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미친 양반의 본심
고려말 신돈이 세력을 부리고 있던 시대에 경상도 영천에는 최원도라는 양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최원도가 반쯤 미쳤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습니다. 실제로 그는 한 끼에 밥 세 그릇을 먹어 치우고 방 안에서 용변을 보고 또 자기 방 근처엔 아무도 얼씬하지 못하게 하는 등 증세가 자못 심각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미쳐 버리자 그의 아내는 이를 수상쩍게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남편의 수발을 들고 있는 제비라는 계집종을 조용히 불러 남편의 행동을 감시하여 그 이유를 밝혀 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결국 제비는 상전이 벽장 속에 낯선 두 사람을 숨겨 두고 밖에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미친 척한 것임을 알아냈습니다. 최원도가 미친 척하면서까지 숨겨 준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이색, 정몽주와 더불어 고려말 소문난 충신인 광주땅에 사는 이집과 그의 아버지 이당이었습니다. 신돈의 포악한 정치를 조정에 상소했다가 신돈의 비위를 거슬려 이집은 곧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집은 아버지를 업고 멀리 아버지의 친구인 영천땅의 최씨 집까지 피신을 했던 것입니다. 그 후 이집과 그의 아버지는 2 년여 동안 벽장 속에서 숨어 살았으며, 최원도는 그동안 미치광이 노릇을 계속하였습니다. 또한 최원도의 아내는 그 사실을 알고, 사실을 염탐한 여종 제비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비밀을 누설할까 걱정을 하게 됐고 제비는 주인마님의 걱정을 알아채고는 자신에게 사약을 내려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최씨의 아내는 울면서 사약을 내렸고 제비는 큰절을 하고는 기꺼이 그것을 마셨습니다. 이렇게 진실한 친구의 우정과 여종의 절의로 이집은 살아남아 당대의 정신적 지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순경이 악덕을 가장 잘 알아채고, 역정이 미덕을 가장 잘 알아챈다. (F.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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