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국어 공부, 어떻게 해 왔나(1/2)
우리가 지금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눈으로 읽고 글자로 쓰고 있는 우리말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알아 내려면 그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터이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국어 공부란 것을 어떻게 해왔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대단히 좋은 방법이다. 그 까닭은, 우리가 말하고 읽고 쓰고 있는 말이 결국 국어 공부를 해서 익힌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국어 공부란 것을 대충 살펴보기로 한다. 국어 공부는 국어 교과서로 하도록 되어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글을 읽고 쓰고 외우고, 교과서에서 하라는 문제를 푸는 것이 국어 공부의 거의 전부다. 따라서 국어 공부를 어떻게 해왔는가를 알려면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글이 어떤 말로 되어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다. 국민학교 1학년 국어책(1-1 말하기 듣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나온다.
- 때와 장소에 맞게 말하여 봅시다.
- 몸짓과 표정으로 생각을 나타내어 봅시다.
- 친구가 말한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비교하며 들어 봅시다.
여기 이렇게 나오는 장소 표정 비교한다 와 같은 말들은 중고등학교 학생이라면 날마다 보통으로 쓰는 말이라 여길 터이지만,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초등학생들에게는 어렵고 맞지 않는 말이다. 장소 는 곳 이라고 해야 되고, 표정 은 낯빛 이라든지, 이 글에서는 얼굴 이라고만 해도 된다. 비교하며 는 견주며 나 대어보며 라 해야 된다. 표정 이란 말은 또 여기서는 잘못 쓴 말이기도 하다. 몸짓 도 표정인데 몸짓과 표정으로 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어쩌면 이런 의문이 생길 것 같다. 좀 어려운 말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국어 공부가 아닌가 하고. 사실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어려운 말과 글을 가르치는 것을 국어 수업이라고 생각해 왔고, 학생들은 모두가 어려운 말 배우는 것을 국어 공부라 알고 있고, 그래서 모든 어른들이 국어 공부라면 당연히 어려운 한자말과 그 한자말로 된 문장을 읽어서 풀어 내는 공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큰 잘못이다. 이래서 우리말이 한자말, 곧 중국글자말에 밀려나서 버려지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이다.
장소 보다 곳 이 낫고, 표정 보다 낯빛 이 더 깨끗한 우리말이고, 비교한다 보다 견준다 든지 대 본다 가 더 좋은 우리말이 되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도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농민과 노동자뿐 아니라 장사하는 사람도 신문기자도 학자도 대학교수도 문필가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국어 시간에 교실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우리말을 배워야 한다. 벌써 어른들이 모두 쓰고 있어 안배울 수 없다면 장소 표정 비교 란 한자말도 익혀야 하겠지. 그러나 이런 말을 배우기에 앞서,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집에서나 마을에서 듣고 배워서 알고 있는 말들 - 이곳, 저곳, 그곳 이라든가, 얼굴 이라든가 대 보다 견준다 라는 말들 -을 다시 글자로 읽게 하고 글로 쓸 수도 있게 하여 자기가 어려서 부모와 이웃 사람들한테서 듣고 배운 말이 무식한 사람들이나 쓰는 부끄러운 말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써야 할 우리말이란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낯빛 이란 말을 새로 배워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요즘은 아이고 어른이고 모조리 비교한다 비해서 비교적 이렇게만 쓰는데, 이것은 우리말을 가르치도록 하지 않는 잘못된 국어 교과서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쫓겨난 대 본다 견준다 란 우리말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차츰 죽어가고 있다. 내 생각에는 초등학교 1학년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 대학생들, 그리고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어른들까지도 누구 키가 더 큰가, 어디 한 번 대 보자 란 동요부터 새로 읽어서 우리말을 배워야 되지 않겠나 싶다. 글을 쓰는 어른들은 거의 모두 내 말을 비웃겠지만 나는 결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 다음 낱말을 사용해서 짧은 글을 지어 봅시다. (초등학교 1-1 쓰기)
- 문장을 바꾸어 봅시다. (같은책)
여기 나온 사용해서 도 써서 로, 문장 도 글 로 해서, 이런 쉬운 우리말부터 먼저 읽고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그림의 내용과 우리가 겪은 내용을 관련지어 써 봅시다. (국민하교 1-2쓰기)
여기서는 내용 과 관련지어 가 문제다. 이런 말을 안 쓰고도 얼마든지 된다. 이 지시문은 그림을 보고, 자기가 겪었던 일을 생각해서 써 봅시다. 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알기 쉽다. 이번에는 6학년 책을 보자.
-말소리의 바뀜에 주의해서 정확하게 발음하여 보자. (6-1 말하기, 듣기)
이것을 쉬운 우리말법으로 고치면 다음과 같이 된다.
말소리가 바뀌는 데 주의해서 바르게 읽어 보자.
- 길게 소리나는 글자의 발음에 주의하면서 위의 문장을 정확하게 읽어보자.(같은 책)
이것은 다음과 같이 쓰는 것이 좋다.
길게 소리나는 글자의 발음에 주의하면서 위의 문장을 정확하게 읽어 보자. (같은 책)
여기 나오는 확인하여 보자 는 공연히 어렵게 쓴 말이다. 알아 보자 고 하면 얼마나 좋은가.
-감동적인 부분을 찾아가면 글을 읽어 보자. (6-2읽기)
이렇게 무슨 -적 라는 말은 일본글을 따라서 쓴 말이다. 감동을 받는 하든지 감동스런 이라고 쓰면 된다. 그런데 이 지시문에서, 글을 읽을 때 어떤 부분이 감동을 주는가 하고 그것을 찾아내려고 하면서 읽으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글을 그런 태도로 읽어서는 영 재미가 없고, 그렇게 읽어서는 안 되고, 또 아무도 그런 태도로 읽지는 않는다. 빈 마음으로 읽는 가운데 들어오는 감동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따라서 이 지시문은 이렇게 고쳐야 할 것이다.
읽고 난 다음에 감동을 받은 대문이 어디인지 말해 보세요.
- 우리 글자를 처음부터 한글 이라고 불렀던 것은 아니다. 한글이 만들어진 당시에는 훈민정음 이라 하였고, 이를 줄여서 정음 이라고도 하였다. 또 그후에는 언문, 암클 등으로 부르기도 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한글 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6-2 읽기)
이 글에 불렀던 부르기도 부르게 란 말이 나오는데, 이런 말은 모두 말했던 말하기도 말하게 라고 고쳐야 한다. 여기서 부른다는 말은 한글을 두고 하는 말인데, 어떤 사람이든지 한글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지 한글아! 하고 한글을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른다는 말을 잘못 쓰는 것도 일제시대부터 일본말을 따라가 우리 글을 잘못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부른다는 말보자 불린다 는 말을 또 더 많이 쓰고 있다. 이 밖에 당시 는 그때 로 써야 하겠고, 등으로 는 따위로 라고 해야 될 것이다.
- 한글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우리말을 있었지만, 그 말을 적는 우리 고유의 글자는 없었다. (같은 책)
같은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이라도 한글을 만들기 라 하지 않고 한글이 만들어지기 라고 하여 움직임을 입는 꼴로 쓰는 것, 이것이 또 일본말법 따라가는 짓이다. 교과서까지 이렇게 되어 있으니 우리말이 병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글에 나오는 고유의 는 아무 소용이 없는 말이니 없애는 것이 훨씬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