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나만의 글쓰기 비법
3. 살아 있는 글
우리들은 각기 얼굴이 다르고, 혈액형도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다. 눈과 귀의 모양새와 코의 생김새와 손바닥에 있는 손금도 다르다.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입맛도 다르고, 버릇도 다르다. 그것은 성질이 각기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글 또한 다르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어떤 글이 생명이 있는 글이고,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일까?
(5) 사실 나는 우리 나라에 대해 늘 부정적인 시각만 가지고 있었다. 세계 지도에서 겨울 찾을 수 있을만큼 작은 영토, 30여 년 간의 식민지였던 역사, 선진국 대열에도 끼지 못하고, 미국의 놀잇감 같은 줏대없는 나라......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나의 시각은 이렇게 부정적이었다. 그러던 중에 신선한 충격을 준 글을 어느 신문에서 읽게 되었다.
(6) 저는 우리 나라의 제일 큰 문제가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외할아버지 때문입니다. 가끔씩 명절 때 찾아뵈면 낮에는 안그러시다가 밤이 되면, "아버지, 어머니"하며 우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그것을 보아 왔으니, 이젠 참 불쌍하게 보입니다.할아버지 께서는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으시겠어요, 할아버지께서는 6.25전쟁, 그 난리통에 북에서 혼자 남으로 내려 오셔서 이 곳에서 지금의 외할머니와 결혼을 하셨다고 합니다.
위에 보기로 든 (5)와 (6)의 글은, 위의 (3)과 (4)처럼 '우리 나라'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이 써 보낸 글의 첫 대목들이다. 하지만 앞의 글과는 달리, (5)와 (6)은 그 글을 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글을 쓴 사람의 숨결이 들어있고, 글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아픔이 배어 있다.. 죽어가는 글이 아니고 살아있는 글이다. 그래서 읽는 이에세 진한 감동돠 여운을 남겨 준다. (5)와 (6)의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이 왜 그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자연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든지 지금 자기가 살고있는 삶보다 훨씬 나은 삶을 건설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글도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긍정적으로 쓰지 않으면 안된다. 글을 긍정적으로 쓴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낙관적으로 본다는 걸 의미한다. 이처럼 글을 쓸 때는 이 세상을 살가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보고,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되도록 발전시켜야 한다는 쪽으로 논리를 전개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 하다.
(7) 곧 21세기 이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우리 젊은이, 소위 신세대 들이다. 젊은이 들이여, 21세기를 위하여 더욱 노력하자.
이것은 (5)의 글의 결론이다. 이 글을 보면 앞에서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보기로 든 (5)와 (6)의 글은 독자들이 보내 온 것들 가운데서 개성이 가장 뚜렷한 글들이다. 그렇지만 문장이 아주 잘 쓰여진 글은 아니다. 그 문장 쓰기에 대한 것은 다음 장에서 이야기 하기로 하겠다. 어떤 것이 좋은 문장인지, 그러한 문장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자, 그러면 끝으로 자신만이 쓸 수 있는 , 즉 그 나름의 독특함을 잘 살려내고 있는 글 한편을 감상해 보고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우리 동네는 장터 바로 윗동네였다. 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정도였지만, 나는 우리집 앞에 장이 서지 않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장터에 사는 아이들을 가장 부러워했고, 그 아이들과 사귀려고 애를 썼다. 장터는 이웃 마을에 비해 크지는 않았지만 포목전, 잡화전, 고무신 가게, 주막, 석유집, 양조장, 푸줏간이 고루 있었고, 무싯날에도 밤늦도록 전짓불이 휘황했다. 산골이지만 바로 우리 마을 뒷산에 일찍 광산이 개발되어 있어, 이미 오래전에 전기도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밤중에 담배 심부름을 시켜도 싫다 하지 않았다. 담뱃집 옆집이 술집이었는데, 이곳에서는 광부들의 구성진 유행가 소리가 밤늦도록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싸움판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잠들었던 내 동무애들까지 깨어 일어나 눈을 비비며 구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학교도 논길로 가는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장터로 빙 돌아가는 논길로 다녔다. 장터의 가겟집이며 술집들은 언제보아도 새롭고 신기했기 때문이다. 또 그 집들은 종종 주인이 바뀌기도 했는데, 새 주인에 대한 여러 소문은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언제나 충분한 것들이었다. 장날이면 나는 전날 저녁부터 들떳다. 길에 나가 용당재를 넘어서 오는 장 트럭들과 장꾼들의 자전거를 세었는데, 전장(지난번장)에 비해 늘었으면 신이 났지만, 줄었으면 크게 실망릉 했다. 어쩌다 구경 가 본 이웃 장에 비해 우리 고장 장의 규모가 작은 것이 도무지 속이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장날에는 다른 날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러나 장은 언제나 아직 서기 전이었고, 장바닥은 말끔히 쓸렸는데도 장꾼들은 공연히 해장군집에서 늑장을 부리곤 했다. 학교에 가기 전에 장이 서는 것을 보려는 꿈은 허사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러니 교실에 들어가 앉아도 좀이 쑤셔 제대로 공부가 될 리 없었다. 장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나 하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점심시간만 되면 우리는 떼를 지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바햐흐로 장이 어우러져 있는 참이었다. 싸구려를 외치는 소리가 높고 여기저기서 술 취한 장꾼들의 싸움질도 곧잘 벌어졌다. 우리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수는 책장수였다. 그는 파수거리(장날 임시로 물건을 벌여놓고 파는 거리)로 와서 학교앞 종대 옆에 책전을 벌였는데, 이야기책과유행가책 사이에 몇권씩 아이들 책이 끼여 있고는 했다. 대개 아이들은 사지도 않으면서 뒤적거리기만 했다. 그래도 마음씨 착한 책장수는 탓 한번 하지 않았다. 책을 사는 아이라도 있으면 그 아이는 그 날의 영웅이 되는 편이었는데, 내가 그 영웅이 되는 날이 가장 많았다. 나는 어려서만 장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커서도 장을 좋아했으며, 장날이면 들떠서 아무일도 하지 못했다. 장날은 꽤 오랫동안 내게는 유일한 즐거움이요 위안이었던 셈이다. - 신경림의 (길, 장터, 강) 중에서
생각해 봅시다.
1. "엿장수 이야기'에서 장사 비결을 배우려고 찾아온 청년이 끝끝내 엿을 팔지 못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을 글쓰기에 빗대어 설명해 보자.
2. 생명이 없는 글은 아무리 온갖 수식어를 갖다가 치장해도 읽는 이에게 감동을 안겨 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생명이 없는 글을 쓰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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