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 - 김준호
둘째 마당 : 우리 소리는 힘이 세다
이제는 우리 장단에 춤추자
목소리가 악기인 우리 창법
자,이제 우리 음악을 어느 정도 알았으니 한 번 물어보자. 우리 음악은 배우기 쉬울까, 어려울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한국 음악은 배우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도 개중에서 제일 배우기 쉬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장구라는 악기다. 이 장구는 춤을 출 때나 소리를 할 때, 반주를 담당하는 가장 기본적인 악기다.우리 음악을 하는 사람은 어떤 음악을 하든 소리를 하든 장구는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 장구를 배우기 위해 한 달에 수백 명씩 우리 음악 강습소들을 찾는다. 그런데 장구를 배우려는 사람 중에도 팔자에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이 있다.옛날 선생님들이 하신 말씀이라고 웃어넘겼다간 큰일난다. 거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요즘은 문명이 발달한 과학 시대니까 그 이유를 팔자론으로 풀이하기보다 이론적으로 분석해 보자. 장구 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오른손과 왼손이 전부 따로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다. 대개 오른손엔 장구채를 쥐고 채편을 치고,왼손은 손바닥으로 장구의 궁편을 친다. 따라서 오른손과 왼손을 놀리는 모양이 서로 다르다. 방향만이 아니라 힘을 주는 정도도 다르고, 움직이는 속도도 다르다. 우선 장구를 배우기로 마음을 먹으면 오른손과 왼손, 양손의 신경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야 한다. 이게 장구와 맞는 팔자다. 혼자서도 손쉽게 자기가 장구와 팔자가 맞는지 안 맞는지 실험하는 방법도 있다.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왼손은 활짝 편다. 오른손 주먹은 가슴 앞에다 두고 밖을 향하여 왔다갔다 움직이고, 왼손바닥은 아래 위로 움직이게 한다. 얼핏 보기에는 쉬울 것 같은데 막상 해보면 의외로 쉽지 않다.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한 번 해보고 그래도 잘 안되면 일단 팔자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라. 잘되는 사람들은 손을 바꾸어서 해본다. 1차 관문을 통과하면 2차 시험이 또 있다. 왼손으로는 허공에다 원을 그리고 오른손으로 삼각형을 동시에 그리는 거다. 이것을 자꾸 반복하면서 점점 빨리 해본다. 앞의 것보다 더 쉽지 않다. 이런 식으로 장구를 배우기 위해서는 좌우 신경이 잘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나는 안되니까 장구를 포기해야겠다, 이렇게 기죽을 필요는 없다. 다만 오른쪽과 왼쪽의 신경 자체가 마음대로 잘 돌아가야 일단 장구에 접근하기기 수월하다는 뿐이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없던 감각도 생긴다. 이 감각을 어느 정도 익히는 데만도 굉장히 많은 세월이 걸린다.
여기에다 더 골치아픈 게 뭐냐 하면 기음이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데 기음이란 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기음은 노래뿐만 아니라 우리 음악에 전반적으로 사용되고 두루 나타나는 것이다. 기음. 기운 '기' 자에다가 소리 '음' 자. 이것을 순 우리말로 표현하면 소리 그늘, 즉 소리 그림자다. 소리에도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이 그늘이 짙으면 짙을수록 고수,즉 잘하는 사람이다. 장구를 1년 동안 열심히 치면 기가 하나 붙는다. 이걸 기덕이라고 한다. 2년이 열심히 치면 기기덕, 3년을 열심히 쳤다면 기기기덕, 한 10년을 열심히 치면 어떤 소리가 나느냐 하면 기리리리릭덕 하고 구슬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이 소리는 어느 정도 공력이 들어간 소리로 한 단계 공부를 마친 사람들의 장구 소리다.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고 동네에서 적당히 배워서 마구 두들기는 장구 소리는 뭐라고 하냐면 니똥 딱구 내똥딱구 하고 부른다. 덩더더쿵 덩더더쿵 하는 장구 소리에 빗대어 부르는 이름이다. 이 니똥딱구 내똥딱구 소리와 기가 들어간 장구 소리는 그 분우기의차이가 전지차이로 틀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 어느 정도 기가 들어간 장구 소리를 내려면 얼마나 배워야 할까? 10년은 기본이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 음악이다. 기초를 잡는 것만도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음치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음악 중에서 제일 힘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악 장르다. 한국 사람의 목소리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사실 여자의 경우는 지금 세계를 석권한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전 세계 여자 성악가 중에서 가장 높은 소리까지 올라가는 사람이 누구인가. 조수미 씨, 신영옥 씨, 홍혜경 씨 등 전부 한국 사람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기 때문에 서양 예술의 고음 부분도 자유자재로 처리할 수 있는 거다. 서양 사람들은 성대 구조가 우리와 달라서 낮고 묵직한 저음이 강하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라도 맑은 고음을 낼 수 있다. 서양식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분류하면 보통 남자 목소리 세 가지에 여자 목소리 세 가지다. 잘 알고 있듯이 남자의 높은 소리는 테너, 여자는 소프라노다. 그런데 우리의 목소리는 그 정도가 아니다. 창악대강 이란 책을 보면 여러 가지 음색과 성조에 따라 쭉 분류를 한 것이 있는데, 모두 서른일곱 가지나 된다. 아마추어 소리꾼은 생목, 프로 소리꾼은 둥근목, 높은 소리는 된목, 낮은 소리는 눅은목, 긴 호흡의 긴목, 짧은 호흡의 짧은목, 텁텁한 소리 떡목, 깔끔한 소리 마른목, 그밖에 방울목, 찍는목, 튀는 목 등등 소리의 구분은 수십 가지다. 이는 우리 목소리가 얼마나 발달한 소링니가를 실증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자고로 음치라는 게 없는 민족이다.원래 18번이나 음치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이 쓰던 말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음치가 없다. 누구나 노래를 잘 하기 때문에 그런 말도 필요없다. 우리 소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아, 소리 못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들 한 자락씩은 하지."
이래 놓고 노래 한 자락 하시는 거다. 기다렸다는 듯이 알고 있는 소리를 해주는 분들도 있지만, 가끔 수줍음이 지나쳐 고사하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께도 한사코 소리를 들려 달라고 고집을 부리면 입을 여는데, 그 소리가 여간 은근하고 곱지 않다. 우리 민족은 원래 예로부터 가무음곡을 즐기던 민족이었다. 신라 시대의 화랑이 되려는 젊은이는 학문과 무예 외에 노래와 춤에도 능해야 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희한한 문화 현상이라는 노래방이 우리나라에 그토록 성행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악을 그냥 앉아서 듣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마이크를 잡든 숟가락을 두드리든 좌우지간 악을 쓰면서 노래를 불러제꺼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민족이다. 그만큼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는 기본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악기까지도 목소리로 흉내낸다. 관악기, 현악기 다 자유자재다. 이렇게 목소리로 악기 음색을 흉내내는 것을 구음이라 부른느데, 원래는 일종의 악보를 기록하는 방식에서 나왔다. 우리 옛 고려가요를 부면 수수께끼 같은 소리가 가끔씩 튀어 나온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아으 다롱 디리...
다니러 노니러 너니러 노니러 나니러...
이 말도 안되는 소리들은 당시의 악기 소리를 흉내낸 것인데,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감정이 극치에 달했을 때 나오는 소리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높은 소리에서부터 낮은 소리, 웬만한 악기 소리까지도 목소리로 전부 흉내낼 수 있다. 이렇게 목소리를 가지고 온갖 재주를 부릴 수 있기 때문에 판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에서 고수 한 사람이 반주 넣어 주는 것만 빼고는 내용 중에 나오는 모든 소리를 소리꾼의 입으로 다 흉내낸다. 할머니 목소리, 아이 목소리는 물론이고 새소리, 물 소리, 바람 소리까지 다 입으로 낸다. 그래서 장구나 북의 단순한 타악기만을 반주로 삼고서도 충분히 소리판이 형성되는 것이다.
농악이 아니라 풍물이다.
타악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뭐니뭐니해도 우리 민족은 두들기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음악만 나왔다 하면 그렇게도 두들긴다. 원래 타악기는 악기 가운데서 그 역사가 가자 오래되었다. 이건 서양 음악이나 우리 음악이나 마찬가지다. 원시인들은 제사 의식을 행하면서 타악기를 두들겼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들은 타악기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악기와 관악기는 그보다 훨씬 나중에 나온 악기다. 사실 악기를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등으로 분류하는 것은 서양식 분류이고,우리의 원래 악기는 향악기, 아악기, 당악기처럼 악기들을 용도에 따라 분류하거나, 금부, 사부, 죽부, 목부 등의 악기 재료에 따라 분류했다. 하지만 편의상 타악기라고 부르기로 하자. 타악기는 현악기나 관악기처럼 음의 높낮이를 중시하는 게 아니라 리듬을 중시한다. 그래서 타악기는 가장 연주하기 쉬운 악기인 동시에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라고도 한다. 이 말이 뭔고 하니, 배우기는 쉬워서 누구나 금방 연주할 수 있지만 잘 하기는 어려워서 완성을 보려면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는 얘기다. 타악기는 가장 먼저 생긴 악기이기에 아직 원시성이 남아 있다. 타악기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면 어딘가 모르게 태고의 냄새가 난다. 또 타악기는 음의 높낮이가 아닌 리듬을 중시하는 악기이기에 리듬감과 힘의 강약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힘이 넘치는 악기가 바로 타악기다.
우리 음악은 타악기가 굉장히 발달했다. 사실 우리 음악에서는 타악기가 가장 기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앞에서 우리 음악을 하려면 어떤 종류를 하든 반드시 장구를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서양 음악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악기는 뭘까? 피아노다. 서양 음악에서는 지휘를 한든 기악을 하든 성악을 하든 피아노를 기본으로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우린 그 역할을 타악기인 장구가 있다. 이렇게 타악기를 즐겨 쓰는 우리 음악에서는 타악기의 중류도 유독 많다. 북, 장구, 징, 꽹과리처럼 사물놀이에서 쓰느 것들은 물론 편종, 특종 등 종도 많고, 북 종류는 훨씬 다양해서 진고, 노고, 좌고, 소고, 뇌고, 영도, 영고, 건고 등등 무척 많다. 이렇게 타악기 특유의 힘이 넘치는 소리를 좋아하는 민족성,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힘이다. 우리 모두를 단결시키는 힘이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방해하기 우해서 1930년대에 이 두들기는 음악을 쭉 모아서 이름을 무어라 붙였냐 하면 농악이라고 했다. 농사 짓는 촌놈들이 하는 음악이라는 뜻이다. 농악이 이렇게 해서 나온 말이라면 지금 우리가 쓸 이유가 없다. 더구나 두들기는 음악은 농부들만 했던 게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데서 우리 음악을 소개할라 치면 농악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농악만이 우리 음악인 줄로 알게 된다. 왜 그런고 하니 농악을 대채할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 농악 말고 쓸 말이 없냐 하면 무진장이다. 한강 이남만 해도 각 지방마다 용어가 엄청나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두들긴다 는 뜻으로 굿을 한다는 말을 쓴다. 좌도굿을 한다, 우도굿을 한다, 풍농굿을 한다, 농기놀이한다, 볏가리놀이 한다, 걸궁친다, 풍장친다, 풍물친다, 두레친다 등등 용어가 엄청나다. 경상도 지역은 주로 어떤 용어를 쓰냐면 매구친다고 한다. 매구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원래는 매장할 '매' 귀신 '귀' 자다. 표준말은 매귀인데, 남쪽으로 내려가면 귀신이라고 발음을 못한다. 그래서 구신이 되고 매구친다가 된다. 이 밖에도 벅구친다, 걸궁친다, 걸립친다, 풍장친다, 풍물한다 등등으로 표현한다. 그 다음 충청도 지역에 가면 주로 하는 소리가 달친다는 표현이다. 달은 응달, 양달이라고 할 때처럼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 충청도 이북에서는 두들길 때 웃달친다, 밑으로 가면 아랫달친다, 풍장친다, 풍물친다고 한다. 그런데 전국에서 공통으로 쓰는 용어가 하나 있다. 바로 풍물 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농악이라는 일본식 용어 대신 풍물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풍물이라는 말은 널리 쓰이기도 할뿐더러, 신바람을 일으키는 물건 이라는 뜻이니까 뜻도 좋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제부터라도 농악이 아니라 풍물이라는 말을 써주기 바란다. 그리고 주의 사람들이 농악, 농악 하면 풍물이라고 바로잡아 줄 줄도 알아야겠다.
꼬리뼈를 자극하는 사물놀이
바야흐로 풍물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이 풍물에서 나온 것으로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는 것이 있다. 북 하나, 장구 하나, 징 하나, 꽹과리 하나로 구성된 사물놀이이다. 사물놀이란 악기 네 가지를 합쳤다는 뜻으로 원래는 절에서 나온 용어다. 절에서 예불할 때눈 종, 북, 목어, 운판, 이 네 가지를 친다. 사당패들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절에서 기거하면서 절의 일도 같이 도와 주고 하다가 그 용어를 빌려와서 꽹과리 하나, 장구 하나, 징 하나, 북 하나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사물놀이의 원조다. 여기에 만약 장구 한 명이 더 들어온다면 그건 오물놀이 가 될까? 천만에. 그때는 풍물놀이가 된다. 세계 타악기 대회가 열렸다. 우리는 사물놀이 네 명만 주로 나가니까 다른 데서 참 우습게들 여긴다. 알파벳 순서대로 각 나라가 나오는데 우리 한국 앞에 누가 가느냐면 HIJK순서니까 인도와 일본이 들어간다. 우리 앞에 항상 나가는 인도는 참 신명나게 잘 두들기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굉장히 잘 두들기므로 주로 기립박수를 받는다. 그 뒤에 일본이 나간다. 일본은 북을 한 열다섯 개 들고 나가는데 일본의 큰북 크기가 어느 정도냐 하면 1톤 봉고의 한 1.5배 정도 된다. 엄청나게 크다. 북 위에 올라타 가지고 한 사람 두들기고 밑에서 쳐다보면서 두들기고 하면 그 크기만 보고 소리의 웅장함에 전부 기립박수를 쳐준다. 그 뒤에 한국이 나간다. 엔트리 넘버 몇 번 코리아! 하면 키도 자그마한 사람 네 명이 달랑달랑 걸어나가는데 악기가 너무 희안하더라는 거다. 장구가 크기가 큰가, 그렇다고 북이 크기가 큰가, 징 크기가 큰가(서양에서도 우리의 징과 같은 것으로 공이라는 악기가 있는데,우리 징의 여섯 배는 족히 되니 크기를 가지고 대적하기란 곤란하다.). 또 제일 재미있는 악기는 꽹과리다. 꼭 찌그러진 양푼처럼 생겨 가지고 손바닥 하나보다 조금 클까말까 한걸 악기라고 들고 나오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이 꽹과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면 두들기는 사람들 중에선 최고로 친다. 그래서 꽹과리 치는 사람을 상쇠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걸 들고 무대에 나가면 서양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소리가 이거다.
오, 개밥그릇!
어느 나라보다도 최소 인원인 데다가 악기도 왜소하니까 우리를 굉장히 우습게 여긴다. 게다가 연주하는 방식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의자에 앉거나 서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고, 인사를 하고 나면 일단 방석을 깔고 땅바닥에 탁 주저앉는다. 관객들은 악기도 시시한데 연주 폼까지 우스운 걸 보고, 저런 원시적인 악기를 가지고 나와서 도대체 무엇을 연주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일단 연주가 시작되면 3초도 못돼 눈이 휘둥그래지는 거다.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이냐? 젓가락 하나만 들려 주면 지구상에서 못 맞추는 리듬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리듬이 너무너무 발달한 민족이다. 어떻게 발달했나 보자. 왈츠라는 서양 리듬을 가지고 거꾸로 접근을 해보자. 왈츠는 쿵짝짝 쿵짝짝 이렇게 3박자로 나가는 춤 리듬이다. 이것을 계속 들어 보면 단조롭고 지겹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 그나마 멜로디를 얹히면 좀 들어줄 만한데 리듬만 따로 독립하면 아무런 재미도 없다. 서양 음악에서 타악기가 퇴보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리듬이 덜 발달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국 사람보고 이 왈츠 리듬을 한 번 쳐보라고 하면, 그대로 치는 법이 없다. 우리는 전문 연주자가 아니더라도 정해진 대로 고분고분 세 박자로 치지 않는다. 딱 듣자마자 이것은 세 박자,그러니까 어떻게 치다 하는 게 자동으로 머리 속에 입력된다. 박자는 세 박자를 유지하는데 전부 다르게 친다. 사람마다 다르게 칠뿐더러 한 사람이 칠 때도 칠 때마다 다르게 친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3박자는 맞아 들어간다. 음악의 '음' 자도 모르는 사람보고 쳐보라고 해도 우리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전부 다른 뭔가가 들어간다. 그 이유는 바로 가락, 가락이 너무너무 발달한 민족이 우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음악으로 자진모리를 한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이 음악을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0000하는 식으로 원박에만 충실하다. 재미가 없다. 우리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전부 다 틀리게 들어간다.
북, 장구, 징, 꽹과리를 친다 할 때 처음에는 이걸 치고 두 번째는 이걸 치고 세 번째는 이걸 치고, 하는 식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즉흥적으로 그날 그날 보고,기분에 따라 치면 된다. 이렇게 해서 나온 음악이 바로 우리 음악이다. 요런 식으로 리듬이 발달한 민족이 사물놀이판을 벌이며 마구 두들긴다. 두들기니까 신이 난다. 신명은 우리 인체 중 어느 부분에 있겠는가? 목? 가슴? 팔? 다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엉덩이에서 꼬리가 퇴화한 꼬리뼈 부분, 여기에 있다. 그것이 올라와서 한국 사람들이 신명을 어떻게 표출하느냐 하면 전부 수평 표출한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춤출 때 보면 팔다리를 수평으로 해서 왔다갔다 한다. 또 아버지 엄마들 세대, 대한민국 50대, 60대는 이 수평 상태에서 팔 다리가 접어진다. 그리고 나서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야'로 가는 거다. 그래도 뭐는 지킨다? 수평은 지킨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수평을 표출하는데 서양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표출하는가 하면 수직으로 표출한다. 이 사람들은 의자에 붙어 앉아서 신이 나면 살살살살 일어난다. 박수도 기립박수 치는 식으로 점점 올라간다. 따라서 우리가 사물놀이 연주를 하면 그 사람들은 살살살살 일어난다.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끝나고 나면 미치고 환장을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자기를 감동케 한 이 연주의 이름도 확실히 모르니까 그제서야 아까 입장할 때 받아둔 팜플렛을 펼쳐본다. 코리아, 사물놀이 라고 되어 있다. 그 사람들은 대뜸 자기네식으로 읽어서 아항, 이름이 사물이고,성이 놀이구나 한다. 그래서 자기 딴에는 이름을 부른답시고, 샤물! 샤물! 샤물! 하고 앵콜을 외치는 거다. 앵콜을 받는데 두 번 세 번은 물론 심하면 다섯 번 이상씩 받는 경우도 있다.
남의 장단에 춤추지 말자
이렇게 우리 음악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탁월한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다. 여기서는 이제까지 이야기한 우리 음악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장차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으로 강의를 마치기로 하자.
"한국인은 당파 싸움, 씨족 간의 갈등, 양반 상민의 갈등 등으로 절대 단결할 수 없는 민족으로, 총칼만이 그들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
한입합방 이후 무단 통치로 일관하던 일제의 한국인 지배 논리는 참으로 단면적이고 무자비했다. 그러나 1919년의 3,1만세 운동의 거대한 반항으로 일제는 혼비 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이론상으로 알고 있는 분열의 한국인 상이 깨어지고 두려운 한국인 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 총독부는 본토에서 학자들이 대거 불러들여 한국의 민속 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제는 무단 통치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것을 수정하여 사이토 총독의 문화정치 시대 를 열었다. 하지만 그 문화 라는 말은 애매 모호했다. 그 본질은 조선 문화의 창달이라기보다는 일제의 식민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사이토가 투입한 일본 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한국인의 높은 문화 예술 수준이었다.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아름다움의 추구에 대한 욕망은 일본인의 고용 책략에 역이용 되었고 그들은 문화 예술에 목말라 있던 조선인들에게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독주를 퍼 먹였다. 1922년 정치적 목적으로 선전이라는 것이 창설되었다. 이 선전은 정치적 영달의 길이 봉쇄된 조선인을 예술 방면으로 유도함으러써 독립의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 문학은 현실 도피의 한담으로 변했으며,우리 음악은 패배적인 쓸쓸한 가락으로 바뀌었다. 그런 탓인지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 가요라는 황성 옛터 를 보면 쓸쓸하고 활량하기 그지 없는 음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치가와 모리오라는 일본의 학자는 민요라는 일본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우리 노래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조선 민요의 연구]의 예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조선의 가요를 살펴보면 그 민족이 얼마나 향락적이고 영세적이며 도피적인지 알수 있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책자에서는 자신의 양심을 표현한 글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압박을 견디고 고난과 싸워 온 소박한 민주의 거짓 없는 표현인 조선의 가요는 향토 예술의 주옥품으로 양과 질에서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다."
당시 이치가와 모리오는 사이토의 문화 정책의 시녀로, 우리 노래를 한층 무기력하고 퇴폐적이고 찰나적이고 향락적으로 왜곡시키는 데 앞장을 선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연구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인 그도 우리 노래에 흠뻑 빠져 우리 음악의 세계적인 규모에,그 예술성에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일부 일본 학자들의 양심적인 고백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 음악을 왜곡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부터 비롯되어 오늘날까지도 북, 장구를 두드리면 무당이니, 미신이니 하면서 색안경을 끼고 보고, 가야금이나 대금을 연주하면 물러나 앉은 기생방 예술로 취급한다. 이런 일제의 손아귀에서 해방되었으면 이제부터라도 우리 음악의 제자리를 찾게 해주어야 할 텐데,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도 구시대 파차 라는 이름 아래 전개된 애매 모호한 정책은 우리 음악을 봉건적인 잔재로 취급했다. 그리하여 근본도 모르는 왜색 짙은 일본풍의 가요가 우리 사회에 범림했다. 한국전쟁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치르고 나자 이번에는 미군이 이 땅에 들어왔다. 그와 함께 우리나라에는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서양 음악 위주의 음악 교과서가 판을 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우리 음악은 객들에게 음악 이라는 안방을 뺏기고 다락방 한구석으로 몰려 문패를 국악 이라고 바꿔 달아야 했다. 이것은 주체와 객체의 뒤바뀜이다. 정확하게 주체성 있는 용어로 바꾼다면, 우리 음악이 음악 이고, 서양 음악은 양악 이라 불러야 옳다. 지금 우리의 음악 행태는 남의 장단에 춤추고 있는 꼴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음악은 순수 음악과 대중 음악으로 나누어 있다. 순수 음악은 고전 음악이라하여 좀 배웠다 하는 지식인들이 주로 듣고, 대중 음악은 유행가라고 해서 서민들이나 청소년층이 주로 듣는다. 그런데 순수 음악이나 대중 음악이나 모두 서양 음악 일색이다. 순수 음악은 바흐,모차르트, 베토벤 등 대부분 수백년 전에 살았던 서양 작곡가들의 음악인데, 서양에서도 옛날 음악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그 음악은 춘향가나 흥보가에 해당하는 음악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서양에서도 이것을 재해석하여 연주하지 고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순수 음악 팬이라 하면 무조건 그런 음악들을 잘 알아야 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대중 음악도 역시 서양 음악이 거의 다를 차지한다. 일본 음악의 영행을 받은 이른바 뽕짝이라는 트로트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랩이다, 발라드다, 팝이다, 록이다,댄스 음악이다, 재즈다 해서 모두 서양 음악이다. 그래도 일부 의식 있는 대중 음악인들은 우리 음계와 가락을 자신의 음악에 접목시키려고 애쓰고 있지만, 애초에 배운 음악의 틀이 서양 음악보다 보니 아직까지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 순수 음악과 대중 음악 사이에서 우리 음악은 갈 곳이 없다. 순수 음악의 자리에도 끼워 주지 않고 대중 음악의 자리에도 끼워 주지 않는다. 다른 나라는 어떠냐면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순수 음악과 대중 음악이 있고,그와 동등한 자격으로 민속음악이 따로 분류되어 있다. 이렇게 세 가지 체계로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음악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 그 한 가지 예가 음악 방송이다. 청소년들이 공부하면서 듣고, 직장인들이 버스나 승용차 안에서 듣는 FM음악 방송은 지금 수십 가지에 이른다. 그런데도 우리 음악만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곳은 없다. 대중 음악과 순수 음악은 각각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방송국이 있는데, 우리 음악은 없는거다. 일부 순수 음악 방송국에서 잠깐잠깐 우리 음악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우리 음악의 팬이 없느냐면 그건 아니다. 노인들은 물론이고 청소년, 어린이들까지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막상 들을 기회가 없는 거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앞서도 말했듯이 학교 음악 교육에서 우리 음악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니까 우리 음악의 팬이 될 소양을 가진 사람도 자꾸만 멀어지게 된다. 또 학교에서 가르치는 음악 교육이 서양 음악 중심인 것도 문제지만, 작가 교육이라는 점도 큰 문제다. 모든 사람이 다 음악인이 되는 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음악은 생산하는 것보다 소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 음악을 어떻게 만들고 연주하고 하는 것보다는 음악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느냐를 위주로 해서 가르쳐야 하는 거다.
그런데 학교 음악 교육을 보면, 음계가 어떻고 박자가 어떻고, 음악 사조가 어떻게 변천해 왔고 하면서 정작 중요한 음악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이러니 특별히 음악적 재능이 없는 학생들은 음악이 따분하고 지루한 과목일 수밖에 없다. 음악이란 원래가 재미있고 신명나기 위해 노래하고 듣는 건데 지루하다니, 이것도 커다란 역설이다. 박자나 음계,화음 따위의 음악 이론을 자세히 가르치는 건 음악 학교 학생들한테나 하는 교육이다. 음악 학교가 아닌 일반 음악 교육에서는 이론보다는 음악 자체를 가급적 많이 들려 주는 게 최고다. 굳이 이론이 필요하다면, 우리 음악은 앞이 세게 나가는 센박이다. 우리 창법은 호흡을 먼저 하고 소리를 터뜨리는 방식이다. 이런 정도만 배우면 우리 음악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이 정도만 가르치고 우리 음악을 직접 들어 보고 나서 아,과연 그렇구나 하고 느끼면 그것으로 교육은 충분하다.
인식을 바꾸면 희망이 보인다
수천 년의 긴 역사를 통해 첨삭의 과정을 겪어 오면서 오늘날의 형태에까지 이르게 된 우리 소리는 백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너무나 많은 무형의 문화 유산을 잃었다. 구한말 이후 일제가 조선 문화 말살 정책을 전개하고, 우리 고유의 농경 산업 구조가 붕괴하고, 서구 문화 환경이 침투하는 등으로 인해 거의 해체 위기에 놓여 있는 우리의 민족 문화는 비록 소리에 국한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앞세대가 잘못 인식해 온 우리의 문화 인식,나아가 음악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오늘날같이 국가와 국가 간의 장벽이 점차 허물어져 가는 상황을 볼 때 우리 음악을 그대로 지켜 나간다는 것은 어려움이 많다. 세계 문화의 보편성을 무시하고 너무 우리 음악의 특수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독단적인 국수주의로 빠지기 쉽고, 그렇다고 세계 문화의 보편성에 편승하다 보면 주체성 없는 음악으로 전략하고 만다. 문제는 올바른 인식이다. 예술의 역사는 그 분야의 향유자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 낸다. 이제 우리도 음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바람직한 전통 음아그이 보편화, 세계와에 힘써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억지 이론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무수한 해외공연에서 우리의 전통 음악이 외국 음악 전문가들에게서 받는 갈채가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가 잊고 사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곳을 돌이켜봄으로써 가장 자연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음악, 꾸며지지 않고 지휘하지 않고 마음길 가는 대로 장단에 맞춰 흘러가다 보면 어느덧 감동의 바다로 이어지는 그런 음악이 바로 우리 한국 음악이다. 이러한 음악과 문화가 오늘날 대외적으로는 민족 음악 교욱의 부재와 사회적인 무관심으로 대중에게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우리 소리의 경우 대중성을 갖지 못하는 요소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오늘날에 맞지 않는 조선 시대의 어려운 한자말이나 용어로 노래한다는 것이다. 둘째, 창법 자체가 너무 어렵고 그에 따른 지도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셋째, 우리 음악은 물리적인 음파로 느끼는 소리가 아니라 철저한 경험 속에서 우러나는 심파로서 연주되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신적인 느낌을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학습의 과정이 너무 길고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 이것을 교육하는 우리 음악 교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 음악은 한국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가르쳐야 맛을 낸다. 그러나 현재 우리 실정이 이렇게 안되다 보니 여기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소년들은 우리 음악을 알고 싶어한다. 어느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누가 권유하거나 강제로 시키지 않더라도 70퍼센트 이상이 우리 음악을 알고 싶어하는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 음악을 약간 배운 청소년들은 대부분이 우리 음악을 신나고 즐겁고 소중한 것으로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선 많이 보여 주고 들려 주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인식이다. 서양 음악은 세련되었고 한국 음악은 후진적이라는 편견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 다음은 지도자 양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 음악을 잘 연주하고 잘 노래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한국 음악이 제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 음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과학적으로 체계적인 학습 방법을 통하여 한국 음악에 대한 자긍심과 세계적인 음악으로의 진취성을 심어 주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