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조연현편" (1920~1981)
평론가. 경남 함안 출생. 혜화 전문 수료. 한양대 문리대학장, 문인 협회 이사장 역임. 초기에는 시를 쓰기도 하였으나 광복 후에는 평론과 수필을 주로 썼다. 청년 문학가 협회를 결성하여 좌익을 분쇄하는 데 앞장선 바 있으며 순수 문학의 옹호에 공적을 세웠다. 후기에는 현대 문학사의 정립에 힘썼으며 엄청난 양의 평론을 통하여 정력적인 평론가로 정평을 얻었다.
손수건의 사상
남녀를 가리지 않고 손수건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어쩌다가 손수건을 빠뜨리고 나오는 날이면, 육체의 어느 한 부분을 떼어 놓고 나온 것처럼 어색하거나 꼭 입어야 될 의류의 하나를 빠뜨리고 나온 것처럼 허전해진다. 그만치 손수건은 인간에게 있어 없지 못할 일상적인 생활용품의 하나이다. 한글 학회 발행의 우리말 사전을 보면, 손수건은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작은 수건'으로 되어 있고, 문세영 씨 사전을 보면, '땀을 씻는 작은 수건, 손을 씻는 작은 헝겊'으로 되어 있다. 전자는 주로 손수건의 형태와 위치에 대한 설명이고, 후자는 주로 그 용도에 대한 설명으로 볼 것이다. 이 두 개의 설명에서 우리는 손수건이란, 첫째 작은 헝겊으로 된 수건이며, 둘째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며, 셋째 손이나 땀을 씻는 데 사용되는 물건임을 알 수 있다. 손수건은 작은 것이며,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라는 것은 손수건의 어떤 희생을 이미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다는 것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이 두 가지 조건은, 물론 손수건의 용도에서 원인된 것이다. 땀이나 손을 씻는 데 반드시 커다란 수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성질의 용도에는 작은 수건으로서 충분하다. 그리고 항상 몸에 지니기에도 작은 것이 더욱 타당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손수건은 무엇 때문에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할까? 그것은 손수건의 용도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수건의 용도는 반드시 손이나 땀을 씻는 것이 그 전부는 아니다. 길에 가다가 흙이나 먼지가 묻는다든지, 음식을 먹은 다음, 혹은 화장을 고칠 때, 또는 작은 상처가 났을 때, 손수건은 가장 편리하게 이용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손수건은 항상 몸에 지니는 작은 소지품이 되는 동안에, 손수건은 스스로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사람의 소지품 가운데는 자기를 표현하는 물건이 있다. 인장과 지환 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전자는 각자의 권리를 표시하는 표현이요, 후자는 각자의 약속을 표시하는 표현이다. 재산의 소유권이 인장으로써 변동되고, 약혼이나 결혼이 지환으로써 표시되는 것은 그러한 일례이다. 이를테면 전자가 인간의 법적 표현이라면 후자는 인간의 정신적 표현으로서 다 같이 자기 표현의 성질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자기 표현으로서의 소지품은 대개 작은 물체로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게 그 일반적인 습관이다. 자기를 표현해 주고 있는 물체는 이미 단순한 물질이거나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소지품은 항상 자기를 아끼는 마음처럼 귀중히 취급되고 언제나 자기와 함께 있어야만 안심이 된다. 그러는 데에는 늘 몸에 지니는 것이 상책이며, 늘 몸에 지니는 데에는 작은 것이라야만 편리하다. 손수건은 이와 같은 자기 표현의 물체와 같은 조건을 갖추고 나타남으로써 그 최초의 용도와는 다른 자기 표현의 직능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몸차림을 한 여성이 조심성스럽게 손수건을 만지거나 그것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항상 엉뚱한 생각을 갖게 된다. 그것은 그 손수건이 그 여인의 손이나 땀을 씻는 물건으로서가 아니라 그 여인의 감정의 역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손수건은 손이나 땀을 씻는 수건으로서가 아니라 그와는 다른 용도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러한 때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손수건의 용도에 대한 영상은 슬픈 소식을 듣고 남몰래 돌아앉아 흘리는 눈물을 씻는 것, 기차나 배를 타고 멀리 떠나는 안타까운 사람을 보낼 때, 또는 그와 같이 멀리서 오는 그리운 사람을 맞이할 때 안타깝고 그리운 마음으로 손수건을 흔드는 모습... 손수건은 손이나 땀을 씻는 것보다는 이러한 때 더욱 절실히 사용되어 온 것은 아니었던가? 손이나 땀을 씻는 것이 손수건에 대한 인간의 생리적 육체적 외부적 용도라면 이러한 것은 그에 대해 인간의 심리적 내부적 용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손수건의 용도는 손수건이 인장이나 지환과 같이 자기 표현의 한 직능을 가진 것임을 말하는 것이 된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그 작은 헝겊이.
손수건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정신적 내부적 용도에서 바라본다면 손수건과 가장 깊은 관련을 가진 것은 눈물과 이별, 또는 눈물과 상봉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손수건은 눈물을 씻기 위한 것이거나, 그렇기 않으면 이별할 때의 안타까운 심정을, 또는 상봉의 즐거움을 알리는 신호의 표지이다. 그리고, 어느 편이냐 하면, 손수건은 즐거운 눈물보다는 슬픈 눈물을 닦는 경우가 더 많고, 상봉의 즐거운 신호로서보다는 이별의 슬픈 신호로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은 손수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손수건은 슬픈 눈물을 상징해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손수건을 눈물 또는 이별의 상징으로 보아 온 것은 한국 사람들의 오랜 풍습은 아니었던가?
손수건을 눈물 또는 이별의 상징으로 보는 동안, 그러한 손수건은 항상 여성적인 속성이지 남성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사내 대장부' 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여성처럼 함부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 남성이라는 의미도 된다. 그러므로 '여인과 눈물'은 자연스럽게 관련이 되지마는, '남자와 눈물'은 아무래도 긍정적인 자연적 상태는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별 역시 그렇다. 이별이란 말이 헤어진다는 사실의 설명으로서보다는 헤어지는 슬픈 감정을 강조하는 의미가 더 중요한 것이라면, 눈물과 직결되는 이별은 여성적 속성이다.
돌아앉아 눈물을 씻는 남성의 모습이 보기 흉하고, 역두나 부두에서 손수건을 흔드는 남성이 주책머리 없게 보이는 반면에, 돌아앉아 눈물을 씻는 여인의 모습이나, 손수건을 흔드는 여인의 모양이 제 격에 맞게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손수건은 아무래도 남성에게보다는 여성에게 더 어울리는 소지품인가?
남녀를 불문하고, 손수건은 필요불가결의 일상적인 소지품의 하나이다. 누구나 그가 가진 손수건으로써 자기의 손이나 땀을 씻는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 손수건에 숨겨진 자기의 감정적 이력을 생각하게 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까? 남성은 아예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남성적인 것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손수건을 꺼낼 때마다 그 손수건에 아로새겨진 자기의 눈물과 이별을 계산해 보는 여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매일같이 빨아서 깨끗한 수건을 갖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수건에 대한 위생은 그 속에 새겨진 자기의 슬픈 눈물과 이별을 깨끗한 손수건처럼 잊어버리고 싶은 데서일까? 수건은 나에게는 항상 여인의 마음의 비밀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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