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전 (3/3)
간신의 무리는 모두 물러가고 그 나머지 신하들은 임금이 타신 수레를 옹호하여 산성으로 피난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과연 백성들의 소문을 들으니 호의 군사가 서울에 침입하여 수많은 백성들을 죽이고 대궐 안에 들어가 관리를 모두 목베어 죽이고 고관들과 부녀자들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서울의 많은 백성들은 피난가느라 길거리를 메웠다고 했다. 임금은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매우 놀라서 정신없는데도 불구하고 박씨 부인의 신명함과 충성스러움을 아름답게 여기시어 시백을 불러 찬양하시었다. 이즈음 수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한양성에 도착한 용골대는 국왕이 이미 광주로 피난했음을 알고 분해 했다. 과연 용골대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동생 용홀대에게 서울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오천 명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물밀 듯이 나아갔다; 송파를 건너서 넓은 벌판에 진을 치고 광주산성의 남대문에 에워싼 후 크게 외쳤다. "죽기가 두려우면 어서 문을 열고 항복하여라." 이 외침을 들은 수문장이 바삐 뛰어 들어가서 아뢰었다. "호장 용골대가 남문을 에워싸고 문을 열라 고함을 지르니 임금께서는 속히 군사들을 풀어 도적을 막으시옵소서." 상감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탄식하였다. "오오, 빛나는 삼백 년의 왕업이 내게 이르러 하루 사이에 몰락할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하늘이 무심도 하구나!"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임금님의 소매는 눈물로 젖었다. 이 모습을 보고 이시백이 침착하게 아뢰었다. "상감께서는 과히 걱정 말으소서. 이 모든 것은 하늘의 섭리이니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용골대가 제 아무리 강한 군사를 갖고 있다고 해도 산성의 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으니 감히 침범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그러자 모든 신하들도 상감을 에워싸고 위로하였다. 그러나 곧 총소리가 천지에 진동했다. 오랑캐가 성의 주위를 빠짐없이 에워싸고 사다리를 놓아 한꺼번에 올라와서 성 안으로 총을 쏘니 성내에는 총알이 비오듯 쏟아졌다. 온 성의백성들이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짓밟히어 다쳐서 달아나며 슬피 우는 소리에 성내는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상감이 놀래시어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임금께서는 과히 근심마시고 적군과 화친하소서. 필시 용골대가 삼형제의 세자님을 잡아갈 것이 매우 슬픈 일이오나, 나라의 위태로움을 먼저 구하소서. 나라의 운세가 불길하여 호국의 침입을 받은 것은 모두가 하늘의 섭리이니 어쩔 도리가 없나이다. 저는 다름 아닌 광주 유수 이시백의 아내이옵니다. 제가 칼을 한 번 들면 용골대의 머리와 호병 삼만 명을 풀베듯이 죽여 없애겠지만 하늘의 뜻을 어기지 못함이오니 저의 무능을 용서하시옵소서." 이 모습을 상감이 신기히 여기시어 뜰로 내려와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칭찬하셨다.
상감이 적군과 화친을 청하니 용골대가 세자와 왕대비를 데리고 광주를 떠났다. 이때쯤 박씨 부인은 모든 일가 친척과 충신들의 집에 통지하여 피화정으로 잠시 피신하도록 전했다. 한편으론 용골대의 아우 용홀대가 박씨 집 후원으로 들어가 그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다른 한 편을 바라다보니 담 밖에 나무가 무성히 자라 있고 그 아래에서 수십 칸이 넘는 초당이 깨끗하게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아름다운 미녀가 다홍치마에 색옷을 어여삐 입고 앉아 있었다. 그 여자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녀의 무릎 위에는 서너 살 된 아이가 재롱을 떨고 있었다. "도대체 저런 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용홀대는 급히 진지로 돌아가 수백 명의 기병을 이끌고 다시 그곳에 와 보니 많은 나무들은 모두 기병으로 변하여 깃발과 창칼이 벌려 있는 것 같았다. 뜰 안으로 들어가니 진을 쳐놓은 곳에 한 미녀가 앞을 향하여 큰 소리로 말하였다. "네가 바로 호국의 장수 용골대의 아우 용홀대로구나. 너는 영락없는 오랑캐로 하늘의 섭리를 거역하고 남의 나라를 감히 침략하며, 또한 버릇없이 양반집의 안방에까지 무례하게 들어오니 너는 마땅히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며, 서서히 다가서면서 침착하게 말하였다. "내가 누군 줄 모르느냐? 나는 다른 사람 아닌 광주 유수 이공의 부인 박씨의 계집종 계화이다. 네가 오랑캐의 선봉이 된 그 죄로나의 손에 목없는 귀신이 될 것이니 그 인생이 참으로 불쌍하구나." 계화는 날카로운 칼을 빼들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용홀대가 자세히 바라보니 그 미인은 머리에 태화관을 쓰고 몸에는 비단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는 금빛 갑사띠를 둘렀다. 거기다가 손에는 큰 칼을 들고서 있으니 흡사 물찬 제비 같았다. 용홀대는 눈 앞이 아찔하였으나 분함을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쳐 계화에게 말하였다. "가냘픈 여자가 상스럽지 못하게 대장부 앞에서 감히 칼을 빼어들고 서 있느냐? 내가 대장부로서 너 하나 잡지 못하고 세상에 나설 수 있겠느냐?" 용홀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달려들었다. 용홀대와 계화의 칼이 사오십 번을 부딪쳐도 승부가 속히 나지 않더니 한 번 계화의 칼이 번쩍 불을 뿜으니 용홀대의 커다란 머리가 칼의 빛을 쫓아서 땅으로 떨어졌다. 계화는 용홀대를 칼 끝에 꿰어 들고 좌우로 크게 흔들며 사방의 적을 위압하니 모든 장병이 넋을 잃고 한꺼번에 항복을 했다. 계화가 그 용홀대의 머리를 박씨에게 바치자 부인이 일렀다. "그 머리를 높은 나무의 가지에 매달아 용골대가 제 아우의 머리를 보고 놀라게 하라." 박씨의 분부를 받들고 계화가 후원의 전나무에 높이 달아 매었다.
그 뒤 여러 날이 지나서 용골대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위세도 당당하게 북을 울리며 동대문을 들어오다가 제 아우가 박씨의 계집종 계화에게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을 전해 듣고 탄식하였다. 용골대는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 눈치더니 얼굴이 벌겋게 충혈되어 가지고 박씨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큰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대체 박씨란 여자가 어떠하기에 멋모르고 대장을 죽이고 게다가 그 머리를 저 전나무 위에 매달아 놓고 겁없는 짓을 하느냐? 이제 내가 상대해 줄테니 어서 나와 내 머리도 잘라 놓아 보아라." 용골대의 우레와 같은 음성에 박씨가 분하여 불러서 일렀다. "네가 나가서 죽이지는 말고 용골대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어주고 오너라." 계화는 명을 받들고 해와 달, 국화의 무늬가 수놓여 있는 관을 쓰고 몸에 붉은 비단으로 치장하고 손에 석 자 정도의 칼을 들고 문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얼굴은 썩은 대추빛과 조금도 다름이 없고 눈은 가늘게 찢어져서 쳐다보기에도 오싹할 정도로 흉칙하게 생긴 용골대가 꼼짝 않고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화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히 말하였다. "용골대, 네가 호의 대장으로 위임받고 조선에 들어와서 나약한 여자에게 망신을 당하고 돌아갈 줄은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용골대는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르며 계화에게 말했다. "너는 한낱 천한 조선의 계집으로서 대장부를 얕보고 상스러운 말을 즐겨하니 대체 어찌된 연고인가? 내가 분명히 밝히고자 하는 것은 너의 몸을 다섯 조각으로 잘라 죽여 아우의 원수를 갚아 주리라." 말을 듣고 난 계화는 용골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네가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감히 나를 이겨내지는 못할 것이다. 단지 우리 조선의 운세가 불길해서 너희 오랑캐에게 욕을 보이기는 하지만 너의 아우는 우리 부인의 신명한 비법으로 목이 베였다. 그로 인해 다시 나라를 빛내었으니 어떻게 그 머리를 돌려줄까 보냐. 용골대는 들어라. 옛날 조양자가 지백을 죽이고 그 머리로 오줌 그릇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마 우리 부인도 네 아우의 머리로 그 그릇을 만들어 임금님께 바쳐서 위엄을 빛내고자 함인지도 모르겠구나. 너는 다시는 망령된 말을 그만 두고 너의 나라로 한시 바삐 돌아가는 것이 너의 생존에도 이로울 것이다." 계화는 잠시 말을 쉬었다가 계속하였다. "나라의 운세가 좋지 않아서 네가 세자님을 모셔가는 것을 우리 부인의 재주로 막을 수 없는 것이 한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왕대비님은 모셔가지 못할 터이니 그리 알고 속히 피화정으로 모시게 하여라." 계화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만일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너의 목숨은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용골대는 분함을 못 이기어 삼백 근짜리 쇠뭉치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에 계화는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며 화단을 헤치고 달아나니 용골대가 몰아붙이며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 "달아난다고 해서 네가 이 쇠뭉치에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용골대가 계화의 바로 뒤까지 쫓아오게 되자, 별안간 사방이 분간할 수 없이 어두워졌다. 계화는 쥐었던 칼을 공중에게 휘저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모래와 돌이 날리고 사방으로 귀신 같은 군사들이 에워싸고 들어왔다. 또한 잠깐 사이에 눈과 비가 상당히 내려 물이 한 길도 넘었다. 용골대가 아무리 맹장이라 해도 박부인의 무서운 재주는 당할 수 없었다. 손발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넋을 잃고 정신없이 말하였다. "소인이 눈은 있어도 망울은 없어 높으신 어른을 빨리 알아 보지 못하고 침략하여 천만 번 죽을 죄를 졌사옵니다. 부디 목숨만은 건져 주신다면 이 길로 제 나라로 돌아가고자 하옵니다." 계화가 큰 소리로 일렀다. "네 생각이 정녕 그렇다면 어서 왕대비님을 이곳으로 모셔와라." 용골대는 바삐 군사들을 재정비시키고 몇몇 군사를 불러 왕대비님을 피화정으로 모시도록 하였다. 용골대의 명령을 받들고 왕대비님을 피하정으로 모셔 오라고 전하니 왕대비님은 세자를 붙드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말하였다. "너희 세 사람은 부디 몸조심하여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다." 삼형제의 세자님이 땅에 엎드려 통곡하며 국가의 불행한 운세를 아뢰고 계화에게 명했다. "용골대를 풀어주어 제 나라로 돌아가게 하라." 계화가 부인의 명을 받고 용골대에게 말하였다. "네가 돌아가는 길에 의주에 다다르면 부득이 임 장군에게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 이 글을 보여 드리면 어쩔 수 없니 너를 살려 보낼 것이다." 용골대가 크게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한 다음 군사들을 이끌고 의주에 도착했다.
의주부윤 임경업은 용골대가 동쪽으로 들어와서 죄없는 백성들을 죽이고 세자님을 데려가는 것을 보고 크게 성내었다. 그리고 혼자서 창을 들고 말 탄 채 달려들며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오랑캐의 대장은 목을 내밀고 나의 칼을 받아라!" 임 장군의 노여움에 불타는 얼굴을 보고 용골대는 겁이 나서 정신없이 말에서 내려와서는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부디 장군은 노여움을 그치시고 이 글을 받아 보소서. " 하면서 두 손으로 글을 바쳐 올렸다. 임경업이 분을 누그러뜨리며 칼 끝으로 받아 보니 그 글에서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조판서 겸 광주 유수인 이시백의 처 박씨는 임 장군께 글월을 보냅니다 지금 나라의 운세가 지극히 불길하여 이런 슬픈 변을 당하였으나 이는 하늘이 정한 어쩔 수 없는 운수이기 때문에 용골대가 세자님을 모셔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군은 분한 마음을 진정시키시어 용골대를 무사히 돌아가게 하여 삼 년 후에 세자님을 편안히 돌아오게 하심이 현재로서는 해야 할 급선무입니다. 장군께서는 부디 박씨의 말을 곧이 들어주시기 바라옵니다." 임 장군은 글을 다 읽고 나서 분함을 어지간히 누그러뜨리고 말에서 내려 세자님을 뵈옵고 피눈물을 흘렸다. 임장군은 머릴를 조아려 서글피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세자님들게서는 부디 슬픔을 이겨내시어 삼 년을 참으시면 신이 죽기를 다하여 호국에 가서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세자님들은 신의 말을 가벼이 여기지 마시고 기억해 주시옵소서." 세자는 할 말이 없어 그대로 경업과 이별하고 떠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감께서 왕대비님과 세자님을 호국에 보내시고 마음이 원통하시어 침식이 불안해하시며 며칠을 계속 보냈다. 그러나 어느 하루, 하늘에서 한 선녀가 머리에 해와 달, 국화 무늬가 수 놓여진 관을 쓰고 몸에는 비단 옷을 입고 사뿐이 내려와서 땅에 엎드리므로 상감이 놀래서 급히 물으셨다. "선녀는 누구기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는가?" 박씨가 다시 일어나 절하며 대답을 했다. "저는 이시백의 아내 박씨이옵니다." 상감이 놀라서 이르기를, "그대의 슬기를 늘 칭찬하였는데 오늘에사 그대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는구나." 상감께서는 이렇게 말을 끝맺고 이시백을 돌아다보며 일렀다. "그대의 충성이 지극하므로 저런 부인까지 두었으니 어찌 갸륵하지 않을 수 있는가?" 상감은 유수의 벼슬을 높여 세사자-세자 시 강원의 으뜸 벼슬로서 정일품-를 시키시고 박씨에게는 정경부인의 직분을 내리셨다. 그리고 시백의 부친 득춘에게도 보국숭록대부 겸 봉조하-평생 연금을 받는 벼슬-를 시키시고, 그 부인에게는 정경부인을 내려주시니 시백은 머리를 숙이고 말을 하였다 "신에게는 조금의 공도 없사온데 분에 넘치는 벼슬을 주시어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임금께서 이르셨다. "나라의 위태로움을 그대가 지탱하여 나를 지키고 충성을 다하지 않았는가? 내가 여러번의 위험이 있을 때 그대의 부인이 나를 도와주었고 용골대의 용맹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고 왕대비님을 편히 모셨으니 이는 내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은공인데 조그만한 벼슬로써야 어찌 갚을 수 있겠는가?" 이어서 대궐로 돌아가시는데 가시는 거리마다 백성들이 임금님의 행차를 마중하였다. 조용한 때를 기다려 왕대비님은 박씨의 은덕으로 피화정에서 대궐로 돌아오심을 하나도 빠짐없이 말씀하시어 상감은 박시의 노고를 아름답게 여기시어 충신문을 세웠다. 그리고 피화정 옆에 한 집을 세우고 이름을 일가정이라고 정하였다. 그리고 이곳으로 임금께서 매년 한 차례씩 춘삼월이 되면 거동하시어 꽃놀이 구경을 하시었다. 그 이후 이시백의 공덕을 더욱 아름답게 여기시어 시백에게 의정부-내각에 해당함-우의정-의정부의 정일품 벼슬-과 대광보국숭록대부의 벼슬을 주시고 부인 박씨에게는 충렬 정경 부인의 벼슬을 주셨다. 그리고는 시백과 박씨를 매우 칭찬하셨다.
이럭저럭 세월이 지나서 세자가 호국에 간 지 삼 년이 되니 왕대비님과 상감이 그 소식을 몰라 늘 걱정하시었다. 그래서 한 신하가 상감께 나아가 아뢰었다. "신에게는 비록 재주가 없사옵니다마는 제가 호국에게 세 세자님을 모시고 오겠사옵니다." 말을 듣고 상감께서 자세히 보니 그는 의주부윤 임경업이었다. 상감께서는 몹시 기뻐하시어 임경업에게 병조판서 겸 훈련 대장의 벼슬을 주시고 상사로 삼으셨다. 그리고 곧 떠나라 하시니 경업이 거듭 절하고 감격해서 임금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수행원들과 함께 여러 날 만에 호국에 도착하여 황문시관-내시-에게 통했다. 왕실에 들어간 내시가 조선국 사신이 왔다고 알리니까 호왕이 속히 들어오라고 해서 경업이 들어가 절하나 호왕이 기뻐하여 말하였다. "어떻게 수천 리 험한 길을 오게 되었느냐?" 경업이 대답하였다 ."제가 이렇게 오게된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조선 왕이 예물을 갖추고 세자님 삼형제를 돌려 보내시기를 바라옵기에 온 것입니다." 말을 끝맺고 많은 금은 보석과 글을 올렸다. 호왕은 글을 보자 글시가 온공하고 예물이 욕심에 흡족하여 기뻐하며 일렀다. "과연 조선 왕은 예절을 잘 아는 임금임에는 틀림이 없구나." 호왕은 곧 이어 세자님 삼형제를 불러 일렀다. "너희 나라에게 너희들을 데리러 사신이 왔는데 무슨 원이 있으면 한 마디씩 말해 보아라." 먼저 첫째 세자가 대답했다. "저는 아무 것도 필요치 않고 아버님이 기다리시니 오직 자식된 도리로서 하루 속히 돌아가기를 학수고대합니다." 이어서 둘째 세자가 대답했다. "저의 원이 있다면 여러 해만에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혼자서만 가는 것은 옳지 않으니 이미 수백 명의 본국 백성들이 와 있사오니 그들과 함께 가기를 소망합니다." 이번에는 셋째 세자가 대답했다 ."저는 아름다운 미인을 한사람 주시면 데리고 가서 아버님께 뵈오려 합니다." 호왕은 모두의 소망을 전부 들어주었다. 경업은 즉시 하직인사를 드리고 세자님 삼형제를 모시고 여러 날 만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즉시 상감께 나아가 보고하니 먼 길에서 무사히 돌아옴을 크게 기뻐하시고 세자님 삼형제를 불러 호국에게 여러 해 동안 고생한 일들을 물으셨다. 그리고 또 일렀다. "그대들이 떠나올 때 호왕이 무슨 말을 묻더냐?" 첫재는 세자가 먼저 대답하였다 ."소원을 묻기에 저는 한시 바삐 본국에 돌아가 부왕을 뵙겠다고 했사옵니다." 이어서 둘째 세자가 대답했다. "저의 원은 백성들을 오랑캐 땅에 두기가 분하여서 데려 가겠다고 청했사옵니다." 상감께서는 둘째 세자를 크게 칭찬하시고 일렀다. "그대는 한 나라의 생명을 거느릴 만한 능력이 있구나." 그리고 셋째 세자를 꾸짖어 말씀 하셨다. "너는 미녀를 나에게 데리고 오면 무엇이 흡족하느냐? 어리석은 자식이로구나!" 상감께서는 갑자기 벼루를 들어 셋째 세자를 치시니, 왼쪽 다리를 맞아 다리가 부러져 항시 다리를 절며 다녔다.
한편 그 전에 영의정이었던 김자점은 이시백과 임경업을 대단히 시기하여 해치고자 하고 있었다. 먼저 임경업을 해치려고 어명이라고 거짓으로 말하고 형벌을 중히 덮어 씌워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장차 죽이기로 꾀하였다. 이에 세자는 경업이 자점에게 해를 당하는 것을 알고 불쌍히 여기시어 감옥으로 가자고 분부하셨다. 그래서 감옥 문앞의 흥선문을 고쳐 거동하기를 기다렸으나 온 조정이 말리기를, "조정에서는 신하를 보시려고 친히 감옥에 가시는 법이 절대로 없사옵니다. 세자께서는 깊이 살피시기 바라옵나이다." 하여서 세자는 그리 여기시고 중지하였다 .이 때 경업의 형벌은 더욱 가중해져서 기묘년-1639년-삼월 이십 육 일에 서른 두 살의 아까운 나이로 목숨이 끊겼다. 어느 하루, 상감이 잠자리에서 주무시는데 꿈결에서 경업이 온 몸에 피를 흘리고 걸어오며 아뢰었다. "생전에 신이 충성으로 임금님을 모시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운세가 몹시 나빠서 김자점의 말에 속아 온몸이 성한 곳이라고 한 군데도 없이 중상으로 죽었습니다. 이 어찌 통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원하건대 저의 몸을 불쌍히 여기시어 역적 김자점을 죽여 주셔서 저의 한을 풀어주시면 신은 죽어서 넋이라도 충성을 아낌없이 바칠 것입니다." 상감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아 곰곰이 생각하시되 덧없는 꿈이었다. 상감은 이 꿈을 이시백을 불러 말하고 임경업의 일을 물어보셨다 .시백은 눈물을 흘리며 김자점의 음흉함으로 임경업을 매질하여 가두었기 때문에 맞은 독이 곪아서 원통히 죽음을 아뢰었다. 지체함이 없이 상감은 크게 성내시어 자점을 의금부에 가두고 엄중히 문초하시니 모든 죄상을 다 말했다. 그 말에 상감은 더욱 노하시어 명령하셨다 ."곧 김자점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여러 고을에 돌려 침뱉게 하고 몸뚱이는 경업의 집안에 내어 주어 마음대로 복수하게 하여라. 또한 김자점의 처자는 모두 목을 옭아매어서 죽이되 사대에 한하여, 모든 세간을 몰수하도록 하여라." 이처럼 통탄할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한 나라의 영의정 벼슬을 지내어 부귀가 영화로움에도 불구하고 악독한 흉모를 꾸며 김자점 자기 자신이 몸을 망쳤으니 넋인들 용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이때 이시백은 상감의 분부를 받들어서 김자점의 죄상을 낱낱이 드러내고 그의 몸을 묶어 신전에 세워 놓고 먼저 목을 베고, 그 다음에는 몸을 찢으니 경업의 식구들은 불같이 달려들어 김자점을 썰고 집씹으며 간을 내어다가 영 앞으로 제사하여 원통함을 풀고 또 풀었다. 이 때 상감께서는 경업의 원통한 죽음을 가엾이 여기시고 예조에 명하여 충신문을 세우라고 하셨다. 그리고 벼슬까지 높여 주시어 대광보국과 의정부 영의정 겸 세자사를 내리셨다. 또한 시호를 충렬공이라 하고 왕족의 대우로 장사지내라 하시고 그 자식에게 벼슬을 주어 어버이의 거상 중에도 나아가게 하셨다. 그리고 제문을 손수 지으시어 예관을 보내어 제사를 지냈다. 그 후 십 년까지 영의정의 녹을 누리게 하시니 성은이 바다와 같았다. 이때 임금의 건강이 편안하지 못하시어 구월 초순에 돌아가시니 왕위에 오르신 지 꼭 삼십 이년이 되었다. 온 조정이 장례를 치르고 세자가 즉위하시니 나이가 십구 세였다.
이제 태평한 날은 계속되어 길에 버려진 것을 줍지 않고 산에는 도적도 없고 밤에 문을 걸지 않아도 걱정이 없으니 거리마다 태평가가 넘쳐 흘렀다. 이러한 태평 연월에 이시백은 한 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나랏일을 잘 다스려서 모든 일을 순조롭게 이끌고 백성을 의로운 길로 인도하였다. 이에 공의 이름이 온 나라에 떨치고 그의 아들 희인 형제도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하나는 평안도 감사가 되었고 하나는 송도유수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정치가 또한 청렴 결백하고 자손이 여럿 되어 한결같이 똑똑하여, 그 재롱을 보며 세월을 보내고 살았다. 어느 해 뜻바까에도 정승이 병을 얻어 끝내 일어나지 못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이시백의 부부는 아버님을 잃고 주야를 뜬 눈으로 지새우며 깊이 슬퍼하며 여러 날을 보냈다. 또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인이 이어서 세상을 떠나시니 연세는 여든 셋이었다. 한꺼번에 어버이의 상사를 당하고 나니 더욱 애통하여 정신까지 잃었다가 겨우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자, 그 때가 장례일이 되었다. 서산에 장사를 지내고 예를 갖추었다. 이 소식을 상감께서 들으시고 슬퍼하시어 예관을 보내어 제사 지내게 하시고 이시백을 궁궐로 부르시어 얼굴이 수척함을 보시고 매우 근심하셨다. 이시백은 상감의 위로에 감격하여 엎드려 절하니, 상감이 공이 너무 애통해 하는 것을 보시고 넌지시 말하였다. "네가 그대의 무거운 직책을 갈아 봉조하를 시키니 아침 회의에는 참석치 말고 집에서 한가로이 쉬며 자손들의 효성을 받아 보아라." 상감께서는 말을 마치시고 희인의 벼슬을 높여 이조판서의 직책을 맡기시고 희기에는 도승지 겸 형조참판을 시키시며 일렀다. "며칠내로 상경하여서 내 기대함을 저버리지 말도록 하라." 두 사람은 대궐로 나아가 성은에 감사하였다. 상감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일렀다. "그대들은 나라의 일에 충성으로 그 직분을 다하여라." 두 사람은 곧 물러나서 집에 돌아와 공의 부부께 문안드리고 일가 친척을 청하여서 여러 해 동안 그리워하던 정을 풀었다. 이공의 부자는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자손들을 교훈하여 부귀를 누렸다.
이럭저럭 공의 나이가 여든 살 넘었으니 아직까지도 기운이 넘쳐서 장성한 젊은이도 당할 만 하였다. 가을의 구월 보름께에 이르자 달빛이 유난히 밝아서 공의 부인과 함께 완월대에 올라서 좌우에 남녀 자손들을 앉히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즐기는데 공이 두 아들에게 손수 잔에 술을 부어 주며 말하였다. "내 어린 시절이 이제 어제와 같이 느껴지더니 벌써 여든 살이 지나게 되니 이젠 내게 한이라고는 없구나." 공은 술을 스스로 따라 마시며 다시 말하였다. "우리 부부가 세상 연분이 다하여서 장차 너희들과 영원히 작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 두 사람은 조금도 슬퍼 말고 자손을 거느리고 부귀 영화를 누리며 살지어다." 아버님의 슬픈 말씀을 듣자, 두 아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눈물이 눈 속에 가득 찼으나 어찌해야 옳을겐가? 알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이 속절하기도 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공의 부부가 정색하며 타일렀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 죽은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네 아비는 여든이 넘어 노령이고 자손에게 부귀를 남겨 놓으므로 집안을 크게 빛내니 오늘 죽더라고 원통한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이제 너희들은 자손들을 잘 보살핌에 많은 생각을 하여라." 말을 마친 공의 얼굴이 매우 불안하므로 안색을 바로 하고 다시 두 아들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많은 손자들을 일일이 불러본 다음에 상을 물리라 분부하고, 부부가 가지런히 잠자리에 누워 세상을 떠났다. 이에 이판서 형제가 상을 당하여 슬퍼하였다. 임금께서 들으시고 또한 슬퍼하시어 예관을 보내어 위문하였다. 또한 시호를 문충공이라 내리시고 박씨 부인은 충렬 부인에 봉하시었다. 얼마 후에 계화도 세상을 떠나니 이판서 형제가 정중히 장례식을 치르고 선산에 묻었다. 이판서 형제는 무덤가에 풀로 집을 짓고 삼년상을 치루니 임금께서 그 충효를 아름답게 여기시어 좌의정과 우의정에 각각 중수하였다. 이렇게 벼슬이 정일품에 이르고 자손이 대대로 번창하니 사람들이 충효의 집안이라 부르며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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