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백학기
아카시아 꽃향기에 묻어난 지상의 순수
내 그리움 속에 낮달이 떠 있다 나는 낮달이라고 내 그리움에게 전한다 낮달을 그냥 낮달이라고 그리움을 그리움이라고 부르지만 내 그리움 속에 낮달이 푸르게 떠 있다
꽃과 시 몇 편 놓인 삶을 꿈꾸었던 내 삶의 책상 위로 바람의 달력이 내 손등을 쓸어가는 동안
내 그리움 속에 낮달이 떠 있다. 시 '낮달'전문
그러니까 첫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떨려오는 그 옛날의 추억은 살아가면서 갖고 그윽한 향기로 누구에게나 남아 있을 터. 그 비밀스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련한 향기와 함께 온몸을 휘감아오는 전율을 느끼게 될 터이다. 내게도 그런 첫사랑이 있었나. 생각컨대, 초등학교 시절 동네 주변의 옥이나, 경희등 흔한 또래의 계집아이들에게서 느꼈던 감정의 골에서부터 중학교 시절 옆동네의 가슴이 봉긋한 고등학생 누나를 사모했던 어리숙한 감정들이 교묘하게 교직된 느낌을 지울 수 없음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내 연정의 씨앗이 발아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서이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이성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 살이 붙고 뼈를 이루어 사랑이라는 거대한 강물 속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나 하는 생각. 그런데 첫사랑의, 그 처음의, 풋풋하고 향기로운, 지금도 눈을 감으면 코 끝에 다가오는, 지독히도 아련한, 그래서 때로 그 향기를 다시 되맡아보기 위해, 오랫동안 정신을 집중시키면서, 그 옛날의 시절을 되돌아볼 때, 아카시아 향기의 냄새가 어느새 전신을 휩싸 노곤노곤하게 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 안에서 나는 그절의 어린 내가 되어 한 마리의 사슴처럼 산과 계곡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 산과 계곡에는 온통 아카시아 물결로 출렁이면서 아카시아의 향기가 온 산과 계곡을 뒤덮고 있어 첫사랑을 꿈꾸는 자의 내밀한 욕망으로 솟구치기도 한다. 말하자면 내 첫사랑은 그렇게 아카시아 향기와 함께 남아 있는 것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동네 주변의 같은 또래 옥이나 경희 등 그 애들은 같이 뛰고 놀면서 그 애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 첫사랑의 신비한 맛이 사라지고, 그냥 동무나 친구 같은 기억들로 남아 있으나 어느 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 우연히 길가에서 마주치게 될 때의 감정들은 또 특별하게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 애들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볼 수 없을 터이다. 그보다도 그 애들에 대한 순수한 감정은 이내 그 애들의 대학생이 된 오빠나 삼촌 또는 공무원인 무섭고 근엄하게 보이는 아버지들에 의해서 순수한 감정들이 이내 기화돼버릴 수밖에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 그 애들은 제법 여성다운 냄새를 풍기면서 모양을 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또래의 머슴애들은 코를 킁킁거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 옥이가 있었다. 그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참으로 예쁘고 착하게 생긴 옥이는 또래의 다른 여자애들답지 않게 맑고 순수한 여자애였다. 어느 때 방학이 끝나갈 무렵 군산인가 친척집에 다녀온 그 애는 풀지 못한 방학숙제를 내 도움을 빌어 무사히 마친 일이 떠오른다. 이게 인연이 돼 다른 애들보다 비교적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됐다. 방학 동안 옥이가 없는 동네는 적이 고즈넉할 수밖에 없었다. 전주-군산간을 오가는 두 칸짜리 열차는 지금도 그 대로여서 항시 갯비리내가 났었다. 삐익거리면서 철길 위를 지나가는 그 화차에서 갯비린내가 났다고 회상하는 것은 아마도 동네 아이들과 무임승차로 이 열차를 타고 군산항 부두까지 가 건너편 장항제련소의 굴뚝을 바라본 일이 있는 데서 기인할 것이다. 썰물이 빠져나간 갯흙들위로 썪은 냄새가 진도하고 부듯가에는 각종 생선횟감들과 시끄러운 소음, 거친 사내들의 음성이 한데 어우러진 그곳은 시각적인 풍경들과 함께 갯비린내 나는 곳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어쨌든...... 지금도 생각나지만 그 애는 위로 두 살, 네 살, 여섯 살 터울의 오빠들이 줄줄이로 버티고 있어 동네에서 아무도 그 애에게 접근할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그 애네 오빠들은 한결같이 험악한 인상이어서 어떻게 한 집안의 형제들이 저렇게 다를 수 있나 의아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게 중 용기 있는 또래의 머슴애는 옥이에게 도전하는 폼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 애의 오빠들에 의해서 무참히 도 혼쭐이 나기도 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행히도 나는 방학책의 인연으로 그 애의 오빠들로부터 비교적 점잖은 대우를 받았는데, 그런 나를 향해 누구는 주먹다짐으로 중학교만 들어가면 옥이를 빼앗아 밤열차를 타야겠다든가, 마을의 뒷동산으로 끌고가 먹어버리겠다든가, 누구는 다른 동네 애들을 동원해 여럿이 함께 쓰러뜨려버리겠다든가 하는 도저히 어린애다운 생각이랄 수 없는 허황된 꿈을 꾸기조차 했다. 밤 늦은 시각 동네 애들이 함께 모여 놀던 희미한 가로등 아래 담벼락 아래서 군산에서 오는 마지막 열차의 기적소리를 들으며 이처럼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던 이이들조차 왜 그들이 그렇게 옥이에게 탐닉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옥이는 또래의 다른 계집애들보다 예쁘고 착하고 맑고 그랬다. 아니다. 거기에다 뭐할까 수컷을 .... 아니다. 그런 상상일랑 그만두자. 옥이는 한마디로 예뻤다.
우리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면서 고등학교 입시에 매달리던 그 3년 동안 나는 옥이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등.하교시 옥이가 말쑥하게 교복을 차려 입고 집을 나와 학교를 가고 오는 모습을 간혹 스치기라도 할라치면 가슴이 어느 때는 콩 볶듯이 뛰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러나 또래의 다른 녀석들은 킁, 하고 콧방귀를 뀌거나 못 견디겠다는 듯 아랫도리를 잡고 뱅글뱅글 도는 시늉을 해보이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 당시의 우리 또래들은 그렇게 악도들이었을까! 하긴 한 동네에서 자라면서 시내 영화관에 몰래 숨어 들어가다 기도에게 걸려 쫓겨나고 여름이면 부래옥 아리스케키통을 들고 다른 동네를 싸돌아다니면 팔다가 이웃집 어른에게 발각돼 된통 혼나기도 하는 무언가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라면 참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옥이에게는 할 수 있는 한 갖은 방법을 동원해 꼬드길 수 있는 묘안을 찾거나 담벼락에 옥이를 그려넣고 못된 짓을 일삼던 우리들은 만약 자신들의 여동생에 대해 이 따위 무례한 행동을 보였다면 멱살을 쥐고 흔드는 일면도 있었다. 내가 공부에 매달리면서 자연 동네 아이들과 멀어지게 됐는데 야간 자율학습 후 귀가길에 어떤 은밀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것은 흔한 말로 운명의 장난일까.
처음에는 내 눈을 위심했으나 이내 그 상황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뿔싸, 희미한 가로등 아래의 담벼락에서 누군가 낯익은 여자애와 남자애가 함께 있는 모습은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때 군산에서 오는 마지막 열차가 둔중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지만 않았다면 내 존재는 그대로 그 현장에 있는 그들에게 발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당혹감이란! 그 상황을 목격하고 난 뒤 한동안 나는 미열에 시달리는 증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곧 잊어버리기로 했다. 옥이는 그렇게 내 관심 밖으로 멀어져갔다. 누군가는 옥이가 다른 동네 머슴애와 사귀게 돼그 애네 오빠들에게 된통 당했다거나 못내 두들겨맞았다는 소식도 그즈음 듣게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옥이는 머리를 두 갈래로 양어깨에 땋아 내린 멋진 모습의 여자애가 됐다. 말하기 부끄러우나 나는 지방의 명문고에 입학했으며 옥이는 3류 여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정식으로 옥이를 만나게 되는 우연치 않은 일이 생겼다. 동네 뒷산 아카시아 향기가 향기롭던 늦은 봄 어느 날이었다. 그 무렵엔가 나는 처음으로 아카시아 향기가 이처럼 강렬한가 하고 느끼는 '봄 타는' 녀석이 되어 있었다. 첫사랑은 그렇게 오는가. 옥이는 이전보다 휠씬 성숙해져 보였다. 옥이는 희미한 가로등 아래로 나를 불러낸 뒤 손바닥만한 편지를 내보였다. 아카시아 향기가 부드럽게 녹아 있는 날이었다. 전주-군산행 열차가 이날은 소리없이 지나갔다. 나는 옥이가 내민 편지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내 생각대로 였다. 여자에게서 처음 받아보는 향내나는 편지. 첫편지의 추억과 함께 가슴에 물결치는 첫사랑은 그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며칠후 옥이와 나는 시내 중앙통 제과점에서 만났다. 교복을 입은 우리들은 탁자 위에 놓인 우유와 한 접시의 빵을 놓고 조심스레 앉아 있었다. 왜 그렇게 가슴이 타고 입술이 마르는지 알 수 없는 나는 우유 잔만 만지작거릴 수밖에. 제과점의 넓은 창밖으로는 슬로우비디오로 행인들이 지나가고 건너편 영화고나의 대형간판에 미모의 여배우가 웃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보아온 옥이는 그 어린 날의 옥이가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숨바꼭질하던 그 어린날의 옥이가 내 시야에 가볍게 떠올랐다.
제과점을 나와 천변을 걸어가는 나는 아카시아 향기에 취했다. 천변 건너편 산에 지천으로 널린 아카시아 나무들의 꽃향기. 그 꽃향기는 내 전신을 휘감아 아련한 첫사랑의 길로 나를 인도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해 걷다가 천변에 앉아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하다가 그렇게 늦은 밤 귀가했다. 참으로 멀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옥이의 집 앞에서 헤어진 나는 껑충껑충 뛰어 집으로 돌아왔다. 흐린 가로등 담벼락 아래서 지켜본 옥이의 방에 불이 켜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잔영으로 남았다. 타고르의 시를 읽고 릴케와 헤세의 시를 읽는 날이 바야흐로 펼쳐졌다. 교과서나 종합영어, 수학정석의 참고서를 보는 날보다 타고르와 릴케와 헤세가 나와 함께했다. 창밖으로 먼 산을 바라본다거나 도서관 옥상에서 지붕을 내다보는 일이 잦아지고, 늦은 밤 아무도 없는 텅 빈 운동장에서 아카시아 꽃향기를 맡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는 동안 옥이와 나는 몇 번을 더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운명은 우리들의 첫사랑이 그렇게 쉽사리 이루어지도록 내버려두지만 않았다. 가슴 설레는 날들이 지나가고 아카시아 꽃들이 져버릴 즈음 귀가길에 우리는 옥이의 집 앞에 버티고선 그 애 오빠를 맞닥뜨리는 숙명 앞에 놓여졌다. 그 다음 상황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아카시아 꽃향기와 함께 시작된 나의 첫사랑은 아카시아 꽃향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 뒤 옥이네가 이사를 가고 우리 집 또한 어찌어찌한 이유로 이사를 하면서 내 첫사랑은 가슴속에만 아련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크게 달라진 나와 옥이네가 살던 동네 앞을 우연한 기회에 자나다보면 그 시절의 나의 옥이와 아카시아 꽃향기가 함께 어우러져 묘한 울림을 낸다. 또 옥이네 문 앞에 버티고 섰던 그 애 오빠도 함께 떠올라 웃음도 난다.
백학기 -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였으며, 원광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현대문학'에서 추천을 받고 '한국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는 조극으로 가야겠다', '나무들은 국경의 말뚝을 꿈꾼다.'가 있다. 1997년 제33회 1천만원 고료 동아일보 논픽션에 '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천하의 박봉우'가 당선됐다. 현재 KBS홍보실에 근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