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소설쓰기 - 소설을 어떻게 쓸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쓰고 (2/2)
3
나의 길, 생각하기도 싫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 그저 막막할 뿐이다. 한때는 꿈도 많고 희망찬 하루하루를 살아왔지만, 지금은 그저 단 하나의 길을꼭 가야만 하는 처지다. 대학이란 단 하나의 길을... 솔직히 내가 가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만약에 가지 않는다면 가족의 실망과 주위의 시선, 그리고 학벌을 따지는 우리 나라에서는 내가 밟을 수 있는 땅이 없을 것이다. 나도 대학에 가 보고는 싶다. TV에서만 보던 대학생활들을 나도 느껴 보고는 싶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엔 대학이라는 길! 그 좁고도 험난한 길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살아왔는지 하는 허무함과 아픔이 나를 한숨짓게 한다. 어릴 때의 꿈과 희망들은 다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보이지 않고, 내 앞엔 어두운 길 하나가 버티고 있을 뿐이다. 내가 과연 그 어둡고 험난한 길을 잘 갈 수 있을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 단지 그 길을 가기 위해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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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떻게 해서든지 가야 하는 길, 가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길, 험난한 길, 그래서 어둡기만 한 대학으로 가는 길을 앞에 두고 그 막막한 느낌을 썼다. 그래서 첫머리부터 나의 길, 생각하기도 싫다 고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만 쏟아 놓은 솔직한 글이다. 이 학생이 가는 길은, 소월이 열십자 한복판에 서서 어느 길도 내가 갈 길은 아니라고 하는 그 길과는 아주 다른 길이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억지로 끌려가는 길인 것이다. 시선 이란 말은 눈길 로 쓰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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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는 나의 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돈 많이 벌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가끔 TV에서 나오는 어려운 사람들, 몸이 불편한 장애자들의 어려움이 나올 때면, 나는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줄 자신이 없었지만, 그들의 희망과 꿈을 키워주고 싶었다. 물질적으로 돕는 것이 사랑으로 그들을 돕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난 그들이 이 세상을 싫어하지 않고 사랑을 배우고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물질적으로나마 돕고 싶다. 그래서 나는 장래 희망이 언제나 불투명하고,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공부를 해 왔다. 그래서 난 자신의 목표가 있어 그것을 성취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난 사실,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꽉 차 있다. 김소월의 길 을 읽고 정말 공감이 갔다.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나는 불투명하고 희미한 나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 해도 나는 나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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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나타난 이 학생의 생각은 앞과 뒤가 좀 달라서 통일이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학생은 지금까지 어려운 사람들, 장애자들을 도와주고 싶어하면서 살아왔다. 그들을 도와주는 길은 우선 물질로 도와주는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공부해왔다 고 말한다. 이 얼마나 뚜렷한 삶의 목표인가! 그런데 이렇게 말해 놓고 곧 그 다음에 그래서 난 자신의 목표가 있어 그것을 성취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고 썼으니 어찌 된 일인가? 그 까닭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 한 몸 잘 먹고 잘 입고 잘 몰기 위해 살아간다. 학생들도 모두 공부하는 목표가 입신출세해서 잘 살기 위해서다. 그 아무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불행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살아간다고 하면 제 정신을 가지 사람이라고 보지도 않고, 바보 대접을 하는 판이고, 그런 삶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도 없고, 학생들이 글로 써야 하는 나의 길 로 인정받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금까지 생각해 온 것을 솔직하게 썼다가, 그만 다른 일반 학생들의 생각으로 돌아가 자기만이 가졌던 생각을 지워 버리게 된 것이라 본다. 더구나 나의 길 이란 글쓰기 시간에도 갈길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는 시인의 시를, 본보기가 되는 생각이 담긴 글인 것처럼 선생님도 보여 주신 것 아닌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깨끗한 마음은 이렇게 되어 자꾸 짓밟혀서 시들어 버리고 죽어간다. 이 글에서 고쳐 써야 할 말을 살펴보자.
- 물질적으로
이것은 물질로 하면 된다.
- 물질적으로나마
이것도 물질로나마 로 쓰면 그만이다.
- 그것을 성취해 가기 위해
이것은 그것을 이뤄가지 위해 라고 쓰는 것이 좋다.
- 미래에 대한
이것은 앞날에 대한 이라 써야 한다.
지금까지 학생들의 글 네편을 들어 대강 살펴보았는데, 이 네편에서 지적한 중요한 문제점 네가지를 다시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하는 글에서 군소리, 일반스런 논리를 늘어 놓았다. 둘째, 자기 이야기를 뚜렷하게 쓰지 않고 막연하게 말해 놓았다. 셋째, 자기 생각을 쓰다가도 그만 다른 말을 써서 자기 생각을 부정했다. 넷째, 자기가 한 일을 쓰는 글이니까 쉬운 입말이 되어야 할 터인데, 글말이 적지 않게 섞여 있다. 학생들의 글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까닭이 두 가지다. 하나는 선생님이 젬고을 잘못 내어 준 때문이고, 다음 하나는, 쓰기 전에 소월의 시를 보여 준 것이 잘못되었다.
나의 길 이라고 하는 말은 없다. 나의 길 이란 말이 어떤 경우에 실제로 쓰이겠는가?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때가 있는가? 없다. 내가 가야 할 길 이라든가 내가 가고 싶은 길 이런 말은 있어도 나의 길 은 있을 수가 없다. 이런 말은 외국말 번역해 놓은 글에서나 나온다.(물론 잘못 번역해서 나온 것이지만) 외국말 잘못 번역한 글말을 글쓰기 제목으로 내어 주었으니, 이런 제목으로 쓴 글에 문제가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 뚜렷한 자기 이야기는 안 쓰고 막연한 인생의 길이니 뭐니 하는 군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이 때문이고, 글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다음은 소월의 시를 보여준 문제인데, 그 결과로 많은 학생들의 글이 갈래갈래 갈린 길 그 여러 길이 있어도 내가 갈 길은 없다는 소월 시의 내용같이 되어 버렸다. 이런 시를 모범 답안처럼 보여주는 것은 이렇게 쓰라고 지시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학생들 가운데는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이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한다. 또 가야 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소월과 같이 아주 꽉 막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만약 이 학생들에게 내가 걸어온 길 이라든가 내가 가야 할 길 같은 제목으로 지난날 살아온 이야기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지금 겪고 있는 일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뚜렷하게 쓰게 했더라면, 그리고 쓰기 전에 소월의 시가 아니라 같은 반 어느 학생이 살아온 싱싱한 이야기를 쓴 글을 들여주거나 읽힐 수 있었다면 훨씬 절실하고 가슴에 와 닿는 글들이 씌어져 나왔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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