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우리 며느리 만세!
서울 어느 산동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에서 비탈길과 계단을 20분 정도 올라야만 골목 어귀에 들어설 수 있는 이 작은 산동네에 팔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산동네의 살림이 대개 그렇듯이 빠듯하게 꾸려나가는 생활 속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러 동회에 가야만 했는데 평소 문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할 정도로 약했던 시어머니도 별 수 없이 길을 나서야 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한 낮의 무더위를 피하려고 오전에 서둘러 동회를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동회에 도착했을 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병약한 노인을 모시고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부대끼며 주민등록 갱신을 끝마쳤을 땐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를 정도 였습니다. 며느리는 힘겹게 몸을 추스리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비탈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의 더딘 걸음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욱 멀게 느껴지고 더위도 한층 심하게 느껴졌을 법도 한데 며느리의 얼굴에선 짜증스러움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껴안듯이 부축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맘이 급해진 시어머니는 무리하게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다가 오히려 더 오랜 시간을 길가에 앉아 쉬어야만 했습니다. 드디어 비탈길을 무사히 지나온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그보다 더 힘든 계단 앞에서 망연하게 위를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묵묵하게 걷기만 하던 며느리가 별안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등을 시어머니 쪽으로 돌리고는 덥썩 시어머니를 업는 것이었습니다. 내내 며느리에게 미안했던 시어머니는 짐짓 싫은 듯 몸을 비틀며 내려오려고 애를 썼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발버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단을 씩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시어머니를 달랬습니다.
"어머니, 제 어깨를 꽉 잡으세요. 그렇게 몸을 움직이시면 집에 가서도 안 내려 드릴 거예요."
그러나 시어머니는 열 손가락에 물든 지문을 찍고 난 잉크가 며느리의 옷에 묻을세라, 손을 도리어 번쩍 쳐들고 머리만 며느리 등에 꼭 기대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만세를 부르듯 양팔을 번쩍 들어올린 채 업힌 시어머니와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채 계단을 오르는 며느리를 바라보던 산 동네 주민들의 얼굴에는 서서히 미소가 퍼져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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