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논설문 쓰기 - 생각과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1/4)
말을 책에서 배우지 말고
이제부터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이야기를 해 보자. 무엇을 어떻게 쓰나 하는 여러 가지 글쓰기의 문제를 실제 작품을 보아 가면서 풀기로 하겠는데,내가 가장 힘들여 말하려는 것은 깨끗하고 바른 우리말을 살리는 일이다. 그 까닭은, 지금 우리말과 글이 남의 나라 말을 따라 함부로 써서 아주 엉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초등 학생 때부터 잘못 배우기 시작하여 중고등학생이 되면 어른들과 거의 다름없는 정도로 오염된 말을 쓴다. 그런 상태가 학생들이 쓴 글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중고등학생 때 우리말을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아주 평생을 괴상한 병신 같은 말로 살아가게 되고, 이래서 우리말은 죽어버리는 것이다. 말이 죽으면 우리 겨레도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중고등학생들의 청순한 마음을 믿는다. 이제부터 우리가 기어코 살려야 할 우리들의 목숨인 겨레말과, 어떻게 해서라도 물리치고 뿌리 뽑아야 할 불순한 남의 말을 구별해서,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티없이 깨끗한 겨레의 양심을 살려주기 바란다. 여러분이 우리말을 살리지 않으면 누가 살리겠는가? 먼저, 글 한 편을 들어 보기로 한다. 다음 글은 고등하교 1학년인 두 학생의 이름으로 어느 학급문집에 발표된 글이다. 제목 앞에 주장글 이라 적혀 있다. 논설문이라 하지 않고 주장글 이라 한 것이 잘 되었고, 지도한 선생님의 믿음직한 태도까지 나타난 듯하다. 두 학생이 의논해서 썼겠는데, 주장하는 글을 이렇게 몇 사람이 토론하고 의논해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보충수업 이대로 좋은가?
신문지상을 통해서 보면 광주의 많은 고등학교들이 보충,자율학습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와 농촌간의 보충수업이 주는 의미는 다를지라도 우리 학교 보충수업의 실태를 보면, 선생님들의 열의에 비하여 수강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매우 소극적이다. 처음 출발이 타의가 아닌 자의(?)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학습태도가 나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우리들이(미경,정숙)함께 생각해 보면 첫째, 농촌의 특수성 때문이라생각한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에 들어 가면 들에 나가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집안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어떤 남학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농약을 하고 온다고 들었다. 육체에는 한계가 있는 법, 피로가 겹친다. 이에 가중하여 보충수업 한 시간씩을 받으려는 정말 잠이 올 수밖에.. 의욕상실증 환자 같다. 둘째로는, 능력별 보충수업이 아니라서 정숙이는 잘 따라가지만 나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만약에 2학기에 보충수업을 한다고 하면 자신의 능력에 맞춰 반을 편성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런 원인을 접어두고 보충수업 자체를 놓고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하는 수업만 가지고도 대학을 들어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수업중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보충수업까지 괴롭히니 보충수업이 아니라, 이중 짐 지우기 수업이다. 그래도 우리는 밤 10시까지 하는 살인적인 심야학습이 없으니 참 좋다. 하기야 농촌에서는 할 수도 없지만, 보충수업을 현행대로 하면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하루 빨리 정상화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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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농촌학교에서 하고 있는 보충수업이 농촌의 현시로가, 학생들의 능력 차이를 생각하지 않은 반 편성 때문에 그 실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런 보충수업은 없애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한 글이다. 주장을 하는 글은 이와같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자기의 의견을 차근차근 조리있게 써야 한다. 그런데 이 글은 생각을 알기 쉬운 말, 바른 말로, 어른들이 흔히 쓰는 글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말로 써야 한다는 점에 다듬어야 할 데가 많다. 다음에 다듬어야 할 곳을 차례로 들어 보겠다.
- 신문지상을 통해서 보면
첫머리에 나오는 이 말은 신문을 보면 하면 된다. 신문 에다가 지상 을붙일 필요가 없고, 통해서 도 안 쓰는 것이 훨씬 읽기 좋고 깨끗한 말이 된다. 이 -을 통해서 란 말은 많이 쓰는데, 이렇게 아주 없애 버리든지, 다른 더 알맞은 말로 바꾸든지,통으로 를 쓰면 된다. 보기를 들면 이 길을 통해서 학교로 간다 는 이 길을 지나서 학교로 간다 고 써야 되고, 친구를 통해서 알았지요 라면 친구가 소개해서 알았지요 로 쓰는 것이 좋고, 노동을 통해 삶을 배우고 는 노동으로(일을 해서) 삶을 배우고 하면 되는 것이다.
- 도시와 농촌간의 보충수업이 주는 의미는 다를지라도
이 대문은 말이 좀 이상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에 오는 말을 볼 때 도시 학교의 보충수업 실태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써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만약 말이 좀 잘못되었더라도 이 대문을 그대로 둔다면 우선 의미는 다를지라도 만은 뜻은 다르겠지만 으로 고쳐야 하겠다.
- 열의에 비하여
이 말은 열의에 견주어 라고 쓰는 것이 좋다. -에 비하여 는 일본글따라서 쓰는 꼴이니 어떤 경우에도 우리말 -에 견주어 라고 써야 한다.
- 매우 소극적이다.
적극적, 소극적, 주관적, 객관적, 사회적, 역사적.. 이렇게 어떤 중국글자말 다음에 -적 을 붙여 쓰기를 잘 하는데, 이것은 일본사람들이 쓰는 말을 따라서 쓰는 것이고, 또 말뜻을 흐리게 하는 좋지 못한 말이니 안 쓰는 것이 좋다. 버릇이 되어 자꾸 나온다면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쓰도록 애써야 한다. 적극적으로 는 적극으로 하면 되고, 소극적으로 는 소극으로 하면 그만이다. 주관적으로 와 객관적으로 도 주관으로 객관으로 하면 된다. 주관적인 생각 이라면 주관인 생각 이나 주관으로 된 생각 하면 더 분명한 말이 된다. 사회적 명성이 는 사회에 이름이 라고 하면 되고, 역사적인 일을 은 역사에 은 일을 하면 시원스런 우리말이 된다. 여기 나오는 말 매우 소극적이다 는 매우 소극이다 고 써도 되고, 소극이란 말도 쓰지 말고 아주 다른 말로 바꿀 수도 있다. 겨우 따라 가는 상태다 이렇게 말이다. 이 -적 이란 말을 자꾸 쓰다 보니 아무데나 마구 -적 을 붙여서 우리말이 아주 어설프고 어지럽게 되어가고 있다. 대체로 하면 될 것을 대체적으로 라고 말하고, 상식으로 할 것을 상식적으로 하고 하고, 시간이 바빠서 할 것을 시간적으로 바빠서 하는 것과 같다. 또 늘 언제나 하는 우리말을 안 쓰고 일상 이란 말을 쓰다가 여기에다 -적 을 또 붙여 일상적으로 한다든지, 크게 하면 될 것을 대체적으로 한다든지, 몸이 고달파서 할 것을 육체적으로 피곤해서 하는 것이 다 그렇고, 마음 이란 말을 써도 될 자리에 정신 을 쓰고, 다시 여기에도 -적 을 붙여 정신적 으로 하는 것도 그렇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배운 쉬운 우리말을 안 쓰고 책에 나오는 글말(곧 그 대부분이 남의 나라에서 온말)을 쓰는 것은 남들에게 유식함을 자랑해 보이려는 아주 얄팍하고 천한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두어야 한다. 하도 이 -적을 많이 쓰다 보니 그만 이 말이 굳어져서 어떤 경우에는 대신할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 수도 있다. 민주적 질서와 독재적 질서 이럼 말은 민주의 질서와 독재의 질서 하든지, 민주 질서와 독재 질서 하면 되겠지만 민주적 목소리를 죽이지 말고 했을 때는 어떻게 하나? 이것도 민주의 목소리를.. 하면 되지만 처음 쓰는 말이라 좀 낯설게 느껴질 때는 민주적 목소리 가 어떤 목소리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민주적 목소리가 국민 전체의 목소리라면 민주적 을 쓰지 말고 국민의 목소리를 죽이지 말고 하면 되는 것이고, 이렇게 쓰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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