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논문>
종교와 예술
인생은 하나의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영웅 오이디프스가 아니면 누가 능히 스핑크스가 내건 수수께끼를 해득하랴. 티끌에서 나와 티끌로 돌아간다 함은, 사람의 육신을 지닌 일면에 있어서는 참으로 그렇다 해야 한다. 다만 인간에는 티끌에서 나오지 않은 <무엇>이 있음을 어찌하랴. 「바람이 임의(任意)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聖靈)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리라」고 그리스도가 말씀함과 같이, 과연 사람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려 함이랴. 대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 존재의 의의는 무엇인가. 이를 철학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해결하려 함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문(人文)이 발생한 지 이에 몇 천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 천고(千古)의 의문에 대하여는 「욥기」의 저자도 「파우스트」의 잦자도, 내놓은 대답이 이 의문을 풀기에는 얼마간의 거리가 있음을 보지 못하는가. 어쨌던 인생은 하나의 엄숙한 사실이다. 우리는 능히 그 수수께끼를 해득하느냐 못하느냐를 기다릴 것 없이, 필경 인생이라는 큰 바다 속의 한방울의 물인을 면하지 못한다. 생명의 파동은 시시각각 우리 위에 밀려들어와 부지불식간에 우리로 하여금 인생항로에 노를 저어 떠나게 한다. 실로 인생처럼 참된 것은 없다. 허심탄회(虛心坦懷) 고요히 우리 <속사람>의 나직한 소리를 들으라. 모든 번쇄(煩쇄)한 사색을 피하고 정밀한 이론을 떠나 오직 나와 내 몸을 반성함으로써, 자신의 전인격이 요구하고 있는 소리에 우리의 영적인 귀를 기울이게 하라. 그 목소리는 즐겁고 뜻 있는 생애를 보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아, 이것이야말로 내 <속사람>의 소리다. 진실하고 허식없는 인간의 본성 자체가 요구하는 소리다.
그러면 즐겁고 뜻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의미가 깊고 가치가 많은 생활을 뜻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니, 이는 곧 예술과 종교 두 가지가 잠시도 인생에 있어서 불가결한 까닭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마음이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생존의 의욕(Will to live)이다. 그러나 사람은 단순히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살아가기를 요구하는 자다.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는 길이 하나 둘에 그치지 않을 것이나, 내가 보건대 예술이 주는 심미성의 만족이야말로 인생으로 하여금 취미를 깊게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력한 것으로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에 어째서 불행이 충만한가 함은 현상대로의 지금의 세계에서, 능히 속박 중에 자유를 현출하고, 모순 중에 조화를 발견하고, 준엄한 것 중에서 쾌활(快활)을 맛보고, 투쟁 속에서 위안을 포착하는 길이, 예술이 주는 미의 즐거움을 젖혀둔다면 과연 어디에서 구할 수 있겠는가. 실로 예술은 제2의 조화옹이니, 뜻같지 않고 불완전한 실정인 인생 속에 있으면서 자유롭고 완전한 별천지를 창조하며, 또 그 별천지 속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함은, 어찌 예술이 주는 인생해탈의 소식이 아니라 하랴. 이것이 없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망막하고 쓸쓸한 사막이었겠는가. 흡사 누에가 스스로 만든 고치 속에 안주하면서 나비가 되어 소생함과 같이, 사람도 예술의 세계에서, 이 세상에서의 한 개 낙원을 발견할 수 있게 됨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이러한 신천지야말로 또한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천국의 풍광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만 종교가 우리에게 제공할 사명은 이를 예술에 비교하는 경우, 다시 한층 근본적이요 심령적이라 해야 한다. 종교는 자연미의 형식과 육감의 매개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영능(靈能)의 내관(內觀)․자각에 의거하여 영혼의 가장 깊은 요구를 충족시켜 준다. 따라서 종교생활의 즐거움은 영구적이요, 그 가치는 내면적이다. 이에는 구도하는 마음의 향상이 있고, 영적인 눈의 각성이 있고, 생사의 초탈이 있고, 영원의 생명이 있다. 소위 영계무변(靈界無邊)의 풍광 속에 소요하여 신일합일(神一合一)의 대자각(大自覺)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종교생활의 극치가 아니랴. 종교는 실로 인생의 가치를 발휘케 하는 것이요, 영원한 견지에서 인생을 바라보아, 그 중에서 무한한 가치와 존엄을 발휘케 하는 것이니, 인생의 내용이 어떻게 풍부하며, 그 의의가 어떻게 심원한가를 깨닫게 함은, 실로 종교가 주는 선물일시 분명하다. 그렇다. 예술과 종교는 꽤 많이 그 나가는 길에 있어서 일치하는 면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 사이에는 스스로 각자의 특색이 있고 우열이 있고, 장단이 있다. 이와 같다는 것은 양자의 인생에 대한 사명이 약간 그 양상을 달리한다는 것을 보임이니, 우리가 인생의 2대 요소로 인정하는 즐겁고 뜻 있는 생활에 있어서, 예술․종교의 두 가지 중 어느 하나건 빠뜨릴 수 없는 까닭도 실로 여기에 있다. 즉 즐겁고 취미 깊은 인생의 일면은 이를 예술을 통해 발휘할 수 있는 반면, 뜻 있고 가치 많은 생활의 일면은 이를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는 실현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이에 나는 다시 말하거니와, 취미 깊은 생활과 가치 많은 생활이 진정 인생의 2대요구(二大要求)인 이상, 예술과 종교야말로 인생의 수수께끼를 푸는 지렛대요, 생명의 비밀을 여는 열쇠임이 확실하다. 오직 남은 문제는, 이 양자의 본래의 관게가 어떠한가, 양자 상호간의 공헌은 어떤 것인가, 대저 누가 분모요 어느 것이 분자인가 하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예술적 종교란 무엇이며, 종교적 예술이란 무엇일까, 이같은 온갖 예술 대 종교의 문제는 다만 그 중 취미 깊은 강구의 제목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인생이 무엇인지를 풀어보려 하는 사람이거나, 또는 진실로 세상의 도리와 사람의 마음에 대해 유의하는 사람이라면,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천학미숙(淺學未熟)의 몸이라,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아직도 능히 한 줄기 미미한 빛조차 던질 힘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긴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심원한 학설에 근거하여 계통적․조직적으로 예술 대 종교의 관계를 밝히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어것은 후일을 기하려니와, 여기서 논하려 함은 종교와 예술의 열애자요 학도인 나의, 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한 편의 종교예술관에 지나지 않는다. 또 나는 원래 종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편벽된 생각을 가지는 자는 아니나, 종교를 논할 때에 기독교의 예를 많이 드는 것은, 지금의 나의 종교에 대한 지식과 이해와 친근함이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의 그것이 낫기 때문이다. 예술적 작품을 예로 드는 경우에도 사정은 같다. 예술과 종교는 인생의 쌍둥이다. 그것들은 같은 우주의 깊은 밑바닥에서 배태되며, 같은 생명의 혈액에 의해 길러짐으로써 생겨났다. 만약 인문 발전의 근원점에 서서 이 아리따운 쌍둥이의 탄생을 목격하였다 할지라도, 그 어느 것이 언니요 어느 것이 동생(妹)인지를 식별키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양자는 다 함께 사람의 영혼의 가장 깊은 요구에 응하여, 거의 동시에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발전사에 있어서의 예술과 종교의 기원에 대하여는, 나는 이를 전문학자에게 일임하려 하나, 다만 극히 유치한 문명상태인 야만적인 몽매한 민족에 있어서도, 종교와 예술은 항상 둘이 병행하여 존재했던 사실을 인정하는 그것만으로도 족하리라고 본다. 어떤 종류의 종교를 지닌 민족치고, 이와 동시에 어느 종류의 예술을 지니지 않은 예란 일찌기 없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의 마음에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가 있게 마련이니, 그 밑바닥에 신이 계시는 까닭이다」 라고, 프랑스의 사바치에가 갈파한 말은, 또한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 가로놓여 있는 심미적 성정도 밣히기에 족하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 아니고는 채워지기 어려운 일종의 숭고한 종교심이 저절로 사람의 영혼 속에 심어져 있는 것과 같이, 미를 사모하여 미를 동경하여 그만둘래야 그만둘 수 없는 일종의 우미한 심미성이 태초부터 우리 마음 속에 새겨져 있었다는 것은 숨기지 못 할 사실임이 확실하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계발되어간 순서에서 본다면, 우리는 사람의 심미적 요구가 종교적 요구보다 한 발 앞섰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험삼아 어린이의 심리상태에 관해 살펴보건대, 아직 동서도 분간 못하는 요람의 갓난애가 아름다운 장난감을 보고 어떻게 희희락락하며,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어떻게 기뻐해 날뛰는가를 보라. 참으로 어린이의 머리 위에는 항상 천국이 있다 해야 하고, 저들은 미의 나라를 떠남이 멀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얼마쯤 자라나 신의 관념이 그 머리 속에 떠옴에 미쳐서는, 그들의 신은 금색찬란한 우상의 숭고한 모습이 아니면, 벡발은염의 아름다운 노인의 자비에 찬 얼굴일 것이며, 저들의 천국은 꽃이 웃고 새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에덴동산 아님이 없을 것이다. 미를 떠나 저들의 행복은 없고, 저들의 만족은 없고, 저들의 도덕은 없고, 저들의 종교는 없는 것이니, 이 같음은 곧 인류의 원시적 문명의 상태이었다. 그러나 저 바람과 불과 번개와 벼락을 두려워하여 그 앞에 무릅 꿇으며, 사나운 짐승과 독성을 지닌 뱀을 꺼려서 이를 제사하던 시대에 있어서는, 아직 문명 두 자를 여기에 씌어줄 수 없는 동시에, 저들은 오직 자연의 물리적 힘과 싸우면서 자주 생존경쟁에 바쁜 나날을 보내, 아직 생활의 능력을 미의 감상에 기울이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던 까닭에, 우리는 이에 하등의 미술․문예라 일컬을 만한 정신 활동을 그들 중에서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러다가 인류가 한 걸음을 문명의 영역으로 내딛게 되어, 몽롱하게나마 정신적 생활의 자각에까지 들어온 시대에 미처서야, 저들의 종교와 예술은 둘이 분리되기 어려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약간 발달한 종교와 약간 발달한 예술 사이에 얼마쯤 공통의 영역이 생겨나, 종교는 곧 저들의 예술이요, 예술은 곧 저들의 종교가 아니냐고 의심이 날만큼 서로 흡사한 상태를 나타내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월성신의 장려(壯麗)한 미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일종의 숭고․유현한 감정에 부딪치자, 감탄한 나머지 예배하여 우리의 신으로 받들어 제사지낸 소위 자연숭배가 행해지던 당시에 있어서, 저들 민족의 마음 속에서 종교와 예술은 혼연히 융합하여, 그 사시에 어떤 구별도 없지 않았던가. 다시 나아가 우상숭배의 시대에 들어와서도, 곱고도 장엄한 아리따운 우상 앞에 무릅 꿇고 예배드려 황홀히 미를 숭상하는 일념에 몰입해버리는 마음의 경지는, 곧 종교와 예술이 숭배자의 심중에서 융합되고 접촉된 하나의 경지가 아닌가.
그렇다. 인류의 종교가 다시 일단의 진보를 이루어 소위 영적인 종교의 영역에 도달함에 이르러서는, 한편 학술의 지식의 각성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윤리적 도덕관념의 발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식은 그 날카로운 분별의 힘으로 종교를 비판하려 하며, 도덕관념은 그 엄숙한 권위로 예술을 속박하려 하고, 또 양자는 손을 잡고 종교와 예술의 공통점인 감정․직관의 생활에 대해 반항의 태도를 취하기도 하며, 동시에 종교․예술 사이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를 이간(離間)하려 힘쓸지라도, 어쩌랴, 인류가 지닌 가장 깊은 요구는 학술로 만족시키지 못하며, 의지로 그치게 할 수 없는데다가, 한편에서는 <위대한 종교>라는 이름의 거인이 이성과 한가지로 교화하며 도덕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아가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아리따운 예술이라는 이름의 가인(佳人)이 지식을 순화하며 도덕관념과 합일함으로써, 이에 어느덧 합리적이요 윤리적인 숭고․심현(深玄)한 종교를 낳으며, 진지하고 건전하며 웅대하고 생동감 넘치는 예술을 일으킴을 보게 되었다. 이같이 하여 종교와 예술은 온 인문의 역사를 일관하여 늘 서로 가까와지고 접촉하려는 경향을 지니게 되어, 때로는 혹 종교적 예술을 낳기도 하고 때로는 혹 예술적 종교를 낳기도 하며, 또는 둘이 서로 손을 잡아, 포옹해 입맞추어 동심일체의 아름다운 우정을 유지해 온 바 있었다. 그렇다. 이 아름다운 양자의 융합․접촉은, 이를 우선 고대의 그리이스 문명에서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영과 육의 완전․원만한 발전, 조화는 그리이스 문명의 진수요,또한 저들의 종교가 아니던가. 지상의 생활 그것을 미화하여, 이것에서 천상계의 즐거움을 맛보려 함은, 저들의 이상의 극치였었다. 그리이스 민족의 종교는 미의 숭배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저들에게 있어서 미의 즐거움은 곧 선의 추구였다. 미의 감상과 선의 숭배는, 그들에게 있어선 같은 뜻이었다. 미를 떠나 착한 것이 없고 선을 떠나 아름다운 것이 없음은, 저들의 일상 생활을 지배한 인생관의 진상이었다. 저들의 시대는 인류의 청춘기라, 보는 것에 미 아님이 없고, 가는 곳에 푸른 풀이 흐르는 봄철 들판의 아름다운 꽃동산 아님이 없는 것이었다. 저들이 가는 곳에는 훈풍이 영원히 향그러웠고, 따스한 빛은 늘 그 몸의 주변을 둘러쌌다. 쾌활․청신․웅휘․장려(壯麗)라는 몇가지 말은, 저들의 생활을 그려낸 적절한 형용사가 아니겠는가. 실로 저들의 가슴에는 아름다운 이상의 고동이 울렸고, 그 혈액에는 미를 동경해 마지 않는 생명의 샘이 흘렀던 것이니, 그 타는 듯한 마음 속의 동경은 <아이오니안>의 아름다운 천지의 자연미와 서로 감응하여, 이에 인문사상 공전(空前)의 예술은 난만히 그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어났던 것이다. 그렇다, 저들의 예술은 저들의 종교였었다. 보라, 호머․헤시오드의 작품, 그 중에서도 「일리아드」․「오딧세이」의 서사시는 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가 아닌가. 저들의 문예나 조각이나 하나도 종교적 색채를 띠지 않은 것이 없고, 그 걸작은 모두가 당시의 신들을 그 대상으로 삼지 않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올림피아의 제일(祭日)은 용사들의 격투경기로 유명했으나, 국내의 시인은 이 날에 자기가 지은 시를 낭독함으로써 청중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또 아덴쓰 성(城)의 파세논은 고대 그리이스의 하나의 신전인 동시에, 그리이스 건축의 가장 아리따운 것이 아닌가. 가장 완전한 고대 조각의 모범으로 남아있는 저 라오콘 집상(集像)의 제작연대에 대하여는 학자 사이에 논의가 있는 터이나, 그 연대가 어떻게 앞서고 어떻게 뒤짐에 관계 없이, 라오콘은 곧 고대 그리이스 신화의 한 인걸이요, 가장 숭고한 종교적 제재를 조각한 것이 아닌가. 슈쓰․아폴로․뮤즈․비너스의 신들은 그리스 민족에 있어서 일면 종교적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다른 일면에서는 저들의 심미적 동경이 낳은 예술 적품이 아닌가. 단순하고 쾌활하고 거짓없는 그리이스 민족의 마음에 있어서는, 미 밖에 신이 없고, 예술 밖에 종교가 없었어니, 실로 종교와 예술은 화목한 쌍둥이와도 같이 손에 손을 잡고, 아이오니안 반도의 바람도 향그러운 천지를 거닐었다 할 수 있다. 예술과 종교의 포옹․접촉, 그 아리따운 우정의 즐거운 모습은, 이를 고대 그리이스의 문명 중에서 보게 되는 바이다.
그러나 종교와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두 자매가 손에 손을 잡고 봄철의 들판에서 놀던 나날은, 저들이 아직 철없던 어린 시절에 한정되는 것이었다. 단발머리의 철없는 소녀의 우정은, 그 나이가 자람과 함께 어느덧 희박해지고, 드디어는 서로 싸우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꽃 사이에서 미친 듯 춤추는 나비와 같이, 늘 봄의 햇빛을 그리워하며 단 이슬의 꿀같은 맛에 취하려 하던 고대 그리이스 사람들은, 그 자연적 추세로 하여 어느덧 미적 생활의 즐거움에 빠져들며, 천박한 낙천주의의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아, 드디어 타기(唾棄)할 만한 현세주의의 탁류에 의해 집어삼키우는 바 된 것이었다. 보라, 그리이스 반도에 난만히 피어났던 문예의 아리따운 꽃은, 이리하여 당시의 사람들 마음에 음탕히 놀아나는 기풍을 빚어냄으로써, 교화가 날로 퇴폐하여 도덕은 거의 팢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라, 당시의 종교는 단순히 현세의 복지를 지켜 주는 제사와 선탁(宣託)에 불과했던 것이다.
디몬이라는 신령의 소리에 하늘의 상주고 벌하는 뜻을 듣고 당시의 사람들 마음을 각성시킨 성인 소코라테스는, 그리이스의 신 아닌 다른 신을 섬긴다 하여, 드디어 독배를 마셔야 하는 운명에 이르지 아니했던가. 「마셔라, 먹어라. 내일은 죽을 것이니」하는 극단적 현세주의가 사회 전체에 범람함에 미쳐, 종교의 권위는 이에 아주 땅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플라톤의 철학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도 일단 종교․도덕의 힘을 떠나서는 능히 그 쇠퇴한 형세를 만회할 수는 없었고, 국민의 기개는 날로 줄어들어, 드디어 로마에 의해 정복 당하는 바 되었으니, 근화일조(槿花一朝)의 영화는 꿈과 같이 깨어져버려, 또한 옛날의 장관을 보일 길이 없었다. 이에 우리는 고대 그리이스 문명을 평하여, 예술이라는 이름의 언니가 종교라는 동생(妹)을 능욕하고 학대․유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당시의 종교는 미적 생활주의의 나타남인 예술의 비복(婢僕)이 되는 것에 의해, 겨우 여명(餘命)을 유지함에 불과한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이스의 이상인 육과 영의 완전한 조화는 이 같이도 무르게 깨져버렸다. 일단 제휴하여 같이 달리던 예술과 종교가 공연한 싸움을 벌이는 곳, 예술이 드디어 종교를 쓰러뜨리게 된 것이었다. 헬레니즘(Hellenism)으로 이름 있는 그리이스 문명의 정수는 이같이 하여, 천박한 예술주의의 별명에 불과하게 되고 말았다.
그리이스 문명을 계승한 로마제정의 시대에 있어서도, 소피스트(Sophist)의 무리와 에피큐리안(Epicurian)의 패거리가 더욱 사회의 상하에서 날뛰게 되매, 저 엄숙한 스토익학파(Stoic school)의 얼마간의 성인현철(聖人賢哲)도 능히 헬레니즘의 범람을 막지 못하여, 음탕한 풍조가 날로 자라나고 사람의 마음이 날로 썩어가기에 이르렀던 것은 세상 사람이 잘아는 바다. 이 같음은 공 이교문명의 진상이요, 아직 유치한 인류의 영성(靈性)이 곧 그 발전의 도상에서 부득이 거치지 않을 수 없던 과정이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영성의 잠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인가. 사람의 마음 속 깊숙한 밑바닥에 잠복한 종교적 욕구는 흡사 솟구쳐 오르는 샘물이 도저히 흐르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이, 향락과 회의 속에서 취생몽사(醉生夢死)하고 있는 당시의 사람들 마음에 일종의 말할 수 없는 공허를 깨닫게 하고, 이 세상의 영화나 권세로는 도저히 채우기 어려운 일종의 심각한 영적 기갈을 느끼게 하여, 이에 어떤 새로운 광명을 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스도교는 실로 이같은 영혼의 각성시대에 즈음하여 소아시아의 한 귀퉁이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단순히 그리스도교를 유태교의 발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오해치 말 것이다. 인류의 심령적 각성은 드디어 그리스도교와 같은 영적 종교를 낳지 않을 수 없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이 종교가 권토중래(捲土重來)의 무시무시한 형세로 로마와 온 세계를 풍미하게 된 것은, 본래 괴이쩍은 일이 아니었다 보아야 한다. 헤브라이즘(Hebraism)의 화신으로 볼 만한 그리스도의 종교는, 이미 헬레니즘의 문명에 싫증을 느기고 있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향해, 그 영성의 기갈을 고칠 유일한 복음이었던 것이다. 죄도 없이 유배된 곳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던 종교라는 이름의 소녀는 이미 예전의 소녀는 아니었으니, 나이가 점차 드는데 따라 희미하게나마 자기의 사망을 자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녀는 단연히 예술의 유폐에서 벗어나 쌍수를 펴고, 동방 유태의 한 귀퉁이로부터 들어온 그리스도교를 환영하게 된 것이었다.
환영이라 함은 얼른 보기에 참담했던 박해의 역사와 모순하는 것처럼도 여겨질 것이나, 다시 깊이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 가로놓여 있던 종교적 요구가 얼마나 절실했던가를 생각한다면, 기독교의 전파가 그 근본에 있어서 이교문명의 결함을 채우고자 하여, 당시의 정신계에 투합한 바 있은 것은, 숨길 수 ㅇ벗는 사실임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살아있던 당시에도 유월절 잔치에 예루살렘의 성에 모여든 사람들 중에는 많은 그리이스인이 있어서, 저들은 사람을 중간에 놓아 예수에게 만나 줄 것을 요구한 사실을 보게 된다. 이런 회견은 예수의 일신에 있어서는 안위존망(安危存亡)이 갈리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방인에게 가르침을 설(說)함은 유태교에서 엄금하는 터이기에, 예수는 분명히 이 일로 말미암아 인심의 유리․배반이 올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일시동인(一視同仁) 길 잃은 양을 위해 목숨 버리는 것을 돌보지 않은 그는, 드디어 결심하고 이 회견을 감행했었다. 그 밖에 예수는 몇 번이나 이방의 백성이 이스라엘 민족에 앞서서 천국에 들어갈 것임을 경고한 일도 있다. 이로써 얼마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영성의 기갈을 느낌이 깊은 바 있었던가를 알 수 있다. 보라, 예전에는 철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독배를 마시게 한 아덴쓰 시민도, 아레오 산두(山頭)의 사도 바울에게 일지(一指)도 가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친답시고 쌓은 이교의 제단은 어느덧 파괴되고 이교의 우상은 홀연히 그 자취를 끊어, 기독교의 세력은 급전직하 흠사 강물의 둑을 터놓은 것 같이 도도히 온 로마의 첮지에 흘러 넘치게 되었다. 초대 기독교의 전파의 역사는 비록 꽤 많은 순교자의 흘린 피로 물들여졌기는 해도, 요컨대 이 헤브라이 사상이 그리이스 사상을 정복하고 나아간 끊임없는 승리의 기록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콘스탄틴 대제의 개종은 겨우 이 사실상의 교화를 형식상으로 나타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의 문명의 기본적 요소가 되는 그리이스의 예술주의와 로마의 권력주의는, 진작 그 주의 상에 있어서 약한 나사렛 사람의 군문에 항복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를 세계종교사 적으로 본다면 공전절후(空前絶後)의 장거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널리 인문발전의 대국에서 보고, 그 중에서도 예술 발달의 역사엣 관찰할 때는, 우리는 이 이교문명의 기독교화를 가리켜 창절비절(愴絶悲絶)의 일대 비극이었다고 일컬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일단 예술에 의한 유폐의 처지에서 벗어나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지위에 서게 된 종교가, 홀로 자기 일신의 자유를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복수의 태도를 취해 용서 없이 이교의 문물을 파괴하고, 그 중에서도 예술적인 온갖 활동을 저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참담한 현상을 가리켜, 종교가 오래 묵은 원한을 예술에다 풀고, 이를 유폐․압도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저 엄숙․준열한 희생․헌신의 십자가의 종교는, 그 근본에 있어서 당시의 이교문명의 정수인 현세적․미적 생활주의와는 융합될 수 없는 성질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더욱 당시의 기독교는, 한편에선 편협하고 고루한 유태민족의 배타적 정신의 영향을 입고, 한편으로는 초세간적(超世間的) 둔세주의(遁世主義)인 스토익 학파와 결합됨으로써, 현세의 온갖 쾌락을 부인하고 지식의 계발을 저해하여, 전세계를 들어 한 개의 암담한 수도원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치지 않을 형세를 보인 것이었다.
사가(史家)는 이 시대에 이름붙여 중세기의 암흑시대라 한다. 참으로 이 시대의 유럽 천지는 종교의 폭풍의 인생의 온갖 광명을 소멸케 만들던 어두운 밤이었다. 그런 중에서 예술의 싹이 어찌 능히 시들어 버리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나는 생각하노니, 성지회복의 목적으로 일어난 중세기의 십자군은 참담하기는 참담했으나, 그 결과는 세계문명의 계발에 공헌함이 많았다. 이에 비해 복음선전이라는 성스러운 희망을 가지고 일어난 초대 기독교의 전도군(傳道軍)은 장하기는 장했다 할지라도, 그 결과는 또한 세계인문의 파괴와 예술의 박멸을 가져오지 않았는가. 전자를 가련한 어린애의 장난에 비길 수 있다면, 후자는 가증스러운 장난이라고나 할까. 마땅하도다. 근대의 로맨틱 예술론자가, 기독교를 세계문명의 적이라 통박함이여! 비록 그렇기는 하다 해도, 역사의 걸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외로 빠르다. 이교의 박멸(撲滅)을 위해 분망하던 수 세기 동안의 암흑시대는 긴 것도 같으나, 실은 서광이 되살아나기 이전에 겪어야 했던 일시의 어둠에 지나지 않았다. 지구는 돌고, 역사는 되돌아온다. 문예부흥의 눈부신 서광은 벌써 이탈리아의 지평선 위에 넘치기 시작할 것이다. 영원히 유폐의 비운에 빠진 것 같이 보인 예술이라는 이름의 처녀는, 이제 아리따운 모습의 숙녀가 되어 수미(愁眉)를 펴게 되었다.
문예부흥 시대의 온갖 예술의 걸작웅편(傑作雄篇)은 곧 기독교화한 그리이스 예술의 부활이요 갱생(更生)이 아니고 무엇인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2대 조류가 암흑시대의 심연 중에서 소용돌이 피고 앙금이 앉다가, 이에 일대 활로를 뚫어 바위를 쪼개고 산을 뚫어 도도히 만리의 옥토에 범람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암흑시대가 참담했던 그만큼 부흥시대의 광채는 아름답고 찬란하였다. 저 기독교의 정신이 근저(根底)로부터 유럽 사람들의 정신을 순화하고 훈화(薰化)하고 영화(靈化)하여, 드디어 능히 위대한 신문명을 만들어 떨치게 되기까지를 생각할 때, 수 세기에 걸친 준비와 손질은 아직 길다고 하기에 부족하다. 아, 종교와 예술은 오래 헤어져 있던 끝에 다시 만나게 되었음이다. 이제는 옛날의 철없던 교우관계와는 달라, 서로 상대의 장점을 인정하고 자기의 사명을 깨달아, 흠모와 존경으로 마음으로부터의 우애를 기울이게 된 것이었다. 마땅해라, 저들의 포옹은 피어나서 페트라크와 보카치오의 시문(詩文)이 되고, 라파엘․레오나드 다빈치․티티안 등의 회화가 되고, 미켈란 안젤로의 조각이 되고, 부라만티의 건축이 됨이여 ! 시험삼아 이들 명장거벽(明匠巨擘)의 걸작을 놓고 검토하면, 단순히 그리이스 예술의 부활이라 하기보다는 차라리 기독교의 미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예술이 종교화했다 할까, 종교가 예술화했다 할까. 어디로 보던지 양자가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결부되어 있음이 명백하다. 보라. 기독교의 신념을 떠나 과연 라파엘의 「마돈나」는 존재할 수 있겠는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런 걸작들이 혹 그리이스 예술의 형식과 기교를 떠나서는 성립할 수 있을지 모르나, 기독교 사상을 떠나서 성립할 수 없을 것임은, 누구나 간취(看取)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문에부흥 시대의 예술은 단순히 그리이스 예술의 부활내지는 모방인 것이 아니라, 예술의 옷을 입은 기독교의 나타남이라고 평할 수 있다.
아, 뮤즈의 여신은 암흑시대의 긴 밤의 잠에서 깨어난 것이며, 그 깨어남에 있어서 그녀는 자기를 <제우스>신의 포옹 중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긴 이별 끝에 다시 손에 손을 잡고, 활짝 개인 남부 유럽의 천지를 활보한 저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고 씩씩하였을까. 글을 써서 여기에 이르고 보니, 다시 사가의 붓을 잡아 그 후 유럽의 문명사 위에 있었던 양자의 배반․투쟁의 사실을 서술한다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은 어디까지나 냉혹하여 싸늘한 빛이 항상 역사 위에 떠돌고 있는 터이니, 그리이스 문명의 말기에 예술이 종교를 압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번에는 종교가 예술을 압도하는 비극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있어서의 양자의 투쟁은, 일찍 초기 기독교 아래 암흑시대에 있었던 것과 같이 서로 원수의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요, 차라리 부자(父子)의 다툼과 같았으며, 또는 형제가 서로 싸우는 부류였다. 왜냐하면, 이 예술부흥의 말로에 있어서는, 예술은 그 보호자인 종교의 손아귀 속에서 그 싱싱한 생명을 잃고 있었던 까닭이다.
종교의 무상명령권(無上命令權)이 일단 로마 법왕의 교권(敎權)으로 확립되어 인생의 온갖 활동을 구속하던 당시의 사회에 있어서는, 신성한 예술 또한 드디어 동일한 운명을 면하지 못했다. 그리이스 예술의 부활을 이상으로 한 르네쌍스의 문예․미술도 어느덧 종교의 노예가 되어버려, 그 포교․전도(傳道)의 한 도구임에 불과한 모습을 나타냈다. 보라, 광세(曠世)의 천재 라파엘․미켈란젤로와 같은 거벽(巨擘)도, 당시 법왕의 권고(眷顧)와 보호 밑에 서지 않고는 그 천재를 발휘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하고 많은 제한이 그 제작에도 가해져, 법왕의 비준과 인가를 거치지 않고는 그 작품의 발표도 불가능하지 않았던가. 거오불패(倨傲不패)의 미켈란젤로도 다만 신구약 성서 중의 화제(畵題)로만 그린다는 조건 밑에, 시스틴․췌펠의 대벽화에 종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聖)페톤사원의 대건축도 당초에는 그리이스식의 십자가형 위에 그 설계를 세웠던 것이나, 후에 법왕의 엄명으로 이를 로마식 십자형으로 변경하는 것이 부득이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밖에 라파엘의 그 많은 「마돈나」 화상 같은 것은,예술 작품으로서 보다도 차라리 일종의 종교적 우상으로, 인심교화의 용도에 쓰이는 결과가 되었다. 당시의 예술이 얼마나 로만가톨릭교라는 일개의 종교적 형식의 질곡(桎梏)에 속박되어, 한 걸음도 능히 그 권외(圈外)로 내딛지 못했던가를 알 수 있다. 르네쌍스 시대의 말로를 평하여, 종교가 예술을 압도한 시대라 함은, 또한 부득이 하다 하겠다. 그러다가 16세기의 종교개혁의 대운동은 화산이라도 폭발하는 듯 온 유럽 천지를 뒤흔들어 놓았다. 로마 법왕의 교권 밑에 웅크리고 있던 종교․정치․문예․미술, 기타 온갖 정신활동은 자유천지에서 용약(踊躍)하는 결과가 되었다. 보라, 종교의 자유는 일전(一轉)하여 사상의 자유가 되고, 재전(再轉)하여 정치적 자유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선구자 루쏘는 세례요한과 같이 들에서 외쳐 가로되,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온 유럽 사람들의 마음은 이 소리에 응해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예술계의 새 기운(機運)은 이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표어 밑에 생기 넘치게 일어났었다. 종교개혁 이후의 혼돈한 사회적 동란은 얼른 보기에 예술의 발달을 저해하는 것도 같았으나, 예술로 하여금 한편에서는 진부한 고전주의의 형식을 타파하고, 한편에서는 종교적 형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청신하고 생기 넘치는 예술 그 자체의 사명을 자각케 한 것은, 곧 종교개혁의 대운동으로 인해 일어난 자유의 큰 기운(機運)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오랜 고전주의와 로만카톨릭교의 형식 중에서 신음하던 미술과 문에는, 용사가 싸움터에 뛰어드는 것과도 같이 웅자(雄姿)도 당당히 자유의 천지를 활보하게 되었다. 소위 자연주의의 성황과 로맨티시즘의 발기(勃起), 또는 사실주의의 범람이 되어 근대에까지 미치게 됨이 그것이었다. 이 자연주의 내지 사실주의의 근대에술이 한층 높은 일치점에서 종교와 제휴하려는 경향이 생기게 되고, 근대문명의 영향을 받은 예술이 점차 제 독특한 사명을 자각해, 종교․도덕의 노에로서의 구태를 벗고 스스로 신천지를 개척하려는 기운으로 향하게 되었다. 저 「자연을 위한 자연(Nature for it's own self)」이라느니, 또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 이라는 외침이, 얼마나 현대인의 가슴 속에 일종의 억누르지 못할 쾌감을 주는가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에 갇혀 지낸 예술의 과거의 역사가 얼마나 참담한 바 있었던가에 생각이 미처, 한 줌의 눈물을 뮤즈여신을 위해 쏟으려 아니한들 어찌 가능할 바랴. 아, 불우한 자매의 쌍둥이야, 너는 과연 영구히 서로 포옹하고 서로 의지함으로써, 인생의 화원에 즐거운 꿈을 맺지 못하겠느냐.
싸움이란 반드시 원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친근한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은 인생의 상례이겠다. 따라서 위에서 말해온 바와 같이, 예술과 종교의 반목․투쟁의 역사적 사실은, 양자의 관계가 너무 친밀한 바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로 하여금 잠시 역사를 덮어두고 이론과 체험이 가리키는 바를 따라, 양자 본연의 성질을 검토하고, 그 공통되는 유사한 점을 밝히게 하라. 위에서 우리는 예술과 종교를 인생의 쌍둥이 아이에 비유했었다. 이미 인생의 쌍둥이 아이인 이상, 저들은 같은 피를 나누고 같은 젖을 먹으며 생장발육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무엇을 같은 피라 하는가 ? 인간성의 감정이 이것이다. 실로 예술과 종교는 함께 감정의 만족으로써 본래의 목적을 삼지 않는가. 마음의 이성(理性)은 과학․철학을 낳고, 마음의 의지는 윤리․도덕을 낳고, 사람의 감정은 한편에서는 예술을 낳고 한편에서는 종교를 낳았다. 무한을 사모하고 절대에 동경하는 사람의 종교성은 감정의 가장 숭고․유현한 것이요, 미를 그리워하고 미를 동경하는 사람의 심미성은 감정의 가장 순결․자연한 것이 아닌가. 시험삼아 보라, 감정을 동반하지 않은 종교가 비록 세상에 존재할지라도, 이는 필경 고목사회(枯木死灰)의 종교라, 그 속에는 하등의 산 생명도 있지 않으며, 또 감정이 수반되지 않는 예술에 이르러서는 처음부터 그 존재도 생각할 수 없지 아니한가. 세상에는 이성에 근거한 종교가 있고, 의지에 근거한 종교가 있다. 전자는 대승불교에서 이를 발견할 것이며, 후자는 스토익학파나 내지는 유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심현(深玄)한 종교철학으로서 큰 가치가 있고, 유교와 스토익학파는 유력한 도덕윤리로 하여 큰 가치가 있으나, 아직 이상적 최고의 종교라고는 부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에 비해 기독교에 이르러서는 심현한 철리와 건실한 도덕이 있음은 물론이나, 그 종교적 생명의 원천은 차라리 그 순결성고(純潔聖高)한 감정생활에 있다 하겠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신을 보리라」함은, 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의 진수거니와, 하나님 아버지의 성스러운 뜻을 받들어 이를 사랑하며 동경하여, 소위 깨끗한 심정으로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성스러운 경지에 도달하려 하는 것이, 그 신자들의 밤낮 없이 기도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성의 만족이란 한 마디 말을 늘 쓰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만족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요 감정이다. 이성에 의해 찾아지고 잡힌 바 된 진리는, 말할 수 없는 만족을 우리의 감정에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또 도덕관념의 만족이라 하는 것도 이 도리가 아닐까. 도덕적 생활의 만족이라 함은, 필경 이 깨끗한 양심을 의미하며, 이 깨끗한 양심의 만족이라 함은, 요컨대 이 깨끗한 감정에 이끌린 의지의 생활을 의미함이 아닐까. 실로 슈라이헬마헬(Schleiermacher)이 갈파한 바와 같이, 종교 본래의 생명은 이지가 아니요, 도덕도 아니요, 감정의 향상이 있다 할 것이다.
이 향상의 감정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체험을 회고하고 추억하면서, 이것에 정연(整然)한 이성의 설명을 주는 것이 곧 우리의 종교사상인 바, 저 신학이라든가 교리라든가 신조라든가 하는 것들은 필경 이 종교적 감정의 만족을, 다시 공고한 반석 위에 확립케 하려고 하는, 우리 이성의 산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종교인의 도덕적 생활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충족된 종교적 감정의 자연스러운 발로에 불과함은, 종교 생활의 한 경지를 맛본 사람이라면 다 체험하는 바이리니, 참으로 신을 사랑하는 자로서 어찌 그 동포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종교 생활이라 함은, 요컨대 신과 접하는 감정의 생활이요, 이성은 이를 지도하여 확립시키는 기초를 제공하며, 의지는 이를 살려 체험상의 보증을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예술적 활동의 세계에 이르러서는, 우리의 의지와 이성은 전적으로 침묵의 차원에 머물러 상관없고 아는 바 없다는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 이같이 예술의 세계는 철두철미 감정의 세계일 뿐이다. 감정을 떠나 예술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물을 떠나 고기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는 미의 즐거움이 예술이 당면의 목적으로 삼는 유일한 소식인 까닭이다.
예술 속에 진리의 광명이 빛나지 않음이 아니요, 도의의 세계가 거기에 존재하지 않음은 아니로되 그것들은 우리의 감정생활을 다시 풍부하게 하며 다시 깊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진리에 등을 돌리고 도의에 역행하는 예술은 능히 우리의 지고지순(至高至順)한 감정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감정의 만족을 떠난 순전한 진리의 탐구와 도의의 추구는 이를 학문․도덕의 세계에서 구할 것이요. 예술의 세계에서는 바랄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예술의 세계에서 소요(逍遙)하는 자는 안중에 다만 미에 대한 동경이 있을 뿐이요, 미의 즐거움이 있을 뿐이요, 아름다운 감정의 만족이 있을 뿐이다. 시가․음악․회화․조각 등이, 그 어느 하나도 우리의 감정생활을 떠나서는 능히 성립할 수 없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진정 그렇다면, 예술과 종교는 다 함께 우리의 <감정>이라는 동일한 혈액에 의해 그 생명이 길러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술과 종교의 공통점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양자로 하여금 끊임 없이 발전해갈 활력을 지니게 하며, 청신하고 생기넘치는 기운을 발희케 하는 까닭은 실로 우리의 상상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로 상상력의 종교와 예술 안에서의 구실은 날개가 새의 몸에서 감당하는 구실과도 같다고 해야 한다. 우리의 종교로 하여금 그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생기 넘치는 상상력 그것이었듯이 온갖 예술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을 발산케 하는 것은 실로 우리 마음 속의 청신한 상상력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저 상상력이 결핍된 예술작품이 무미건조하여, 아무런 감흥도 우리 마음 속에 일어나게 하지 못함을 보라. 예로부터 위대한 에술이란 요컨대 위대한 상상력의 발현(發現)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위대한 종교가는 가장 영화불매(靈活不昧)한 상상력의 소유자였다. 저들은 일단 우주의 추상적 진리를 포착하자, 그 풍부하고 순후(醇厚)한 상상력은 문득 이것을 정미진진(情味津津)하고 광채육리(光彩陸離)한 구체적 모습으로 바꾸어 놓아 우선 자기가 느끼고, 또 남들로 하여금 느끼게 했다. 가장 여실하게 가장 적확하게 영계(靈界)의 소식을 그려내 보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눈으로 못 보고 귀로 못 듣고 마음으로 생각치 못한 별천지의 풍광에 접하게 만든 것이 어찌 저이들의 고매하고 위대한 상상력이 가져다 준 선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종교적 대천재(大天才)로도, 들에 핀 백합꽃과 공중을 날으는 새라든가, 또는 탕아의 아름다운 비유에 의거치 않고는, 능히 신의 사랑을 전할 수 없었던 것이니, 시험삼아 그리스도의 설교 중에서 온갖 시적(詩的)인 요소들을 제거해보라. 그리하여 남는 것이란, 당시의 학자 바리세인의 종교가 과연 얼마의 가릴 것이 있으랴. 그리스도의 영안(靈眼)에 비친 우주․인생의 진상은 신을 하나님 아버지로 받들고 인류를 동포의 형제로 한, 한 대가족의 아름다운 단란(團欒)의 광경이었다. 시험삼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간단한 한 마디 말을 음미해보라. 얼마나 풍부한 상상력이 그 가운데에 넘쳐 움직이고 있는 것이랴. 그가 3년 사이의 전도로 능히 세계의 심령계를 일신시킬 수 있었던 것은 본디 그 신적인 인격이 가져온 결과라 해야 하겠으나, 또 한편으로는 그 생기 넘치는 상상력이 그득한 시적 교훈이 심각하게 사람의 심금을 건드려 감응을 일으킴으로써, 능히 천상세계의 아리따운 음악에 공명을 금하기 어렵도록 만든데에 기인하지 않겠는가. 진실로 종교의 세계는 신비의 세계인 일면을 가지고 있는 터이니, 상상의 날개를 빌리지 않고야 어찌 그 풍광을 방불케 할 수 있으랴. 이에 알 수 있으니, 상상력은 종교와 예술이 함께 지니고 있는 날개여서, 한편에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술의 아리따운 꽃동산에 노닐게 하며, 한편에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종교의 드높은 천상세계에서 훨훨 날게 함이겠다. 이것으로 나는 이미 감정과 상상의 두 면에 있어서 예술과 종교의 공통점을 대략 서술한 것이 되거니와, 끝맺음에 있어서 하나의 견해를 다시 첨가하고자 한다.
예술과 종교로 하여금 그 본래의 사명을 발휘케 하는 공통의 이기(利器)는 사람의 마음이 지닌 직관의 작용이다. 양자는 함께 직관적으로 우주의 진상(眞相)을 해석하며, 직관적으로 삼라만상 중에 잠재해 있는 심현(深玄)하고 오묘한 뜻을 포착해 왔다. 학문과 철학의 경우라면 어디까지나 추리적으로 귀납하고 연역해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을 우주․인생의 진리가 예술가나 종교가의 영안(靈眼)에는 온통 직각적으로 가장 명석하고 여실하게 일종의 환영과도 같이 파노라마와도 같이 비치며 펼쳐지며 떠서 움직여 옴을 볼 수 있다(우주․인생의 철학적 탐구에 직각이 필요함은 이를 것도 없는 일이요, 또 실제로 철학에 직각이 있고, 철인 중에 직각철학(直覺哲學)을 높이 외쳐대는 사람이 있고, 또한 신비철학이 있음은 물론이나, 대체로 보아 그렇다 함이다). 사람은 미가 어째서 미인가를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온갖 종교적 체험도 그 감응의 찰나에 있어서는 그것이 무슨 까닭임을 입증키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번 아름다운 감정에 넋을 뺏겨서, 도연(陶然)히 녹아드는 듯한 즐거움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같이, 한번 감응의 종교적 체험을 맛본 사람이, 무엇인지 모르는 일종의 유현한 취지를 포착함이, 어찌 이지(理智)의 예봉(銳鋒)으로써 뚫을 수 있는 바랴. 저 심미적 성정(性情)을 가지지 못한 자나 종교적 영안(靈眼)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설령 어리석다 하고 미쳤다 할지라도 상관할 바 아니리니, 미는 어디까지나 미요 진(眞)은 어디까지나 진임을 어찌하랴. 직각(直覺)은 사실이다. 고답탈속(高踏脫俗)의 사람이라면 능히 이 영적인 이기(利器)를 들어 범상한 눈이 꿰뚫어보지 못하는 우주․인생의 진상을 통찰하며, 현상계(現象界)의 밑바닥 속에 잠재한 큰 의의를 이해함으로써, 혹은 이를 예술의 작품에 올리며, 혹은 이를 제 인격의 영광에 실현해야 할 것이다. 종교적 대천재의 세계관․인생관을 보라. 이를 화성(畵聖) 라파엘의 걸작, 괴테의 웅편(雄篇)에서 보라. 소위 인스피레이숀이라든가 천래의 기상이라 일컫는 것이 어찌 영적 직각력(直覺力)을 말함이 아니겠는가.
위에서 말한 감정이나 상상이나 또는 직각의 작용을 놓고 볼 때, 이 셋은 예술과 종교의 성능을 떨치게 하는 활력이요 날개요 이기인 것이 될 뿐 아니라, 세 가지에서 어느 하나라도 결여될 때는 예술다운 예술이나 종교다운 종교는 이 지상에 존재하기 어려워지고 말 것이다. 예술과 종교를 두고, 같은 피를 나누며 같은 젖을 먹고 자라난 형제라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이 쌍중이의 성격 속에서 발견되는 크게 다른 일면에 대하여는 다음 호에 언급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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