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Paradise Lost:1655-1667) 2/2
하느님은 그의 아들에게 사탄이 인류를 죄에 빠뜨리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어 유혹에 대항할 수 있도록 창조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사탄처럼 자기의 악의에서가 아니라 사탄의 유혹에 의해 타락되는 것이므로 하느님의 정의가 충족된다면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다고 하셨다. 인간은 신의자격을 얻으려는 교만이므로 하느님의 존엄을 더럽혔으므로 그 죄를 회개하고 그의벌을 대신 받을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의 자손과 더불어 죽음의 선고를 받게될 것이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아들이 자진하여 자신과 인간의 대속 제물이 되겠다고 하자 하느님은 이를 수락하고 하늘과 땅의 모든 이름을 초월하는 우월한 존재인 그에게 모든 천사들이 그를 예찬할 것을 명하셨다. 천사들은 노래로 성자의 덕을 찬양하였다. 이 때 사탄은 우주의 끝을 산책하다가지구의 최상부에 다달았다. 이곳은 당시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광막한 들판이었으며 앞으로 땅 위의 모든 자들이 고통스런 미신과 맹목적인 열정의 결과에 대해 대가를 치를 곳이었다. 여기서 방황하던 사탄은 맞은편에서 흘러오는 한 줄기 빛 속에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한 건축물을 발견하였다. 문은 황금과 금강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사탄은 놀라움과 비애에 사로잡혔다. 사탄은 젊고 우아한 천사로 변장하고 대천사 우리엘을 만났다. 새로 창조된 세계와 신의 위대함을 찬미하겠다는 구실로 인간 세계의 주소를 물었다. 우리엘은 천지 창조를 보기 위해 홀로 나온 것을 칭찬하며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하여 사탄은 아시리아의 우아테스 산상에 도달하였다. 사탄은 악의 천사가 되어 하느님께 복수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탄이 이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에 속임을 당한 우리엘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탄의 본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탄은 에덴은 경계에 이르렀다. 많은 꽃과 아름다운 나무들이 있었고 높은 산비탈이 낙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탄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에덴을 바라보며 신과 사람에 대한 음모를 시험할 장소를 물색하였다. 그는 중천의 태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 태양이여! 나는 옛날에 너보다 빛나는 권위자였는데 오만과 야심 때문에 타락하였다. 아, 이 무슨 일인가!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복종을 멸시하고 스스로 반역하였다. 이것은 내 몸에서 생긴 독이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무한한 노여움 무한한 절망 어디로 가나 그것은 지옥이다. 내 자신이 지옥인 것이다. 그렇다면 단념하겠다. 회계할 여자는 없는가? 그것은 복종하는 것, 그러나 내가 가장 멸시하는 것 복종을 맹세한다 해도 마음 편할 리 없다. 결국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희망이여 공포여 후회여 그럼 안녕! 일체의 선을 나는 잃었다. 악이여 너야말로 나의 신이다. 너에 의하여 나는 적어도 하늘의 반 이상을 지배할 것이다"
사탄은 향기로운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숲길을 걷고 있었다. 울창한 숲속에 문이 하나 있었다. 에덴 동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사탄은 일부러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몸을 가볍게 날려서 절벽을 한 발로 뛰어넘어 광명의 낙원에 숨어 들었다. 마치 늑대가 목자의 눈을 피하여 양 떼 가까이 가는 것처럼 도둑이 밤중에 숨어 들어가는 것처럼 최초의 큰 도둑 사탄의 침입으로 신의 전당에 음란한 사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다. 사탄은 낙원의 중앙에 가장 높이 솟은 생명의 나무 아래에 탐욕의 새 고루모란도와 같이 악마의 날개를 쉬며 새로운 낙원을 의심의 눈을 반짝이며 돌아보았다. 에덴의 낙원 중앙에 과실 나무와 신비로운 나무 향기 좋고 맛 좋은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뛰어난 것은 생명의 나무였다. 보석과 같은 이 나무의 과실은 너무도 향기로워 잠을 모르는 신들이 한없는 환락의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담과 이브가 살고 있는 낙원은 환락과 행복의 선경이었다. 사탄은 뜻하지 않은 광경에 마음이 타는 듯한 분노와 부러움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늠름한 아담의 모습과 청초한 이브의 질투심이 일어났다. 거기에는 권리와 지혜와 참다운 자유의 성결함이 빛나고 있었다. 싱싱한 과실 나무들의 생명을 부르는 그 아름다운 맛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생명의 나무 옆에는 우리의 죽음인 지혜의 나무가 서 있었다.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고 자주색의 열매가 달린 포도 넝쿨 새들은 아름답게 합창했다. 자연의 신 춤의 신은 즐겁게 춤을 추었다. 아담과 이브는 서로 손을 잡고 벌거벗은 채 걷고 있었다. 그들은 악을 몰랐으며 사랑으로 맺어져 있었다. 두사람은 녹음에서 또는 분수 옆에서 쉬었다. 유쾌한 동산에서의 상쾌한 서풍을 받으며 산책하다가 과실을 저녁으로 먹었고 먹은 과실 껍질로 맑은 물을 떠 마셨다. 앞에는 지상의 여러 동물들이 와서 장난을 하였다. 태양은 점점 기울어지고 돌아오는 별들은 저녁 하늘의 선구자처럼 반짝였다. 사탄은 점점 가까이 가서 두 사람의 즐거운 대화에 부러운 듯이 귀를 기울였다. 아담과 이브는 최초의 남자와 최초의 여자였다
"이브여, 너는 나의 모든 기쁨이다. 신은 우리들을 흙으로 빚어 이 낙원에 살게 하셨다. 신은 자비롭고 영광된 분이시다. 우리들은 이 낙원의 모든 나무 가운데 생명의 나무 곁에 있는 선악과만 따먹지 않으면 된다. 삶의 옆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무서운 것이리라 너도 저 나무의 과실을 맛볼 때 죽음이 우리들에게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그 외에 모든 것에 대해서는 무한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또 어떠한 환락도 무한히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의 생활은 항상 신을 찬미하고 초목과 꽃을 기르는 일이다"
이브는 아담의 존귀함을 찬미하였다.
악마는 이것을 듣고
"그들에게 금지된 나무가 하나 있군. 선악의 지혜를 금하고 있는 것이다. 안다는 것이 죄가 되는가? 그것이 죽음인가? 그것은 불합리하다. 그것이 그들의 신에 대한 신앙과 복종의 증거인가? 나는 이제부터 그들의 마음을 유혹해야겠다. 그리하여 금단의 과실을 먹고 죽게 하리라"
라고 중얼거렸다. 사탄은 그들을 파멸에 빠트릴 방법을 찾아낸 것을 기뻐하였다. 조용한 낙원의 저녁 동물들은 숲 속으로 들어가고 새들은 나무에서 꿈을 꾸며 나이팅게일만이 밤의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달이 구름의 베일을 걷고 나타났다. 아담과 이브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들의 잠자리는 자연 그대로의 과일 나무들과 향기로운 꽃과 아름다운 나무로 덮여 있는 조용한 장소였다. 사탄은 마술로써 환각과 꿈과 공상을 갖게 하였다. 그녀의 순결한 머릿속에 불평 불만의 생각을 갖게 하고방종한 욕망과 교만이 생기는 환상을 갖게 하였다.
아침이었다.
동쪽 하늘의 태양이 붉은 진주를 땅 위에 뿌릴 때 아담이 여느 때처럼 잠에서 깼으나 이브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담이 손을 잡고 흔들자 이브는 눈을 뜨고 어젯밤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타락의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하여 늙은 천사 라파엘을 불러 두 사람을 보호하도록 명하셨다. 라파엘은 아담과 이브에게 사탄의 이야기를 들려 주며 경계하도록 하였다. 아담이 천지 창조에 대하여 묻자 라파엘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가 사탄과 싸워 이긴 것을 칭찬하여 새로운 세계를 하나 창조하고 거기에 인류를 살게 하고 기쁨과 사랑의 왕국으로 만드셨다. 그 창조는 6일 간에 이루어졌는데 제1일에는 낮과 밤을 구분하셨다. 제2일에는 하늘과 물을 구분하셨다. 지구에 땅과 바다를 만들고 대지 위에 풀과 나무와 꽃이 나게 하신 것이 제3일이었다. 해와 달과 별을 만든 것이 제4일이었다. 바다에는 물고기가 헤엄치게 하고 육지에는 하늘 높이 새들을 날게 하시어 제5일은 조류와 어류를 만드셨다. 창조의 제6일은 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흙으로 만들어 생명의 입김으로 불어넣으시고 자연을 다스리게 하셨다. 신은 그것을 남성이라 하고 다시 여성을 만들어서 지상에 자손을 퍼트리게 하셨다. 제7일에는 창조된 세계를 흡족해하며 모든 일을 쉬셨다. 이러한 말을 하는 동안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서 천사와 헤어지게 되었다. 사탄은 아담과 이브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자고 있는 뱀을 만나 그 몸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다시 아침이 되었다. 에덴 동산에는 아침 기도를 끝낸 두 사람이 그날의 밭갈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브는 나무와 꽃들이 무성하므로 일거리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서로 웃고 이야기하고 쳐다보느라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니까 따로 떨어져서 일을 하자고 말했다. 아담은 라파엘의 경고를 떠올리며 유혹이 위험하다면서 따로 일을 하는 것에 반대했으나 이브의 자신감 있는 얘기를 듣고 양보를 하여 이브의 말대로 하였다. 악령에게 끌린 뱀은 이브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대단히 기뻐하며 장미꽃 그늘에서 일하고 있는 이브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브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유혹하기 시작했다
"아니, 동물이 인간의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
"여왕님, 어느 날 내가 들을 배회할 때에 금색의 과실을 가진 한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향기로운 냄새가 식욕을 돋구어 맛을 보았더니 나에게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 이렇게 이성과 언어의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브는 뱀의 말을 듣고 그 나무의 있는 곳까지 안내를 받았다. 그것은 죽음의 두려움으로 금지된 지혜의 나무(선악과)였으므로 깜짝 놀라 물러서려 하였다.
뱀은 대담하게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금하고 당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셨습니까? 여왕님 믿지 마십시오. 죽지는 않습니다. 그 과실은 지혜를 주는 것으로 나를 보십시오. 그것을 먹었어도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높고 완전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동물인 나는 인간이 되었으니 인간인 당신은 틀림없이 신이 될 것입니다. 선악의 지식에 도달하는 것이 어찌 죄악이 되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잠시 선악과를 바라보고 있던 이브는
"저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과실, 뱀이 말한 것처럼 영험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금지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인간에게 허락치 않은 것을 동물에게 허용하실 리가 없을 텐데 금지한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라고 말하며 이브는 과실을 따서 입에 넣었다. 죄를 범한 뱀은 풀 속으로 미끄러져 도망하고 이브는 과실의 아름다운 맛에 취하여 홀로 중얼거렸다.
"아, 지혜의 길을 열어 준 과실 나의 이 변화를 그에게 알려서 같이 행복을 즐겨야지"
이브는 과실이 많이 달린 가지를 꺾었다. 이브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아담은 새파랗게 질렸다.
"이미 생긴 일은 어쩔 수 없다.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살겠느냐?"고 말하면서 그녀와 같이 벌을 받고 죽을 결심을 하였다. 아담도 그 과실을 먹었다. 효과가 나타나서 두 사람은 독한 포도주에 취한 것처럼 음욕에 불탔다. 두 사람이 눈을 떴을 때 마음을 덮고 있던 흥분은 사라지고 불안한 마음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놀라서 앉아 버렸다. 신앙도, 청정도, 결백도 모두 사라지고 악을 아는 마음이 되었다. 그들은 나체를 부끄러워하여 무화과의 잎을 엮어 허리에 감았다.
하느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그들의 유혹자가 지옥을 빠져 나올 때 알고 있던 것이 마침내 왔다. 인류는 타락하였다. 그들에게 줄 것은 이제 죽음의 선고이다. 그 심판으로 가리라"라고 성자께 말씀하셨다. 아담과 이브는 바람에 들려오는 신의 음성을 듣고 벗은 것이 부끄러워 숲 속으로 숨었다. 성자는 불순한 그들의 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고하였다
"뱀, 너는 배로 기어다닐 것이며 평생 진흙만을 먹으라! 너와 여자는 영원히 원수가 되어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며 너는 사람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브 너는 비애에 젖어 살게 될 것이며 해산할 때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남편의 의지에 절대 복종해야 하며 남편은 너를 거느릴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아담을 향하여 선고를 내렸다
"아담이여 이제부터는 흙을 갈고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갖게 되리라"
이브는 아담에게 용서를 빌며 자손에게 미치는 저주를 피하기 위하여 자살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아담은
"너의 자손이 뱀의 머리를 깨뜨리리라고 하신 신의 말씀을 잊었는가? 자손들에게 희망을 가지라 너는 이제부터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을 당하고 나는 일을 하여 빵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의 죄악은 슬픈 일이지만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며 기뻐하자" 하고 위로하며 두 사람은 쓸쓸히 낙원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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