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태길편"
김태길(1920~2009)
철학자. 수필가. 충북 중원 출생. 서울대 철학과 및 대학원 졸업.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원 졸업. 철학 박사. 연세대. 서울대 교수 역임. 학자 특유의 논리적인 필치로 수필을 쓴 인물. 수필집으로 "웃는 갈대" "빛이 그리운 생각들" "흐르지 않는 세월" 등이 있고 "윤리와 정치"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새 인간상의 정초" 등 저서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성실(1/3)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믿는다.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문화적 업적에 관계없이. 사람은 누구나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로 말미암아 존엄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연 인간은 누구나 예외없이 존엄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에는 의리나 염치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도 있으며, 극악무도한 인간도 있지 않은가? 인간의 형태만 갖추었으면 누구나 무조건 존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갓 환상적인 낭만주의적 견해가 아닐까? 우리가 추상적인 사고를 일삼는 동안, 우리는 모든 인간이 예외없이 존엄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나 극악무도한 인간에게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때, 과연 그 나쁜 인간에게서 '존엄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을 것인가? 어떤 극악무도한 사람을 상상하고 그 사람에게도 존엄한 일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몸소 겪은 극악무도한 인간에 대해서, 예컨대 나에게 파렴치하고 잔인한 행위를 거듭하여 나를 크게 괴롭히고 있는 사람에게서 존엄성을 실감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있어서 '실감'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 하면, '인간은 존엄하다'는 명제는 하나의 사실 판단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며, 어떤 가치 판단이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실감'이 하나의 기본적인 조건으로서 요청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은 존엄하다'고 말할 때, 그 '인간'은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긍정하는 명제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한, 인간은 존엄하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말을 높은 도덕성을 발휘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수효는 비교적 적을 것이며, 따라서 '존엄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도 크게 제한될 것이다. 실은 우리가 '인간은 존엄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도덕적으로 높은 경지에 달한 소수의 인격자들은 존엄한 존재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엄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도덕적인 인간으로서 성장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인간은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엄한 존재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다.
만약, 도덕적으로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만이 존엄한다면, 그들은 인간인 까닭에 존엄한 것이 되며, 사실상'존엄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인물들에게만 국한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은 존엄하다'고 말할 때, 특수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존엄하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러나, '사람의 탈만 썼으면 그가 아무리 교활하고 파렴치하며 잔인하다 하더라도 존엄하다'는 뜻이라면, 그것은 극히 위선적이거나 자기도취적인 발언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를 인간이 간직한 어떤 가능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가능성 간직하고 있는 한,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그런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존엄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도덕적인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제 우리는, 이 막연한 표현이 의미하는 바에 대하여 좀더 분명한 설명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도덕적인 인간'이라는 구절의 뜻을 보다 정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도덕적'이라는 말이 너무나 모호하고 다의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적 인간'이란, 성현 또는 군자와 같은 뜻은 아니다. 세상 사람의 대부분이 성현 또는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믿기 어려우며, 또 그렇게 많은 성현과 군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도덕적 인간'은 평화스러운 사회 생활을 위해서 요청되는 보통 수준의 덕성을 갖춘 사람을 가리킬 따름이다. '도덕적 인간'이라는 말과 가장 뜻이 가까운 말은 '성실한 인간'일 것이다. 절대적으로 성실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성인 또는 군자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성실성을 가진다는 것은 정상적 환경 속에 사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대개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며,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은 존엄하다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성실성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 특색의 하나는 그가 높은 차원의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발견되거니와, 높은 차원의 사회생활이 가능한 것은 어느 정도 상대편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인간이 서로 남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성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도대체 성실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을 제기할 때, 우리들의 상식만으로는 대답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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