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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배기 조카가 작년에 한참 많이 물었다는 질문입니다. “엄마는 벌써 아빠랑 결혼했어.” 하고 대답해 주면 “뭐! 왜?” 하고 되물어 엄마, 아빠를 당혹케 했던 조카. 그리고 늘 이렇게 덧붙였다죠. “나는 나중에 고구마랑 결혼할 거야.”
유달리 고구마를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직 결혼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거죠. 그랬던 꼬맹이 조카가 처음으로 결혼상대로 지목한 '인간'은 아빠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같은 어린이집의 유승하 군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살 연하라 세 살이었던 승하 군은 말도 못하는 아기라는 말에 한참을 웃었지요.
결혼상대가 달라졌다는 소식에 조카의 성장이 흐뭇했던 것도 잠시, 오빠의 반응을 듣고 깜짝 놀라 버렸습니다. 오빠는 딸내미의 반응에 흠칫하더니 다음날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러 갔다가 유승하 군을 찾았다는 겁니다. “선생님, 유승하가 누구죠? 걔 어디 있어요?”
딸내미가 처음으로 지목한 결혼상대가 아빠 아닌 유승하라니! 네 살 딸내미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고 분노하는, 오빠는 이미 속속들이 아비가 돼 있었던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니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겐 시선도 두지 않던 오빠. 다른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에 별 신경 쓰지 않던 오빠. 그런 오빠가 딸내미의 마음속에서 자기가 1등이 아니다, 다른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모습은 낯설다 못해 우습기까지 했습니다.
키득키득 웃으며 낯선 오빠의 모습을 곰씹어 보다가 문득 3*살 딸내미 바라보시는 저희 부모님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내미가 아무리 나이가 차도, 어떤 일을 해도 맘 못 놓으시고 감 놔라 대추 놔라 콩 놔라 팥 놔라 하신다며 비슷한 처지 친구들과 투덜투덜했던 적도 많은데…. 이제 날 좀 믿고 맡겨 줄 수 없겠냐고 짜증냈던 적도 많은데…. 그동안 부모님은 자식이 품을 벗어나려고 하는 걸 얼마나 섭섭하고 힘든 마음으로 보셨을까, 딸내미가 마음속에서 부모님의 자리를 점점 좁혀 놓는 것을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드셨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나라의 한백유가 노모께 회초리를 맞으며 울었다는 옛 고사가 있지요. 한백유의 어머니는 아들이 잘못하면 회초리로 아들을 벌했는데 아들이 다 큰 어른이 되어서까지 회초리로 때렸답니다. 하루는 한백유가 종아리를 맞으며 엉엉 울었는데 어릴 때도 울지 않던 아들이 우는 걸 보고 어머니가 그 연유를 물었겠죠. 그러자 한백유는 “어머니, 용서하십시오. 어릴 적 종아리를 맞았을 때는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리 매가 안 아픈 걸 보니 어머니의 기력이 쇠하고 연로하신 것 같아 마음이 아파 울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어차피 언젠가 자식은 부모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 이제는 조금이라도 부모님께 종아리 대어 드리는 심정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글 《아이찬》 홍문희 기자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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