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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9교시 글의 따뜻한 체온과 향기와 멋을 알아라
- 글속에는 글쓴이의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
1. 그림자 없는 사람
요즘 시중에는 귀신 이야기 묶음이 유행하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허무 맹랑하고 우스꽝스러운 것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로 허랑하지 않는 귀신 이야기 하나를 여러분들에게만 살짝 귀띔해 주려 한다.
옛날 옛적에 한 귀신이 있었다. 그 귀신은 살았을 적에 공부를 너무 게으르게 한 것이 한스러워서, 죽은 뒤에도 사람 노릇을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바햐흐로 약관의 나이(스무살)에 접어든 친구들은 그 귀신한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왜냐하면, 그 귀신은 그 곳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간 다음에 죽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그 친구들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 귀신은 예전에 그 곳에서 살 때, 기생집을 들락거리는가 하면 투전판에서 노름을 하고, 또 술에 취하여 싸움질을 하는 등 아주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귀신은 다른 친구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뒤에도 혼자 남아 낮은 목소리로 글을 읽곤 했다. 그 귀신의 어린 시절의 이름은 김창호였다.
"야, 그런데 저 김공이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나보다. 왜 저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거야?" 하고 과거 시험을 앞둔 친구들은 모두 혀를 내둘럿다. 이제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몰두하는 귀신 김창호를 두고, 백발 백중 합격을 하게 될 것이라고들 수근거렸다. 그를 시기 질투하는 친구들도 하나 둘 생겨났다. 어릴적에 함께 어울려 다니며 쌀을 퍼다가 엿이나 떡을 사먹기도 하고, 훈장 선생 몰래 기생집에 드나들며 술을 마시기도 했던 친구들은 귀신 김창호를 밖으로 끌어내려고 유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귀신 김창호는 모든 유혹을 의젓하게 뿌리치고 오직 글읽기에만 전념하였다. 그러한 귀신 김창호를 의심하는 친구들은 하나도 없었다. 오직 훈장선생과 여덟 살 난 아이 하나만이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 여덟 살 난 영특한 그 아이는 귀신 김창호에게서 이상한점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햇빛 아래 서 있는데도 그에게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밤, 귀신 김창호는 자기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하며 서원을 나섰다. 영특한 그 아이는 귀신 김창호의 뒤를 몰래 따라가 보았다. 귀신 김창호는 들을 건너고 산을 넘고 소나무 숲이 칙칙한 산 속으로 한없이 들어가더니, 이윽고 자기의 무덤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이튿날 한낮쯤에 그 영특한 아이는 훈장선생에게 뵙기를 청했다. "선생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들은 모두 그림자가 있게 마련인데, 요즘 저는 그림자가 없는 사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훈장 선생은 재빨리 그 영특한 아이의 옆으로 다가앉았다. 그리고 그 아이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말을 중단하게 하였다. 그 때 귀신 김창호는 출입문 밖의 뒷마루에서 낮은 소리로 글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훈장선생과 영특한 아이가 주고받는 말을 엿들은 귀신 김창호는, 그날 황혼 무렵이 되자 배가 살살 아프아면서 밖으로 나갔다. 이튿날부터 귀신 김창호는 서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기의 정체가 들통났음을 알고 무덤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어른들러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글 속에는 그 사람의 진실이 들어있게 마련이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글을 그럴듯하게 거짓으로 꾸며 쓰더라도 진실하지 못함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햇빛 아래 서면 반드시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체구가 작으면 작은 그림자가 생기고 크면 큰 그림자가 생긴다. 제아무리 맞춤법 하나 틀린 것 없이 문장을 매끄럽게 잘 쓰고, 또 현란한 수사법을 동원하여 이런저런 기교를 부렸을지라도, 글쓴이의 진실한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글은 읽는이를 감동시킬 수가 없다. 사람의 진실함은 솔직 담백함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다. 그 진실은 남들에게 보이기위한 솔직함이 아니고, 글쓴이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이다. 글쓴이의 마음이 온전히 솔직해 지려면, 먼저 기막히게 좋은 글을 써야 겠다는 욕심부터 떨쳐 버려야 한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을 부리면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욕심은 자기 자신을 억누르게 되고, 그것은 중압감이 되어 글이 나오는 생각의 구멍을 막아 버린다.
글은 살아 있는 것이다. 글에도 핏줄이 있어서 피가 돈다. 숨을 쉰다. 그것들은 글쓴이의 솔직함과 진실을 먹고 산다고 할 수 있다. 아까의 귀신 이야기에서, 김창호라는 귀신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진실이 없다는 것이고, 생명이 없다는 것이며, 숨이나피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사람의 냄새와 글의 향기
사람에게 체온과 냄새와 분위기가 있듯이 글에도 그러한 것들이 있다.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의 글에서는 인정머리 없음이 나타나고, 잘디잔 정이 깊은 사람의 글에서는 그 잔정이 함빡 담겨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의 글을 읽어보고, 어떤 정이 느껴지는 지 살펴보자.
어머니는 팥죽가게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팥죽 솥뚜껑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솜옷을 두툼하게 있은 팥죽장수 아주머니가 팥죽을 퍼 줄 채비를 하면서 어머니와 나를 번갈아 살폈다.
"팥죽 드릴까요?"
"한그릇만 주세요"
팥죽 장수는 한 그릇만 달라고 하는 어머니의 말에 실망을 한 채 팥죽 한 사발을 탁자에 놓아 주었다. 그것은 나 혼자 먹기에도 양이 적은 것이었다. 팥죽 장수는 숟가락 한 개와 입가심을 할 수 있는 싱건지국(김장할 때 좀 싱겁게 담근 무김치로 만든 국) 한 종지를 내 주었다.
"배고프겠다. 얼른 먹어라, 따끈한 이놈 먹으면 얼었던 속이 풀릴게다."
나는 어머니의 뱃속이 비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침 일찍이 바쁘게 시장에 나오느라고 아침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나는 밥 생각이 없다. 엊저녁에 먹은 것이 체했는지 어쨌는지 ...... 싱건지 국이나 한 모금 마실란다" 하면서 역시 트림을 해 보였다. 팥죽장수 아주머니에게 숟가락 한 개를 더 달라고 했고, 그것으로 싱건지 국물을 한 번 떠 마시며,"아따, 시원하다"하고 말했다. 어머니에게는 김 판 돈이 있었지만, 그것은 내게 줄 등록금이 빠듯 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그 돈을 축내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아파 팥죽을 먹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싱건지 국물을 마시는 것만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순간 어머니가 나를 꾸짖었다.
"너는 먹을 것을 보면 서둘러 달게 좀 먹어봐라."
어머니는 어느 사이엔지 싱건지국 한 종지를 다 마셔 버렸다. 내가 입가심 할 것이 없어진 것이었다. 어머니는 팥죽 장수에게서 싱건지국 한 종지를 더 얻어내기 위하여 비굴한 목소리로 한 사발을 더 달라고 아쉬운 말을 했다. 팥죽 장수의 눈꼬리가 매섭게 찢어졌다.
"날씨까지 추운데 웬걸 그렇게 마시는고?"
하고 강파르게 말을 하더니, 놋대접으로 싱건지국을 퍼다가 어머니 앞에 놓아 주었고, 어머니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그 날 팥죽 맛을 알 수 없었다. 뽀얀 눈보라 속에서 어머니와 나는 헤어졌다. 뜨거운 팥죽 한 사발을 먹은 나는 버스에 올랐고, 팥죽 장수의 눈치 어린 차가운 싱건지 국물만 마신 어머니는 눈보라 속을 뚫고 신작로를 걸어갔다. 45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는 내 의식 한 자락 속에서 그렇게 그 눈보라 속을 뚫고 걸어가고 있었다. -한승원의 <키작은 인간의 마을>중에서
이 글 속에 나오는 어머니의 사랑은 매우 짙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값진 것은 글쓴이의 솔직성이다. 글쓴이는 자기가 가난하게 살았던 지난날과, 자기 어머니가 배고픔을 싱건지국으로 달래다가 수모를 당한 것을 숨김없이 진술하고 있다. 솔직성을 발휘하려면 용감하지 않으면 안된다. 솔직성은 읽는 이에게 가슴아픔을 안겨 주어 진한 여운을 남기게 된다. 자기가 경험한 어떤 일을 수치스럽게 여긴 나머지, 그것을 그대로 진술하지 않는 것이 가식이고 가면이다. 가식이 어떻게 읽는 이를 감동시키겠는가? 그러면 가슴 찡한 감동을 자아내는 글을 한편 더 감상해 보자.
예전 상하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돈바꾸는집)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1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는 "하오(좋소)"하고 내어 준다. 그는 '하오'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속에 손을 널고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 놓으며,"이것이 정말 은으로 만든 돈이오니까?"하고 묻는다. 전장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돈을 어디서 훔쳤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단 말이냐?" "누가 그렇게 큰 돈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전장 사람은 웃으면서 "하오"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은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 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시오, 뺏어 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1원짜리를 줍니까? 각전(예전에 쓰던, 1전이나 10전짜리의 잔돈) 한닢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닢씩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겨우하자 겨우 이 귀한 은돈 한 닢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얼 하려고?"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피천득의 <은전한닢>
3. 좋은 글을 쓰려면 자신의 경험부터 이야기 하라.
모든 글이 다 그렇지만 수필류의 글을 쓸 때에는 먼저 자기가 경험한 일화 하나를 이야기 하고, 그것과 관련된 진리를 말하면 쉽게 감동적인 글을 써 낼 수 있다. 일화는 자기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이야기,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형제들의 이야기를 끌어오는 것이 가장 좋다. 자기와 가장 가까운 것일수록 이야기는 진솔해 지게 마련이다. 글은 남의 목소리나 창법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목소리와 자기의 방식으로 부른 자기의 노래여야 한다. 그러면 다음에 인용한 글을 읽고, 글쓴이의 진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 다음에는 그 진실을 여러분들의 글쓰기에 적용하여 좋은글을 써 보기 바란다.
군 복무 중에 휴가 나온 나는 부대로 돌아가기 위하여 어머니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후배 인이가 나를 회진 포구까지 배웅해 주려고 왔다. 그가 가방을 들고 앞장섰다. 어머니는 우리들을 뒤따라 나왔다. 집 모퉁이 수숫대 울타리 앞에서 헤어졌다. 우리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재 고개를 올라갔다. 숨가쁘게 삼십분쯤은 걸어야 다 오를 수 있는 가파른 고개였다. 한재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후배 인이가 문득 발을 멈추더니, "아이고, 형님, 뒤좀 돌아보아 드리시오"하고 꾸짖듯이 말했다. 한재 아래쪽 소나무 숲 사이로 우리 집 모퉁이가 보였다. 수숫대 울타리 앞에 개미만하게 어머니의 모습이 박혀 있었다. 우리가 이야기에 취하여 올라오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딴 데 눈길을 보내지 않고 아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을 어머니 서른 다섯 해가 지난 지금도 내 가슴속에는 그 어머니가 그렇게 고향 마을 집 모퉁이의 그 자리에 서 계신다. 아, 어머니, 우리 어머니.- 한승원의 <키작은 인간의 마을> 중에서
생각해 봅시다.
1. 누구든지 햇볕아래 서면 체구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대로 그림자가 생긴다. 이말은 곧 진실은 진실대로, 거짓은 거짓대로 그 본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글쓰기에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
2. 모든 글이 읽는 이에게 감동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읽는이에게 가슴찡한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글쓴이가 어떤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 설명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