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설명문 쓰기 -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까(3/4)
알기 쉬운 우리말로 다듬고
다음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훌룡한 교육을 하고 있다고 내가 믿고 있는 어느 고등학교의 학생이 쓴 글이다. 학생들이 하고 있는 여러가지 회의를 소개하고 있는 이 글에서,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아울러 다듬어야 할 말의 문제도 살펴보기로 하자.
회의 시간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 말은 옳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입시 위주의 교육속에서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는 학생들에게 주인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는 학생들 스스로 움직이고 참여하는 활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은 그 해결 방법도 잘 모르고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수가 많다. 우리 학교의 여러 가지 회의는 그런 뜻에서 의미가 있다. 학우회 는 재학중인 전교생을 회원으로 하는 학생자치기구이다. 매달 둘째주 목요일에 열리면 한 달 동안 학생과 각 부서 및 동아리의 활동 사항과 결과를 보고하고 다음달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한달 중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해 토론한다. 여러 가지 건의 사항이 나오지만 최대한 학생들 안에서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 간담회 라는 모임이 있다. 한 학기 중 학년별로 두 번씩 열린다. 학생들과 선생님 모두가 둘러앉아 학급회의 때 부족한 이야기라든지 선생님과 함께 해결해야 될 문제들에 대해 토의한다. 학생들은 최소한 한 번씩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게 된다. 진지하고 진실된 얘기가 많이 나와 2-3시간 계속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특이한 것은 연석회 가 있다. 3월에 연석회원 전체가 일년 동안의 활동 계획을 세운다. 매월 둘째주 월요일에 모여 계획했던 것을 반성하고 다짐한다. 학우회의 예산안도 연석회의에서 보고되고 통과된다. 현재는 전교생 75명중 21명이 연석회 임원이다. 그리고 전교 회의 가 학기말 마지막 학우회 시간에 열린다. 한가지 주제 또는 한 학기 동안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교사와 전교생이 모여 자유스럽게 이야기한다. 친구 또는 선생님께 좋지 않았던 일이 있었던 경우 이 회의에서 사과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처음에는 발표자가 별로 없어 지루하게 생각하지만 한 가지 토의 내용이 결정되면 열띤 토의에 들어간다. 이것으로 간단히 소개를 마친다. 이외의 것은 물론이고,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정한 주인으로서의 학생이라면 이와 같은 여러 회의와 학생 활동에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해야겠다. 아무튼 학교의 주인인 우리가 학교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더욱 함께 참여하는 회의가 되었으면 좋겠다. -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3학년 오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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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여섯 문단으로 나누어서 썼다. 첫째단에서는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되자면 학생 스스로 여러 가지 활동에 참가해야 하지만 우리 나라 학교에서는 입학시험 공부만을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 학생이 주인으로 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단에서는 자기 학교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회의 활동 가운데서 학우회 의 성격과 구성, 하고 있는 일을 소개했고, 셋째단에서는 간담회 의 구성과 회의하는 때와 내용을 말하고, 넷째단에서는 연석회 를, 다섯째단에서는 전교회의 를 이렇게 소개한 다음 마지막 여섯째단에서 보충하는 말과 의견을 적었다. 이 학생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 회의 토론 활동을 요령있게 잘 소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글을 다른 학교의 학생들, 그러니까 시험공부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모든 학생들이 읽으면 이런 학교가 우리 나라에 있는가 싶어 신기하게 여길 터이고, 그래서 학생들이 채워주기 위해서는 이 학생이 쓴 글과는 좀 다른 형식으로 쓰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다. 곧 설명문보다는 기록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그 여러 가지 회의나 토론 활동 가운데서 어느 한 가지를 정해서, 실제로 어느 날 어디서 몇 사람이 모여 무슨 말을 한 것을 말한 그대로 기록해서 읽도록 한다면 읽는 사람이 그 현장을 생생하게 눈앞에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비록 아무리 서투른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배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설명문대로 쓸 자리가 많겠지만, 비록 아무리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설명으로 그친다면 결국은 지식을 개념으로 머리에 넣어주는 것밖에 안된다. 그런데 기록문이나 서사문은 어떤 현실을 간접으로 체험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공부를 해야 하는 글은 역시 눈으로 보고 듣고 몸으로 겪은 것을 그대로 정확하게 적어 보이는 글-서사문, 사생문, 기록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글에 씌어 있는 말을 좀 살펴보기로 한다. 이 글에 적힌 말들은 어른들의 글말을 따라 써서 아주 별나게 오염이 된 말들은 아니다. 그러나 싱싱하게 살아 있는 말을 썼다고는 볼 수 없다. 그 까닭은 이 글의 성격이나 형식에서 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서사문이나 기록문이나 사생문으로 쓰지 않고 설명문으로 썼기 때문에 삶의 말이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을 설명하는 글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개성있는 자기 말고, 우리말을 살려서 쓸 수 있다. 이 글에 나오는 말들을 다듬어 쓰는 일에서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 싶다. 첫째는 반드시 고쳐야 할 말이고, 둘째는 될 수 있는 대로 고쳐 쓰는 것이 좋은 말이고, 셋째는 다른 말로도 쓸 수 있는 말이다. 첫째, 반드시 고쳐야 할 말은 다음과 같다.
-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수가 많다.
-으로서의 는 우리말법이 아니다. 포기 란 말은 많이 쓰지만 쉬운 우리말이 있으니 쓰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이 대문은 주인으로서 가진 권리를 내 버리는 수가 많다 고 하면 된다.
- 그런 뜻에서 의미가 크다.
의미 가 뜻 이니까 같은 말이 되풀이 되었다. 의미 는 어떤 경우에서도 모두 뜻 이라고 하면 말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다. 그러니 위의 대문은 그런 점에서 뜻이 크다 고 쓰든지, 그래서 뜻이 크다 나 그래서 큰 뜻을 가졌다 고 쓰면 될 것이다.
- 매달
이것은 달마다 라고 써야 한다.
- 각 부서 및 동아리의 활동사항과 결과를 보고하고
이 대문에서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은 및 이란 말이다. 이 말은 우리가 실제로 입으로 말하지 않으니 마땅히 와 라는 토를 써야 한다. 그 다음에 곧 또 과 가 와서 읽기가 안 됐으면 이 과 를 다른 이음토로 바꾸면 된다. 그래서 이 대문은 각 부서와 동아리의 활동상황이며 결과를 보고하고 이렇게 쓰면 좋겠다.
- 문제등에 대해
이 등 이 일본글에서 왔다. 문제들에 대해 하면 그만이다.
- 진실된
많이 쓰고 있는데, 잘못 쓰는 말이다. 진실하다 란 말은 있어도 진실되다 란말은 없다. 그러니 진실한 이 아니면 참된 이라고 써야 옳다.
- 이 외의 것
이 외 가 좋지 않다. 이 밖 이나 그 밖 이라고 하면 된다.
- 진정한 주인으로서의 학생이라면
여기 또 -으로서의 가 나왔다. 이것은 일본말법이니 절대로 쓰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참된 이나 바른 이라고 쓰는 것이 더 낫다. 그래서 위의 대문은 참된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진 학생이라면 이렇게 써야 바른 우리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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