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숙희편"
전숙희(1919~2010)
여류 수필가. 함남 협곡 출생. 이화 여전 문과 졸업. 미국 컬럼비아 대학 수학. 문화 사절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 준 전숙희는 동서 문화의 교류에 남다른 공적을 남겼으며 월간지 "동서 문화"를 창간해 내기도 하였다. 한국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탕자의 변" "이국의 정서" "밀실의 문을 열고" 등 수필집을 통하여 넓은 안목과 교양을 보였다.
삶의 슬기
밤새 훈훈히 김 오른 방문을 열고 청마루로 나서면 코끝이 짜릿하도록 부딪쳐 오는 싸늘한 아침의 감촉. 불기 없는 목욕탕에 받아 놓은 물 위엔 살얼음이 지고 뜰 앞에 서 있는 나무에 매달렸던 마지막 잎마저 떨어져 버리고 가지만이 생명 없는 표본인양 처량해 보이는 초겨울의 아침, 마치 새초롬하게 청초한 여인의 모습 같은, 그러한 초겨울 아침을 나는 좋아한다. 그래서 부엌에서 보글보글 밥 끓는 소리와 뽀오얗게 서린 김의 훈훈함이 더욱 정다움 아침, 또 어쩌면 온갖 풍상을 다 겪고 나, 그 마음 속에 너그러움과 따뜻함이 이끼처럼 깔려 있는 초로의 모습, 그러나 어딘지 범치 못할 단정함과 의연한 여인의 얼굴과도 같은 그 모습을 나는 사랑하고 싶다. 쌀 뒤주에는 햇곡이 가득하고 곳간에는 차곡차곡 담은 김장독과 겨우내 방들을 덥혀 줄 연탄이 쌓이고 담가 놓은 포도주는 향기롭게 익어, 어쨌든 한 시름을 놓고 이제 휴식의 아침을 맞을 만하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가까워 오는 설날의 꿈을 익히고, 젊은이들은 성탄절에 주고받을 선물과 카드로 마음이 설레이는 아침, 나는 폭신한 털옷으로 몸을 싸고 싸늘한 고요 속에 그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일만이 즐겁다.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나뭇가지에 흰 눈송이가 쏟아진다. 마치 어려서 내가 좋아하던 어떤 크리스마스 카드의 그림 풍경처럼. 얼마 후, 흰눈은 걷히고 나뭇가지에는 새파란 움이 트이더니 푸른 나뭇잎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오래잖아 나무에는 눈부신 붉은 꽃송이들이 탐스럽게 만발한다. 태양은 밝고 우주는 온통 밝은 풍경이다. 그러나, 바라다보고 있는 동안 어느샌가 그 꽃들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잎이 피고 또 떨어진다고 하자. 그리고 열 번 다시 그 붉은 꽃이 만발하고 또 흰 눈송이가 덮일 때, 내 머리는 이미 희어지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리라. 초조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으리라.
나는 어려서 곧잘 책상 앞 벽에다 그 시절의 어린 여학생들의 버릇대로 '시간은 황금이다'라고 문구를 써 붙이고 날마다 쳐다보기를 좋아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던 나는 내 시간이 너무나 모자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래서 이렇게 나 자신을 채찍질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도 결국은 나에게 별다른 성과를 주지는 못했다. 즉 지나간 그 많은 시간들도 나에게 기적을 낳아 주진 않았다. 나 자신의 의욕과 협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나에게 넉넉히 주어졌던 노다지 황금과도 같은 그 시간에 노다지 덩어리를 마구 함부로 낭비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내 비록 오늘날 그 시간을 통해 별것이 되지는 못했을망정 나는 쓰고 단 생활을 맛보고 또 배웠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사랑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었고 망각의 슬기로움과 평화로움을 가르쳐 주었다. 시간은 나를 황금처럼 빛나고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지는 못했으나, 그 시간은 나에게 사람을 사랑하고 남을 이해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르쳐 주었다.
푸른 꿈을 가득 지녔던 20대에 나는 지망했던 문학에서 철학으로 옮기려고 했다. 문학조차 시시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회의에 가득 찼던 20대의 나는 모든 것을 동경하면서 또 동시에 경멸하려 드는 모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30대 40대의 나는 변해 있었다. 정열을 다해 생활을 사랑하는 여인이 되었던 것이다. 열심으로 이성을 사랑하고 친구를 따르고, 아이들에게 정을 쏟고 사회 생활에 참여하고... 그러나, 나는 이제 다시금 때때로 철인이 되려는 나 자신을 보며 혼자 미소 짓는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부귀 영화도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도다.' 나는 성경의 이 굴절을 즐겨 되씹어 본다. 그러노라면 뭔가 가슴 속이 허전해 온다. 인생 전체가 연기처럼 모호한 느낌이다. 그러면 왜 나는, 또 많은 사람들은 그처럼 헛되고 헛된 생을 영위하기 위해 그처럼 악착스럽도록 열심으로 살아가야만 하는가?
생각하는 나는 외롭지 않다. 철학 서적을 뒤질 필요는 없다. 인생의 해답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뜰 앞에 서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김 서린 부엌에도, 골목 밖에서 떠들어대는 아이들의 음성에도, 내 인생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나는 때때로 실망이란 아픔을 맛보았고 움직이지 않는 차바퀴를 억지로 밀고 나가려는 어리석은 욕심조차 부려 보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조그마한 내 생활의 창을 통해 생명의 존엄과 삶의 보람을 배워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인생과 더불어 밝아 오는 이 초겨울 아침에도 나는 가슴 속에 훈훈한 애정을 품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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