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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9교시 :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글, 논설문
- 빈틈없는 설득력 발휘하라.
1. 논설문은 혼자서 즐기기 위한 글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뜻하지 않은 여러 가지 일들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려 나간다면 정말로 좋겠지만, 세상 일이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래서 이따금 우리는 그 힘겨운 마음을 글에 담아 보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타날 수 있다. 나의 어렵고 고단한 마음을 그저 담담하게 뱉어 내 놓는 수필이 될 수도 있고, 상대편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기 쉽게 풀어서 일러주는 설명문이 될 수도 있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객관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여 설득하는 논설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나와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상대편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묘한 마력을 지닌 글이 바로 논설문이다. 논설문은 우리가 매일같이 받아보는 신문의 사설이 대표적인다. 그래서 인지 오래전 영국의 한 신문사 주필은 이렇게 호언 장담 했다.
"내가 붓을 들면, 우리나라 내각을 3일안에 넘어뜨릴 수도 있고 새로 세울 수도 있다."
또 옛날 중국 위나라의 문제라는 임금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글로써 어떤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한 나라를 경영하고 다스리는데 있어서 가장 큰 업무이다."
이 이상으로 글의 위력을 강하게 나타낸 말이 또 있을까? 이 말은 곧 산을 밀어다가 바다를 메우게 할 수도있고, 짙푸른 뽕나무 밭을 시퍼런 바다로 변하게 할수도 있고, 개펄 한가운데로 길을 내고 그 곳에 비행장이 들어앉게도 할 수 있는 것이 글이라는 것이다. 하기에 따라서는 이 세상을 환히 밝히고 있는 해의 빛을 가릴수도 있다. 이렇게 위대한 힘을 지닌 글 가운데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논설문이다. 논설문은 문학적인 글, 즉 시, 소설, 수필, 희곡들 처럼 혼자서 어떤 대상의 아름다움에 취하거나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편에게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논리 정연하게 펼쳐 보여서 설득을 시키는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설문을 쓸 때는 반드시 그 글을 읽을 독자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느 중학교의 한 교실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가을 소풍을 가야 하는데, 도무지 적당한 장소를 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으로 가자는 사람, 강으로 가자는 사람, 놀이 기구를 타러 가자는 사람...... 옹기종기 모여 앉은 45명의 생각이 제각기 달라서, 과연 어디로 가야 사람들의 불만을 줄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45명의 학생이 45갈래로 갈라진 채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목청을 돋우니, 그 반을 이끌어가고 있는 담인 선생님이나 반장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45명의 의견을 모두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경우에 따라 구성원 하나하나의 자질구레한 의견이나 주장들을 과감히 잘라버릴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따를 수 있을만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먼저 여러 가지 의견 중에서 가장 옳다고 판단되는 주장을 앞으로 내세운 뒤, 왜 그것을 택해야 했는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뜻이 한 군데로 모여 커다란 물줄기(여론)을 형성하게 된다. 만일 그 반에서 내는 학급 신문이 있다면, 그 신문에다 글을 기고해서 '우리의 입장과 사정이 이러이러하므로, 우리는 이러한 곳으로 소풍을 가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하다.'고 밝히는건 어떨까? 그리하여 여러 사람의 호응을 얻어낸 다면, 일이 한결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이러한 일은 비단 학교의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 사회, 한 국가, 전 인류의 경영에 있어서도 여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론을 조사하는 데는 논설문의 힘이 꼭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논설문은 여론(그 큰 물줄기)을 만들어 내는 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선봉에서 이끌어 가는 구실까지 도맡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논설문은 '이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고, 질서를 뒤바꿔 놓을 수도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을 지닌 글'인 셈이다.
2. 논설문을 쓰기 전에
논설문은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쳐서, 다른 사람들이 그에 동조하도록 설득하는 글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논설문은 다른 글과는 다르게 유념해야 할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주장할 관점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근거나 이유를 제시하더라도 읽는 사람을 설득 시킬 수가 없다.
둘째, 논설문의 주제, 즉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뒷밭침하는 근거(논거)가 뚜렷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장하려는 바가 힘을 얻어, 상대편을 강렬하게 끌러 당길 수 있다.
셋째, 논설문에서는 대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다루어 지므로, 참신하고 독창적인 주장을 내세워야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든가, 특정한 시기에 해당하는 문제, 또는 자신이 다루기에 너무 벅찬 문제들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넷째, 논설문은 그 목적이 분명한 글이므로, 내용을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전개해야 한다. 만일 말하려는 논지가 흐트러지게 되면, 다른 주장이 끼여들 틈을 내줄 뿐 아니라 내 글이 나타내 보이고자 하는 견해까지 신빙성을 잃게 된다.
다섯째, 논설문에서 내세우는 주장은 객관성을 띠고 있어야 한다. 나 한 사람의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일 게 아니라, 가능 한 많은 사람들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진실로 사랑하고 아끼고 책임을 다하려는 열의가 담겨 있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여섯째, 시나 소설, 수필에서 자주 보이는 수사법들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논설문은 어떤 사실이나 대상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포장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논설문 들은 딱딱하고 건조한 경향을 띠고 있다.
3. 논설문은 어떻게 써야 하나
자, 그러면 이번에는 논설문을 실제로 써 나갈 때, 나의 주장이나 의견을 어떤 짜임새로 엮어야 분명하고 뚜렷하게 전달할 수 이쓴지 알아보도록 하자. 잘 알다시피 논설문은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띠는게 일반적이다.
(1) 서론
어느 글이나 마찬가지로, 서론에서는 글을 쓰는 동기와 목적을 밝힌다. 말하자면 앞으로 내가 주장할 바(논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 명제 형식으로 나타난다. 가령, '대원군은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정치가이다'와 같은...... 이러한 명제는 논설문의 뿌리 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명제에 따라, 사람들은 '대원군은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정치가이다'라는 주장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고 '대원군은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정치가가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으니까, 그 다음에 무엇 때문에 그러한 명제를 설정하게 되었는지, 또 어떤 시각과 방식으로 그것을 풀어 나갈 것인지를 읽는 사람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2) 본론
본론은 논설문의 한복판이라 할 수 있다. 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본론에서는 서론에서 내세운 논지에 대해, 이론적인 근거와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나의 생각이나 의견에 반대 입장을 취하거나 의심을 품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내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요컨데 논증을 하는 단계이다. 논증은 아직 명백하지 않은 사실이나 어떤 문제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근거를 대어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권위있는 사람의 의견을 인용하거나,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의 의견을 비교해 보이는 것도 괜찮다. 논증은 반드시 갈등 대립을 전제로 한다. 어떤 생각이나 행동양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갈등 대립을 풀어 나가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 논증의 방법으로는 크게 귀납법과 연역법을 들 수 있다.
1) 귀납법
사람은 죽는다, 새도 죽는다, 물고기도 죽는다. 나무도 죽는다...... 구체적인(특수한)사실
사람, 새, 물고기, 나무는 모두 생물이다. ...... 공통점 그러므로 생물은 모두 죽는다. ...... 일반적인 원리
귀납법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실(특수한 사실)들을 모아 비교하고 검토한 뒤, 그 속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리(공통점)를 끌어내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구체적인 사실(논거)들이 다양하고 풍부히 제시되는 것이 좋다. 물론 하나하나 제시되는 논거들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2) 연역법
천하를 호령하는 자는 영웅이다.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다 믿고있는 일반적인 원리나 법칙을 근거로 내세워, 개별적이고 특수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대전제와 소전제 사이에 모순이 없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대전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가 되어야 하며, 소전제는 대전제와 결론을 논리적으로 이어주는 구실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결론은 대전제와 소전제를 바탕으로 해서, 합리적으로 일끌어지는 것이 옳다.
3) 결론
결론은 본론에서 전개해 온 논지를 매듭짓는 단계이다. 서론에서 제시했던 문제와 대조하여 다시 한 번 논지를 간략하게 언급한 다음, 본론에서 제시된 논거에 따라 나온 결과를 종합하고 판단하여 최선의 결과를 얻어야 한다. 결론은 되도록 간결하게 적는 것이 좋다. 결론이 너무 길어 지루함을 자아내거나 본론에서 한 말을 자꾸만 되풀이 하는 것은, 본론에서 자기 주장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이번에는 독자가 보내 온 글들 중에서 두 편을 차례로 감상하겠다.
(1) 만인의 행복과 평등한 삶의 질을 이룩하기 위해 인류는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확립했다. 이에 상반되는 '민주주의'도 역시 평등한 권리와 정의 실현을 위해 만들어 지게 되었다. 비록 정치의 수단과 방법은 서로 틀릴지라도 추구하는 목적은 같은 셈이다. 하지만 지금 이 정치 체제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강제적인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지상낙원'을 만들려했던 공산주의'는 결과적으로 목적도 채 달성하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지금은 겨우 '공산주의'의 잔재들만이 여기저기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민주주의'는 거의 같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이념으로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군림하고 있다. 우리는 이 간단한 예에서 수단과 방법이 존재하기에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수단과 방법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 수 있다. '가장 마지막에 미소짓는 자가 승자이다'라고 하지만, 그가 미소지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감히 웃지 못할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야만 했을 것이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최고의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를 훌륭하다고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필자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만큼 수단과 방법이 중요하다고 본다. 요즈음 처럼 물질이 세상을 지배하여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망각하고 있을 때에는, 오히려 목적보다는 수단과 방법이 더욱 중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 나는 목적을 이루는 데에는 완벽한 수단과 방법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성수대교 참사를 예를 들어 보면(성수대교의 참사를 예로 들어보자) 빠른 완공만을 목전에 두고서 부실 공사로 지었기 때문에 재시공 해야 했던 반면, 선진국에서는 100년 된 다리도 아직 튼튼하다고 한다.(성급한 완공만을 목전에 두고서 부실한 공사로 다리를 놓았기 때문에 그러한 참사를 겪은 데다, 그것을 헐어내고 다시 시공해야 하는 부끄러운 일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가 100년된 다리도 아직 튼튼하다고 하지 않던가. 왜 그러한 일이 생겨난 것일까. 아마도 목적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중요시 했기 때문이리라) 이런 차이점이 바로 국민 수준과 경제 향상등을 판가름 하는 것이 아닐까? 수단과 방법을 뒷전으로 한 채 결과로만(미리 설정해 놓은 결과나 목적만을 향해서) 질주한다면 결코 좋을 수 없다는 사례는(사례들이) 우리 주변에서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결과를 내는(좋은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학에 비유해 보면, 식없는 계산 같은 것이다.(그것은 수학에서 식 없는 계산하고 똑같은 것이다.) 식없는 계산은 틀리기가 쉬울뿐더러 정확한 신용도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인없는 결과가 낳은(그렇다면 좋은 수단과 방법을 무시한) 결과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참된 노력을 가진 인간성의 상실이다(참된 노력을 하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결과만을 얻기 위한 과정은(참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없으므로).
둘째, 언젠가는 피해를 입게 된다. 성수대교의 예 처럼 우리가(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직접)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이를 보아 얼마나 근거 없는 결과가 얼마나 해가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이를 두고 볼 때 근거 없는 결과가 얼마나 많은 피해가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무리 우리 인류가 화성에 탐사선을 보냈다 하더라도 발전하려는 노력이 탄탄한 힘의 원인이 되어 오늘날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다(오늘날 인류가 화성에 탐사선을 보낼 정도로 급성장 했다 할지라도, 그렇게 발전하려는 탄탄한 노력(수단과 방법)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결과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수단과 방법에 노력함에 따라 가치는 달라지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목적 달성에는 완벽한 원인이 필요하다고 본다.(생각한다.)
생각해 봅시다.
1. 논설문과 설명문의 차이점을 말해 보자.
2. 논설문의 짜임새에 대해 설명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