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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내게 세상은 참 만만해 보였고 뭐든지 하면 잘될 것 같았다.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내가 일하는 안경점까지 운동 삼아 40분 넘는 거리를 걸어다녔다. 그렇게 매일 아침 7시쯤 가게 문을 열고 밤 11시까지 쉬는 날도 없이 열심히 뛴 결과 사장님에게 신임을 얻어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게 되었다.
나의 미래를 위해 한푼 두푼 알뜰히 적금을 붓는 재미에 나는 술과 담배도 끊고 검소하게 생활했다. 그렇게 3년을 보내니 스물네 살의 나이에 제법 묵직한 돈이 내 손에 쥐어졌다. 달마다 부모님께 생활비도 조금씩 보태 드리며 이제야 자식된 도리를 제대로 하는가 싶어 스스로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나의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삼 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난 나는 어릴 적부터 형, 아우와 의좋게 어울려 다니며 놀곤 했다. 어느덧 사춘기를 맞은 형은 장남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 때문인지 차츰 말수가 적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해 갔다. 나와 같은 안경사 일을 배운 형은 어느 날 제주도로 직장을 구해 내려갔고 좀처럼 연락이 없었다. 나를 비롯한 남은 식구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며 지냈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가게로 전화를 하셨다. “저녁에 다른 데 들르지 말고 곧장 집으로 오너라.”
저녁 늦게 퇴근하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안고 현관에 들어서는데 낯익은 구두가 눈에 띄었다. 형이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거실에서 아버지가 언성을 높이고 계셨다.
“너, 이 녀석….”
아니나다를까, 형은 무릎을 꿇은 채 아버지 앞에 앉아 있었다. 하얀 종이 몇 장을 앞에 두고서. 난 재빨리 그 종이를 살펴보았다. 어디에 썼는지조차 알 수 없는 온갖 카드 회사의 독촉장들. 형이 집을 떠난 지 넉 달 만의 일이었다.
다음날 나는 형이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몰라 저지른 실수라 여기고 안쓰러운 마음에 적금 몇 개를 해약하여 카드 빚을 모두 갚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형은 다시 타지로 직장을 구해 떠났고 두 달도 채 안 되어 집으로 조용히 돌아왔다. 나는 직장생활이 힘들어 잠깐 다니러 왔나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평소에 거의 연락이 없던 대학 동창이 가게로 전화를 걸어 왔다. “저기 있잖아, 네 형이 내게 20만 원을 빌려 가셨는데 약속 날짜가 지났는데도 통 소식이 없다. 혹시 너 연락되니?”
이제는 내 친구에게까지 손을 벌리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남에게 돈을 꾸어서 도대체 어디에 쓰고 다녔는지 형에게 물어 보았지만 형은 잠자코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형은 행실이 좋지 않은 여자를 사귀어 계속 돈만 흥청망청 쓰고 다녔던 것이다.
그 뒤로 하루가 멀다 하고 가게로 걸려 오는 친구들의 전화. 심지어는 대학 교수님들도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나를 봐서 빌려 줬다는 것이다. 그 금액을 합해 보니 어마어마했다. 할 수 없이 형 대신 빚을 갚기 시작했는데 꼭 두 달 만에 내가 지난 5년 동안 푼푼이 모은 돈 6천만 원을 다 날리고 말았다. 그러고도 빚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허탈했다. 그 동안 아기자기하게 성실히 가꿔 온 내 인생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죽을 결심으로 칼 한 자루를 손에 쥔 채 산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윗옷을 벗어제끼고 가슴에 칼을 막 찌르려는 순간, 울음을 터뜨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깟 돈 때문에 목숨을 끊다니….'
그 뒤로 나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었다. 월급을 받는 즉시 모조리 빚을 갚느라 정신없이 8개월을 보내는 동안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도 모아 둔 돈을 하루아침에 잃자 무기력해지셨고, 어머니는 화병으로 앓아 누우셨다. 생활비는 물론 동생의 대학 등록금까지 고스란히 떠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나는 아버지가 집을 팔아 내놓으신 돈으로 안경점을 인수 받아 운영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여의 시간을 나는 그야말로 오기 하나로 버텨 냈다. 그리고 지금 명색이 사장이지만 아침부터 밤시간까지 일하고도 지갑에 단돈 천 원 한 장 없이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친구들이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용기를 주고, 형과도 의 상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 하나만 믿고 시집 온 고마운 아내와 아들이 있으니 내 어깨가 더욱 무겁다.
내 나이 스물아홉.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돈보다 소중한 것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겸손과 너그러움, 참된 용서, 그리고 작은 것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요즘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형과 예전 일로 가끔 티격태격하지만, 이제는 형을 원망하기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형이 어서 힘을 내어 보다 밝은 앞날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필자 : 조현국님 출처 : 월간《좋은생각》 2000년 07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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