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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3교시 글 잘 쓰는 천재들의 거짓말은 믿지 마라 - 글은 다듬을수록 빛이난다.
1. 글을 잘쓰는 사람들도 거듭 고쳐쓴다.
한 신문의 신춘 문예에 소설이 당선된 어느 신인작가에게 기자가 물었다.
"이번에 당선된 귀하의 소설을 읽어보니까, 문장이 아주 매끄럽고 아름드울 뿐 아니라 주제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동아니 습작을 많이 해온 모양이지요?"
그런데 그 신인 작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이번에 당선된 제 소설은 난생 처음 써 본 것입니다. 애초에 소설가가 되겠다고 작정했던데 아니라, 궁한 김에 상금이나 타 먹자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일 주일 만에 갈겨쓴 다음, 쉼표하나 고치지 않고 곧바로 응모했습니다."
옛날에 시를 잘 짓는다고 소문 난 선비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벗이나 후배들에게 새로 쓴 시를 내 보이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거, 간밤에 영감이 떠올라서 잠깐 써 본건데, 한번 읽어 보네나."
그 시를 일고 난 그의 벗이나 후배들은 한결같이 감탄을 금치못했다.
"이건 사람이 쓴게 아니야, 신선이나 귀신이 쓴 것이지." 그만큼 그 선비가 골라쓴 말(시어)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정교한 눈, 또 그 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세계의 아름답고 고움은 남달랐던 것이다. 한 후배가 매우 궁금히 여기며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적절한 말들만 골라서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심사숙소하셨습니까? 아주 많은 시간동안 명상을 하셨겠지요? 도대체 몇 번이나 고쳐쓰고 다듬고 하십니까?" 그 말에 선비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당당하고 거연하게 말했다.
"천만해! 나는 시문을 지으면서 이미 쓴 것을 고쳐 쓰거나, 그 가운데서 어느 부분을 잘라 내는 등의 다듬는 이릉 ㄴ전혀 해 본 적이 없어. 나는 처음에 한번 휘갈겨 써 놓으면, 그것으로 끝이거든, 그리고는 깨끗이 잊어버리지."
"네에! 아하!"
후배는 경솔한 질문을 던졌다는 생각이 들어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얼마 후, 선비가 소변을 보기 위하여 잠시 자리를 떴다. 그 때 후배는 뜻밖에도 기막힌 것 하나를 발견하였다. 선비가 깔고 앉았던 방석의 한 귀퉁이에서 뾰조롬이 비어져 나온 희끗한 것...... 그것은 선비가 시를 쓸 때 사용하는 종이였다. 후배는 얼른 방석을 들춰 보았다. 순간 하늘의 해가 하나 더 떠오르는 것처럼 눈앞이 한층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배는 이번 에야 말로 진정 감동어린 목소리로 "아하!"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 방석 밑에는 '간밤에 잠깐 썼다'고 하며 선비가 장랑스럽게 내 버였던 시의 초고와, 그것을세번 네 번 새까맣게 고쳐 쓴 종이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를 잘 짓는다고 소문난 그 선비는 왜 그런 거짓말을 하곤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천새정을 노골적으로 자랑하고 싶어하기 떄문이다.
2. 아들딸에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
나는 고향 마을에다 서재를 새로이 마련한 뒤, 책과 살림살이들을 그리로 옮길 때에 아들딸 셋을 앞에 불러 모았다. 그들은 모두 평생동안 글을 쓰기 위해 대학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너희들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
아들딸들은 매우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이윽고 나는 책장의 맨 밑 서랍에 숨겨 놓았던 원고 뭉치와 대학 노트들을 꺼내 놓았다. 그것들은 내가 젊은 시절에 쓴 원고들이었다. 물론 대학노트들 또한 대학시절 강의 내용을 받아 적어 놓은 것들이 아니었다.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그 첫 원고(초고)를 대학 노트에다 먼저 깨알같이 썼다. 그런다음 그것을 원고지(두 번째 원고)에 옮겨쓰고, 그 원고지의 것을 또 다른 새 원고지(세번째 원고)에 고쳐 정리하고, 그것을 또다시 새 원고지(네번째 원고)에 옮겨썼다. 그것도 시원치 않으면 새까맣게 뜯어 고친 다음, 또 한번 새 원고지(다섯번째 원고)에 옮겨 적었다. 그리하여 그 다섯 번째 것을 잡지사에 넘기곤 했다. 그러니까 책상 밑에 들어있는 그 원고 뭉치들은 그러한 나의 흔적들인 셈이었다. 지금은 이미 책으로 엮어져 나와 있는 것들이지만, 몇차례나 고쳐썼던 단편 소설의 원고들, 또 중편소설이나 장편 소설의 초고를 비롯하여 두 번째 세 번째 고친 원고들...... 내가 꺼내 놓은 원고 뭉치나 대학노트들은 눌눌하게 색이 바래 있는데다 검은 곰팡이까지 슬어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난챙 처음으로 일 주일 만에 갈겨 쓴 것입니다"하고 자신의 천재성을 자랑하는 작가들이 우글거리는 이 세상에 비춰 본다면, 30년 동안 소설을 써 온 작가로서 그런 흔적들은 창피스럽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들 딸들에게 그것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이면서 말했다.
"모아라, 나는 어떤 글이든지 이렇게 최소한 네댓 번씰은 고쳐 써서 발표했더니라. 이 곰팡내 나는 원고 뭉치들은, 그러니까 좋은 쪽으로 말한다면 너희 아버지가 매우 성실한 작가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고, 나쁜쪽으로 말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우둔한 작가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
아들 딸 들은 말을 잃고 있었다.
"그 사이 내 작품들에게 아주 많은 상이 주어졌지, 나는 그것들이 모두 나의 소설들이 정말로 잘 쓰여졌기 떄문에 주어졌다기 보다는 꾸준히 노력하는 나의 작가적 태도를 가상히 여겨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들딸들은 모두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왜 내가 작가로서 창피할 수 도 있는 이 흔적들을 일찍이 없애 버리지 않고, 이렇게 너희들 앞에 내놓았는지 그 까닭을 아느냐?" 나는 아들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느라고 한참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들 눈 앞에 드러나 있는 것들은 모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즉 눈부시게 번쩍거리는 것들의 뒤쪽에는 은밀하게 숨겨진 피와 땀들이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다는 거지. 그리고 어떤 이이든 한 번 해 봤을 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서 쉬이 절망하지 말라는 것, 이 세상의 모든 천재는 반드시 성실과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3. 절망하여 글을 쓴 뒤, 희망을 가지고 고친다.
아들 딸들의 눈에 얼핏 물이 고이고 있었다.
"나는 문장 하나하나를 절망하여 쓴다. 작가는 어떤 사상(관찰할 수 있는 형체로 나타나는 사물이나 현상)을 표현하든지 가장 알맞는 낱말들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해야 하는데, 내가 끌어올 수 있는 낱말들은 겨우 이정도 뿐이로구나, 내가 표현해 낼 수 있는 주제라는 것도 기껏 이정도 뿐이던가. 고작 이만큼이 감동밖에는 줄 수가 없는 것인가. 글을 정말로 재미있고 진지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지적으로 쓸 수는 없는 걸까. 글을 끝맺고 나서도 나는 이렇게 절망한다. '아아, 내가 삶의 원리나 우주의 뜻에 대해 깨달았다고 믿었던 것도 한낱 이 정도에 불과했구나' 하고, 만년필과 원고지를 내던진 채 몇 날 며칠을 방황한다. 그러다 문득, '한번 작정하고 나선 자가 이렇게 물러서다니!'하고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앉는다. 선배들의 좋은 작품들을 구해서 일거보고, 동양과 서양의 고전들을 훑고 그것들을 내 삶 내 작품에 비춰 보고 내 갊의 의미들을 찾는다. 도를 닦듯이 말이다. 그러면서 나의 어떤 점을 어떻게 교정해야 할 것인지 골똘하게 생각한다." 나는 의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고쳐 쓰기를 시작한다. 써 두었던 것을 성난 얼굴로 냉정하게 들여다보며, 전혀 새로운 작품을 쓰듯이 밤을 새워 과감하게 고쳐 쓰는 것이다. 기왕에 한번 시작해 놓은 나의 작품이 저렇게 완성되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한 문장 한 문장씩을 고쳐 나가는 것이다. 기껏 써 놓은 어떤 대목은 과감하게 잘라내 버리고. 부족하다 싶은 이야기는 덧븥이고......" 아들딸들은 냄새 나는 원고 뭉치들을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나는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
"너희들이 내 뜻을 알아들었다면, 이것들은 이제 필요없이니 불에 태워 버려라: 그러자 크아들이 고개를 힘껏 내젓더니 결연하게 말했다.
"아버지 태우지 않겠어요. 이것들은 앞으로 제가 소중하게 보관하겠습니다." 그러자 딸이 눈시울을 붉히며 맞장구 쳤다.
"그래요, 이것들은 정말 귀한 것들이에요."
4. 도둑질하듯이 공부하기,
도둑질하듯이 글 다듬기 학창 시절, 나에게는 언제나 함께 다니는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사람들이 모두 천재라 일컬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나하고 늘 붙어 다니며 놀 것 다 놀았는데도, 시험만 치면 1등을 한다는 것이었다. 쉬는 시간에라도 잠시 공부를 하기는커녕 "시험, 그것 조금 잘 보면 뭐하냐?" 하면서 짖궃게 장난만 치기가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그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 친구와 나느 저녁 내내 즐겁게 놀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 두 시쯤이었을까? 부시럭부시럭하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떠 보니, 그 친구가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 친구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도둑처럼 남몰래 공부를 해 왔던 것이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난 뒤에도 그 친구는 쿨쿨 자고 있었다. 학교에 가자고 흔들어 깨우자, "야, 나 30분만 더 잘테니까 깨우지 말아라"하고 드르렁드르렁 코 까지 곯아 대었다.
글을 고치고 다듬는 일도 마찬가지다. 주제를 염두에 둔 채 구성을 하고, 또 좋은 표현들을 동원하여 썼다 해도 그 글을 처름 그대로 제출하지는 말라, 한 번 고치고 또 한번 고치고 또다시 고치고...... 도둑질을 하듯이 은밀하고 세심하게 글을 다듬어야 한다. 의미가 불문명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낱말을 쓰지는 않았는지, 각 문장의 호응 관계ㄹ는 올바른지, 시간은 맞게 표현되어 있는지, 글 전체가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어 있는지...... 그러고는 시치미를 뚝 뗀 채, "나는 이 글을 대번에 쓴 거야, 난 한 번 쓴것ㅇ르 절대로 다시 들여다 보지 않거든. 한 번 쓰기도 지긋지긋한데 왜 두 번 세 번 들여다 보니?"하고 당당하고 거연하게 말하라. 당당하고 거연한 이 말은 여러분들의 천재성을 한 껏 뽐내줄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들 자신뿐 아니라 여러분들이 쓴 글을 위해서도 매우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글을 쓴 사람의 천재성은 그 사람의 글을 훨씬 신비롭고 지성적이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니까.
5. 보이는 계단과 보이지 않는 계단
그러면 이쯤에서 독자의 글 한 편을 감상해 보는게 어떨까?
'이크!'
아픈 것은 둘쨰치고 얼굴이 달아 올랐다. 층층의 모서리들이 예리한 계단에서 뛰다가 오늘도 여지없이 창피한 모습을 보이고 만 것이다. 성미가 급한 탓일까. 나는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이렇게 발으 헛디디는 경우가 많다. 교복 치마를 입고서 학교 계단을 두세칸씩 오르다가 넘어진 기억도 난다. 다리가 길지 않으면서 매번 무리를 하는 것이다. 쯧쯧 하고 혀를 차는 청소부 아주머니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얼른 내려와 버렷다. 다친곳은 벌겋게 부어 올랐다. 오래지 않아 퍼렇게 피멍이 들 터이다. 벌써 몇 번째인가, 난 매사에 욕심이 많고, 자꾸 무리를 하는 편이다. 항상 숨이 차도록 계단을 여러 칸씩 오르는 것도 그렇지만, 무슨 계획이나 목표를 거창하게 세우는 것도 그러하다. 성적을 올리겠다.고 마음먹어도 1점 2점씩 꾸준히 올리겠다는 것이 아니가, 더 큰 점수에 욕심을 냈다가 실패하고, 그러한 나에 대하여 실망한 적도 많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무리한 목표 체중을 설정해 놓고 영양 실조가 되도록 먹지 않아 보기도 하였으며, 만일 그 방학 계획표를 잘만 지켰다면 정말 완벽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실은 다 지키지 못하고 말 것이 뻔한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가 낱패를 당하곤 했었다. 매번 욕심이 과하게 작용하곤 한 것이었다. 좀더 빨리 계단을 여러칸씩 오르다가 넘어진 것처럼 무리한 욕심들은 결국 나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곤 했다. 우리의 이런 생활이 다 계단이 아닐까. 한 계단씩을 천천히 착실하게 올라가는 과정보다는 재빨리 다 오른 후의 모습에만 신경을 쓰게 되면 오히려 남는 것이 없게 된다고 가르쳐 주는 계단. 차근차근 해대는 모든 과정은 참으로 소중하다. 모두들 다 해낸 다음에 느껴지는 뿌듯함 또한 계단 오르기와 같은 것이다. 복권 당첨으로 번 돈은 마구 쓰게 되지만, 열심히 한 푼 한 푼 번 돈은 더 소중하게 느껴져 절약하는 것처럼. 에스컬레이터를 놔 두고 계단을 뛰어오르는 나를 보며 친구가 웃긴다고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왜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지 않느냐고, 그렇지만 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차근차근 오르는 것은 그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힘들이지 않고 오르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다리를 무력화 시키지 않게 되고, 심장과 허파를 강하게 하고, 해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하고 우리 집 위층에 사는 꼬마가 '하낫, 둘, 셋, 넷......"하고 헤아리며 오르곤 하는 것 처럼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계단을 하나씩 밟아본다. 내 인생도 이렇게 차근차근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이 글의 지은이는 실제로 우리가 밟고 다니는 계단과 우리 삶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계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주 조리있게 풀어내고 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은 군데군데 보이는 어색한 표현들과, 문자의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 더러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글을 다 쓴 다음 신중하게 훑어보며 여러 차례 고치고 다듬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글쓴이는 글을 쓸 때 한 번 끈 글을 몇차례 되풀이 읽어 가며 고치고 또 고친 다음 새 원고지에 깨끗이 옮겨 쓰는 습성을 들이는 것이 좋겠다.
이번에는 아주 고급한 말들을 구사하고 있는 글 한 편을 살펴보도록 하자. 고급한 말들은 글을 지성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나타내려는 대상이나 주제가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의 지은이는 글 짜는 솜씨와 감수성이 뛰어나서 문장에 힘이 넘쳐나며, 표현 방법 또한 매우 우수해 보인다.
힘차게 걸었다.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심히 걸었다. 이 끝없는 암흑과 등골이 오싹해 지는 묘한 불안감에 점차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만다. 이리 모섭고 캄캄한 것은 블랙 홀...... 그것인가? 아니다. 발 밑에 짚이는 이 차갑고 딱딱한 것은, 두려움에 신경이 무뎌진 내 발바닥을 자꾸만 때리고 있다. 이건 계단인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절망, 두려움, 혼란 이라는 푯말을 달고 무겁게 내딛는다. 언제쯤 이것을 떼어 낼 것인가. 이 검은 무한대에서 조그만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아주 조그마하고 동그란 것이 계속 내 눈을 괴롭힌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 빛은 내 몸으 내려와 발 밑의 계단을 지나쳤다. 순간 나는 놀랐다. 그 조금만 빛을 내비친 것은 실로 엄청나게 많은 계단인 것이다. 그 빛이 힘을 다하지 못해 보여주지 못한 곳에는 내가 그렇게도 두려워 하던 '암흑'이 존재하고 있었다. 저절로 힘이 솟는다. 그 암흑에서 멀어지기 위해, 그리고 점점 커져만 가는 빛을 따라 숨가쁘게 계단을 올랐다. 조그맣게 들렸던 숨소리가 뭉치고 뭉쳐져 아주 거칠어졌다. 끝은 어딜까? 작은 희망의 빛에 너무 큰 기대를 해 버린 나는, 앞서 걸어왔던 암흑의 십분의 일도 안되어 지치고 싫증을 내고 있었다. 홧김에 커다란 굉음을 내며 발바닥을 힘차게 내리쳤다. 그 소리가 울려가고 또 울려가 아주 들리지 않을 때, 전면이 하얀 그곳을 마주쳤다. 하얗기만 했던 그곳에 점점 파랗고 붉고 노란 것이 보인다. 빛에 익숙해 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까맣고 하얀 것이 몇번 더 지나가더니 파랗고 붉고 노란 그것이 더 선명하게 내 앞에 있었다. 이 곳은 옥상인 것이다. 천천히 걸었다 힘차게 걸었다 배까지 오는 보호막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떨군다. 11자를 엇갈리는 방향으로 그래는 차들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다양한 색채로 돌아 다닌다. 그리고 체크 무늬의 빌딩들이 서 있다. 사방에...... 내 밑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내 앞에는 멀찍이 우두커니 서서 나를 응시하는 고령의 산과 하늘의 반, 내 위에는 눈을 뜨지 못할 찬란함을 발하는 황색의 태양과 그 빛에 반사된 꺠끗한 구름, 그리고 코발트 빛의 높고 푸른 무한대인 하.늘.이 있다. 신선한 바람이 나부끼는 고층 빌딩의 옥상에서 나는 절망에서 희망, 씨앗에서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맛본다. 계단이라는 너무도 이중적인 냄새를 풍기는 중매쟁이를 통해서.......
생각해 봅시다
1. 이 세상에는 천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은 무수히 만날 수 있지만, 사실 훌륭한 글을 단박에 써 낼 수 있는 순도 100%의 천재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밝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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