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Voskesenie ;1899) - 톨스토이
해설
"부활"은 톨스토이가 70세에 쓴 그의 마지막 장편 소설로 인류 문학사에 영원한 기념비라고 할 만한 걸작이다. 특히 "부활"은 톨스톨이가 열중하였던 인도주의적인 사상을 형상화한 것으로, 발표되자 국내외에 비상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톨스토이는 "부활"을 통하여 제정 러시아의 사회 생활 특히 그 어두운 면을 기탄없이 폭로하여 불완전한 사회 제도에서 신음하고 있는 러시아 국민들의 이상을 향한 몸부림과 양심의 뉘우침 자유 해방에 대한 열렬한 부르짖음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작품은 폭풍이 다가오기 전의 어둡고 광포한 분위기를 묘사하여 러시아 혁명을 암시한 듯하다. 작품 속의 많은 인물은 실재 인물을 모델로 취했는데 검열에서 형편없이 손상 당했으며 당시 러시아에서는 이 작품에 대한 비판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부활"의 완본은 혁명 직후인 1918년 러시아의 '보드나르스키'의 원작 부흥판으로 간행되었다. "부활"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더불어 톨스토이의 3대 작품으로 꼽히고 있으며 내용의 함축성에서 두 작품을 능가한다고 평가된다. "부활"은 예술성으로 우수할 뿐더러 톨스토이의 생애에 걸친 사상이 이 작품 안에 구현 응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예술적 성서이다. "전쟁과 평화"가 그의 성숙기를 장식하였다면 "부활"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다" 로맹롤랑이 "부활"을 두고 이렇게 찬사한 것은 유명하다. 크로포트킨도 그의 저서 "러시아 문학사" 가운데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만약 톨스토이가 "부활"이외에 아무것도 안 썼다. 해도 대작가로서 인정받을 만큼 이 작품의 예술성은 높다" 그의 소설은 예술 소설의 정도를 걷는 주제와 소재로 일관되어 있다. 톨스토이의 작품은 이야기의 흥미진진한 진행에 있지 않다. "부활"을 읽는 재미는 각 부분의 생활 심리 인물 사건 묘사에 있다. 그 중에도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생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죄수 면회소의 광경에 대한 묘사는 정부와 교회를 전율시켜 검열에서 모두 삭제되었다. 감옥 안에서 행해지는 종교 의식의 무의미를 그려 냈기 때문에 작가는 "부활" 출판 후 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했다. 톨스토이는 "부활"의 구상 과정에서 몇 차례나 감옥을 견학하기 원하였으나 허가되지 않아 감옥의 관리와 사귀어 감옥 내부의 사정을 들었다고 한다. 작품에서 진실하고 생생한 인물은 카츄사인데 네흐류도프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기 위해 그의 구혼을 물리치고 심손과 결혼하는 결단이 인상적이다. 그것은 비바람 몰아치는 밤에 열차의 창을 두드리는 젊은 날의 카츄사와 대비되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비극적인 인물형인 것이다. 네흐류도프는 작가의 분신으로 '올바른 인간이 유일하게 살 곳은 감옥', '내가 미쳤는가 사회가 미쳤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작가 자신이 투사된 인물이다. 작가는 네흐류도프가 농민 생활을 시작하는 2부를 구상하고 있었으나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 작가가 '세계의 양심'으로 이목을 끌고 있던 시기의 작품이었던 만큼 "부활"은 읽는 이에게 공감을 일으켜 사상적인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약전
톨스토이는 1828년 8월28일 중부 러시아의 루라 시 근교 야스나야폴라나에서 태어났다. 톨스토이는 두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잃고 여덟 살에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세 명의 형과 누이동생이 있었다. 부친의 사망 이후 그들의 교육은 숙모인 오스텐 사켄 백작 부인이 맡았으나 숙모도 4년 후에 사망하였으므로 또 다른 숙모인 유시코프 부인에게로 옮겼다. 톨스토이의 용모는 몹시 추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비관하였다고 하며 그의 기이한 행동은 소년 시절부터 나타났다. 하늘을 날아보기 위해 2층에서 뛰어내린 일까지 있었다. 숙모의 집에서 프랑스 사람과 독일인 가정 교사에게 교육을 받고 15세에 형들과 함께 카잔 대학에 입학하여 동방어학과를 선택하였으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법률학과로 옮겼는데 관료주의적인 학과 규정을 이겨 내지 못하고 1847년에 중도 퇴학을 하고 말았다.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던 톨스토이는 사교적인 숙모의 영향을 받아 쾌락에 잠겨 방종한 생활을 보내다 우연히 루소의 "참회록"과 "에밀"을 읽고 감동을 받았고 루소의 저서라면 "음악 사전"까지 읽었으며 루소의 초상을 휘장처럼 목에 걸고 다녔다고 한다. 20세에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학사 시험에 합격하여 법학사 칭호를 얻자 자기의 영지로 돌아가 지주로서 농노 해방의 이상을 품고 농사 개량에 착수하였는데 실패로 돌아갔다. 그가 청년 시절에 쓴 대학 논문 "토지 사유론"을 실천하기 위하여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여 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농촌 생활에 염증이 난 그는 페테르부르크로 나왔는데 그에게는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다. 도박과 주색에 빠져 타락한 러시아 귀족의 생활을 하여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한 일도 있었다. 이 때 아우를 염려한 형 니콜라이의 권유에 따라 카프카스 지방의 수비대에 사관 후보생으로 입대함으로써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카프카스의 자연과 그 지방의 생활 양식은 그에게 처음으로 예술적 재능을 깨닫게 하여 예술 창작을 시도하였다. 24세에 "유년 시대" 등 기타 수 편의 작품을 내었다. 1853년 10월(25세)에 크림 전쟁이 일어나자 포병 사관으로 종군하여 이 전쟁의 양상을 선명하게 묘사한 수 편의 단편을 세바스로풀 지에 내어 일반 독서계에 필명을 알리기 시작했다. 1862년 9월(34세) 소년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소피아와 결혼을 하여 가정 생활을 시작했다. 소피아의 나이는 18세였다. 결혼 이후 그는 창작에 비상한 감흥을 가지고 몰두하였다. 1869년(41세) "전쟁과 평화" 완성. 48세에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 1908년 8월 28일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차원의 80주년 생일 축하식을 거행했다. 1910년 10월 18일 집을 떠나 방랑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 날 새벽녘 친구인 의사 도산과 함께 수도원에 있는 누이동생을 만나기 위해 떠났던 것이다. 그의 일기와 마코비츠키의 말에 의하면 집을 나와서 처음으로 시원스런 자유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기차에서 감기에 걸려 아스타포바 역에서 하차했는데 그 해 11월 7일 역장의 집에서 숨졌다. 그의 뜻에 따라 장례 절차는 극히 소박하였으나 그를 흠모하는 수많은 농민 학생 공장 노동자들이 각 지역에서 작은 역에 몰려들어 '러시아의 대작가'의 유해를 어깨에 메고 그의 출생지 야스나야폴라나로 행진하였다. 관을 묻은 후 수십일 동안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영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였다고 한다. 그 후 묘지는 모든 나라 사람들의 순례의 땅이 되었다. 로맹 롤랑으로 하여금 '세계의 아버지'라 부르게 하였고 도스토예프스키로 하여금 '예술의 신'이라 경탄케 하였고 성자 간디로 하여금 '나의 생애를 이끌어 준 훌륭한 교사'라 숭배하게 하고 레닌마저 '만국 근로 대중의 친구'라고 말한 톨스토이는 독자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수십 개 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에 대한 연구서만 해도 무려 2만 3천 권을 넘으며 또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줄거리
4월 28일 오전 여덟 시 간수장은 어두컴컴하고 악취가 코를 찌르는 감방 앞에 섰다. 열쇠로 문을 열어 덜커덕 문을 잡아당기고는 소리 높이 외쳤다.
"야 미스로바 출정이다"
그러자 감방 안에서 키가 작고 날씬한 한 여자가 나타났다. 이 여자의 경력은 가련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고아였는데 어머니가 일하던 집주인의 온정으로 딸처럼 하녀처럼 길러졌다. 이 집에서 그 여자는 카츄사라고 불리었다. 애칭으로 카첸카라고 불려지지도 않았으며 카치카라고 낮추어 불려지지도 않았다. 16세 되던 해에 그는 주인의 조카인 청년 귀족의 사나이다운 모습에 애모의 정을 품었다. 그와는 어릴 때부터 함께 놀던 소꼽동무였는데 벌써 큼직하게 자라난 그들은 비록 신분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달콤하고 순진한 첫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젊은 귀족의 이름은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흐류도프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부활절 전날 밤 젊은 네흐류도프 공작은 크림 전쟁에 출전하기 위해 소속의 연대에 부임하는 도중 카츄사가 살고 있는 백모의 집을 찾아왔다. 실은 이 집에 올 생각을 했을 때부터 카츄사를 손에 넣으려는 마음이 솟았으며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 온갖 방탕한 짓을 다해 본 그는 이미 상당한 오입쟁이가 되어 있었다. 순진하고 아름다운 처녀 카츄사는 다정하게 대해 주는 젊은 공작의 유혹에 끌려들어갔다. 부활절의 밤, 물 위에 얼음이 바삭바삭 깨지는 안개 낀 밤이었다. 네흐류도프는 남몰래 카츄사의 침실에 숨어 들어가 카츄사를 안고 자기 방으로 왔다. 카츄사는 목숨을 바쳐 마음 깊이 네흐류도프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나 그는 하룻밤의 들뜬 마음으로 신앙 깊고 깨끗한 처녀를 정욕의 희생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후 두 번 다시 네흐류도프는 카츄사를 찾아 주지 않았다. 카츄사는 버림받았던 것이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카츄사는 이미 임신한 몸이었으며 주인집에도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주인집을 나온 그녀는 윤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갔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리저리 주인을 옮겨 다녔다. 어디를 가나 사나이들은 호색한 눈으로 그녀의 몸을 노렸다. 마침내 여자 포주의 손에 걸려 도회지의 사창가에서 매춘부가 되어 뭇사내에게 몸을 팔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7년 동안의 윤락녀 생활에서 두 번 거주지를 옮겼고 병원에 들어가기도 해서 그녀의 심신은 거칠대로 거칠어졌으나 여전히 정직하고 고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카츄사는 결코 도둑질이나 살인을 할 그런 여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28세 되는 해에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여 살인 및 절도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면제라고 생각하고 그녀가 먹인 약으로 그녀의 손님인 스멜리코프라는 돈 많은 상인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체포되어 석 달 이상이나 숨막힐 듯한 감옥에 감금된 다음 겨우 재판을 받기 위하여 법정에 불려가게 된 것이었다. 재판장은 카츄사 마스로바를 향하여 판에 박은 심문을 시작하였다. 성명 신분 직업 종교 등을 묻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취조에 들어갔다.
"그대는 상인 스멜리코프의 가방 열쇠를 가지고 그 가방 안에 든 현금 2천 6백루블과 반지를 절취한 다음 여관에서 독주를 마시게 하여 그를 살해한 것이 틀림없는가?"
"아니오! 아니오!"
카츄사는 숨을 할딱거리며 대답하였다. 이상한 일었다.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앗! 저것은 카츄사다!' 법정 배심원 석에서 배심원의 한 사람이 카츄사를 보다가 갑자기 낯빛이 어두워지며 중얼거렸다. 그는 네흐류도프였다. 그는 카츄사를 눈앞에 대하자 이제까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10년 전의 자기의 추행이 머리에 떠올랐다. 먼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감에 따라 그의 마음에는 자기의 죄가 뚜렷하게 떠올랐다. 흰 앞치마를 걸친 어여쁜 소녀 카츄사, 가슴 울렁이던 첫키스로부터 2년 후에 그녀를 만났을 때의 일, 그녀의 처녀를 빼앗고 다음 날 백 루블의 지폐를 그녀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고 부임지로 떠나던 일,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네흐류도프 공작의 눈앞에 독살범이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서 있는 창녀 카츄사, 이 여자는 먼 옛날 자기의 일시적인 육욕의 만족을 위하여 짓밟고 버렸던 가련한 소녀가 아닌가... 신성하고 의젓한 배심원인 네흐류도프 공작의 마음은 몹시 어수선해졌다. 그 때의 가련한 소녀가 창부가 되다니 이 여자의 신세를 이렇게 만들어 놓는 자는? 내가 아니냐! 젊은 시절의 우연한 내 쾌락의 원인이 되어 마침내 이러한... 자기의 과오가 너무나 컸다는 것 그리고 그 커다란 죄에 대하여 자기가 너무나 태연스럽게 아니 오히려 잊어버린 채 오늘날까지 지내 왔다니 등뼈가 서늘해지는 것이었다. 네흐류도프는 강력히 카츄사의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법정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카츄사 자신도 울면서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하소연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재판의 결과는 답변서에 '독살할 의사가 없었다'는 일항이 빠져 있기 때문에 카츄사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되었다. 네흐류도프의 마음은 괴로웠다. 그 때의 일을 기억할수록 그의 마음은 가책 받았다. 이튿날 그는 감방으로 카츄사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만날 수 없었다. 낙심하고 돌아온 그는 2년 동안이나 열어 보지 못했던 일기장을 꺼내어 다음과 같이 적었다.
"...4월 28일 나는 배심원으로 법정에 참석하여 뜻하지 않은 일로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카츄사가 죄수가 있는 붉은 옷을 입고 피고석에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그녀를 석방하기 위하여 감옥으로 면회를 갔었으나 시간이 늦어 면회를 허락받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만나 나의 죄를 참회하고 용서받기 위해 그녀와 결혼할 작정이다. 오 신이여 도와 주소서..."
다음 날도 카츄사를 만나기 위해 감옥을 찾아갔다. 면회 장소로 간수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카츄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방긋 웃음을 띄우면서 말했다.
"당신이세요? 저를 만나고 싶다는 분이?"
"오오, 나요. 당신을 만나러 왔소. 내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왔소..."
네흐류도프는 숨가삐 말하였다. 이야기하는 동안 카츄사는 네흐류도프와의 일이 뚜렷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카츄사의 얼굴은 점점 흐려지는 것이다. 헤어지려 할 때 그녀는 네흐류도프의 손목을 잡고 말하였다.
"용서를 구할 만한 죄는 조금도 하지 않았어요. 혹시 있다고 해도 그건 벌써 지나간 일이에요"
네흐류도프는 배반당한 마음으로 면회소를 나왔다. 그가 그녀를 구원하려 한다는 것을 말하며 그녀는 기뻐하고 감동할 것이며 옛날의 카츄사로 돌아오리라고 기대했던 그의 교만함은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네흐류도프는 속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다. 그는 귀족의 딸과의 약혼도 파기하고 말았다. 카츄사를 구하기 위해 카츄사를 바른 사람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자기 자신도 올바른 사람이 되리라 결심하고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카츄사를 위하여 변호사로 청하고 진정서도 썼으며 모든 힘을 아낌없이 바쳐 그녀의 억울한 죄를 씻으려 하였다. 그는 변호사로부터 공소장을 받자 다시 카츄사를 면회하러 갔다. 그 공소장에 카츄사의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서명이 끝나자 네흐류도프는 그와 결혼하고 싶다는 결심을 토로했다. 카츄사는 안색이 달라졌다
"그건 또 뭣 때문에요?"
"그렇게 하는 게 신에 대한 내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신이라구요! 무슨 신 말씀이세요! 당신은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게 진실이라면 10년 전의 그 때에 신을 알고 계셨을 거에요(카츄사는 극도로 흥분하였다) 나가 주세요! 저는 죄인이고 당신은 공작님이세요. 이 곳에서 당신이 하실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요"
네흐류도프는 이렇게 외치는 카츄사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점점 거칠게 퍼부어 대었다.
"멋대로 사람을 노리개감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도 모자라 이번엔 저를 제물로 내세워서 자기의 죄를 벗으려고... 아아 당신의 그 부글부글한 얼굴은 보기만 해도 치가 떨려요. 나가세요. 나가세요. 당신과 결혼할 바엔 목을 매어 죽어 버리겠어요... 왜 내가 그 때에 죽어 버리지 않았을까?"
카츄사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네흐류도프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틀 후 면회하러 갔을 때에는 카츄사의 눈에는 번뇌와 초조한 빛이 있었다. 네흐류도프는 이 날도 결혼에 대해 말을 꺼냈으나 그녀는 듣지 않았다.
"또 한 번 말하겠소. 꼭 나와 결혼해 주오. 당신이 납득할 때까지 나는 어디까지나 당신을 따라가겠소"
그는 불쌍한 이 여자를 구하기 위해 시베리아까지도 따라갈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로원에 공소하기 위하여 그는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드디어 카츄사의 공소 사건은 심의에 오르게 되었다. 변호사 파나린은 자신과 열의를 가지고 원판결의 부당함을 논증하였다. 그러나 검사는 공소의 이유의 부적합함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공소는 기각되고 말았다. 네흐류도프는 몹시 낙심하여 모스크바에 되돌아왔다. 짧은 기간 동안에 카츄사의 마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격심한 고뇌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처음에는 네흐류도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끝까지 그를 미워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그녀를 움직였다. 카츄사는 점점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 경건하고 순진한 여자가 되었다. 이제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네흐류도프가 자기에게 해 주는 것이 과분하고 황송스럽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동시에 카츄사는 아직도 네흐류도프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단호히 그의 청혼을 거절한 것도 그 결혼이 네흐류도프에게 불행한 것이라고 느껴진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옛날의 자신을 되찾은 카츄사를 느끼지 못하고 다만 수치심도 없는 여자로 자기를 대하는 네흐류도프의 태도가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카츄사가 호송대에 들어가기로 확정되자 어디까지나 카츄사의 사면을 얻으려는 마음을 관철하려고 마음먹은 네흐류도프는 그녀와 함께 출발할 준비를 하였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영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집과 가재 도구를 누님에게 양도하는 등 명예와 부귀를 내던져 버렸다. 모든 것을 내던진 네흐류도프는 이제 다만 카츄사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눈 쌓인 시베리아 벌판까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찌는 듯이 무더운 날씨였다. 호송되는 죄수들은 남자가 623명, 여자가 64명이었다. 죄수들이 모두 광장에 모였다. 드디어 출발 소리가 울렸다. 벼락같은 소리를 내며 옥문이 열렸다. 동시에 쇠사슬 소리가 높이 울리기 시작했다. 호송병의 총소리 전송하러 온 사람들의 작별하는 소리와 그에 대답하는 죄수들의 목소리! 대열은 움직여 나갔다. 네흐류도프는 여죄수들의 대열 중에 카츄사를 본 듯했으나 그 모습은 많은 군중 속에 섞여 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기시켜 두었던 마차에 올라 대열의 뒤를 쫓았다. 한눈도 팔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카츄사의 얼굴에는 각오의 빛이 나타나 있었다. 더위는 점점 심해졌다. 죄수 몇 사람은 일사병으로 죽어 넘어졌다. 네흐류도프는 도중에 사경에 이른 죄수 한 사람을 발견하자 곧 그를 위해 자기가 탄 마차를 제공했다. 그가 정거장에 닿았을 때에는 죄수들은 모두 열차에 오른 뒤였다. 그는 잠시 동안 카츄사와 말을 할 수 있었다. 기적 소리가 나자 쇠창살이 있는 죄수 열차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카츄사가 있는 죄수 분대는 거의 3천 마일을 기차로 달렸다. 카츄사는 보통 형사범과 함께 베름 시까지 기선을 탔으나 그 곳에서 네흐류도프의 노력으로 정치범들 속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카츄사는 정치범들 사이에 들어가서 지금까지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또한 정치범들에게서 대단히 유익한 감화를 받게 되었다. 특히 심손이라는 혁명주의자는 카퓨사의 좋은 스승이 되었다. 심손은 은근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감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카츄사는 그의 마음을 눈치챘었으며 그만큼 고귀한 사나이에게 사랑을 받은 것이 그녀의 기쁨이 되었다. 네흐류도프의 사랑과 청혼은 그가 자기의 과거의 죄를 씻으려는 도의적인 감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심손의 사랑은 달랐다. 그는 카츄사를 한사람의 여자로서 현재 있는 그대로의 그녀에게 사랑을 바치고 있었다. 카츄사와 심손은 입 밖에 내지 않았으나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9월이 되자 싸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때때로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죄수 일행이 베름 시를 떠날 때까지 네흐류도프는 두 번 카츄사를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마저 자세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네흐류도프는 시베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자기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명랑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자기의 과거를 그리고 자기가 지금까지 그 속에 안주하고 있던 사회의 모습을 뚜렷이 살필 수 있게 되었다. 모순에 찬 사회의 허위 방종에 물들기만 한 귀족들의 생활 그러한 생활과 사회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학대받는 많은 사람들의 존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그들을 향해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다. 카츄사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일어선 그는 한 걸음 나아가서 모순에 찬 더럽혀진 사회의 구제를 위하여 일하지 않을 수 없음을 느꼈다. 네흐류도프가 시베리아의 죄수 숙박소를 방문하였을 때 그는 그 곳의 날로 앞에서 나무를 가지고 쪼그려 앉아 있는 심손을 보았다. 그와 함께 자루가 빠진 비로 방을 쓸고 있는 카츄사를 보았다. 카츄사는 그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잠깐 조용히 말씀 드릴 일이 있는데..."
심손이 네흐류도프에게 말하였다. 카츄사는 깜짝 놀라 두 사나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네흐류도프의 얼굴을 보자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마루에 나가자 심손은 침착한 말씨와 진지한 태도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실은 다름이 아니라 저는 당신과 카츄사와의 관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말씀 드릴 의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카츄사와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을 그에게 고백하였다.
"...그러나 저 여자의 색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녀를 세상의 갖은 고초를 다 겪은 훌륭한 부인으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녀에게서 아무것도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를 구원하여 그녀의 앞길을 밝게 해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심손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네흐류도프는 감격하여 말했다.
"저는 다만 제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카츄사의 짐을 가볍게 해 주려고 힘쓰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자유를 속박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카츄사가 당신과 같이 훌륭한 배우자를 얻은 것이 저로서도 대단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츄사의 복역 중 그 곁에서 보호해 주고 석방된 후에는 그녀와 결혼해야겠다는 처음의 계획을 네흐류도프는 포기하고 마침내 깨끗한 영혼을 도로 찾은 그녀를 심손에게 맡기기로 하고 그는 이제 다른 많은 괴로운 사람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홀로 남게 되자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카츄사는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몇 달이 지났다. 여행지에서 네흐류도프는 변호사로부터 등기 우편을 받았다. 가슴이 설레였다. 그것은 바라고 바라던 카츄사의 감형 통지서였다. 감형 통지서 등본에는 도형을 유형으로 감형한다는 뜻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 소식을 가지고 음침한 감옥으로 카츄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카츄사는 감형의 통지를 들고 흥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하지만 제발 염려 말아 주세요. 전 심손이 가는 곳을 따라갈 결심으로 있으니까요"
두 사람은 작별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
"나는 영영 헤어지고 싶진 않소"
네흐류도프는 말하였다.
"죄송합니다"
카츄사는 그의 손을 쥐더니 곧 몸을 돌려 나갔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하지 않고 '죄송합니다'라고 카츄사는 말했다. 이 말 속에서 네흐류도프는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카츄사는 자기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자기의 호의를 굳이 거절하고 심손과 운명을 같이하여 영원히 파묻혀 버릴 각오를 했던 것임을 명백히 깨달았다. 감옥에서 돌아오자 네흐류도프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 한참 방 안을 왔다갔다 하였다. 카츄사와의 관계는 드디어 끊어졌다. 그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이제 또 한 가지 일이 그에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이제까지 목격하여 온 죄수들이 받고 있는 너무나도 비인도적인 처지 그리고 냉담한 처사 및 감옥의 비리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더욱 올바른 길을 인류는 걷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시정하는 일이 남았다. 오락가락하며 생각하는 데 지쳐 그는 램프 옆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책상 위의 성경을 들어 읽기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읽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마지막으로 그는 성경의 한 귀절을 되풀이하여 읽었다.
"하느님 나라와 그의 정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여 얻으리라"
그리고 그는 외쳤다.
"그렇다. 하나의 일은 우선 끝맺었다. 이제 또 다른 일이 시작된다"
그날 밤은 네흐류도프에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의 새로운 생활이 어떻게 끝맺을는지 그것은 다만 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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