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광수편"
이광수(1892~?)
소설가. 호는 춘원. 평북 정주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중퇴. '창조' 동인.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편집 국장 역임. 6.25사변 때 납북. 이광수는 최남선과 함께 우리 나라 신문학의 개척자이다.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은 그는 계몽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썼다. 장편 소설에 "무정" "개척자" "흙" "유정" "사랑" 등이 있고, 단편 소설에 "소년의 비애" "어린 벗에게" "꿈" 등이 있다.
금강산 기행
우리는 점심을 먹고 이럭저럭 한 시간이나 넘게 기다렸으나, 이내 운무가 걷히지를 아니합니다. 나는 새로 두 시가 되면 운무가 걷히리라고 단언하고 그러나 운무 중의 비로봉도 또한 볼 만한 것이다 하며 다시 올라가기를 시작했습니다. 동으로 산마루를 밟고, 줄 타는 광대 모양으로 수십 보를 올라가면, 산이 뚝 끊어져 발 아래 천 길 낭떠러지가 있고, 거기서 북으로 꺾여 성루 같은 길로 몸을 서편으로 기울이고 다시 수십 보를 가면 뭉투룩한 봉두에 이르니 이것이 금강 만 이천 봉의 최고봉인 비로봉의 머리외다. 역시 운무가 사방으로 막혀 봉두의 바위들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 바윗돌 중에 중앙에 있는 큰 바위를 '배바위'라 하는데, '배바위'라 함은 그 모양이 배와 같다는 것이 아니라, 동해에 다니는 배들이 그 바위를 표준으로 방향을 찾는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안내자가 설명합니다. 이 바위 때문에 해마다 여러 천 명의 생명이 살아난다고, 그래서 선인들은 멀리서 이 바위를 향하여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이 안내자의 말이 참이라 하면, 과연 이 바위는 거룩한 바위외다.
바위는 아주 평범하게 생겼습니다. 이 기묘한 산마루에 어떻게 이렇게 평범한 바위가 있나 하리만큼 평범한, 동그란 바위외다. 평범이란 말이 났으니 말이지, 비로봉두 자신이 극히 평범합니다. 밑에서 생각하기에는, 비로봉이라 하면 설백색의 칼끝 같은 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섰을 것 같더니, 올라와 본즉 아주 평평하고, 흙 있고 풀 있는 한 조각의 평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저기 놓인 바위도 그 모양으로, 아무 기묘함이 없이 평범한 바위외다. 그러나, 평범한 이 봉이야말로 만 이천 중의 최고봉이요, 평범한 이 바위야말로 해마다 수천의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덕을 가진 바위외다.
위대는 평범이외다. 나는 이에서 평범의 덕을 배웁니다. 평범한 저 바위가 평범한 봉두에 앉아 개벽 이래 몇천만 년을 말없이 있건마는, 만인이 우러러보고 생명의 구주로 아는 것을 생각하면, 절세의 위인을 대하는 듯합니다. 더구나 그 이름이 문인, 시객이 지은 공상적, 유희적 이름이 아니요, 순박한 선인들의 정성으로 지은 '배바위'인 것이 더욱 좋습니다. 아마 이 바위는 문인, 시객의 흥미를 끌 만하진 못하겠지마는, 여러 십리 밖 드넓은 바다로 다니는 선인의 진로의 표적이 됩니다.
배바위야, 네 덕이 크다. 만장 봉두에 말없이 앉아 있어
창해에 가는 배의 표적이 된다 하니,
아마도 성인의 공이 이런가 하노라.
만 이천 봉이 기로써 다툴 적에
비로야, 네가 홀로 범으로 높단 말가.
배바위 이고 앉았으니 더욱 기뻐하노라.
이윽고 두 시가 되니, 문득 바람의 방향이 변하여 운무가 걷히기 시작하니, 동에 번쩍 일, 월출봉이 나서고, 서에 번쩍 영랑봉의 웅혼한 모양이 나오며, 다시 구룡연 골짜기의 봉두들이 백운 위에 드러나더니, 문득 멀리 동쪽에 짙푸른 동해의 물결이 번뜻번뜻 보입니다. 그러다가 영랑봉 머리로 칠월의 태양이 번쩍 보이자 운무의 스러짐이 더욱 빨라져, 그러기 시작한 지 불과 4, 5분 후에, 천지는 물로 씻은 듯이 본래의 제 모양을 드러내었습니다. 아아, 그 장쾌함이야 무엇에 비기겠습니까? 마치 홍몽 중에서 새로 천지를 지어 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천지 창조를 목격하였다."
"나는 신천지의 제막식을 보았다."
하고 외쳤습니다. 이 마음은 오직 지내 본 사람이어야 알 것이외다. 어둡고 어두운 홍몽 중에 난데없이 한 가닥 밝은 빛이 비치어 거기 새로운 봉두가 드러날 때, 우리가 가지는 감정이 창조의 기쁨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나는 창조의 기쁨에 참여하였다."하고 싶습니다.
홍몽이 부판하니 하늘이요 땅이로다.
창해와 만 이천 봉 신생의 빛 마실 제,
사람이 소리를 높여 창세송을 부르더라.
천지를 창조하신 지 천만 년가 만만 년가.
부유 같은 인생으로 못 뵈옴이 한이러니,
이제나 지척에 모셔 옛 모양을 뵈오니라.
진실로 대자연이 장엄도 한저이고.
만장봉 섰는 밑에 만경파를 놓단 말가.
풍운의 불측한 변환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참말 비로봉두에 서서 사면을 돌아 보면, 대자연의 웅대, 숭엄한 모양에 탄복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봉의 높이는 겨우 6천 9 척에 불과하니, 내 키 5척 6촌에서 이마 두 치를 감하면, 내 눈이 해발 6천 14척 4촌에 불과하지마는, 첫째는, 이 봉이 만 이천 봉 중의 최고봉인 것과, 둘째 이 봉이 바로 동해 가에선 두 가지 이유로 심히 높은 감각을 줄 뿐더러, 그리도 높고 높게만 보이던 내금강의 여러 봉이 저 아래 2천 척 내지 3, 4천 척 밑에 모형 지도 모양으로 보이고 동으로는 창해가, 거리는 40리가 넘지마는, 뛰면 빠질 듯이 바로 발 아래 들어와 보이는 것만 해도 그 광경의 웅장함을 보려든, 하물며 사방에 이 봉 높이를 당할 자가 없으므로, 한계가 무한히 넓어 지름 수백 리의 일원을 일모에 내려다봄에랴. 그 웅대하고 숭고한 맛을 비길 데가 없습니다.
비로봉에 올라서니 세상 만사 우스워라.
산해 만리를 일모에 넣었으니,
그 따위 만국 도성이 의질에나 비하리요.
금강산 만 이천 봉 발 아래로 굽어보고,
창해의 푸른 물에 하늘 닿는 곳 찾노라니,
청풍이 백운을 몰아 귓가으로 지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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