,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길이 강이 나 바다를 따라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가 잡아준 여인숙에 둘이 누워 이 모습으로 간다면 우스운 해프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은 자의 그런 뒷말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것은 한동안 복무했던 이승의 우리데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사흘 만엔가 친구가 구해준 여비로 급행열차를 타고 돌아왔다. 가는길은 더디고 돌아오는 길은 금방이었다. 열차의 속도는 그랬지만 정작 가는 길은 빠르고 오는길은 다시 걸어가야 할 시간들 때문에 더디고 무거웠다.
오백년 여기 서 있는 동안 한번은 당신 샛별로 오고 한번은 당신 소나기로 오고 그때마다 가시는 길 바라보느라 이렇게 많은 가지를 뻗었답니다 오백년 여기 서 있는 동안 한번은 당신 나그네로 오고 한번은 당신 남의 임으로 오고 그때마다 아픔을 숨기느라 이렇게 많은 옹이를 남겼답니다 오늘 연초록 잎벌레로 오신 당신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이렇게 많은 잎을 피웠답니다
- "인연, 푸조나무 사랑"
푸조나무는 부산 수영공원 안에 있는 수령 5백년이 넘은 천연기념물이다. 힘들 때마다 나는 이 고목을 생각했다. 그 나무에 견주면 나의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겨울에 처음 이 나무를 보았는데 쓰레기더미 속에서 불이 탄 듯 음산하고 시커멓게 서 있는 꼴이 도저히 살아 있는 나무로 보이지 않았다. 그 나무에 봄이면 어김없이 잎이 무성하다. 거대해진 가지를 혼자 지탱할 수가 없어 쇠기둥에 몸을 의지한 채 전신이 상처 투성이인데도 여린 잎을 피운다. 5백년 동안 소멸과 신생을 거듭한, 쓰러지고 일어서며, 지고 피는 순환을 계속한 나무를 지금 나는 내 마음에 옮겨 심고 싶다. 봄을 만나려는 마음이, 봄의 새와 꽃과 바람과 다시 노닐고 싶은 그리움이 나무에게 소생의 힘을 주었듯이, 사랑을 만나려는 나의 마음에도 신생의 기운이 주어지기를 기원한다. 읍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던 20년 전이나 푸조나무를 바라보는 지금이나 나는 벅찬 해후의 순간들을 기다리고 있다. 붙박힌 나무처럼 비바람을 맞고 들판에 홀로 서 있으면 신생의 오아시스처럼 언젠가 한 번은 그 순간이 와 주리라는 믿음이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세상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없다. 다만 끝까지 가보지 않았을 뿐이다. 미처 가보지 않은 길의 끝에 완전한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미련 때문에 그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두고두고 우리를 아련한 회한에 젖게 한다. 그러나 완전한 사랑도 없다. 사랑은 이루어졌건 아니건 간에 불완전한 끝으로 남는다. 미완으로 남은 시간과 미처 다 가보지 못한 거리 때문에 사랑은 사랑이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사랑은 무한하다. 모든 사랑은 언제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형이다. 20여 년 만에 다시 쓴 사랑시를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 최영철 1956년 경남 창녕에서 출생하여,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힘'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야성은 빛나다', '홀로 가는 맹인악사', '가족사진'.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 가 있고, 산문집으로 '우리 앞에 문이 있다'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