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끼전 (2/3)
왕후가 공주의 괴로움을 보다 못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가야. 너의 괴로움은 곧 대왕마마의 괴로움이고 나의 괴로움이란다. 이제 그 괴로움을 거두고 다시 예전처럼 명랑하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해라."
공주는 왕후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이며 아뢰었다.
"어마마마, 죄스러움에 몸둘바를 알지 못하겠나이다. 하오나 한번 마음먹은 저의 마음은 스스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사옵니다. 태수의 아들 한뫼도령이 석방되어 소녀의 배필이 될 때까지는 소녀의 마음과 몸은 회복될 것 같지 않사옵니다."
공주의 처절한 말을 듣고 왕후는 나직하게 말햇다.
"공주야, 네 심정이야 어찌 내가 모르겠느냐? 게다가 아바마마께서도 짐작하고 계시단다. 허나 나라의 법에는 상감도 복종해야될 엄격한 것이 있으니 법앞에서는 너의 괴로움도 참는 수밖에 달리 구할 길이 없지 않겠느냐?"
왕후는 잠시 얘기를 멈추고 공주의 눈치를 살피는 듯 하더니 계속해서 말하였다.
"이제 그 도령은 잊고 아바마마가 정하신 대보 장군의 아드님과 혼인하게 되면 그동안 너의 괴로움은 한낱 지나간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왕후의 말을 듣고 공주는 확고하게 말하였다.
"만일 이 다음에 설사 태수의 아드님을 제손으로 내쫓을 만큼 싫어지는 한이 있다 하여도 지금은 그 도령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수 없나이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말씀은 말아 주십시오."
왕후는 공주의 단호한 말을 듣고 답답하고 긴 한숨이 새어 나왓다. 아들이라고는 없이 귀하게 애지중이 키워온 딸마저 잃어버리게 되지난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엇다. 그날 밤 침전에 든 대왕에게 왕후는 절실한 음성으로 조영히 말하였다.
"분명히 공주가 큰 병이 들었사옵니다. 자칫 하다가는 그애까지 잃게 될지 모르니 이 왕실의 대가 끊기게 될 염려가 없지 않사옵니다. 그 애를 구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태수의 아들을 내놓으라 어명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대왕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물론 공주의 병든 몸을 보기 민망해서 눈시울이 더워지는 것 같은 표정도 있었으나, 태수의 아들 한뫼도령에 대한 더욱 커지는 증오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엄숙한 목소리로 왕은 말하였다.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내가 더하오. 하나 태수의 아들을 부마로 삼을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그 첫째의 이유는 이미 내입으로 정해 놓은 혼처를 두번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요, 또 그뚤재 이유는 미천한 태수의 아들을 궁중으로 들여놓을 도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요. 이제 공주 얘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도록 하오." 왕후는 급하게 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실 예정이시옵니까?" 왕은 가만히 눈을 감으며 천천히 말하였다. "태수의 아들을 옥에서 내어 공주를 농락한 죄를 엄하게 다스려야 하오. 몸의 털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뽑아야 하고 다리를 묶어 죽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소." 왕후는 다급해져서 말하였다. "그 말씀은 지당하오나 그렇게 하시면 공주는 필시 자결을 하고 말것입니다. 바위에 머리를 부딪히고 목숨을 가볍게 버린뒤에 태수의 아들의 영혼 곁으로 갈 것이 분명하옵니다. 대왕마마, 부디 공주에게 그런 참혹한 상황이 닥치지 않도록 너그러움을 베푸시옵소서.:"
말을 끝내고 왕후는 엎드리어 체통도 잊고 흐느겨 울었다. 대왕은 왕후의 동정을 한참이나 살펴보고 있었다. 왕은 마음이 복잡해져서 심란하였다. 그것은 왕후의 말대로 태수의 아들을 죽이는 날이면 분명 공주가 자결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끝에 왕은 희한한 묘안을 생각하고 왕후에게 말하였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왕후는 의외의 말에 선뜻 물어보았다. "무슨 좋은 방도가 있습니가?" 왕은 나직히 말하였다. "태수의 아들과 대보의 아들을 힘과 지혜겨루기를 하게 한단말이오. 이러한 싸움에서 어쩔수 없이 서로 목숨을 내걸고 싸우게 되는 관계로 태수의 아들은 대보의 아들에게 틀림없이 죽을 것이오. 그럼 공주도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니오?" 왕후 는 의아해 하며 다시 물어 보았다. "그러다가 만일 태수의 아들이 이기게 된다면 어찌하시렵니까?" 왕은 왕후의 말에 미소하며 덤더히 말하였다. "대보의 아들을 이긴다고? 그런 일을 없을 거요. 대보의 아륻은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장사요. 과히 염려 마시오" 그 말에 왕후는 마음이 크게 놓여 말하였다. "필시 묘한 방법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럼 언제쯤 그 일을 시행 하시게 됩니까?" 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유유히 말하였다. "오래 끌수록 왕실의 체면은 사나와지고 민심 또한 불안할 뿐 이오. 그러니 당장 내일이라도 즉시 겨루기를 연다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 좋을줄로 아오."
과연 이튿날 궁중에서 대보의 아들 운무 장군과 태수의 아들 한뫼도령이 힘과 지혜를 겨루게 된다고 나라안에 포고가 내렸다. 별로 자주 못보던 일이라 큰 구경거리가 났다고 백성들은 모두들 반가운 얼굴들을 하였다. 한편 대보의 아들 운무장군은 그렇지 않아도 한뫼도령이 괘심하여 어떻게 하든지 가만히 두지 않으려고 벼르던 때였다. 운무장군은 싸움이 붙게 되면 깃을 뽑는다거나 잔등을 쪼아 아픔을 준다거나 할것도 없이 단번에 승무를 내어 죽이든지 두 눈을 파내어 평생 고칠수 없는 병신을 만들어 주리라 결심했다. 각지에서 벌어진 수많은 무술 겨루기에서 단한번도 져 본일이 없는 운무 장군은 하잘것없는 일개 태수의 아들쯤은 상대하기 우스운 존재라고 막연히 짐작하였다. 이때, 공주와 한뫼도령의 경우는 운무 장군의 형편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났다. 힘센 운무 장군을 당해낼 힘이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싸움에 나가는 일이 한뫼도령으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노릇임을 공주는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바에야 그렇게 해서라도 영광스럽게 죽게 하느냐 편을 고를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생각하였다. 한뫼도령도 마찬가지 생각이엇다. 운무 장군이라 하면 이나라에 으뜸가는 장사요, 그의 힘을 당할 자는 하나도 없음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러니 한뫼도령은 도저히 운무 장군을 당할 힘이 없었다. 다만 이길 길이 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어떤 꾀를 쓰거나 하늘이 내려주시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뫼도령은 싸울 날이 올때까지 운무 장군을 물리칠 꾀만을 생각했다. 허나 묘안은 떠오르지 않아 단지 아까운 시간만을 공연히 소비하고 말았다. 드디어 겨루기로 한 날이 왔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고 늦은 봄의 날씨에 바람조차 없었다. 궁궐 뒤, 전날에 한뫼도령과 공주가 처음 만났던 잔디밭이 싸움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 둘레에 둥그렇게 전국에서 모인 구경꾼들이 자리잡고 있엇다. 잔디 한 구석에 대왕과 왕후 그옆에는 공주가 불안스럽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좌우로 대신, 대작, 원로들이 빙 둘러 서잇었으며 또 그옆으로는 직위의 차례대로 수많은 고관들이 늘어서 있엇다. 대왕의 앞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운무 장관과 한뫼도령이 나란히 자리잡고 앉아 있엇다. 운무 장군은 발톱과 주둥이를 날카롭게 갈아 놓고 목덜미와 등어리에 대보 장군의 아들이라는 표식이 늠름한 은행잎 관으로 얹혀 있었다. 그러나 어제 저녁, 비로소 풀려난 한죄도령은 옥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여 얼굴은 창백하고 핏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단지 등어리와 목에 공주가 밤새워 짠 청올치 갑옷이 두둠히 입혀져 있을 뿐 신분을 펴시하는 관조차 얹혀져 있지 않앗다. 운무 장군의 늠름한 체구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고 빈약한 한뫼도령의 모습이엇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행사를 맡은 전례대신이 육중한 걸음으로 걸어나와 왕과 관랍자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오늘의 싸움 진행 규정ㅇ르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우선 제일 먼저 신호가 나면 두 젊은이는 양편에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저 산꼭대기의 높이에 오를 때쯤 또 다시 신호가 보이게 되면 서로 힘을 겨루도록 하시오. 어떠한 방도로 어떻게 싸우든지 상관없습니다. 단 싸움은 중단되거나 쉬는 일이 없으며 승패가 날 때까지 계속 됩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힘에 겨워서 항복하게 되거나 해가 저물어서 싸움이 불가능하게 되거나 또는 대왕전하의 특별한 분부가 계실때에 한해서는 싸움이 중지 되거나 끝맺게 됩니다."
전례대신은 군중에게 설명을 끝내고 나서 두 용사에게 말하였다.
"지금 말한 것은 신성하며 엄숙한 규칙이다. 두 용사는 이 규정을 충분히 알도록 하고 절대 복종을 해야한다." 운무 장군이 대답했다. "네이!" 씩씩한 운무 장군의 대답에 이어 한뫼도령은 가볍게 대답하엿다. "알겟습니다."
전례대신의 지시로 두 용사는 대왕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잔디 밭 양편으로 가서 자리잡고 있다가 깃대를 높이 올려서 신호를 하자 둘이 똑같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갔다. 두 용사는 날개를 퍼덕이며 올라가 산꼭대기 높이쯤에 이르자 전례대신은 또다시 신호를 보냈다. 이제 어느 한쪽이고 죽어야 끝나게 될 숨막힌 처절한 싸움이 시작될 순간이다. 드디어 두 용사는 잔디밭 한 가운데에서 서로 마주쳤다. 서로 몇번 쪼고는 물러서고, 또 쪼인 뒤에 달려들고는 하다가 마침내 운무 장군이 맹렬한 기세로 한뫼도령을 향해 달려 들었다. 한뫼도령은 급히 몸을 피하기는 했지만 워낙 빨리 달려드는 운무 장군의 주둥이를 피할 겨를이 없엇다. 하마터면 목줄을 물릴 뻔 하였으나 겨우 몸을 피하고 나서 보니 목털이 수없이 뜯겨 있엇다. 한뫼도령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맹렬히 달려들었으나 겨우 그의 날개를 한두 개를 뽑았을뿐, 운무 장군도 조금도 끄덕하지 않앗다. 운무 장군은 또다시 한뫼도령을 심하게 공격하엿다. 이번에는 한뫼도령의 머리가 억세게 물어뜯겨 대뜸 붉은 핏줄이 하늘로 치솟았다. 기어이 횐뫼도령의 목숨은 불과 몇분을 더 견딜수 었을지 의문이었다. 한뫼도령의 머리에서 피까지 심하게 흐르는 것을 보자 공주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외쳤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왕은 공주닁 외치는 소리에 놀라서 말하였다. "무슨일이냐!" 공주는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결국은 말하고 말았다. "제발 싸움은 중지시켜 주십시오. 이제 무슨 말씀이든지 듣자올 터이니 어서 속히 영을 내리시어 싸움을 중지시키시옵소서." 대왕은 매정하게 말하였다. "보기가 아무리 딱하다 하더라도 이런 싸움은 경솔하게 중지시킬수 없다. 보기 괴롭거든 궁궐로 들어가 있거라." 대왕의 냉혹한 거절에 공주는 울며 말하였다. "아바마마! 제발..." 공주는 말을 채 맺지도 못하고 소리내어 울면서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도저히 더 이상은 쳐다볼수가 없었다. 하늘에서는 두 용사가 마지막 힘을 쓰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서쪽으로 달아나던 한뫼도령이 별안간 방향을 마꾸어서 남쪽으로 몸을 급히 꺾었다. 한뫼도령의 뒤를 바짝 쫓던 운무 장군은 몸을 남쪽으로 돌리게 되는 바람에 잠시 몸의 균형을 잃엇다. 게다가 정면에서 강하게 비쳐오는 햇빛때문에 눈이 부시어 앞 뒤 좌우를 분간할 수가 전혀 없었다. 그 순간 운무 장군의 입에서는 숨막히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몸을 돌린 한뫼도령의 주둥이가 운무 장군의 눈앞을 집게처럼 바짝 파고 들어간 채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으윽! 아, 아!" 운무 장군은 아픔에 연거푸 비명을 질렀으나 이미 파고 들어간 한뫼도령의 주둥이는 더욱 억세게 힘을 더해갈 뿐이었다. 드디어 운무 장군의 두 눈은 뒤집히기 시작했고 정신은 점점 희미해져 어떻게 해도 도저히 회복할 수가 없었다. 기운이 거의 없게 되자 몸이 축 늘어지기 시작했고 날개를 떨어뜨린 채 땅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뫼도령은 운무 장군이 가라앉는 대로 서서히 따라 내렸다. 그러나 조금도 주둥이를 늦추지 않은채 매달려 따라 내렸다. "와아!" 뜻밖의 광경에 관중들은 높은 함성을 질렀다. 드디어 땅에 내려오자 운무 장군은 한뫄도령에게 질질 끌려 다녔고 이미 기운도 다해서, 얼굴에는 사색이 완연히 깃들엇다. "용기를 내라! 힘을 얻어라 운무장관!" 많은 나졸들이 운무 장관에게 응원하였다. 그러나 몇 안되는 공주의 시녀들은 한뫼도령을 응원하였다. "한뫼도령, 끝까지 놓치지 마셔요." 괴로움을 이길 길이 없는 운무 장군의 눈은 차차 크게 떠지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의 죽음에 이르는 모습처럼, 이세상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처절한 눈길이었다. "이럴수가!" 대왕은 이대로 두었다가는 이나라에서 제일 신임하는 운무 장군을 그대로 죽일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대왕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명하였다. "즉시 싸움을 중지하라!" 대왕의 심상치 않은 명령에 신하와 관중들은 잠시 술렁댔으나 곧 잠잠해졌다. "싸움을 멈추어라!" 왕의 명령에 전례대신은 크게 복창하였다. 이에 정신없이 운무 장군의 눈알을 품고 늘어졌던 한뫼도령은 명을 받들고 급히 주둥이를 뽑았다. 한뫼도령이 운무 장관의 눈에서 떨어지자 전례대신이 다시 말하였다. "대왕마마의 특별명령으로 오늘릐 이 싸움은 여기에서 중지한다." 전례대신의 말을 듣고 한뫼도령과 운무 장군은 대왕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였다. 절을 받고 대왕은 엄숙하게 선포하였다. "힘을 겨룸에 있어 아까운 목숨을 굳이 앗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의 겨룸은 한뫼가 승리했으므로 그 상에서 옥으로 나오도록 조처를 취할 것이며 이로써 싸움이 아직 남아 있는바, 한달 뒤에 서로의 몸이 완쾌된후에 겨루도록 할 것이니 그때 다시 이곳으로 모여라." 모든 왕의 신하들은 왕이 운무 장군을 살려내려고 전례없는 조치를 취하는 줄 이미 알아 차렸지만 감히 누구하나 입 밖으로 말을 하지는 못했다. 공주는 여러 사람들의 눈총도 개의치 않고 한뫼도령의 옆에 가사 기쁨에 넘친 울음으로 그를 격려하며 진정으로 말하였다. "잘 사우셨어요. 저는 공자만이 돌아가시는 줄 알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몰라요." 한뫼도령은 공주의 정성에 크게 감동하며 말하였다. "이 모두가 저의 승리를 빌어주신 공주님의 은공으로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한뫼도령과 공주는 함께 울면서 오늘의 승리를 기뻐했다.
이제 날은 흘러 또다시 시합할 날이 되었다. 한달 전의 모습과 간이 오늘도 똑같은 장소에서 시작되었다. 전례대신은 전번과 마찬가지로 나타나서 관중과 두 용사에게 설명하여 말하였다. "오늘의 시합은 힘의 대소가 아니라 지혜의 대소를 가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거니와, 저 앞 큰 뫼 너머에 매들이 사는 매바윗골이 있슴니다. 그 골짜기의 속에는 대왕께서 늘 구하시는 장수초가 있습니다. 오늘의 시합은 무서운 매들이 득실거리는 매바윗골을 감히 지나가서 그 장수초를 뜯어 오는 일입니다. 누가 먼저 뜯어다 대왕전하께 바치느냐를 겨루는 것입니다. 두 용사는 정정당당히 겨루도록 하시오." 말을 마치고 나서 전례대신은 다시 두 젊은이를 의미심장하게 마라보며 말하였다. "그럼 지금 출발한다. 저쪽 형편을 알수 없는 관계로 언제까지 돌아와야 한다는 규정은 세우지 않았으나 누구든지 먼저 장수초를 가지고 오는 자에게 승리의 관을 싀워 주도록 할 것이다." 하고, 깃대를 높이 치벼들고 신호를 보냈다. 시합의 내용과 규정을 듣고 관중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매들이 사는곳에 들어가서 장수초를 뜯어가지고 오라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든지, 애초에 근처에도 가지말고 그대로 돌아오라는 뜻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한뫼도령과 공주도 이 내막을 얼른 짐작했다. 시합을 성공시키기 보다는 두 용사 다 실패로 돌아가게 해서 이번을 유야무야로 넘겼다가, 이다음에 운무 장군을 다시 부마로 삼으려는 속셈임을 능히 알수가 있었다. 사실 알수 있기는 하지만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한뫼도령과 운무 장군은 훌쩍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두 용사는 전날의 결사전은 아주 잊어버린 듯이 마치 친구처럼 나란히하여 매바윗골을 향해 달렸다. 어느 한쪽도 상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매바윗골이 얼마남지 않은 고개에 이르자 한뫼도령은 매의 냄새를 맡을수 있었다. 이제부터 위험 지역이라는 중거였다.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매가 공격해 올지 알수 없는 일이다. 한뫼도령은 운무 장구을 바라 보았다. 운무 장군은 위험한 기색을 전연 느끼지는 못했느느지 그대로 냅다 앞질러서 갔다. 한뫼도령은 몸을 얕게 내려 날카롭게 언저리를 살피며 운무 장군의 뒤를 바짝 따랐다. 저아래 골짜기에서 분명히 두려운 매의 소리가 들렸다. 눈을 똑바로 뜨고 쏘아보니 크고고 작은 매들이 이리저리 위세좋게 날고 있었다. 매들의 출현에 운무 장군도 주춤하기는 했으나 뒤로 물러서거나 몸을 숨기거나 하지 앟고 그대로 날아갔다. 저 무서운 악마들의 소굴에 먼저 뚫고 들어가려는 심사임이 분명히 엿보였다. 장끼의 날아오는 모습을 매의 보초가 발견했다. 저아래로 신호를 하자 보기에도 크고 매서운 매의 무리가 여섯 마리나 하늘로 치솟아 갑작스럽게 올라온다. "앗!" 한뫼도령이 놀라는 순간 운무장군은 그제야 일이 수습할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을 안 모양이었다.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얼른 머리를 돌려 되돌아 날기 시작하였다. 장끼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매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넓고 큰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장끼에게로마구 덮쳐왔다. 아무리 힘세고 가벼운 장끼라고 하더라도 매의 날개를 당할재간은 결코 없었다. 채 고개를 넘지 못해서 매의 발톱에 어개죽지가 걸렸다. 매와 장끼는 마치 전날 한뫼도령과 싸울대처럼 한동안 하늘 가운데서 어울려 뒹굴며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의 힘과 기술은 매의 발톱과 주둥이에 견줄바가 아니다. 다른 매들이 채 닿기도 전에 운무 장군은 먼저 덮쳐든 매에게 숩줄기가 막혀 길다란 비명을 만겨 놓고 그대로 몸이 축 쳐졌다. 매떼들이 땅에 뒤구는 운무 장군의 눈을 때고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숨어서 바라보는 한뫼도령은 소름이 끼쳤다. 매바윗골에 들어서려고 한다면 저 운무장군의 신세를 스스로 부르는 행도에 지나지 않는짓이다. 죽을 결심이라면 몰라도 살 생각이라면 매떼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다시 되돌아가는 수밖에 전혀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돌아가는 나를 공주가 반겨줄지는 모르짐나, 그런 부끄러운 태도로 공주를 만날 면목은 도저히 서지 않는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약초를 뜯어가는 수밖에 없다. 한뫼도령은 백방으로 생각을 가다듬었다. 몇 시간이나 지나서 한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지루하기는 하지마는 밤 되기를 기다려 몰래 약초가 있는 곳으로 매들 모르게 침입해 들어가는 방법이 그것이다. 뉘엿이 넘어가기 시작하던 햇빛이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누리기 어두워졌다. 날짐승들은 무슨 종류고 날이 어둡기만 하면 전부 잠자리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뫼도령은 눈에 불을켜고 언저리를 살피며 살금살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날갯소리를 내지 않고 이렇게 걸어갈수 있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복이라고 한뫼도령은 생각하였다. 간간이 흙덩이가 무너져 내려오고 발에 밟히는 나뭇잎 소리가 가슴을 철렁 내려앚게 했으나, 이곳에 남의 눈을 피해 들어오는 장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매떼들은 부스럭 소리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몇 군데의 바위 기슭, 몇 군데의 바탈길, 또 몇 고비의 모퉁이를 돌아가니 매의 냄새도 짙은 매바윗골의 한가운데였다. 발소리를 한층 죽이며 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매 둥지가 여기저기 유난히 꺼멓게 드러나 보였다. 매들이 사는 마을의 궁궐 근처인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좀더 기어 들어갔다. 갑자기 푸드득하며 날개치는 소리가 나더니, "누구나?" 하고, 찢어지는 듯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도망갈 길도 없이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한뫼돌여의 머리를 스쳐갔다. 바위틈에 바짝 몸을 숨기고 숨소리마저 죽였다. 잠시 푸드득 거리던 매의 소리가 도로 조용해졌다. 산짐승이 지나가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그들은 나무 위에서 다시 마음을 놓고 잠들기 사작했는지도 모른다. 여기가지 와서 더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한뫼도령은 또 몸을 드러내 놓고 앞으로 소리없이 기어갔다. 무득 이제가지 맡아본 일이 없는 그윽한 풀향히가 코를 찔렀다. 그것은 얘기로만 들어오던 장수초가 바로 눈앞에 솟아 있는 것을 알수 잇었다. 어둠 속을 더듬으며 좀더 앞으로 기어가니 칠흑처럼 어두운 바위밑에 마치 무지개 같이 영롱항 빛을 뿜고 있는 풀잎이 앞을 가로 막았다. 분명 장수초임에 틀림없었다. 한잎, 두잎, 입이 터질 만큼 그득히 따물고 한뫼도령은 얼른 몸을 빼쳐 나오기 시작했다. 몸이 빗속을 날을 때처럼 젖어 있는 것은 이슬 때문이 아니라 땀이 흐른 탓임을 한뫼도령은 알았다. 이미 익혀둔 길이라 돌아올때는 어렵지가 않았다. 여전히 흐트러지는 흙덩이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나뭇잎소리가 가슴을 철렁 내려앚게 하기는 햇지만, 우선 숨을 방도는 있으니 그만큼 안심이었다. 몇번이고 푸드득 거리는 매의 움직이는 소리가 있기는 했지만 어느 한 마리도 한뫼도령의 동정을 살펴내지는 못했다. 아까 운무 장군이 죽음을 당한 마루턱에 이르러 한뫼도령은 이제는 자기의 목숨이 제대로 붙어 있게 된 것을 알았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한뫼도령은 날개소리도 요란히 하늘로 치솟아 높이 올라갔다. 어디서도 매의 날아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설사 쫓아온다고 해도 여기가지 따라올수없음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었다. 처음 떠나올 때부터 몇 식경이나 지나서 한뫼도령은 아까 출발한 잔디밭 상공의로 날아들었다. "저기 용사의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군중의 놀라움과 환호가 섞인 소리가 한뫼도령의 귀에 들려왔다. 한낮에 떠난 용사들이 이토록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사실에 모두들 큰 변이 난 것으로 알고 차차 기다리기를 단념하고 있던 참이었다. 잔디밭 상공에 이른 한뫼도령은 마지막 힘을 모아 한 바퀴 휘익 돌아보이고는 떨러지듯 힘없이 땅으로 내려 굴렀다. 땅에 내려앉았을 때 한뫼도령은 대왕과 전레대신과 공주의 모습을 눈앞에 보았을 뿐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앗다. 지켜 보던 전의가 뛰쳐나와 소생초의 잎을 짜서 그 물을 코에 흘려 넣자 한뫼도령은 조용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전례대신은 뜯어온 장수초를 신기한 듯이 받들고 섰고, 대왕을 비롯한 여러 신하와 군중들이 금심스러운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공자님. 정신이 드셔요?" 한 쪽에 웅크리고 안절부절 못하던 공주가 달려나와 얼굴을 비비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 공주 마마!" 한뫼도령은 간신히 말하였다. "한뫼는 분명 장수초를 뜯어왔고, 또한 문명히 운무보다 앞서서 되돌아 왔습니다. 오늘의 시합에도 한뫼가 승리했음을 알립니다." 이에 군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쳣다.. "한뫼도령 만세!" 전례대신은 한뫼도령의 곁으로 가만히 와서 이번에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운무 장군은 언제즘 돌아올 것 같은가?" 한뫼도령은 심각해지며 말하였다. "운무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사옵니다." 하고, 한뫼도령은 그동안의 경위를 자세히 말하였다. 군중들은 운무장군의 아까운 희생을 언짢아 하기는 했지만 한뫼도령의 참착성과 인내와 지혜에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장하다! 이번의 싸움에서 한뫼는 힘과 인내심과 지혜를 보게 보여주었다. 한뫼가 승리했음을 우리 모두 축하하자!" 할수 없이 대왕도 군중에게 말하였다. 운무 장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차지한 한뫼는 옥에서도 풀려나고 그 뒤 거리낌없이 공주와 다정하게 만날수가 있게 되엇다. 그들은 처음에 알게 된 잔디밭 위에서 만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을 나누었다. 한뫼도령이 공주와 혼인을 하게 되리라는 소문이 온나라 안에 널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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