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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서사문 쓰기1 (2/2)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부터
우리가 쓰는 글에서 가장 많은 글이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여, 어찌 되었다는 이야기를 쓰는 서사문 이다. 소설도 서사문이다. 어린이고 어른이고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쓰는 일기도 거의 모두 서사문이다. 기행문도 서사문이라 할 수 있고, 감상문도 서사문이 그 안에 들어 있기가 예사다. 수필이나 조사 보고문에서도 서사문이 끼어드는 수가 많다. 이 서사문은, 그 글 안에서 동물이나 식물이 임자 노릇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사람이 임자가 되어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사람의 이야기를 쓴 글은 나 곧 자기가 무엇을 한 이야기를 쓰는 글과, 자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쓰는 글,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남의 이야기를 쓰는 경우, 초등 학생이라면 제 동생의 이야기를 많이 쓰겠지만, 중고등학생이라면 부모님 이야기나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를 흔히 쓰게 된다. 여기서 부모님 이야기를 쓰는 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부모님 이야기를 쓸 수가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구든지 한 차례는 부모님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써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부모님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사람이기에 자기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잘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쓰는 것은 가족의 역사를 적은 일이다. 가족의 역사를 찾는 일은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뿌리를 알아야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붙잡을 수 있고, 자기를 올바르게 지키고 키워갈 수 있다.
셋째, 아버지 어머니가 세상을 살아오신 이야기를 쓰게 되면 저절로 깨끗한 우리말로 쓰게 된다. 적어도 다른 글보다는 덜 오염된 글을 쓰게 된다. 그 까닭은, 책에 씌어 있는 글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고, 지식이나 교훈은 귀로 들었던 말로 쓰는 이야기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세상을 몸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다. 앞에서 부모님 이야기를 나 가 아닌 남 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그것은 나 와 나 아닌 사람을 구별했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지, 사실 어머니 아버지는 남이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라고 말했고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쓸 때는, 자기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함께 살아온 동안의 일들은 바로 겪었던 일이기에 잘 생각해 내기만 하면 쓸 수 있지만, 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나 나서도 너무 어려서 기억할 수 없었던 때의 일은 부모님이나 그 밖의 가족들한테 들어서 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듣고 또, 더러 필요할 때는 조사도 해서 쓰게 되는 이야기가 더 많은 것이 예사다.
어느 정도로 길게 쓰나 하는 것도 미리 작정해서 얼거리를 잘 잡아야 한다. 2백자 원고지로 백 장 쓸 수도 있고, 열 장이나 스무 장쯤 쓸 수도 있다. 길이에 따라 쓸 내용도 정한다. 물론 문체도 합니다 로 할지 한다 로 할지 미리 작정해 두어야 되겠지. 다음에 드는 글은 어느 중학교 졸업반 학생들이 만든 문집에 들어 있는 글이다. 이 글을 읽고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오신 길을 저마다 찾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기 씌어 있는 말도 눈여겨보기 바란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길 - 이연자
1931년 6월 14일 새벽, 사람들이 고요히 잠들어 있는 사이에 평일도의 풀 냄새 나는 골짜기에서 우리 어머니는 태어나셨다. 차근차근 나이를 먹어서 학교 갈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 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학교는커녕 밥 한 끼도 제대로 배불리 먹어 볼 때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남의 집에서 남의 아이를 봐 주면서 자랐다. 해가 동산에서 뜨기도 전에 일어나 험한 삼으로 나무를 하러 가곤 하셨다. 촌구석에서 이렇게 저렇게 사시다가 어느 아주머니의 소개를 받고 18살 한찬 꽃다운 나이에 월송리라는 아주 큰 동네로 시집을 왔다. 그러나 시어머니, 시아버지 아래서 생활하면서 아주 어렵게 살았다. 몇 년이 흘러서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만 남으셨다. 맨 처음 시집 왔을 때는 시아버지께 사랑을 받았으나 이제는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 날이면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남의 마을 산까지 올라가서 나무를 한 짐씩 해와서 아침밥을 지으셨다. 또 집안 일을 조금 하다가 점심이 되면 산을 향해 달렸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나무를 하다가 다쳐서 멍들기도 했지만 꾹 참고 살아오셨다. 23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우리 큰언니를 낳으셨다. 힘들게 낳은 아이가 딸이었기 때문에 월송리에서 무섭다고 소문난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께 밥 한 깨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계속 일만 하셨다. 몇 년이 흘러 우리 둘째 언니가 태어났다. 이제는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시누이한테까지도 아들을 못 낳는다고 구박을 받았다. 그후 우리 어머니는 더욱더 실망과 좌절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시어머니는 딸만 낳는다고 허구헌날 아이를 등에 업도 일을 하게 했다. 그후 몇 년이 흐르고 또 흘러 어머니는 아이를 또 낳으셨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난리인가? 또 딸이었다. 시어머니와 아버지는 쓸모 없는 딸만 낳는다고 하시면서 재혼까지 하려고 하셨다. 어머니는 날마다 눈물과 괴로움 속에서 사셨다. 또 몇 년이 흘렀다. 아이를 낳았다. 딸이었다. 이젠 동네 사람들조차도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일을 하러 나갈 때마다 고개를 못들고 다니셨다. 날마다 마음만 아플 뿐이었다.
몇 년이 흘렀다. 어머니는 또 아이를 낳으셨다. 듬직한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동네 잔치를 벌일 만큼 기분이 좋으셨다. 시어머니는 손자를 보고 몇 달 더 사시다가 세상을 뜨셨다. 어머니는 이제 안심이 되었다. 아들을 낳으셨으니까 말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업고 춤을 추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러 다니셨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께 고생했다고 등도 두드려 주고 하면서 잘 대해 주었다. 몇 년이 흘러 어머니는 또 아들을 낳으셨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풍이 많이 걸려서 고생을 하셨다. 몇 년이 흘러 아이를 또 낳으셨다. 또 아들인 줄 알았는데 쓸모 없는 딸이었다. 나이를 많이 먹도록 아이를 낳으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병을 얻으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탕약을 사서 어머니를 보해 주셨다. 그 탕약을 먹고 나서 몸이 점점 좋아지셨다.
세월이 흘렀다. 막내딸이 5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신장을 앓으셨다. 몸이 부었다. 그래서 가난한 살림에도 병원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집에는 돈도 없었고 또 수술을 한다 해도 어머니 몸이 너무 약해서 수술을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그냥 약만 먹고 몸 부은 것만 빼고 집에 돌아오셨다. 1년이 흘러 막내딸이 6학년이 되었다. 갑자기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머니는 힘이 더 빠지셨다. 막내딸이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또 병이 악화되어서 병원에 가셨다. 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오면 또 악화되고 그랬다. 막내딸이 바로 나, 이연자다. 딸들은 막내만 빼고 다 시집을 갔다. 어머니는 더 많이 늙으셨지만 즐겁게 살고 계신다.
- 금일 중학교 3학년 5반 졸업문집
보리처럼 꿋꿋하게 에서 참으로 엄청난 고난의 길을 걸어오신 어머니다. 그러나 지난날 우리 나라어머니들은 이렇게 어렵게 살아온 사람이 어쩌다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 어머니들이 이 어머니처럼 험악한 삶을 이어왔던 것이다. 어머니가 딸을 낳았다고 해서 시부모나 남편한테 학대를 받는 것은 사람의 권리를 짓밟히는 일이지만, 지난날에는 이런 인권유린을 당연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은 옛날의 왕조시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얼마전까지도 있었다. 다음은 1985년 4월 경북 울진군 온정국민학교 3학년 김은정이란 어린이가 아기 라는 제목으로 쓴 시다.
아기가 남자가 아니라고 집안 식구들은
매일 욕을 한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수건을 들고
우는 모습을 본다.
어머니, 왜 우세요?
하고 물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할머니께서는 아기 얼굴마저도
돌아보시지 않는다.
여자 놓든 남자 놓든
엄마 마음대로 놔,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차라리 태어나지나 말지,
설움만 받고 크는 아기.
어째서라도 나는
아기를 키우고 말겠다.
나는 지금까지, 초등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쓴 시에도 이만한 작품을 읽은 적이 없다. 시인이라는 어른들이 쓴 요즘의 시에서도 이만큼 감동을 받은 시를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국민하교 3학년 아이가 과연 이렇게 썼을까, 하고 놀라고 의심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른들이 잘못 가르쳐서 그 마음이 병들고 재능이 시들어 버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착한 마음과 올바른 생각을 조금도 다치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면, 아이들은 가끔 이런 훌룡한 시를 쓰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온갖 험한 고난의 길을 이겨내면서 살아가는 어머니가 정성을 들여 기르는 아이한테서는 이런 감동이 넘치는 시가 나오게 되어 있다고 본다. 아무튼 딸아이를 천대하는 이 어리석고 야만스런 풍습이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그 뿌리가 뽑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이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고, 그런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은 옛날에 견주어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것을 우리 스스로 바로잡지 않고 민주 사회를 세울 수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이제 글에 나타난 말의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 글은 아주 깨끗한 말로 썼다. 이중과거형 었었다 가 한 군데도 없고, 일본말법이 없고, 어려운 중국글자말도 안 썼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게 되니까 말도 저절로 쉬운 우리말이 된 것이다. 더구나 가난해서 학교에도 못 가고 남의 집에서 아이를 봐 주면서 밥 한끼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자라난 어머니가, 시집을 가서는 또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적는데 어찌 우리말이 안되겠는가. 우선 제목부터 어머니의 살아오신 길 이라 하지 않고 어머니가 살아오신 길 이라 한 것이 잘 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요즘은 초등 학생들이 쓴 글에도 나의 어머니 란 말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우리말을 쓴 것이 반갑다. 우리말로 쓴 글에 우리말이 나왔다고 칭찬을 해야 하는 것이 기가 막힌 우리 나라 사람들의 글쓰기 사정이다.
- 또 몇 년이 흘렀다. 아이를 낳았다. 딸이었다.
때에 다라서 이렇게 글월을 짧게 쓴 것도 읽기가 좋다. 긴 사연을 줄여서 쓰자니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으로 쓰는 말이라도 좀더 깨끗한 우리말이 있으면우리말을 살려서 쓰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가령 생활 이란 말도 때에 따라서 쓸수도 있지만 살아간다 고 해도 될 자리에 생활한다 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 그러나 시어머니 시아버지 아래서 생활을 하면서 아주 어렵게 살았다.
이 대문에 나온 생활을 하면서 는 살아가면서 라고 쓰는 것이 좋다.
-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
이것은 그대로 두어도 되겠지. 만약에 고친다면 지옥 같은 시집살이를 했다고 하면 될 것이다.
다음은 1년 이란 말인데, 10년, 20년, 100년 할 때는 년 이라야 되겠지만 1년 2년은 한 해 두 해 가 낫겠다. 이것은 한 해가 지나 로 쓰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다. 몇 년 도 마찬가지다.
- 몇 년이 흘러
- 또 몇 년이 흘렀다.
이 글에는 이렇게 몇 년 이 많이 나온다. 모두 몇 해가 지나 라든지 몇 해가 흘렀다 고 쓰면 좋겠다.
- 산을 향해 달렸다.
이것은 산으로 올라갔다 고 쓰는 것이 낫다. 흔히 학교로 갔다 든지 집으로 갔다 고 쓸 말을 학교로 향해 갔다 집으로 향해 갔다 고 쓰는데, 좋지 못한 글버릇이다. 학교로 향했다 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 그후
이것도 그 뒤 라고 쓰는 것이 낫지 않겠나 싶다.
- 더욱더 실망과 좌절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 부분이 좀 마음에 안든다. 좌절 속으로 빠져 와 같은 유식한 말을 쓰지말고, 정말 어머니가 들려줄 것 같은 말로 쓰는 것이 좋겠다.
- 병이 악화되어서
- 또 악화되고
이렇게 나오는 이 악화란 말도 따지고 보면 글에서나 쓰던 유식한 말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입으로 하는 말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병이 나빠져서 또 병이 나빠지고 이렇게 말하니 글도 말 그대로 쓰는 것이 옳다. 또 우리말에는 저친다는 말이 있고 도진다는 말도 있다. 병이 더쳐서 또 더쳐서 라든가 병이 도져서도 도져서 이렇게 말한다. 이런 우리말을 살려서 쓰는 일이 아주 급하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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