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소설쓰기 - 소설을 어떻게 쓸까
글재주를 부리지 말고 (2/2)
그런 대문을 좀 들어보자.
- 녀석은 열려진 문 틈으로 힐끔힐끔 대문 안을 훔쳐보더니만..
- 내가 어떤 말이나 욕설을 퍼붇고 괴상한 행동을 해도 그 녀석은 잘 참고..
- 그 녀석의 눈매는 날카로왔으며..
- 길고 쭉 뻗은 다리로 담벼락에 기댈 때는 그의 매력이 한층 살아났다.
- 나는 그 쭉 뻗은 다리에 조금은 호기심도 생겼지만...
- 고함이라도 지르면 녀석이 자기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덤벼들지도 모를일이었다.
- 그녀석이 휙 나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대문들에서 더러 좀 불려서 말했다든지, 또 일부러 모기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익살스런 말로 의인화해서 쓴 것이야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말의 거의 모두가 모기가 하는 짓이라고는 할 수가 없을 만큼, 또는 모기를 보고 자연스럽게 느낀 말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멋대로 쓴 말이 되어 버렸다. 더구나 마지막에 가서 나는 혼비백산하여 재빨리 대사전을 꺼내 그 녀석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하고 쓴 말을 보면, 모기가 달려들어 혼비백산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모기가 달려 들었는데 대사전을 꺼내 모기를 힘껏 내리쳤다는 말도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대관절 왜 이렇게 썼는가? 모기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그래서 엉뚱한 큰 사건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그래야 마지막에 가서 놀랄 것이기 때문이다. 왜 놀라게 하려 했나? 그것밖에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학생들이 이런 따위로 지어내는 이야기, 창작이라는 글쓰기를 아주 좋지 않게 본다. 학생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 그것은 진실이 되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거짓이 된다. 그리고 학생들은 체험을 쓰면 자기표현이 다 되는 것이어서, 이야기를 지어 만들 필요가 없다. 학생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쓰는 것은 어른들의 글을 흉내내기 때문이고, 그런 흉내내기를 문예지도 선생님들이 글쓰기 지도기술로 알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 그 녀석 이란 글만 해도 그렇다. 뭣 때문에 이런 글을 썼는가? 이렇게 쓰지 말고, 모기 이야기라면 정말 자기가 어느 여름날 하룻밤을 모기에 시달리고 모기에 물렸던 이야기를 정직하게, 사실 그대로 자세하게 써야 한다. 그렇게 써야 바른 글쓰기 공부가 되고, 그런 글쓰기를 해야 나중에 소설가가 되더라도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학생때부터 소설가 흉내를 내어 제멋대로 된 말로 독자들을 웃기고 놀라게만 하려고 아무 책임도 없는 말을 마구잡이로 써서는 절대로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서 다시 첫머리에 말해 놓은 중고등학생들, 또는 청소년들이 써야 할 글의 종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돌아가면, 학생들이나 청소년들은 두 가지 대답 중 어디까지나 첫째에서 들어 놓은 여러 가지 글의 형태를 고루 쓰는 공부를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끝으로, 다듬어서 써야 할 말이나 잘못된 표현을 들어본다.
- 주의 (둘레)
- 접근하려는 (가까이 하려는)
- 열려진 문틈으로 (열린 문으로)
- 이젠 아예 본격적으로 (이젠 아주)
- 외모 (겉모습)
- 민첩했다 (재빨랐다)
- 심산 (속셈)
- 포기하지 (버리지)
- 인내심 (참을성)
- 무서운 집념으로 달려드는 (끈덕지게 들러붙는)
- 신경쇠약 내지는 과대망상일런지도 모르지만 (신경쇠약이나 헝풍생각일는지도 모르지만)
- 불을 켜는 순간, 그 녀석과 창문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불을 켜자, 그 녀석과 창문이 보였다)
- 밀폐된 공간으로 (꽉 닫힌 방으로)
- 자기 신변에 (제 몸에)
- 난 머리를 급속도로 회전시켰다 (나는 곧 알아차렸다)
- 그야말로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 혼비백산하여 (혼이 빠지게 놀라, 혼쭐나게 놀라)
공연히 불려서 말하거나 사실과 맞지 않는 표현은 앞에서도 들어 놓았다. 모기이야기라면 어려운 말이나 멋이 있어 보이는 말재주 같은 것은 도무지 필요가 없겠는데, 이런 글이 된 것은 결국 독자들을 감쪽같이 속여서 놀라게 하려고 한 때문이었다. 무슨 글을 쓰든지 글을 쓸 때는 언제나 그 글이 읽는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글이 사회에서 가지는 가치란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쓰는 글은 어른들이 쓰는 글과 같은 수준의 글을 쓰기 위한 연습의 과정으로 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의 글은 어른들이 흉내내어 쓸 수도 없는, 그 자체로 훌룡한 가치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목숨과 삶이 어른들의 그것과 똑같이 소중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써야 살아 있는 글이 씌어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