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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꼭 누더기 도사 같으세요.”
16~17년 전 다방에서 대학 은사님과 마주 앉아 내가 건넨 말이다. 누더기 도사는 '머털 도사'에게 도술은 안 가르쳐 주고 날마다 야단만 치는 스승이다. 늘 '이놈아, 마음으로 봐야지.'라며 도술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기본 상식만 되풀이하고, 밥 짓기와 빨래만 시킨다. 그러나 누더기 도사에겐 나름의 확고한 철학과 멋스러움이 있다. 겸연쩍음을 무릅쓰고 나로서는 스승에 대한 최대의 존경과 찬사를 전한 셈이다. 그런데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당신이 즉답을 하셨다.
“사실 내 안에 왕질악(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품은 나쁜 도사) 있다.” 나는 뒤통수를 맞고 뒤집혔다. 그 답은 상식을 뒤집으면서도, 가장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가장 겸손하면서 가장 자신 있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의 권유로 상상력에 입문한 이래, 나는 선생님께 늘 야단맞은 기억밖에는 없었다. 상상력이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신 적은 더더욱 없었다. 내가 상상력에 대한 글을 써서 보여 드려도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 세월은 끊임없이 내가 뒤집히는 세월이기도 했다.
나는 선생님께 뒤집기 훈련을 받으면서 상상력을 배우고 세상을 배웠다. 뒤집기는 파괴가 아니라 밭갈이와 같다는 것을 배웠다. 즉 뒤집기를 통해 파괴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굳어 있는 나'였다. 뒤집기를 통해 새로워지면서 동시에 넓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거기에 뒤집기의 비밀이 있다.
우리는 얼마나 굳어지기 쉬운 존재인가? 아무리 유연한 사고를 지니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자기중심적으로 굳어지기 쉽다. 조금만 방심하면 어느새 굳어져 버린 모습에 스스로 깜짝 놀라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생님의 힘을 빌린다. 물론 직접 만나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은퇴 후 미국에 사시기에 자유롭게 찾아뵐 수 없다. 그래서 난 스스로 선생님 역을 대신한다. 내 마음속에 선생님을 두고, 그 마음의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는다. 그 선생님은 동시에'나'이기도 하다. 내가 좀 커진 셈이다. 뒤집기를 통해 유연해지고 커지려면 이렇듯 마음속에 스승 한 분은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
진형준 님 | 홍익대 교수
-《행복한동행》2010년 4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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