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발끝으로 서기까지
20세기 초 한 젊은 여류 무용가는 발레의 기존 형식을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의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충격과 모험이었습니다. 검은 눈의 미녀로 우아함을 지녔던 그녀의 이름은 이사도라 던컨입니다. 뻣뻣한 발레용의 짧은 스커트나 몸을 죄는 발레 의상을 몹시도 싫어한 그녀는 옛날 그리스인이 입었던 느슨한 튜닉을 걸치고 맨발로 춤을 추었습니다. 불굴의 의지를 지닌 그녀는 1878 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습니다. 천부적으로 무용에 재질이 있었던 그녀는 19세에 뉴욕 단독 데뷔 공연에서 팔과 다리를 노출시키고 춤을 추어 점잔을 빼던 사교계 부인들을 경악하게 했는데 그 소동으로 더욱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굳혀 나갔습니다. 1899 년 유럽으로 건너간 그녀는 런던, 파리, 부다페스트, 베를린에서 잇따른 성공을 거둡니다. 야유를 하기 위해 오는 관중, 격려를 위해 오는 관중, 각양각색이었지만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이사도라의 우아한 몸놀림과 강렬한 정서적 표현에 사람들은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결혼이 진정한 천재를 말살하는 것이라 선언하고 오직 수많은 연인들과의 사랑놀이만으로 일관했습니다. 또한 이사도라는 전통적 발레교습은 일종의 횡포일 뿐이라며 새로운 무용이론을 가르칠 학교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의 악명과 낭비, 사업가로서의 자질 부족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모스크바에서 무용학교 설립을 요청받은 그녀는 러시아 출신 17세 연하의 시인 에세닌과 결혼을 한 후 미국 공연을 떠났지만 '품행이 단정치 못한 소련의 동조자'란 비난을 받으며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모든 곳에서 공연을 취소당하고 결국 미국 시민권까지 박탈당한 이사도라는 모스크바로 돌아가 1927 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죽음은 자신의 생애만큼이나 애절했습니다. 9월 14일 저녁, 붉은색 부가더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그녀는 자신의 몸을 감고 있던 스카프가 늘어져 바퀴살에 끼는 바람에 목이 부러져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사도라 던컨. 누구보다도 화려했지만 누구보다도 불운했던 그녀가 없었던들 현대무용이란 장르는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무용을 인위적인 인습이라는 굴레에서 타파시키고 '영혼의 거울'로 만든 선구자였습니다.
시가가 운율의 언어인 것처럼 춤은 운율의 보조이다.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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