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의 삼절
삼절이라면 흔히 시서화를 말한다.
즉 선비의 점잖은 그림인 문인화에서 그림과 찬으로 쓴 글과 그것을 화면에 써 넣는 글씨 세 가지가 다 최고 수준에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런 말로 호칭한다. 우리 나라로는 정조 때 자하 신위 같은 이가 그럴 정도다.
그런데 여기 얘기하는 삼절은 다르다. 이조 중엽에 송도(지금의 개성)에 황진이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인물도 뛰어났으려니와 글도 짓고 속류에 휘말리지 않아 스스로 높이 처하였다. 그래 그 기생이 송도에 다시 없이 뛰어난 것으로 산수 경치에 박연폭포, 남자로는 화담 서경덕 그리고 자신 이렇게 셋을 꼽았던 때문에 얘깃거리가 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또 많은 소설가에 의해 윤색된 일이지만 당시에 도학 높다는 사람의 여색에 대한 태도를 시험해 봤더란다. 첫째 유학자인 퇴계 선생은 담담하려고는 하나 무척 고민하는 눈치였고, 둘째 화담선생은 자신의 요구대로 쓸어안아 주기까지 하는데 마치 물건이나 다루듯 전혀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면벽 9년의 생불 스님이라는 지족선사를 시험해 봤더니 전혀 접근도 못하게 하다가, 그만 유혹을 배기지 못하고 파계하고 놀아난다. 세상에서 이것을 망석 중이라 하고, 이것을 제재로 한 야단스런 춤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진이는 자신을 가지고 이렇게 삼절을 꼽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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