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한용운편"
한용운(1879~1944) 시인. 승려. 법호는 만해. 충남 홍성 출생. 한학 수학.
33인 중의 하나인 그는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등 예술적. 사상적 깊이가 있는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어려서 신동으로 불리었고 18세 때는 동학에 참여하였고 그 후 승려로 한국 불교계의 혁신을 도모하였고 만주에 건너가 독립 운동에 공헌하였다.
최후의 오분간
벌써 근 30년의 회상이다. "음빙실문집"에서 얻은 기억의 한 토막이다. 지나의 양계초가 무술 정변에 실패하고 미국에 망명하였을 때에 미국 조야 인사를 방문하였는데 모건은 미국에서 유명한 부호요, 기업가요, 돈도 많고 일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을 면회하든지 5분 이상을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모건은 부호요 거상이니만큼 면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인즉, 그 만큼 바쁜 사람으로 그만한 사람을 면회하자면 오랜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보다도 그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니, 능력이라는 것은 그의 두뇌를 말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심상한 방문객도 없지는 않겠지마는 대부분은 일이 있어서 찾는 사람일 것이요, 그 중에 복잡한 사단과 장황한 이론을 필요로 하는 방문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하면 어찌하여 다만 5분간의 면회로 그러한 일들을 해결할 수가 있는지가 의문이네, 모건은 어떠한 복잡한 일을 당하든지 지엽의 토의를 필요로 하지 아니하고 편언척어로 요령을 포착하여 단도 직입, 언하에 신속히 판단하고, 한 번 판단하면 여하한 경우라도 그것을 변개 하는 일이 없다 한즉 그는 그러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 그러한 판단력과 의지력이 있어서 5분간의 면회로도 미해결의 일은 없다 한다.
모건은 대부호이니만큼 미국 정부에서도 그에게 돈을 꾸어 쓰는 일이 있는데, 그러한 때에는 대통령이 직접 모건을 방문하게 된다. 모건은 대통령의 방문에도 물론 5분 이상을 허비하지 않는다 한다. 모건은 일개의 우연한 부상이 아니라 실로 일종의 걸물인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양계초가 그를 찾은 것은 소관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호기심이었던 것이니만큼 그들의 면회는 3분간에 끝났는데, 양이 떠날 때에 자기에게 기념될 만한 말을 청한즉 모건은 '성공은 최후의 5분간에 있다'는 간단한 말로 고별사를 지었다 한다.
세계적 부호요 서반구적 걸물인 모건으로 당시 지나 일폭의 풍운아로서 정변에 실패하고 천애윤락 이역에 망명하여 미래의 부침이 적어도 4억만 생령에 관심되는 양계초에게 기념적으로 준 말이라면 반드시 심상할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대적 추상보다 그 말 자체를 음미하면 실로 우리들의 좌우명이 될 만한 말이다. 이 말은 중도의 실패에 낙망하지 말고 최후까지 노력하라는 뜻이다. 사람이 경영하는 일은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일이 없고 성공까지에는 반드시 다소의 시일이 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일을 두고 참담 경영하던 일이 최후의 종국은 5분간으로서 족한 것이다. 구인의 산은 최후의 일궤를 가하는 5분간으로 부족이 없는 것이다.
일을 영위함에는 시간의 조만도 문제이지만 성공의 5분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공기의 지속이 그 일을 영작하는 노력의 질적 양적의 다과로 정비례될 뿐이다. 물론 여기에서 영위하는 일이라는 것은 산판상으로 타산하여서 전도를 예측할 수 있는 대금업이나 토목 공사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전도의 성패를 알 수 없으면서도 사람으로서 당연히 당할 일을 말하는 것인데,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은 매양 순경보다 역경을 당하는 일이 많게 되는 것은 조화용의 장난인지도 모른다 하려니와, 그보다도 순경에 처한 사람보다도 역경에 있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이 많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궁할수록 달하고 싶고 퇴할수록 진하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라고 하느니보다 차라리 생물의 본능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고로 위대한 사업은 흔히 역경을 만난다고 하지마는 위대한 사업일수록 역경에서 출발하기가 쉽게 되느니 그 출발점이 역경인지라 그 진로가 순경일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순경이 있다면 그것은 이른바 성공하는 최후의 5분간으로부터일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역경에 선 사람들도 순경을 개척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면 마땅히 그것을 먼저 간파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여 일을 영위하다가 곤란이 있다고 중도에 퇴보한다든지 진로를 변경한다면 그것은 최초의 본의가 아닐 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성공은 없을 것이니, 그러면 그 사람의 일생은 실패와 비애로 시종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소위에 대하여 일시적 성취가 사람으로 그것을 영위하고 거기에 용진하여 백절불굴, 쉬지 않고 행하다가 광란을 기도에서 돌이키고 대하를 장경에서 붙들어서 성공의 최후 5분간을 본다면 사람의 희열이 거기에 있고 진정한 행복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세도의 일빈일소에 영수향응하여 조동모서로 종작이 없어 부침하는 경박아, 천장부에게는 각각으로 실패의 5분간을 계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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