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연왕모 - 추억이 될 수 없는 첫사랑
나무와 땅과 바람 그리고 하늘이 왜 이리 가깝게 보이는지요 거기 묻어오는 그대의 모습들이 가슴으로 들어와 온몸을 적셔놓는데 왜 나는 자꾸만 갈증을 느끼는 걸까요
오직 주인의 채찍에만 길들여진 순진하기만한 당나귀의 눈을 아시는지요 어딜 가다가도 문득 제자리에 서서 그대만을 생각하는 바보처럼 멍한 모습의 당나귀가 스스로는 얼마나 큰 기쁨에 겨워하는지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 또 하루 묵묵히 걸어간다는 걸 아시겠는지요 짐수레도 없이 그저 혼자 길 위에 버려진 당나귀를 생각해보셨는지요 그냥 길 위에서 풀을 뜯으며, 가고 싶은대로 가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게 그에겐 오히려 허전함보다 못하다는 걸 느낄 수 있겠는지요 그러다 문득 주인을 만나면 어떤 말 대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오직 맑은 눈빛으로만 바라보는 당나귀를 그려보실 수 있겠는지요
- 시 '당나귀로부터 온 편지' 전문
사랑이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가치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랑이 갖고 있는 환상이 차츰 깨져가기 시작했고, 세상에는 내가 몰두할 것들이 훨씬 많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 내게는 사랑할 때가 오지 않았으므로, 사랑이란 그저 막연한 가치에 불과했고, 남들의 사랑은 그저 감정의 사치로만 느껴졌다. 사랑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사랑놀음보다는 차라리 자기개발에 몰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남을 이해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자신밖에 몰랐던 나는 가슴에 단단히 빗장을 걸어둔 채 사랑에 빠져들 수 없었다. 그저 언젠가는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겠지 하는 기대감만 있을 뿐, 나는 첫사랑의 경험조차 없는 싱거운 인간이었다. 그러나 1996년 4월, 기어코 사랑이 찾아왔다.
친구로부터 전직 스튜어디스라는 그녀를 소개받게 된 것이다. 물론 친구는 그녀가 매우 예쁘다고 말했지만, 나는 큰 기대감을 갖지 않았다. 잔뜩 기대했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엔 그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에, 나는 늘 의식적으로 기대감을 억누르는 편이기 때문이다. 기대감을 갖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상황이든 그럭저럭 견딜 수 있으니까. 하지만, 윤희의 첫인상은 상당히 매혹적이었고 고귀한 존재처럼 느껴졌다.(그것이 바로 처음 마주친 사랑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사랑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가 가장 고귀한 존재가 아니던가.) 외면적인 것도 물론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말하는 모습과 표정 그리고 서 있는 모습까지 은근하게 매력이 발산되고 있었다. 이후, 윤희라는 그녀의 이름은 내게 사랑을 뜻하는 소중한 단어가 되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새로운 만남이 주는 기쁨도 컸다. 내 이상형임을 직감했지만, 나는 그 감정조차도 억누르고 있었다. 이 역시 내 기대감이 크면 좋지 않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는데, 그런 걸 보면 기대감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 내가 지나치게 의식을 해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받는 것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경계심, 그것이 내가 아주 작은 사랑조차 할 수 없었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견고한 벽은 그녀 앞에서 차츰 허물어져갔다.
윤희는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보고 가장 먼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내 차는 말이 자동차지 모양새는 가관이었다. 세차는 거의 해본 적이 없을 정도라서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쓰고 있고, 군데군데 도장면이 벗겨져 나간데다가 녹까지 슬어잇고, 백미러도 깨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미 10년이나 된 중고차이기도 했지만, 워낙 차를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지경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차는 그저 이동수단이라는 생각 때문에, 차에 오른 이상 같이 탄 사람은 배려하지도 않고 오직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것만이 중요했다. 나의 운전습관은 조급하고 난폭하게 길들여져 있었고, 그래서 차에 탄 사람들은 거의가 불안해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시 내 운전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나에 대해 가졌던 좋은 인상까지 일순간 흐트러져 버렸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 만남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볼 정도로 그녀에겐 심각한 문제였었다.) 두 번째 만나는 날, 나는 또다시 약속시간에 늦고 말았다. 사실 첫날도 30분이나 늦었는데 또다시 늦는다고 생각하니 이만저만 조급한 심정이 아니었다. 간신히 차를 세워두고 숨을 몰아쉬며 뛰어들어간 약속장소에서 윤희는 입구 쪽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눈 후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윤희가 먼저 나가고, 나는 계산을 한 뒤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뛰어나갔다. 그녀를 만남으로써 나는 생기가 넘쳐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몸은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그만 입구에 닫혀있는 유리문에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유리문에는 핏자국이 생기고,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이 놀라서 "헉!"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찔한 상황이었다.(들어갈 때 유리문은 열려 있는 상태였고, 급하게 서둘러 들어갔던 나는 거기에 유리문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나는 이마의 피를 닦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밖에 서 있는 윤희에게 걸어가서 멋쩍게 웃어보였다. 그녀는 황당함과 걱정스러움이 섞인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조금 부딪쳤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약국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가 약을 발라주는 손끝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더 멍해져갔다.
우리는 매일 만나면서도 헤어지고 나면 또 보고 싶어졌다. 서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차츰 사랑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내 가슴의 빗장이 풀려 있음을, 아니 빗장이라는 것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만난 지 두 달쯤 지나서 윤희의 생일이 되었고, 나는 이 날이 그녀에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평소 잘 입지 않는 양복을 차려입고 회사 앞으로 찾아간 나는 먼저 생전 처음으로 준비한 장미 꽃다발을 안겨주었고, 남산에 위치한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멕시코 요리를 시켜놓고 케이크를 자른 뒤, 생일선물로 목걸이를 주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이, 조금 안면이 있던 레스토랑 주인은 포도주를 서비스로 가져다주었다. 나는 레스토랑 주인과 옆 테이블 사람들에게 케이크를 나눠주며, 윤희가 태어난 날, 내 사랑이 태어난 날을 축하했다. 여자들이 분위기에 약하다는 말은 거의 예외가 없는 것 같다. 내가 표현한 사랑은 그녀가 그날의 아름다운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살려주기 충분했고, 그래서 그녀는 행복해 했다. 몇 개월이 지나고 우리가 만나서 함께 있는 시간은 하루 평균 여덟 시간 정도나 되었다. 그저 밥 먹고 차 마시고 얘기하는 것뿐인데도 우린 서로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프리랜서 방송작가인 나와 항공사 예약부에 근무하는 그녀는 일찍 끝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대낮부터 만나서 거의 자정 무렵까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 전화를 통한 데이트를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전화를 통해서야 진지한 마음속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내가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한 번도 건넨 적이 없음을 알았다. 나는 서로간의 표정과 대화, 그리고 호흡을 통해서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흔하게 말해지는 사랑보다는 그것이 훨씬 진지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그때까지도 내가 버릴 수 없었던 혼자만의 벽을 허물지 않으려는 변명이었거나 사랑에 빠져들려고 하는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결국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어차피 사랑이란 무형으로 존재하지만, 그래도 사랑이라는 말이 있음으로 해서 사랑이 더욱 다져지고 현실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전까지 내가 느끼던 것은 비현실적이고 그저 이상적인 사랑의 구름이었을 뿐이었다. 이후, 우리의 대화에서 사랑이라는 말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차츰 사랑의 결실인 결혼까지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주로 작업하는 시간은 자정을 넘은 후부터 아침까지다. 어느 겨울날 그럭저럭 작업을 하다보니, 윤희가 깨어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조금 후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로 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녀를 놀라게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편의점에서 따뜻하게 데운 캔음료와 어묵을 사들고, 차 안에는 히터를 최대로 틀어놓고 집 앞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화장도 하지 않고 금방 잠에서 깬 얼굴로 그녀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표정의 그녀 모습은 아침 공기보다 더 신선해 보였고, 그녀는 내 작은 선물에 매우 즐거워했다. 우리는 한강 고수부지에 들러 차를 마시며 해가 뜨는 모습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그날 회사를 가는 대신에 나와 같이 하루를 보냈다. 우리는 각자 처한 상황이나 성격으로부터 가족사항과 조부모님의 이력까지 닮은 점이 너무나 많았다. 닮은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 놀라면서, 우리의 만남이 필연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들어 주었다. 아니, 그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좀더 가까워지기 위해 발견한 소중한 연결고리였다.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과거의 나는, 아직 인간들 속에 뿌리박지 못하고 떠도는 홀씨 같은 존재였다. 나는 삶의 방식에 익숙한 존재였고,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 몰입하면서 다름 사람들과 가슴으로 교감할 수 없었던 우물 속의 인간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무미건조한 내면을 갖고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랑이 있기 전까지 나는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세상은 혼자만으로도 살아가기가 얼마나 벅찬가. 혼자 하고 싶은대로 살다가 까짓거 죽으면 죽는 거고 하는 식이 내 삶의 방식이었다. 얼마나 편한 생각인가. 돈이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물질적인 욕망보다는 내 정신적인 만족이 훨씬 중요했다. 정신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전까지 결혼은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추구에 있어서 큰 장애물이라고 인식되었고, 그 결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윤희도 이런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원하던 삶의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헤어질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놓칠 수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없이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나, 결혼 없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나, 모두 쓸모 없는 이상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윤희를 간절히 원했고,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2년 여의 연애 후에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것은 우리의 사랑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사랑을 통해 나는 비로소 사람들 속에 들어가 함께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사랑은 아주 실낱같은 빛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내 온몸을 감싸버렸다. 내 첫사랑은 지금 나의 아내가 되었지만, 아직도 사랑을 통해 새로 태어나고 있다. 사랑은 나를 환상으로부터 현실로 끌어들였다. 사랑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채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우린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삶의 굴곡들을 겪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사랑의 변주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의 첫사랑은 추억이 될 수가 없다. 내 평생 함께해야 할 집이 되었으므로.
- 연왕모. 1969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 예술전문대학 문창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했으며, 1998 '현대시 동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