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종이가 부족해요. 면지에 인쇄한다는 얘긴 안 하셨잖아요.” “예? 그럴 리가…. 아, 그게….”
신간을 인쇄하러 가는 날 아침부터 걸려 온 전화를 “어버버~”하다 끊고 말았다. 세상에, 인쇄하는 날 종이가 부족하다니. 다행히 나보다 마음이 더 급한 인쇄소 부장님이 근처 제지사에 전화해 임시로 종이를 빌리셨고, 출판사에서 다음 날 그만큼 채워 주기로 한 뒤 이번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인쇄소에 도착해 무사히 돌아가는 인쇄기를 보며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던지. 아마 내가 출판사 직원이었다면 ‘쫓겨나거나 혹은 한 대 맞고 쫓겨나거나’ 두 가지 중 하나였을 것이다.
잘나가는 잡지의 기자 자리를 박차고 나와 1인 출판사를 시작한 지 벌써 2년. 이제는 정말 치려야 칠 수 있는 사고도 없을 것 같지만 어쩌면 이렇게 매번 색다른 사고를 치게 되는지 그 무한한 가능성에 내 스스로도 감탄할 지경이다.
“사장님, 책 출고하셨어요? 독자들이 서점으로 불만을 접수하고 있는데요.”(엉뚱한 창고로 책을 보내는 바람에 서점 직원에게서 걸려 온 전화)
“사장님, 그 종이는 국전지가 없다고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기억 못하세요?”(인쇄하는 날 사이즈가 맞지 않는 종이가 와 있기에 제지사에 연락했더니 담당자가 하는 말)
기자란 게 글만 잘 쓰면 되는 일이라 책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 일을 시작하면서 좌충우돌할 거란 예상은 했지만 직접 뛰어들고 보니 그 사고의 반경이 상상 외로 넓었다. 그러다 보니 사장이란 사람이 만날 혼나고 다니는 게 일이 되어 버렸다. 처음 몇 번이야 ‘이러면서 배우는 거야.’라고 위로했지만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자 ‘내가 그래도 대통령 인터뷰도 했던 사람인데….’라며 ‘왕년에~’ 타령까지 하게 됐다.
그럴 때마다 언젠가 홍세화 선생이 하신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버는 사람이 특권층’이라는 말을 되새김질한다. 나야말로 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입에 풀칠하고 사는 특권층이니 두말하지 말고 앞으로도 만날 혼나자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한 번도 혼나지 않고 책 한 권쯤 만드는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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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님 | 책공장더불어 대표 -《행복한동행》2008년 8월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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