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왜? - 여성 억압의 어제와 오늘 : 서진영
제1부 : 하늘에서 땅으로
2. 원시 시대의 가족
4)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원시 사회의 여성의 지위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여성의 모성이 존중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생산과 가족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의 반영이며, 또한 당시의 평등한 생산 관계의 반영이다. 즉, 생산이 다른 사람을 최대한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삶 그 자체를 위해서 행해졌기 때문에 모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동을 강요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출산은 언제나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로서 그것에 관한 많은 전통적 관례가 있으며 흔히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 원시 사회는 모성이 법과 관습에 의해 보호되고 신성한 대상으로 간주되며, 그녀 자신은 자신의 처지에 긍지와 행복을 느끼는 이상이 실현되는 사회였다. 말리토프스키에 따르면 멜라네시아의 여자들은 한결같이 자식에 대한 열렬한 갈망을 보여주며,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이러한 그녀의 느낌을 지지하고 그녀의 성향을 조장하는 동시에 관습과 관례에 의해 그것을 이상화한다. 관습에 의해 임신부는 숭배의 대상으로 간주되며, 이는 원주민의 실제적 행동과 감정 속에서 완전히 현실화되어 있는 이상이다.
많은 원시 사회에서 월경 중이거나 출산을 맞은 여성들을 공동체 전체가 보호하고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부락내에 산옥을 두어 월경 중인 여자, 임산부들이 들어갔다. 월경 중인 여자는 8~9일, 산부는 50여일 정도를 여기서 지냈다. 이런 풍습은 모자에 대한 공동체 전체의 책임과 출산의 공동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월경과 출산을 존중하여 여자가 성장하여 '월경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 씨족신의 축복을 받는 사건으로 여겼다. 몇 년전 일본의 오끼노시마에서 행해진 풍속 조사에서, 첫 월경을 한 딸을 집안과 마을에서 축복하는 행사가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 월경을 비밀스럽고 수치스러우며 불결하게 여기게 된 것은 문명 사회 이후의 일이다. 문명 사회는 임신 역시 부끄럽고 사적인 일로 치부한다. 임신한 여성의 모습은 보기 흉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20세기 초 한 독일의 신사는 여자에게 국회의원 피선거권을 주지 말자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의회의 연단에 선 임신부를 상상해 보는 것이 좋다. 얼마나 '비미학적' 인가." 그러나 인류 최초의 미술품에 속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문명 사회와는 상반된 원시인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인류 최초의 예술 작품의 하나인 이 여인상은 풍만한 젖가슴과 불룩한 배를 한 임신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는 생명의 생산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숭배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태어난 아이에 대한 공동체의 공동 책임이라는 의식과 이를 강조하는 문화적 양식들도 발전했다. 일본의 민간 전승에는 '치오야'라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부락 내의 임산부의 동년배, 즉 같은 연령층의 여성이 태어난 아기에게 첫 젖을 먹이는 것을 말한다. 태어난 아기가 그 생모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속하는 것임을 표현하는 풍속이다. 출산과 수유 뿐만 아니라 양육도 공동화되어 있었다. 일례로, 일본에는 지금의 탁아소와 같은 전문 양육 시설이 있었다. 또한 단순히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 집회소 제도와 상호 교육제가 있어서 여자 어린이와 남자 어린이는 각각 집회소에 들어가 각종 상호 훈련을 하고 어른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함께 성인식을 치르고 어른 집단에 낄 수 있었다.
--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5) 아버지, 성실한 보모
대개의 원시 사회에서는 남성 역시 임신한 여성의 부양에서 양육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역햘을 공유하고 있었다. 현대 유럽의 부계 사회와 멜라네시아의 원시 모계 사회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을 비교 분석한 말리노프스키의 연구에 의하면 현대의 부계 사회보다 원시 모계 사회에서 아버지와 자식들이 훨씬 친밀하고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었다.(주28) 현대의 부계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권리가 확고한 데 반해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매우 소원하다. 이에 비해 아버지가 자식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는 모계 사회에서의 아버지는 그 반대였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멜라네시아의 아버지들은 가장도 아니요, 그의 혈통을 자식에게 전승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생계의 공급자도 또한 아니다. 멜라네시아에서의 '아버지의 위치'는 순수한 사회적 관계다. 이런 관계에서 아버지가 맡은 역할은 어디까지나 아내의 자식에 대한 그의 의무일 뿐이다. 아버지는 '아이를 팔로 받기 위해' 존재한다. 트로브리안드의 전형적인 아버지들은 근면하고 성실한 보모다. 그는 어린 아이가 아직 유아일 때에는 온화하고 자애로운 보모이고, 그가 아동이 되면 그들과 놀기도 하고 업어주기도 하며 그들의 기호에 맞는 재미있는 오락이나 일을 가르쳐 준다. 사회적 전통은 이러한 일들을 아버지의 소명으로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도 아버지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의무를 열심히, 그리고 기꺼이 수행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말리노프스키는 "일반적인 남성에 있어서 그들이 자식에 대하여 애정적이고 부드러운 감정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명백하다"고 말한다. 아버지에게 자식에 대한 아무런 특권이나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며, 그는 그러한 것들을 획득하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특권이 없음으로해서 그는 아버지로서의 본능을 자유스럽게 따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자녀 양육게 대한 남편의 공동 책임이라는 의식은 이를 강조하는 다양한 문화적 표현들을 만들어냈다. 그 중 유명한 것으로 원시인들 사이에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쿠바드'라는 풍속이 있다. 이는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그 남편이 '공동 책임'이라는 강력한 의식에서 같이 진통하고 같이 앓아 눕는 풍속을 말한다. 기록 영화 '몬도가네'를 보면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가까운 곳에 있는 물 속에 들어가 진통의 괴로움을 같이 앓으며 고행하는 아프리카인의 모습이 나온다. 이런 풍속은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메리카, 인도, 중국, 우리나라 등 각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인도에서 남편은 아내가 진통을 시작하면 여자의 옷인 '사리'로 바꿔 입고 머릿수건을 동여맨 채, 산실에 같이 누워 진통하는 흉내를 내는 습속이 있었다. 중국의 운남성이나 지주성에서도 남편은 한 달 내지는 40일간 산부와 함께 누워 산욕의 괴로움을 같이한다. 유럽의 피레네 산맥 지방에서도 이런 풍속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세계 공통적인 풍습이 발견된다. 평안도 박천 지방에서는 '지붕지랄'이라 하여,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면 남편은 그 산실의 지붕위에 올라가 용마루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며 나뒹군다. 또한 '상투잡이'라는 풍속도 이와 같은 것이다. 산모는 아이를 낳을 때 삼신 끈을 붙잡고 힘을 주며 아이를 낳았는데, 이 삼신 끈으로 남편의 상투를 이용한 것이다. 남편은 산실의 문 밖에서 문기둥에 버티어 서서 창호지를 찢고 산실 안으로 상투를 처박는다. 산모는 이 상투를 쥐고 서서 힘을 쓴다. 필사의 안간힘일 것이니 오죽 아팠을 것인가. 혹 상투가 짧거나 늙어서 약해졌을 때는 '상투빌이'라 하여 가발로 된 상투를 빌어다가 야물게 턱을 걸고 산모로 하여금 붙들게 한다. 이 상투 삼신승 풍속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민요도 전해져 오고 있다.
우습세라 우습세라 젊은 각시 아날때는 제 남편의 상투쥐고 울콩불콩 낳는다고
또한 상투빌이에 관한 민요도 있다.
이집저집 다니면서 상투 상투 빌려 주소 아 낳으면 은공 갚아 천년만년 잊지않고 그 은공을 갚겠다고 앞길 바빠 뒷길 바빠
마루 위에 앉아서는 상투꽁지 길게 매고 문창구무 한구멍에 들이들이 밀었단다. 각시각시 상투 쥐고 이,이,힘 쓰면서 애를 쓰며 당기더니 상투머리 쑥 빠지자 당콩 같은 빨간 애기 말똥 말똥 빠져났네.
이런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의 출산 후의 어떤 부담을 공유하게 하거나 최소한 그녀를 동정하는 행위라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사회적 장치들이 모든 사회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쿠바드는 물론 현대의 입장에서 볼 때 명백히 불합리한 관습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깊은 의미와 필수적인 기능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사람이 결합하여 인간 가족을 이룬다는 것을 강조하고 아버지와 자식을 도덕적으로 매우 친밀하게 만들며 전통적인 관습과 규범을 통해 남성으로 하여금 자식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아이가 아버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쿠바드는 또한 출산이라는 창조 행위에 동참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열렬한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직접적으로 아이와 결부되어 있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자식을 낳는 과정에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다. 원시 사회의 아버지들은 쿠바드를 통해 창조의 고통을 나눔으로써 아이와 아내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고, 태어나고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명백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쿠바드는 또 출산의 고통에 대해서도 문명 사회와는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이브가 죄의 대가로 출산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성경 구절이 상징하듯이 문명 사회에서는 출산의 고통이 여성의 저주받은 표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쿠바드는 출산의 고통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모든 위대한 것의 창조에 따르는 필수적인 고통으로 여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자들은 자신이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실제로 여성들이 임신출산에서 겪는 고통은 그들이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훨씬 더 깊은 이해를 갖게 만드는 소중한 경험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있기까지 그 어머니의 무한한 노고가 어려있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6) 우주 창생의 어머니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생산 노동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함께 당시의 지배적인 사회 조직인 친족 집단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원시 공산제 여성의 지위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들은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존경을 받았다. 여성이 가족 단체의 지휘자이며 선도자였다. 따라서 또 여자는 집안에서나 가족의 일과 종족의 일에서도 높은 존경을 받았다. 여자는 싸움의 중재자이며 재판관이고 또한 사제로서 예배의 일까지 맡았다. 타키투스는 '게르마니아'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 속에는 무엇인가 신성한 성질, 예언자적 성질이 숨어 있다고 독일 사람들은 믿는다. 그 때문에 그들은 여성의 충고를 존중하고 그녀의 의견을 듣고 따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이 제사를 주관하였으며, 무속 신앙에 나오는 산신, 삼신, 풍신, 용신, 태양신 등과 신라의 일급 호국신인 나림, 혈예, 골화의 3산의 신도 여성이었다. 또 삼신 할머니, 청실홍실 할머니 등의 이야기는 원시 시대에 씨족 내의 대소사에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전해준다. 제주도에 전해오는 한 민담은 당신 사람들이 여성을 우주 창생의 어머니로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옛날 선분대 할망이라는 키 큰 할머니가 있었다. 얼마나 키가 컸던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다리는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쳤다 한다. 이 거파는 '성산봉을 빨래 바구니로 삼고 소섬을 빨래돌 삼아' 빨래를 하고 치마 자락에다 흙을 담아 나르다가 흙이 새어 오늘의 소화산을 이루기도 하고 육지에 다리를 놓아주기도 하고 주먹으로 봉우리를 쳐서 움푹 패이게 하거나 오줌을 누어 흙이 떠내려 가 섬을 만들기도 하는 등 우주 창생의 어머니였다. 이런 설화들은 모계 사회의 지도자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친근감 있는 경외심을 표현하고 있다. 모계 사회의 모권은 가부장제 사회의 부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머니는 폭력이나 강제, 부에 기초하지 않은 자연적인 권위를 가진 존경과 애정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의 태내에서 여성의 억압과 착취를 가져오는 새로운 힘이 생겨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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