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Ulysses:1922) - 조이스 1/2
해설
율리시스는 그리스 원어로 오디세이라고 하며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의 주인공이다. 그리스 서해안의 작은 섬 이타카의 왕 오디세이는 아내 페넬로페와 갓 낳은 아들 텔레마코스를 남겨 두고 그의 벗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렌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유혹되어 간 것을 구출하기 위하여 그리스로 간다. 그는 여러 왕과 함께 트로이 성을 공격하여 마침내 10년이 걸려 트로이를 함락시킨다. 다른 왕들은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오디세이는 북풍에 표류되어 그리스 남쪽의 섬에서 섬으로 10년 동안 떠돌다가 고향인 이타카에 도착한다. 조이스는 호머의 작품의 주인공인 오디세이(율리시스)의 이름을따서 작품의 제목으로 한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의 주인공 리오폴드 블룸이 더블린 거리를 하루 거니는 것은 율리시스가 10년 간 해상을 방랑한 것과 같은 구조로 본 것이다. 그리고 36세의 블룸의 방황을 율리시스의 방황으로 비유하고 남편이 아닌 정부 보일란과 밀회를 하는 블룸의 부인을 페넬로페 역으로 하고 아들 텔레마코스에 해당되는 사람으로서 블룸의 친구의 아들 스티븐 디덜러스로 비유한 것이다. 그 밖에 더블린 시의 상인 여급 무직자 친구들은 각기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마녀와 신들과 친구들로 비유한 것이다. 조이스는 현대의 한 평범한 사람의 생활에서 고전의 작중 인물과 같은 생존 양식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진실을 파악하여 예술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 점에서조이스는 고전주의자라 할 수 있다. 조이스는 기존의 소설 양식을 파괴하고 독특한 문장을 통해서 의식상에 나타나는 기억 인상 의지 등을 되도록 발현 형태 그대로 표현하는 수법을 시도했다. 조이스의 문체와 구성은 20세기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작품 속에 열거적인 거대 묘사법 희곡체나 시나리오를 이용한 부분 신문의 제목이나 문체를 그대로 모사해 낸 부분 종교 문답식의 문체 등 거의 한 장마다 색다른 맛을 나타내는 구성을 시도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일관된 줄거리를 추려 낸다는 것은 무의미하며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요약된 내용을 통해서 이 작품의 진가를 맛보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이해하기 위한 개괄로서는 그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작품은 3부로 되어 있으며 제1부에 해당되는 1, 2, 3장은 제2부에 나오는 블룸의 이야기에 대한 프롤로그(서곡)로서 디덜러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시간적인 배경은 오전 여덟 시부터 정오까지이다. 제1부 1장 모독적인 언사를 노상 지껄이는 의학도 벅 멀리건과 문학 청년 헤이즈가 동거하고 있는 마텔로 탑을 배경으로 스티븐의 일상 생활의 단면이 그려져 있다. 2장 디지 씨의 학교 교실에 나타난 스티븐이 공부에 싫증을 느끼고 있는 학생들과 난해한 역사에 대해 교리 문답을 하고 있다. 3장 주인공의 행동이라곤 거의 없다. 따라서 아무런 사건도 없다. 다만 스티븐의 더블린 시의 교외 샌디코브 해변을 거닐 때 그의 뇌리에 오락가락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내면 독백이 있을 뿐이다. 제2부에서는 블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역시 오전 여덟 시에서부터 시작된다. 4장 오전 여덟 시 광고업자인 블룸은 아침 식사를 위해서 곱창을 사온다. 소프라노 가수인 아내 마리언은 남편이 전해 주는 정부 보일란의 편지를 읽고 있다. 둘이서 자리를 같이했을 때 마리언이 윤회의 뜻을 물었고 블룸이 그것을 열심히 설명해 준다. 5장 블룸은 우체국 가는 길에 세이론 산 홍차 상표를 보고 동방에 대한 동경을 하는데 연상의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목욕탕에서 자기의 성기를 꽃으로 보는 것도 역시 일종의 연상이다. 현실 속에 새로운 공간을 그리고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고 있다. 6장 이것은 "오디세이"의 지옥에 해당되는 장면으로 묘지와 죽음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정밀하고 냉혹하게 그리고 있다. 묘지에서의 블룸의 독백은 이 작품에서 전용되는 대표적인 수법. 7장 군데군데 커다란 신문 타이틀을 삽입하여 시간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리하여 어수선한 신문사의 분위기를 재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조형적 문체이다. 8장 식당에 앉아 있는 블룸은 자유 분방한 백일몽에 잠긴다. 과거가 현실 이상의 현실성을 지닌 채 나타난다. 시간과 공간은 마침내 도착되어 버린다. 9장 "율리시스" 전체를 통해서 가장 난해한 부분으로 유명하다. 여기서는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인 부자 관계가 중심 문제로 취급되었다. 10장 모두 열 아홉 개의 짧은 문장으로 나누어진 이 장면은 영화적인 수법을 실험한 것이다. 즉 더블린 시내의 여러 장면을 카메라를 이동시켜 촬영하듯 단편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사건 A와 사건 B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A 장면 속에 B 장면 속에 나오는 구절을 삽입함으로써 오버랩(Overlap)의 효과를 노렸다. 11장 음악적인 수법을 도입하고 있다. 사건 전체가 음악적인 리듬 속에 아름답게 통제되어 있으며 사건 전체도 음악과 관련된 것이다. 음악과 문학이 혼연일체된 작품으로 이 장면처럼 성공한 예가 일찌기 없었다고 한다. 12장 희극적 과장을 볼 수 있다. 아일랜드 사람에 대한 묘사와 마지막 대목에 가서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13장 의식의 밑바닥에 흐르는 성을 취급하고 있다. 14장 놀랄 만큼 대담하고 정교한 언어의 구사를 볼 수 있다. 태아의 발육을 영국 문제의 다양한 변화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15장 홍동가에서 전개되는 환상적인 드라마(몽환극)이다. 여기서는 블룸이 온갖 유령들과 대화를 하고 심지어는 무생물인 부채와도 얘기를 한다. 현실이 환상의 세계로 뒤바뀌어 펼쳐지는 것이다. 즉 제2의 현실 창조인 것이다. 이상이 제2부에 해당되는 것이고 제3부는 밤 열두 시부터 새벽 세 시경까지의 이야기로서 16장에서는 블룸이 스티븐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고 17장에서는 문답체로 쓰여지고 있다. 그리고 스티븐을 보내고 난 블룸은 오랜 명상에 잠긴다. 18장에서는 침대에 누운 블룸 부인의 내면 독백으로 채워진다. 약 40페이지가 구두점 하나 없이 완전히 연속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작가 약전
조이스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출생했다. 제수이트 파(카톨릭의 일파)의 신자이며 그 계통의 학교를 대학까지 졸업했다. 학생 때부터 자의식이 강한 수재였다. 카톨릭교에 열렬한 어머니와 담임 교사는 그가 교역자로 살기를 바랬으나 그는 19세기 말의 근대 문학을 탐독하고 예술가로서살아갈 결심을 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입센의 작품을 좋아했으며 영문학에서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대학을 마치고 파리에 유학했다. 유학 기간은 1년 정도였으나 의학을 배웠고 성악을 지망하였다고 한다. 어머니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통지를 받고 귀향하였다. 이 때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는 운명하기 바로 직전에 조이스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는 끝내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 후 조이스는 어머니를 개처럼 죽게 했다는 가책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도 간혹 나타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로 가세가 급작스럽게 기울어져 누이 동생들은 가구들을 팔아 연명하고 있었다. 조이스는 국민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신문에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1914년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을 썼다. 1907년에는 이미 시집 "실내악"이 간행되었고 그 후 10년에 걸쳐 자전적인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7년)으로 비로소 당시의 소설가 베넷의 칭찬을 받아 주목을 끌고 새로운 세대의 작가로 등장했다. 1914년 전쟁이 일어나자 조이스는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살면서 "율리시스"를 계속 쓰고 있었다. 7년에 걸쳐 쓰여졌다는 이 작품은 전작에서 시도한 수법을 더 한층 발전시킨 것으로 미국과 유럽의 20세기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파리에서 신흥 문학가 클럽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면서 "피네건즈 웨이크"(1939년)을 내놓았으며 만년에는 안질이 악화하여 거의 실명하다시피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프랑스를 떠나서 스위스에서 지냈으나 1941년 1월 13일 십이지장 궤양으로 사망했다.
줄거리
1장 마텔로의 폐탑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해변에 있는 마텔로 폐탑에는 세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집에서 뛰쳐 나온 스티븐 디덜러스와 언제나 익살맞게 빈정거리기를 좋아하는 의학생 벅 멀리건과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문학 청년 헤인즈 등이다.
1904년 6월 16일
벅 멀리건은 면도를 하면서 헤인즈를 노상 몹쓸 녀석이라고 빈정거린다. 그러나 스티븐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난간에 기대 서서 바다의 물결과 항구를 떠나려는 우편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수염을 다 민 멀리건도 스티븐 곁으로 다가가면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나의 위대한 어머니!"
멀리건은 이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스티븐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는 별안간 스티븐에게 핀잔을 주었다.
"여보게 숙모는 자네가 어머닐 죽였다고 생각한다네. 그래서 숙모는 내가 자네와 사귀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지... 자네 어머니가 세상을 뜨실 때 말이야. 숨넘어가는 소리로 자네한테 기도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도 그래 까딱도 않았단 말인가. 이 답답한 친구야!"
스티븐은 찔끔했다. 더구나 언젠가 꿈 속에 찾아와 나무라는 듯하던 어머니의 환상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다. 스티븐과 멀리건 그리고 헤인즈는 식탁에 모여 앉았다. 이 때 우유를 배달하는 노파가 찾아왔다. 노파는 그들에게 가지고 온 우유를 돌려 가며 부어 주었다. 스티븐은 그 순간 그 노파의 노쇠한 모습에서 지금 아일랜드의 모습을 대하는 듯 싶었다. 스티븐은 아일랜드의 문예 부흥 운동을 경멸해 주고 싶었다. 식사가 끝난 후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 셋은 다같이 바닷가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멀리건은 스티븐에게 "오오, 아버지 노아를 찾아 헤매는 아벨이여!"라고 느닷없이 빈정거렸다. 그러나 스티븐은 디지 씨의 학교에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과 작별하였다. 이 때 멀리건이 외쳤다.
"배의 집에서 만나세. 열두 시 반에, 응?"
"그래"
스티븐이 대답하였다.
2장 디지 씨가 운영하는 학교
오전 열 시경
스티븐은 디지 씨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로마 역사를 강의하고 있었다. 마지못해 하는 수업이었다. 스티븐은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을 앞에 놓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 교리 문답을 하며 가끔 혼자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피러스(이집트의 왕)가 아고스에서 노파의 손에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또 줄리어스 시저가 단검에 찔려 죽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 것인가 하는 역사의 가능성에 관한 것들이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갑자기 밖에서 "하키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키라는 말에 학생들은 일제히 '와'하고 뛰쳐 나갔다. 스티븐은 디지 교장에게 불리워 그의 서재로 갔다. 스티븐에게 봉급을 주기 위하여 부른 것이다. 디지 씨는 스티븐에게 돈을 주면서 또 버릇처럼 충고를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자넨 저축을 않는다니까 아직 돈의 가치를 모를 걸세 돈은 힘이야. 그건 내 나이쯤 돼야 알 테지만 그러나 알아야지 자네 영국 사람의 자랑이 무언지 아는가? 그건 바로 '나는 돈을 빌리지 않고 살았다'라는 걸세 어떤가? 한 푼도 빌리지 않는다. 배울만 한가?"
디지 씨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어렵군요"
스티븐은 딱 잘라 말하였다. 그러자 디지는 슬며시 말머리를 돌려 아일랜드의 역사며 영국과 유태인의 관계에 대해서 자기 견해를 열심히 이야기했다.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기도록 하기 위해서 관청에다 그 대책에 대한 공개장을 쓸 테니 어디 신문지상에라도 발표해 주겠느냐고 물었다. 스티븐은 텔레그라프신문에 가져가겠노라고 대답했다. 스티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 디지 씨가 뒤따라 나오면서 그를 불러 세웠다.
"참,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걸 잊었군요. 아일랜드는 영광스럽게도 유태인을 박해한 적이 없는 단 하나의 나라라고 하는데 자네 그 까닭을 알고 있는가?"
디지 씨는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글쎄, 왜 그런가요? 저는 아직..."
스티븐은 웃으면서 되물었다
"그건 아일랜드가 일찍이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기 때문일세"
디지 씨는 자못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는 껄껄대며 웃었다.
제3장 샌디마운트 해변
스티븐은 더블린 교외의 샌디마운트 해변가를 거닐고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식의 흐름을 좇아 침묵의 독백을 되씹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의 어쩔 수 없는 양식 내 눈을 통하여 생각하기엔 그 이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그것이다. 나는 지금 모든 것의 특징을 읽는다. 생선알과 해조 밀려오는 조수 저 낡아빠진 신발 청록색, 청은색, 흑갈색... 색채로 나타나는 상징 다음 순간 스티븐은 눈을 감아본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의 양식을 몰아 내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발 밑에서 조개 껍질과 해초가 바삭바삭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내딛는 스티븐은 다시 귀에 들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양식을 지님을 느꼈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의 과거 아버지와 돌아가신 어머니 양심의 가책 학교에서 교장이 부탁하던 공개장의 원고 열두 시에 만나기로 한 멀리건과의 약속 배의 집 주머니 속에 든 소지품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네 가지 낱말로 된 물결에 관한 말... 바닷뱀 뒷발로 곤두서는 말 암초 그 틈에서 급하게 호흡하는 물결 그것은 바다의 숱한 잔 속에서 뛰논다. 통 속에 처박혀진 것처럼... 그것은 맴돌아 넓게 흐른다. 거품이 떠오르는 늪. 꽃이 피어 펼쳐지는 모습. 저녁은 되돌아오고 있다. 그는 지팡이를 잡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렇다. 저녁이 내 속에 기어이 찾아오는구나 모든 하루는 끝이 있기 마련이지. 그런데 내일 화요일은 제일 한가한 날.
제4장 블룸의 집
프리먼 신문사의 광고 외관원 리오폴드 블룸은 에클스 거리에 살고 있었다. 그는 헝가리 인의 피가 섞인 아일랜드 계의 유태인으로 나이는 서른 여섯 살이었다. 1904년 6월 16일 멀리건이 마텔로 폐탑에서 수염을 깎고 있을 시각 그러니까 아침 여덟 시경에 블룸은 고양이를 희롱하면서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 마리먼을 위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버터 빵을 굽고 커피를 끓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양의 곱창을 사러 나갔다. 헝가리 계의 유태인이 경영하는 푸줏간에 찾아갔을 때는 곱창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블룸은 자기보다 앞서 온 이웃집 하녀가 그것을 사지 않을까 하고 마음을 졸였다. 눈은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에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곱창을 안 사고 갔다. 그녀가 돌아간 뒤 블룸은 테이블에 쌓아 놓은 포장용 신문지를 한장 집어들고 광고문을 읽었다. 티베리아스 호반의 키네레스 모범 농장
-이상적인 겨울 요양소로 가장 알맞는 곳-
그는 그것을 유심히 읽고 나서 푸줏간 주인이 꾸려 주는 곱창을 받아들고 걸음을 옮겼다. 집에 들어선 블룸은 현관 마루에 떨어져 있는 두 통의 편지와 한 장의 엽서를 집어 들었다. 블룸 앞으로 온 편지와 엽서는 딸 밀리한테서 온 것이었다. 올해 열 여덟 살이 되는 밀리는 멀린가 시의 사진관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있으면서 그 동안의 소식을 정해 온 것이다. 나머지 한 통의 편지는 아내 앞으로 온 것이다. 소프라노 가수인 아내와 함께 동행할 연주 여행의 매니저인 보일란에서 온 것이었다. 보일란은 그녀의 정부이기도 하였다. 블룸은 그 편지를 이층 침실에 누워 있는 아내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곱창을 불에 올려 아내의 아침상을 차려 주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온 편지가 누구한테서 온 거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거요? 보일란한테 온 거죠 프로그램을 알려 준 거에요"
"당신은 무슨 노래를 부르지?"
"제이 시 도일과 함께, '그대의 손을 나에게' 그 다음엔 '사랑의 그 옛날 달콤한 노래'를 부르죠"
그녀는 풍만한 입술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책을 빌려 주는 가게에서 빌려다보던 저속한 책에 나오는 'Met himpike hoses'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책을 들여다 본 블룸은 그게 바로 'Metempsychosis'를 잘못 읽은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즉 윤회란 거야"
그는 몇 마디 더 설명을 덧붙였다.
아내는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갑자기 곱창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블룸은 말을 그치고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곱창은 조금밖에 타지 않았다. 그는 아주 타버린 쪽만 잘라 고양이에게 던져 주고 곱창을 질겅질겅 씹어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 딸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멋진 생일 선물을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주 잘 어울려요. 제가 새 모자를 쓰자 멋쟁이가 됐다고들 해요. 엄마한테는 크림 과자가 든 예쁜 상자를 받았어요. 두 가지 다 마음에 들었어요. 이제는 사진 찍는 일에 아주 능숙해졌어요. 코린 씨가 사진을 찍어 주었어요. 현상이 되는대로 그의 부인이 보내 주시겠대요. 이번 일요일엔 친구들과 함께 호수로 피크닉을 갈까 해요. 엄마에게 안부 전해 주세요. 그럼 가장 다정한 사랑으로 이만 그치겠어요. - 밀리 올림
편지를 읽고 난 블룸은 그 동안 못 본 밀리의 성장한 모습을 그려 보았다. 하늘 높이 삐걱대는 소리와 음울하게 울리는 소리 성 조지 교회의 종소리 높고 음울한 쇳소리 그제야 그는 자기가 참례해야 할 장례식이 이제 십오 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쌍한 디그남!
5장 로터스 이터즈. 목욕탕
프리먼 신문의 광고 업무를 맡아 보는 블룸은 오전 열 시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먼저 그는 웨스트랜드 거리의 우체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그는 벨파스트앤드오리엔탈 상점의 진열장에서 최상품 세이론 산 홍차의 상표를 보았다. 순간 동양에 대한 동경심이 새삼스럽게 부풀어 올랐다.
"정말 더운 여름 아침이야"
그는 오른손으로 천천히 품위 있게 얼굴을 쓰다듬었다. '동양 그곳은 틀림없이 아름다운 곳일 테지 지상의 낙원 사방에 떠 있는 크고 처진 잎사귀 선인장 온갖 꽃이 어울려 핀 들판 뱀처럼 얽힌 칡넝쿨 햇빛 아래를 천천히 걷는 사람들...?'
우체국에 들어선 블룸은 헨리 플라워라는 이름으로 보내온 편지를 찾았다. 몰래 사귀고 있는 마사 클리포드라는 타이피스트에게서 온 것이다. 우체국에서 나온 블룸은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 봉투를 찢고 편지지를 끄집어 내어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데 마코이를 만났다. 이럴 때 만나기에는 달갑지 않은 친구였다. 블룸은 그를 피해 달아나려는 데 이미 그의 눈에 띄고 말았다.
"여보게, 블룸 어디 가는 길인가?"
"이런! 마코이 아닌가?"
마코이의 시선이 블룸의 검정 넥타이와 검정 옷에 머물렀다
"불쌍한 디그남 말일세. 오늘이 장례식이야"
"아, 그렇군 불쌍한 친구. 몇 시지?"
"열한 시"
마코이와 헤어진 블룸은 호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어 들고 있던 신문 속에 말아 넣었다. 녀석이 내 뒤를 밟진 않겠지. 혹시 이런 데서 아내라도 만나면... 골목길이 안전해 그는 역마차의 오두막을 지나쳤다. 미드의 목재소 근처에 이르렀다. 그는 신문사이의 편지를 폈다. 꽃이 꽂혀 있었다. 잎이 납짝해진 노란 꽃 화를 내진 않은 모양이군 뭐라고 썼나?
친애하는 헨리
당신께서 지난 번 주신 편지 받았습니다. 고마워요. 제 편지가 마음에 안드셨다고요? 용서하세요. 그런데 우표는 왜 동봉하셨죠? 전 정말 화가 났어요. 정말이지 벌을 주고 싶었어요. 전 당신을 장난꾸러기라고 부를 거에요... 당신은댁에서 행복하지 않으세요? 가엾은 장난꾸러기. 전 당신에게 무엇이든 해 드리고 싶어요. 당신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죠. 말씀해 주세요. 전 당신의 이름을 자주 불러보곤 합니다. 사랑하는 헨리 우리 언제 만나죠? 제가 당신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아세요? 아마 모르실 거에요. 당신처럼 제 마음을 끄는 남자는 지금까지 없었어요. 얼마나 당신이 그리운지 모르겠어요. 제발 저에게 긴 편지를 주시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안 그러면 벌을 줄 거에요. 그래도 좋죠? 장난꾸러기 정말 만나고 싶어요. 사랑하는 헨리 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정말 화낼 거에요. 만나면 모든 것을 얘기해 드릴께요. 그럼 안녕 사랑하는 장난꾸러기 꼭 회답 주세요
- 당신을 사랑하는 마사
블룸은 다 읽고 나서 핀에 꽂힌 꽃을 호주머니 속에 꽂았다. 그리고 철교 아래에서 구겨진 봉투를 꺼내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헨리 플라워라 이런 식으로 백 파운드 짜리 우표라도 찢으라면 찢을 수 있지. 하찮은 종이 조각 그는 어느새 올할로즈 교회의 열려진 뒷문에 와 있었다. 문에는 게시가 붙어 있었다. '성 피터클레버와 아프리카 전도에 관한 예수회 존콘미 신부의 설교 중국의 수백만 민중을 구한다' '흥 어떻게 중국인을 설득시키지? 설교보다는 차라리 1온스의 아편을 더 좋아할 걸' 하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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