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 - 김준호
둘째 마당 : 우리 소리는 힘이 세다
우리 음악이 걸어온 길
나라도 큰일에도 우리 음악을 쓰자
우리 음악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가 있다. 크게 나누어 옛날양반 사대부, 즉 지배 계층의 음악이 있고 일반 백성들 음악이 따로 있다. 양반들 음악을 보고 이름을 뭐라고 붙이냐 하면 바를 정 자를 붙여서 정악, 아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임금이 사는 궁중에서 주로 한다고 해서 궁중악, 궁중 음악이라고도 한다. 얼핏 우리가 아악이나 정악을 들으면 야, 지겹다 고 느낀다. 왜 그런고 하니 전부 효용 음악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자장가도 그렇듯이 그런 음악은 뭔가 목적을 가진 음악이다. 그러니까 그 목적과 관계 없는 지금 우리로서는 도통 알 수 없고 지겨울 뿐이다. 그러나 그 기능과 목적을 잘 알고 들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아악은 기능에 따라 몇 가지 종류로 나뉜다. 우선 첫 번째로 연례악이 있다. 이건 뭐냐 하면 궁중에서 연회가 있을 경우 임금이 입장할 때 쓰는 음악이다. 연회를 하는 거니까 빠르고 신나지 않겠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건 오늘날로 치면 국가 의전 행사용 음악, 대통령 입장 음악이다. 지금 우리 대통령들은 어떤 음악에 맞추어 입장하는가?
"대통령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가 이렇게 말하면 3군 군악대가 일제일 나팔로 연주한다. '뺨뺘밤뺨 뺨뺨뺨 빠밤뺨뺨 ...' 세 살 먹은 아기가 들어 보아도 이 음악은 절대 우리 음악이 아니다. 이 음악의 제목은 대통령 찬가라는 것인데, 사실 우리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왜? 이런 식으로는 입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 특히 양반들은 느릿느릿한 음악을 좋아했다. 소나기가 가자기 쏟아져 경우에도 양반들은 뛰어갈까, 걸어갈까?무슨 일이 있어도 걸어간다. 구한말에 조선에 들어온 영국 외교관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간편한 복장으로 땀을 흘려 가면 열심히 테니스를 치고 있는데,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고종 황제가 혀를 차며 점잖게 한마디 한다.
"허허,영국이 신사 나라, 양반 나라라고 하더니만 저 사람들 보니 그게 아니군? 하인들이 시킬 일이지, 왜 저리 땀 흘리며 난리란 말이냐?"
고종 황제의 눈에는 공을 따라 요리조리 촐싹 거리며 몸을 재게 놀리는 모양이 영 마뜩찮았던 것이다. 이렇게 양반들이 어릴 때부터 양반은 절대로 뛰어다녀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받아 왔다. 임진왜란 때 우리 왕자들이 포로로 잡힌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제 발로 안 뛰고 내시가 업고 뛰다가 죄다 잡힌 것이다. 이 점은 이해하고서 옛날 우리 임금의 걸음걸이가 거동을 한 번 보자.
상-감-마-마-납-시-오.
이 말투도 한 자 한 자씩 대단히 느리게 말하지만, 임금의 발걸음은 더욱 느리다. 그러니 음악도 아주 느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임금이 입장하는 데만도 20분이 넘게 걸린다. 오늘날 우리가 보면 우스꽝스럽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코 우스운 겡 아니다. 옛날에는 임금님의 행차처럼 진지한 것은 없었다. 지금 그것을 우습게 보는 이유는 우리가 서양식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음악이 펄펄 살아 있는데 왜 우리가 서양식으로 의식을 거행해야 할까? 어떤 이는 우리 음악을 어디다 써먹을까를 물어 보는데, 얼만든지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클린턴 대통려이 방한할 때 써도 된다. 김포공항에 내리자 마자 옛날 임금의 발걸음에 맞추던 음악을 떠억 하니 연주하면서 "느릿느릿 하게 따라오시지요." 하면 감히 작은 나라라도 함부로 얕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정치를 갖고 자랑할 것인가, 또는 경제를 가지로 자랑할겠는가?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디다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문화라는 게 살아 있다. 이런 음악을 보고 뭐라고 하냐면 연례악이라 하기도 하고, 또 모일 회자를 붙여서 회례악이라고도 한다. 그 다음에 제례악이 있다. 지구상에 제사를 지내면서 음악을 연주하는 나라는 우나라가 유일하다. 제례악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공자. 맹자께 제사 지내는 문묘 제례악이 있고, 전주 이씨들에게 지내는 종묘 제례악이 있다. 여기서 문제 하나. 우리나라 무형 문화재 1호가 뭘까? 상식으로 꼭 알아두자. 바로 종묘 제례악이다. 요즘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 음악으로는 서양식 음악을 쓴다. 이것도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쓰면 얼마든지 우리 음악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 악기 중에서 제일 슬픈 악기로, 사람 목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아쟁이라는 게 있다. 가야금처럼 바닥에 놓고 연주 하는 현악긴데, 가야금과는 달리 손가락으로 퉁기는 것이 아니라 활을 가지고 켜서 소리를 낸다. 이 아쟁으로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 음악을 연주한다면 그야말로 잘 어울릴 거다. 돌아가신 순국 선열들은 아마 순국의 보람이 있구나 하면서 무릎을 치실 것이다. 그 다음 군인들의 행진할 때 연주하는 음악이 있다. 흔히 우리나라에는 군악대가 없었다고들 알고 있는데 사실은 군악대가 있었다. 옛날에는 군악대가 아니라 취타대라고 했다. 요즘 우리 군인들은 서양식으로 걷는다. 보람 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하는 군가를 부르면서 행진하다. 그런데 옛날 우리 군인들은 명일금하대취타 - 하는 곡에 맞춰 느릿느릿 행진했다. 이 느릿한 걸음걸이가 우리 군인들의 제일 씩씩한 걸음걸이다. 이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지구상에서 어느 정도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군인들의 의식을 행할 때 느리게 걷는다. 빠르게 걸으면 오히려 경망스럽다고 한다. 영국 군인들이나 러시아 군인들은 결코 빨리 걷지 않는다. 영국 왕국을 경비하는 군인들은 근무 교대를 할 때 30분씩이나 걸린다. 그러니 느린 걸음을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전쟁할 때만 몸을 빠르게 놀리면 되지,의식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양반들의 금지곡과 인기곡
그 다음 양반들이 하는 성악 형태를보고 무엇이라고 할까? 바를 정 자를 놓고 붙여서 정가라고 한다. 양반들 보고 노래 한 자락 하시지요 하고 이야기하면 양반들이 절대 부르지 않는 금지곡이 있다. 첫 번째 입이 빨리 돌아가는 것은 절대 안 부른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연평 바다에 어어어 얼싸 돈바람 분다 얼싸 좋네 아 좋네 군밤이요 에헤라 생율밤이로구나
이런 건 절대 안 부른다. 몸 동작도 느릿느릿한 양반들이 방정맞게 입을 재게 촐싹거리겠는가? 템포가 빠른 곡들은 모두 양반들이 불러서는 안 되는 금지곡이다. 또 양반들은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 들어가는 노래는 안 부른다.
아니,아니노지는 못하리라...(기쁨)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슬픔)
이런 것들은 절대 금지곡이다. 유교 사상은 원래 감정의 억제를 중시했다. 유교 사상은 사실 서양의 학문이나 종교보다 훨씬 이성을 중시하고 논리를 따지는 사상이다. 흔히 서양의 과학이 냉철하다고 하지만, 감정을 배제하는 데는 유교 사상을 따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유교에서는 예로부터 예를 앞세운 수직적인 질서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예의 사상은 아득한 옛날 지금으로부터 3천 년전인 중국 주나라 때 생겼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힐 드러내는 것은 서로 평등한 관계일 때에야 가능하다.
난 너를 좋아해,너는 어떠니? 너 정말 예쁘구나!
이건 친구끼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상하 질서가 분명한 사회에서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의사를 표명하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감정을 수선화에 빗대거나, 자신의 외로움을 열린 사립문에 비유하는 게 고작이다. 노골적인 감정 표현은 예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러한 예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양반의 체모, 체통이 생겨났다. 목숨보다 체통을 중시하는 양반 사대부들은 죽으면 죽었지 감정이 노골적으로드러나는 노래는 못 부른다. 그래서 이런 노래들도 양반의 금지곡이다. 그럼 양반의 인기곡은 뭘까? 양반들은 뭘 즐겨 불렀을까? 빠르고 솔직한 노래는 금지곡이니까 느리고 은근한 노래였을 게다. 그게 바로 시조였다. 양반들은 시조를 노래로 읊는 것을 즐겼다. 이를테면 황진이가 지었다는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같은 느릿하고 청아하게 불렀다. 따라서 청---산---리--- 이런 식으로 부른다. 노래 세 글자까지 하는 데 20초가 넘게 걸린다. 언제 끝날까? 청산리 벽계수야 까지 하려면 몇 분이 걸릴지 모른다. 이것을 갑자기 '문화 유산의 해' 다 해서 우리 학생들한테 가르쳐 보자. 지금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을 붙잡고 앉아서 청---산---리--- 이렇게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 기절해 버린다. 좀 음악을 배웠다는 애들은 선생님, 쉼표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하지만 우리 음악에는 쉼표가 없다.알아서 눈치껏 숨을 쉬어야 한다. 쉼표가 있다고 해서 숨을 쉬고,쉼표가 없다고 해서 숨을 안 쉬는 게 아니다.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음틀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요즘 아이들은 이것을 소화할 위장이 없다. 우리 학생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건 랩이다. 따라서 청---산---리--- 는 안되고, 얼마 전에 육각수라는 대중 가요 가수들이 부른 흥보가 기가 막혀 같은 노래처럼, 마치 원주민들이 주문 외우듯이 탁탁 끊어 가면서 빠른 랩으로 청산리벽계수야수이감을자랑마라 이렇게 해야 알아듣는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기성 세대라는 30대 이상들을 잡고 이런 노래를 시켜 보면 따라하느냐, 역시 못한다. 30대 이상들은 머리속에 뽕짝 음률이 들어 있다. 나는 뽕짝이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소용없다. 확인해 보면 역시 뽕짝이다. 한때 성주풀이나 새타령 같은 우리 소리를 뽕짝처럼 불러 널리 유행한 일이 있었다. 곡조는 비슷하지만 창법은 우리 고유의 창법과 전혀 달랐다. 우선 센박이고 아니고, 기음도 섞이지 않았다. 그저 우리 노래에서 곡조만 따와 가지고 부른 것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 음악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되어 있다. 그래도 우리 음악을 말하는 시간이니까 이 청---산---리--- 세 글자까지만 한 번 해보자. 이 양반 음악을 해보고 야,이거 내가 숨이 안 가쁘고, 이런 노래가 정말 잘 되는구나 싶으면 양반 핏줄이고 아니면 그저 그렇고 그런 핏줄이다. 이런 양반들 음악이 소위 말해서 정악이라는 음악이다. 정악이란 쓰임새가 정해져 있고,감정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이성적인 음악이다. 그러나 느리다고 해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음악이 지겨운 음악인 것은 아니다. 이런 음악을 접할 때는 오디오를 통해서 들으면 맛이 안 난다. 무슨 음악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정악이 그렇다. 하지만 공연장에 가서 직접 들으면 야! 정말 장중하고 멋있는 음악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이런 음악이 바로 정악,양반 사대부의 음악이다.
고수를 우습게 보지 말라
양반들의 음악에 비해 일반 민중들의 음악은 감정표현이 훨씬 자유스러웠다. 민중들의 음악은 민악, 속악, 향악, 민속악이라 부르는데, 삶의 질박한 소리들을 꾸미지 않고 진솔하게 자유롭게 표현한 각 지방의 소리 들이다. 남도 예술의 극치인 민족의 구비 서사시 판소리, 그리고 판소리에서 파생되어 나온 장르로 판소리식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산조 ,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판소리나 소리를 하는 병창, 판소리를 여러 명이 역할을 나누어 연주하는 창극, 우리의 절대 신명인 풍물, 사물 등 이름만 들먹여도 신명나는 많은 민속 에술들이 음악과 넘나들고 춤과 넘나들면서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시퍼렇게 살아있다. 이렇게 살이 있는 우리 민중의 음악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음악의 판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1고수, 2창, 3청중 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제부터 이 말을 하나씩 설명해 보자. 우선 고수를 보자. 고수란 북이나 장구를 치는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 음악에서 고수는 반주자라고 할 수 있다. 고수는 꼭 창하는 사람만을 반주하는 것이 아니라, 가야금, 해금, 대금 등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반주를 넣어 준다. 서양 음악의 경우에는 이 반주자를 그다지 크게 취급하지 않는다. 서양 음악의 반주자는 그냥 악보대로 연주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수라하여 반주라를 굉장히 크게 취급한다. 이 반주자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 우선 고수 고유의 반주자 기능을 한다. 고수의 반주에 따라서 그날그날 음악의 분위기가 천지차이로 달라진다. 고수의 기분이 조금 좋을 때면 원칙대로 창을 하는 사람의 운에 맞게 딱딱 쳐준다. 그래서 창 하는 사람과 듣는 관중이 모두 한껏 흥이 나게되다. 그러나 고수의 기분이 약간 처지면 공연이 위태로워진다. 만약 함께 식사라도 할 때 연주자가 조금 나은 음식을 먹고 고수에게 덜한 음식으로 대접했다 싶으면 반주가 엉망이 될 수 있다. 공연자의 소리에는 아랑곳없이 치고 싶은 대로 치면서 어깃장을 놓아 버리고 만다. 그래서 창 하는 사람들은 고수가 굉장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는 말을 뼈저리게 느낀다. 실제로 스승이 제자에게 창을 직접 가르칠 때 스승은 고수 노릇을 한다. 어린 제장가 창을 하면 스승이 반주를 해주면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고챠 준다. 그래서 창 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고수 앞에서 머리를 숙이게 된다. 나만 해도 항상 함께 다니며 고수 노릇을 해주는 손심심 선생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 고수는 또 연출자 기능도 한다. 고수는 공연 전체를 연출한다. 공연 중에 어떤 부분에서 박수가 나와야 되는데도 객석에서 박수가 나오지 않으면 고수가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박수를 치도록 유도한다.
아따, 두 손 뒀다 뭣 하시오! 박수 좀 치시오
이런 식이다. 또한 고수는 관객석을 넘나들기도 하지만 소리판에 직접 끼어들기도 한다. 소리꾼이 악을 쓰다가 목이 바짝바짝 마르겠다 싶으면 북통을 딱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킨 다음 너스레를 떤다.
아,물 한 잔 먹고 해야 쓰겄네.
이렇게 고수가 한 번씩 툭툭 던지는 말투나 너스레는 판을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몰고 가서 소리꾼이 한숨 돌릴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고수는 또한 상대자 기능을 한다. 소리꾼이 소리를 할 때 대목대목마다 얼쑤! 잘한다! 하면서 흥을 북돋워 준다. 이렇게 해서 청중의 추임새를 유도하는데, 추임새는 관해서는 잠시 뒤에 청중 이야기를 하면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자. 서양 음악에서는 이런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 이외에 반주자들이 말을 한다거나 참을 수 없어 재채기를 한다면, 그건 큰일날 일이다. 반주자는 반주 이외에 아무짓도 할 수 없다. 반주자를 정하는 이로 대개 성악가가 한다. 성악가가 대학교수면 피아노 반주자는 대개 자기 제자나 조교 같은 사람을 쓴다. 그러나 우리 고수들은 당당하게 관객들한테, 그리고 소리꾼한테도 막 넘나들면서 공연 진행을 주도하는 연출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추임새는 청중의 몫
1고수, 2창, 3청중. 세 번째가 청중이다. 2번 창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청중부터 이야기하자. 우리 음악에서 청중은 어떤 역할을 할까? 고수가 하는 역할은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다. 고수는 창 하는 사람의 상대자 역할도 하고, 연출자 역할도 하고,반주자 기능도 한다. 그렇다면 고수가 1번인 건 알겠는데 청중은 왜 들어 갈까? 청중이 무슨 공연을 한다는 걸까? 청중도 공연을 한다. 청중은 고수와 더불어 노래한는 데 받침 역할을 해준다. 서양 음악의 청중과는 달리 우리 음악에서는 청중이 공연과 전혀 불리된 사람들이 아니고 항상 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구체적으로 청중이 참여하는 게 뭐냐 하면 추임새를 넣는 것이다. 서양 음악은 듣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감상해야만 백점짜리 관객이 된다. 그런 것이 서양의 관람 예절이다. 하지만 우리 음악의 관객은 조용히 감상만 하다가는 빵점짜리 관객이 되고 만다. 추임새를 할 수 있어야 진짜 관객이요 청중이다.또 우리 음악은 이런 추임새를 넣어 가면서 공연을 감상해야 흥이 나고 재미가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지금 서양식 관람 예절에 물이 들어서 공연을 보러 가서도 전부 입을 딱 다물고 정중하게 앉아 있다. 이건 우리 예술에서 오히려 공연을 방해하는 일이다. 관객이 가만 앉아 있기만 하면 연주자도 신이 안 난다. 에이, 오늘 관중은 영 재미가 없군,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출연료나 받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한다. 관객으로서는 본전도 못 뽑게 되는 순간이다. 관객이 공연에 동참해서 추임새를 열심히 넣어줘야 연주자도 신이 난다. 그래서 공연장에 갔을 때는 조금 안 맞아도 추임새를 많이 넣어 줘야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인 추임새란 대체뭘까? 추임새란 추켜 세워 준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그 정의를 내려보면, 연주자나 소리꾼에게 흥을 돋워 주기 위해 넣는 탄성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추임새도 지방마다 다 다르다. 경기도를 포함해서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에서 쓰는 추임새는 얼쑤다. 그래서 봉선탈춤, 강령탈춤, 산대놀이 등 탈춤을 보러 온 청중은 이 장단이 나오면 얼쑤! 얼쑤! 얼쑤! 이런 것을 넣어 줘야 한다. 그래야만 광대가 펄떡펄떡 신이 나서 더 춤을 잘 출 수 있다. 이런 일이 바로 청중의 몫이다. 이렇게 청중들이 추임새를 넣어 줘야 판이 훨신 살아나는 것이다.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 지방에서는 흔히 타령이라는 장단을 많이 쓴다. 타령의 장단과 장단을 이어 가는 사이에는 비는 공간이 생긴다. 이 빈곳에 관객과 고수가 추임새를 넣어준다. 추임새를 얼마나 잘 해주느냐에 따라 그날 공연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잘 안 맞는 추임새를 할 경우 그것은 연주자나 소리꾼을 도와 주는게 아니고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다. 이 북부 지역의 추임새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뭐가 됐는고 하니 이싸, 아싸! 하는 게 되었다. 이것도 일종의 추임새다. 하지만 일본에서 생긴 말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아싸! 아싸! 아싸! 하는 것은 자제해야 마땅하다. 우리 어감상으로 보더라도 얼쑤! 하고 아싸! 하고 어느 쪽이 더 무게가 있을까? 당연히 얼쑤! 가 훨씬 무게가 있어 보인다. 역시 우리에게는 우리 추임새가 맞는 것이다. 전라도로 가면 추임새가 전라도 사투리로 변한다. 얼쑤 하던 것을 헐씨고! 하고 이렇게 전라도 사투리로 해주어야 맛이 난다. 헐씨고 좋다, 좋지, 잘 헌다! 이것이 전라도의 추임새다. 잘한다가 아니고 잘 헌다 이다. 그렇지, 암믄, 어이! 하는 것도 있다. 경상도 지방에 가면 경상도 사투리를 써야 한다. 경상도에서 는 잘 한다-- 하면서 뒷부분을 쭉 뽑아 올려 주어야 한다.
잘 한다-----(자진모리 2장단 정도) 아이고 누집 아들이고---- 얼씨고 조오타----
경상도 추임새는 뭐든지 쭉 뽑아 주면 무조건 좋은 추임새가 된다. 추임새도 지방 사투리를 제대로 맞춰야 한다. 전라도 판소리를 한참 하는데 거기다 대고 잘 한다--- 하면 흥만 깨기 십상이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태백산맥을 따라 들일을 한다든지,나물을 캔다든지,산에서 일을 할 때는 독특한 추임새를 넣는다. 이후후후후---- 하는 아주 높은 고주파의 가성이다. 이 소리를 산 노래(어산령, 사영이노래, 나무꾼노래)의 중간중간에 추임새로 넣는다. 산에서 일할 때는 박자에 맞춰 노래하기가 더 어렵다.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면 걷고 일하는 것만도 힘든데, 노래하면서 박자까지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박자 없이 노래를 하기 때문에 강원도나 경상도 지역의 산악 지방에서는 독특한 추임새가 발달했다. 하지만 이렇게 추임새가 독특해진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한 백년이나 이백 년 전에는 산에 호랑이가 있었다. 곰도 있었고, 멧돼지도 있었다. 이 위험한 산짐승들이 들판에서 일하거나 산에서 일할 때 사람에게 접근을 한다. 사람들한테 해를 끼치는 일도 적잖았다. 그래서 이렇게 높은 고주파의 소리를 규칙적으로 계속 내줌으로써 산짐승들의 접근을 막는다느 의미가 있었다. 또 조용한 산중에선 큰 소리보다 이렇게 높은 소리가 더 멀리 퍼져 나간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를 전하거나 위치를 확인하는 데도 이만한 신호가 없었다. 태백산맥의 첩첩산중은 강원도만이 아니라 경상북도에까지도 이어지므로 경상도에서도 태백산맥 언저리에서는 이런 식의 추임새를 쓴다. 이렇게 추임새를 넣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추임새가 좋다고 흥을 돋우는 것이라 해도 상황을 보아 가며 해야 한다. 좋다,좋지 이것도 추임새로는 좋지만,슬픈 대목에선 좀 곤란하다. 특히 호남 지방의 남도 소리에는 그 내용이 슬프고 구성진 대목이 많다.
불쌍허네, 불쌍허네, 곽씨 부인이 불쌍허구나!...
이런 대목을 판소리로 하고 있는데, 여기다가 좋다! 이렇게 추임새를 넣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불쌍한 영감아, 가지를 마오...
구슬프게 창을 뽑는데 자기 딴에는 흥을 돋운다고 잘 헌다! 한다면 판이 어떻게 되겠는가? 추임새를 넣을 때도 분위기 파악이 중요하다. 이제 추임새가 뭐고 어떻게 넣는 건지는 알겠다. 그러면 추임새는 언제 넣어야 하나? 소리꾼들이 판소리를 하면서 추임새 넣으라고 표시를 해준다면 좋겠는데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가만히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틈이 보인다. 그 틈에 추임새를 넣는 것이다. 제때제때 잘 들어가야 진짜 배기 추임새가 된다. 이렇게 우리 음악의 청중은 서양 음악의 청중에 비해 언론의 자유를 많이 누릴 수 있다. 추임새를 넣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유를 퍼부을 수도 있다. 탈풀판 같은 곳에서는 못된 역할을 하는 춤꾼을 향해 야유를 퍼붓는다. 이렇게 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다. 예술의 기능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또 우리 음악에서는 서양 음악처럼 한 곡 한 곡이 모두 끝난 뒤에 박수를 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도 박수를 칠 수 있다. 흥이 나면 자연스럽게 표출하면 되고, 욕하고 싶으면 욕하며서 마음대로 스트레스를 푸는게 바로 우리 음악이다
명창이 갖춰야 할 조건
마지막으로, 창 하는 사람을 이야기해 보자. 노래하는 사람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냐면 첫 번째 인물새가 있어야 한다. 인물이라니까 뭐,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인물 좋은 사람은 으쓱대고 인물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풀이 죽으라는 그 인물새가 아니다. 얼굴이 잘 생기고 어떻고가 아니라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창 하는 사람은 예의도 바르고 지식도 많이 갖춘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우리 소리는 사람됨이 배어 나오는 그런 소리다. 사람됨은 부실한데, 소리 조금 배웠다고 건들거리거나 깝죽대면 소리가 크지 못한다. 아무리 솜씨가 늘어도 그런 소리에는 한계가 있다. 이걸 한자말로 재승박덕이라 한다. 재주는 있는데 덕이 없다는 뜻이다. 덕이 없는 재주는 어느 정도 발전하다가도 결국 벽에 부딪히고 만다. 이러한 내면의 인물됨을 갖추었을 때 우리는 넓은 광자, 큰대자를 써서 광대라고 부른다. 두 번째는 사설이다. 방금 전에도 재승박덕이라는 한자말을 썼지만, 판소리 가사에는 유독 한자말이 많이 나온다. 이 한자말 모두모두의 제 뜻을 알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소리를 공부하지 한자를 공부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판소리에 나오는 한자어의 발음만 배워서는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가사의 뜻을 알고 소리를 하는 것하고 뜻을 모르고 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소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공부 또한 열심히 해야 한다. 더구나 판소리 같은 것에서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많이 나온다. 따라서 역사에도 해박해야 판소리의 제 맛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춘향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또 자제 도련님이 연광은 이팔인데 얼굴은 관옥이요, 풍채는 두목지라 이청련의 문장이요,왕우군의 필법이라
여기서 두목지가 당나라의 시인이고, 이청련은 역시 당나라의 시인 이백을 가리키는 이름이며, 왕우군이 중국 동진 시대 명필인 왕희지임을 알지 못한다면, 이 대목이 이몽령의 자질이 뛰어남을 말하는 내용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대목을 제 맛을 내서 부를 수 없다. 수궁가에는 진황 만리장성 쌓듯... 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진시황이 만리장성 쌓은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면 이 대목을 제대로 불러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 흥보가에 나오는 이런 구절을 보자
초패왕이 장한 칠 제 삼일량만 가졌으며, 한신이 진여 칠 제 배수진이 영웅이라...
이런 대목이 나오는데, 초나라와 한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중국 고사를 알지 못하면 장한과 진여가 사람 이름인지 땅 이름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세 번째는 득음이다. 소리를 얻는다는 뜻인데, 목소리를 틔워야 한다는 얘기다. 흔히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목에서 피가 난다는데 정말인가, 하고 묻는 이들이 많다.피가 나긴 난다. 나는 데 일반인들은 피를 어떻게 내는 식으로 알고 있냐면 양동이로 쏟는 줄로 상상한다. 폭포수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 푸푸하고 피가 터져오는 줄 안다. 사실 이렇게는 안 나온다. 성대를 계속 쓰다 보면 성대의 실핏줄이 조금씩 터져서 양치할 때 피가 섞어 나온다. 이 피를 세 말 흘려야 명창이 된다고 한다 큰 석유통 세 개만큼 피를 흘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득음은 아주아주 어렵다. 우선 처음 10년 동안에는 한 선생님 밑에서 제를 받는다. 동편제, 서편제 할 때의 그 제 인데 ,우리말로는 바디 라 한다. 이것은 소리의 큰 맥으로,소리 전체의 분위기가 기상이 있고 우렁차고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듯한 힘찬 소리는 동편제이고, 서녁에 해가 지는 아련함으로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하고 듣는 이의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소리는 서편제이다. 이 두 가지 제의 장점을 모은 것은 중고제로, 그 가르치는 선생님마다 제가 각기 다르다. 우선은 자기 목에 맞는 제를 잘 선택해야 한다. 그 다음 10년은 더늠이라 해서 자기가 가진 바디 외에 다른 선생님의 주특기 대목을 배우러 다닌다. 혹시나 나중에 이 더늠을 이용할 때는 이 대목은 000선생님의 주특기 대목인데, 흉내를 한 번 내보겠습니다 하고 출전을 밝히고 들어간다. 나머니 10년은 독공이다. 수시로 산에 들어가 백일 공부를 하며 혼자서 목이 터져라 소리 공부를 한다. 이 기간에는 몇 시간을 불러도 목이 쉬지 않고, 한 번 내지르면 멀리까지 퍼져 나갈 수 있는 성량을 키운다. 말이 쉽지 이렇게 기본 30년의 엄청난 세월을 요구하는 게 소리 공부다. 그래도 득음은 할동말동 했기에 오죽했으면 소리꾼의 길을 가도라 불렀을까? 첫째로 인물새, 두 번째 사설, 세 번째 득음, 네 번째는 뭐냐면 너름새 또는 발림이라는 것이다. 유심히 본 사람은 알겠지만 판소리를 할 때는 꼭 부채를 손에 든다. 부채는 흥보 두들겨패는 몽둥이도 되었다가, 또 심봉사 지팡이도 되었다가, 또 심청이로 둔갑한다. 또 양손이 소리하는 데 어줍잖을 때 부채를 꼭 쥐면 저절로 힘이 새겨 복압이 세어진다. 이 부채를 가지고 판소리의 줄거리에서 내용상 꼭 연기가 필요한 부분에 적당하게 표정과 몸짓으로 효과를 극대화시켜 주는 것이 바로 너름새다. 판소리의 이 너름새를 억지로 서양식 용어에 끼워 맞춘다면, 마임 이라고 할 수 있곘다. 흔히 팬터마임이라고 부르는 마임이란 몸짓,제스처를 말한다. 하지만 마임이라고 해서 팬터 마임처럼 과정된 몸짓,큰 제스처,코믹한 표정 등 이런 것은 아니다. 판소리의 마임은 이보다는 훨씬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는 아무래도 몸짓 위주라기보다는 소리 위주로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채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적절한 몸짓을 취해 주면 판소리는 더욱 살아난다.
판소리와 탈춤은 민중의 저항 예술
1고수, 2창, 3청중이 한데 어울려 낳는 것이 바로 우리 민족 예술의 극치인 판소리다.흔히 판소리를 민요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서 그 차이를 지적하고 넘어가겠다. 우리 백성들이 옛날부터 쭉 불러 왔던 노래를 민요하고들 한다. 그런데 사실 일본에서 흘러들어 온 용어이다. 백성 '민'자 노래 '요' 자 쓰는 것인데, 원래 우리 조상들은 민요라 않고 뭐라고 했냐면 소리라고 했다. 그냥 소리라고 해도 다 통하지만, 이 소리도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팔도강산 전부 부르는 이름이 각기 다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옛날에 소리 해봐라 고 할 때 진소리 한자리 해봐라 했고, 호남 지방에서는 육자배기 한자리 해봐라 고 했다. 또 충청,경기도 지방에서는 경드름 이라는 말을 썼고 입구 지방에서는 소리를 염불 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것을 알기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양반들의 성악 : 노래 -시조,정가,가곡 백성들의 성악 : 소리 강원 남부,경상도 - 진소리 (길게 뽑아낸다) 메나리소리(산메아리 지르긋이 소리를 낸다) 전라도 - 육자배기 (호남의 여섯 박자 육자배기가 대표 통칭으로 쓰인다. 충청,경기도 - 경드름, 경토리 황해,평안도 - 염불(염불하듯이 목을 쓴다) 수심가(대표적인 소리가 통칭으로 쓰인 예)
그 중에서 호남 지역의 소리들을 중심으로 민간에 떠도는 설화나 ,민담, 전설들이 서사적으로 집대성되어 음률을 타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판소리다. 이 판소리는 언제 왜 생겨났는가? 이제 그것을 살펴보자. 16, 17세기에 우리나라는 엄천나 전쟁을 두 차례 겪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침입한 전쟁이고 병자호란은 청나라가 침입한 전쟁이다. 이 두 차례 전쟁만 해도 지긋지긋한데, 이 두 전쟁은 또 쌍둥이 전쟁이라서 임진왜란 몇 년 뒤에는 정유재란이 있었고, 병자호란 몇 년 전에는 정묘호란이 있었다. 그러니까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50년도 채 못되는 기간 동안 조선에서는 무려 네 차례의 큰 전쟁이 있었던 셈이니 50년 동안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다. 전쟁이 터지면 다들 고생하지만, 가장 고통을 겪는 것은 일반 백성들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임금이었던 선조는 평복을 입고 야반도주해서 순식간에 의주까지 도망쳤지만, 남은 백성들은 왜군들에게 몹시 시달렸다. 병자호란 때도 임금과 신하들은 적군이 코 앞에까지 오도록 대책도 못 세우고 싸워야 한다, 말이야 한다는 놓고 말다툼이나 벌이는 동안, 백성들과 국토는 청나라 병사들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어디 그뿐인가? 전쟁의 피해는 전쟁이 끝난 뒤가 더 크다. 50년 간 전쟁을 치르느라 국력을 쪼그라들었고, 백성들은 살 길이 막막했다.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부자나 관리들은 백성들을 더욱 못살게 굴었다. 17세기 내내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다 여기저기 떠돌며 걸식하는 유민이 되었고 일부는 화적이 되어 범죄를 저질렀다. 이렇게 고통을 겪는 백성들이 정부를 고운 눈길로 볼 리가 없다. 그래서 정부를 바라보는 백성들의 눈초리도 크게 달라졌다. 체제 부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전처럼 고분고분 따르지는 않게 되었다. 이러한 민중들의 각성으로 생겨난 게 체제 반항 예술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기에 이런 고통을 겪게 되었는가? 이런 물제에 눈을 뜬 민중들은 겉으로는 양반이 지배하는 유교 체제에 순종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런 백성들의 속 마음이 표출된 것이 바로 민중의 예술이었다. 백성들은 탈놀이와 꼭두놀이, 판소리를 통해서 제도적인 모순을 신랄하게 꼬집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소리가 발달한 전라도를 중심으로 생겨난 판소리다. 판소리는 바로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다. 뭐? 판소리가 반항의 예술이라고? 이런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의문을 품는 것도 사실 당연하다. 겉으로만 보면 판소리의 주제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유교 윤리를 노래 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큰 주제 말고 조그만 주제들이 그안에 있다. 이를테면 백성들은 흥보가 가난에 찌들어 사는 모양의 가난타령에 모두 웃었고, 박통 속에서 쌀이 나오는 박타령에 입맛을 다셨다. 효녀 심청의 이야기는 수백 번을 들어 다 아는 내용이지만, 소리꾼이 쥐어짜는 슬픈 대목에 아예 목이 터져라 꺼이꺼이 우는 청중이 다반사였고, 하층민의 처지인 춘향이가 끝까지 절개를 지켜 이동령이 암행어사 출도를 할 때쯤이면 아예 오줌을 찔끔거리는 청중도 있었다. 이렇게 판소리 주인공들의 삶은 백성들 자신의 삻과 동떨어지지 않았기에, 그리고 모두들 그와 비슷한 희망들을 안고 살았기에 백성들은 거창한 주제보다는 자그마한 토막소리들을 더 좋아했다. 판소리와 더불어 또 뭐가 생겼는고 하니 탈춤이다. 제 나라 백성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던 정부를 고운 눈길로 보지 않게 되니까 그 동안 지배층이었던 양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백성들의 눈에는 양반들도 허약한 존재로 보였다. 신분 체제가 무너지기 사작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양반 세상, 대놓고 양반들한테 욕을 했다가는 무슨 보복을 받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백성들은 탈을 쓰고 양반에게 욕을 한다. 그러면 양반들도 딱히 꼬집을 수 없이 대충 넘어간다. 탈춤을 추고 난 다음에 탈은 불에 태워 버린다. 그래서 생긴 말이 뒤탈을 없앤다 는 말이다. 그밖에 꼭두각시 놀음도 있다. 이것도 탈춤과 비슷하게 백성들의 애환을 담은 것인데, 탈을 쓰고 하느냐 꼭두라는 인형을 가지고 하느냐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일반 백성들이 양반하고 갈등이 있을 땐 탈을 만들어서 변색도 하고 변성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탈의 모양을 그 동네에 있는 못된 양반의 얼굴과 딱같이 만들어 탈춤을 추는 거다.
이 탈에서 나온 게 바로 바가지다. 집안끼리 사이가 안 좋을 경우에는 바가지를 사용했다. 서로 원수 사이인 박씨 가문의 종손과 김씨 감문의 종손이 만난다. 두 사람은 표주박을 딱 잘라서 바가지 두 개를 만든다. 여기다 술을 담아 마시고 나서 요놈을 강물에 두 개 다 띄운다. 모든 원한을 강물에 띄워 버리는 것이다. 조상들은 이럴 때 바가지를 사용했다. 또 며느리들이 시집 식구들한테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때도 바가지를 잘 활용했다. 며느리들은 어디서 시집살이의 스트레스를 풀까? 마을마다 여성 해방터가 한 군데씩 있다. 바로 우물가다. 우물가에서 이 바가지를 탁 엎어놓고 제일 미운 사람부터 이름을 댄다. 전라도 말로 머리를 마빡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노래가 시어미 마빡 뚝딱, 시할매 마빡 뚝딱, 시고모 마빡 뚝딱, 시누 마빡 뚝딱 하는 노래다.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바가지를 두들긴다. 그뿐인가? 바가지를 등에 집어넣고 춤을 추면 곱사춤이다. 이렇게 바가지의 용도는 아주 다양했다. 소리꾼이 부채를 너름새로 사용하는 것처럼 바가지는 일반 백성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적절한 소도구요 너름새였다. 게다가 바가지는 그 경쾌한 깨지는 소리로,또 우스꽝스러운 탈의 모앵으로 민족의 애환을 풀어주는 고마운 스트레스 해소용 기물이었다. 이렇게 판소리와 탈춤과 꼭두극은 힘 없고 빽 없는 백성들이 생활을 노래하고 한풀이하는 데서 생겨나고 성장했다. 이 민중의 음악은 이제 양반 사대부의 음악보다 훨씬 더 우리 음악을 대표하게 되었고, 국제적으로도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판소리는 역시 전라도
세게에서 혼자 하는 노래로 가장 긴 것은 단연 판소리다. 서양 사람들이 즐기는 오페라는 수십 명이 출연해서 각자의 역할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막이 바뀔 때마다 노래를 많이 하는 주인공들이 바뀐다. 왜냐하면 서양의 창법은 두 시간 이상을 하게 되면 목이 아파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노래를 많이 하고 따라서 주인공들도 막마다 바뀌는 것이 상식이다. 또 관객들도 으레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판소리는 혼자서 남녀노소, 군중의 역할을 모두 다 해낸다. 소리꾼 한 사람이 여럿의 몫을 하는 만큼 길이도 엄청나게 길다. 판소리를 완청하는 데는 보통 대여섯 시간이 걸린다. 춘향가는 여덟 시간이고, 흥보가는 아홉 시간이다. 언젠가 프랑스 사람들이 뭣도 모르고 파리에서 우리나라 소리꾼을 초청해서 춘향가의 완창을 부탁했다가 여덟 시간 동안 그곳 관객들이 화장실도 못가고 혼이 난 일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추임새를 넣는 건지도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었을 테니 소리꾼도 답답해서 덩달아 혼이 났을 게다. 이 판소리가 18세기에 인기를 끌면서 악기를 가지고 판소리식으로 연주한 것이 생겼는데, 그게 바로 산조다. 그 다음에 노래를 판소리식으로 하는 것을 병창, 여러 명이 꾸며서 공연하는 것을 창극, 이런 식으로 판소리는 가지를 쳐나간다. 이렇게 우리 음악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크게 나누어 양반들 음악한 덩어리하고 일반 백성들 음악 한 덩이가 있는데 이게 합해져서 바로 우리 힘을 이룬다.그만한 음악적인 힘과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엄청나게 긴 판소리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엄청난 에술을 낳는 비결은 바로 풍부한 지역성에 있다. 판소리를 할 때는 어느 지역 말씨로 해야 맛이 날까? 전라도 말로 해줘야 맛이 난다. 판소리를 서울 말씨로 한다면 이거 상상만 해도 못 들어 준다.
흥부 있니? 아,형님 오셨어요 형이아, 문 좀 열어 줘.
이렇게 똑똑 떨어지는 서울 말씨로 해서는 못 듣느다. 그렇다고 경상도 말씨로 판소리를 한다면 더 못 듣는다.
그래갖고 놀부가 몽딩이를 들고 나와갖고 동생을 개 잡듯이 두들겨패는데, 헹님, 한 번 봐주이소, 한 번 봐주이소. 이것도 영 어울리지 않는다. 역시 판소리는 전라도 말씨로 해야 한다. 하루는 제 동생 흥보를 부르는디 와가리 성음을 내야서 네 이놈 흥보야 흥보 이 소리 듣고 나오더니마는 아이고, 형님 부르셨습니까? 오냐,불렀다. 네놈은 허구헌 날 꼬바리 손이나 집어넣고 관대가리나 둘러쓰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실넘실 다니다가
내방 출입은 자주 하야 자식 새끼는 도야지 물똥 싸득기 움쭈루루 놔놓고 허구헌 날 내 재산만 축을 내고 있으니 내 두 눈꼬랑댕이가 시려서 못 봐주겠어. 오늘은 니 처자 권속들을 데리고 나가도록 하여라.
이렇게 해야만 판소리의 제 맛이 난다. 판소리의 제격은 전라도다. 지역성을 얘기했는데, 정치에서는 지역성이 강조되면 안되지만 우리 예술에서는 지역성이 강조 되어야 더욱 풍부해지고 생생해진다. 정치에서 지역성은 독약이지만 우리 음악에서 지역성은 보약이다. 우리 노래는 언덕 하나 넘고 시내 하나 건널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각 지역의 특색에 맞도록 조금씩 변형되면서 그 내용이 점차 풍부해지는 거다. 이렇게 언덕 하나,시내 하나 차이로 달라지는데 하물며 산맥을 넘고 큰 강을 건너면 말할 것도 없다.그래서 팔도강산이 모두 제각기 특색을 지녔다. 저 남쪽 지리산 부근엘 가면 경상도와 전라도가 맞닿은 곳이 있다. 경상남도 하동과 전라남도 구례를 가르는 강이 섬진강인데 폭이 좁은 데 가면 50미터 정도밖에 안된다. 옛부터 다리를 놓고서 왔다갔다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도 말씨가 크게 다른 걸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한쪽에서 형님,어데 가십니꺼 하는 말이 짧은 다리 한나만 건너면 아따,성님 워디가쇼잉 으로 바뀌어 버리는 거다. 그러다 보니까 명창 되는 조건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지금 명창이라 할 때 맑은 목소리를 명창이라 할까. 탁한 목소리를 명창이라 한다. 특히 남쪽으로 갈수록 탁한 목소리를 명창이라고 한다. 걸쭉한목소리로, '흥보가 기가막혀 나가라는 말을 듣더니마는' 요런 식으로 해야 명창이다. 반면 중부 지방에선 어떤 소리를 명창이라 하느냐면 맑고 청아한 소리를 최고로 친다.
또 북부 지방으로 가면 날카로운 소리를 많이 쓴다. '왔구나, 왔소이다. 황천 갔던 배뱅이가 박수무당 입을 빌고 몸을 빌려 왔소이다.' 이런 식이다. 이은관 선생님이나 최창남 선생님, 이런분들 목소리는 굉장히 날카롭다. 그래서 요즘 북한의 경우에도 그 목소리를 그대로 이어받아 놓으니까 북한 예술단들의 공연을 보면 그것과 비슷하게 아주 간드러지고 새된 소리를 많이 쓴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지역성이 굉장히 발달해 있는 나라다. 지방마다 말씨와 억양,좋아하는 음식이 다 다르다. 아이 기르는법도 다르고 죽은 사람 매장하는 법도 다르다. 시신을 매장할 때 대개는 관까지 함께 묻지만, 충청도 지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시신을 관에 넣어 장지에까지 와서는, 관에서 시신을 꺼내서 묻고 관은 태워 버린다. 이렇게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생활 관습을 지방마다 약간씩, 혹은 크게 다르다. 그러니 노래와 같은 에술을 말할 것도 없다. 예술은 사람의 생활을 담아 내는 그릇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있으니 끝이 없는 아리랑
지방마다 우리 음악에 커다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노래인 아리랑엣도 볼 수 있다.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캄보디아에서 50년 이상 살고 있는 훈할머니의 아리랑 소리를 들으면서 누구나 가슴이 찡했을 것이다. 고향도 모르고 이름도 어렴풋하고 나이도 모르고 우리말도 다 잊은 훈 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증거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부르는 아리랑 이었다. 가늘게 부르는 그 아리랑 소리에 수만 가지 사연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아 듣는 이들은 갈끝으로 살집을 후벼 파는 아픔을 느꼈다. 아리랑이란 노래는 우리 민족이 고통을 겪을 때 주로 불렀던 노래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리랑은 하나의 노래가 아니다. 종류만 해도 엄청나게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리랑은 이런 것이다. 다른 나라 음악책에도 한국의 소리라고 해서 소개되어 있는 아리랑이다.한번 같이 불러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이 아리랑을 부르는 창법도 뒤가 센 서양식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앞이 센 창법이다. 호흡을 하고 나서 바로 성대를 거치는 게 아니고 입부터 먼저 만들고 나서 성대를 거친다.아리랑의 '아' 자도 소리를 내기 전에 먼저 입부터 만든다. '리' 도 마찬가지고, '랑' 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부르면 아, 리, 랑, 이렇게 한 글자 한 글자가 강조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널리 부르는 아리랑 노래에도 문제가 많다. 대부분은 서양식 창법으로 힘 없이 아리랑을 부른다.그리고는 이렇게 변명한다.
아리랑은 슬픈 노래니까 이렇게 부르는구나.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진짜 아리랑은 맥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정서로는 도저히 부를 수 없다. 자, 센박으로, 입을 먼저 만들어 가면서 힘차레 불러 보자. 각 마디마다 맨 앞 글자에 힘을 불어넣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노래인 아리랑은 그 가지 수만도 300가지가 넘는다. 각 지방마다 그 지방을 대표하는 아리랑이 있을 정도다. 호남 지방에는 그 유명한 진도아리랑이 있다. 진도아리랑은 이렇게 진행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리리가 났네 헤으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진다
이것이 1절인데 이래 가지고 몇 절까지 있느냐면 천오백 절까지 있다. 놀라겠지만 정말이다. 이렇게 많으니까 한참 가다 보면 별별 가사가 다 나온다. 또 세월이 갈수록 자꾸 거기에 또 가사가 보태진다. 그리고 시대를 풍자한 가사도 생긴다. 일제 시대에는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한 가사가 유행했다.
말깨나 하는 놈은 가막소로 가고요 인물깨나 생긴 년은 술집으로 가더라
또 며느리들만 부르는 가사도 따로 있다. 우리는 보통 가족끼리 한데 모여 사는데,아무래도 좁은 집에 살다 보니까 서로 부딪히는 기회가 많다, 그러다 보니까 주로 며느리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며느리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여성 해방터가 어디다?앞에서 우물가를 이야기했는데, 한 군데 더 있다. 빨래터가 바로 거기다. 여성 해방터인 빨래터는 동네 며느리들만 모이는 곳이다. 며느리들끼리 집합헤서 빨래 방망이를 딱 들고 누구 빨래부터 내놓느냐면 시어머니 빨래부터다. 요놈을 두들기면서 진도아리랑의 가락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떳네 떳어 무엇이 떳나 시어마시 오강 단지에 똥 덤뱅이가 떳네 시아버지 줄라고 명태국을 끓였더니 아이고야 어쩔거나 빗자리몽댕이로 삶았네
이렇게 가사들이 계속 생기고 이어지고 하니까 천오백 절도 적게 친 셈이다. 사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심지어 1970년대에 생긴 가사 중에는 외래어가 들어가는 것도 있다.
하모니카 불거들랑 님 오는 줄 알고 국죽새가 울거들랑 봄 오는 줄 알아라
이번에는 강원도로 한 번 가 보자. 똑같은 아리랑인데 강원도로 가면 너무너무 재미있게 변한다. 강원도는 알다시피 평야가 적고 산이 많다.그래서 강원도 여자와 결혼하고 나서 친척 어른들에게 인사하러 가면 꼭 안 빠지고 물어 보는 말이 있다.
자네 각시 다리를 잘 살펴보았는가? 우리 각시 다리가 왜요? 이 사람아, 강원도 여자는 예전부터 한쪽 다리가 짧다는디 잘 살펴보아야제.
이런 얘긴데, 웃자고 하는 농담이니까 이걸 정말로 알아듣고 아, 그렇구나! 하지 말기 바란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다른 지역은 밭이 평평한데 강원도는 경사진 밭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원도에서는 밭을 매러 간다 하면 전부 한쪽 다리가 비스듬하게 짧아진다는 우스갯소리다. 경사진 산비탈을 올라가면서 남쪽 지방 같이 할 수는 없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이렇게 부르며 올라갔다간 금세 숨이 가빠 헉헉거릴 거다. 그래서 강원도에서는 산에 올라갈 때 이 노래가 다른 식으로 발달했다.우선 박자가 빠르지 않고 느릿느릿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오오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먹장구름이 다 모여든다
정선아라리라는 노래다. 지팡이 짚고 산에 올라가면서 이렇게 느릿느릿 부르는 거다. 이런 식으로 해서 가사가 천 절이 넘는다. 모두 산에 올라가는 것만 있느냐 하면 내려가는 것도 있다. 급하게 내려올 때나 바삐 서둘러야 할 때는 엮음아라리라 하여 사설을 달아서 죽 늘어놓는 식으로 하다가 아라리가 들어가는데,그 짜임새가 정겹다.
태산준령 험만 고개 칡넝쿨 설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굽이치는 북원천리 허급지급 허위단심... 소리는 전라도,춤은 경상도
다음에는 경상도 지역으로 가보자. 경상도 지역의 대표 아리랑은 밀양아리랑이다. 밀양아리랑은 사실 경상도식으로 약간 거칠게 불러야 맛이 난다. 절간에 간 색시 모양으로 말랑말랑하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오 하면 맛이 안 난다. 경상도 말씨는 억양이 퉁명스럽다. 워낙 독특한 억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상도 사람은 어렸을 때 서울로 와서 30년을 살았어도 경상도 억양을 버리지 못한다. 이렇게 말시 자체가 고집스럽기 대문에 자기 스타일도 고집스럽게 지킨다. 이렇게 고집스러운 데다 경상도 사람들은 원래 표현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경상도 신랑하고 사는 여자분들은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경상도 남자들은 마음은 있어도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한다. 그래서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생겼다. 19세기 서울 남자들 사이에 유행했던 게 있었단다. 뭔고 하니 여자한테 연애를 걸 때 꽃을 던지는 관습이다. 이렇게 꽃 던지는 것을 보고 투화한다 고 말한다. 꽃 모가지에다 연애편지를 탁 달아서 처녀 자는 방에다 던지는 거다. '일곱 시에 물레방앗간 앞에서 만나요.' 그런데 경상도 남자가 그걸 보고 배워 자기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여자에게 꽃을 던진다, 여자에게 꽃을 던진다. 이렇게 외우면서 고향으로 내려오다가 추풍령 고개에서 돌에 탁 걸려 넘어졌다. 그때부터 그만 여자에게 돌을 던진다, 여자에게 돌을 던진다. 로 바뀌어 버렸단다. 상대방이 조금 좋다 싶을 때도 경상도 남자들은 표현력 자체가 없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나타내 보이지 못한다. 그래서 일단 두들겨팬다든지 돌을 던져 머리를 깬다든지하여 일을 저지른 후에 사후 수습을 하면서 연애를 시작하는 거다. 둘 사이에 일이 조금 진행되어서 데이트를 한다. 보름달이 훤하니 떠 있는데 물레방앗간 앞에서 만났다. 서울 남자와 여자는 둘이서 앉아 다정하게 정담을 나눈다.
달이 참 밝지요. 음,보름달 아래 자기하고 둘이 앉아 있으니까 너무 좋다. 저기 달에 토끼가 앉아 있는 것 같아. 꼭 자기 닮은 것 같네.
이번에는 경상도 남자와 여자가 함께 앉아 있는 걸 보자. 여자는 달 쪽을 보고 앉아서 옷고름만 계속 잡아뜯고 남자는 반대쪽을 보고서 돌만 계속 던진다.누가 먼저 말을 건다? 여자다. 밀양아리랑 가사를 봐도 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날 좀 봐라, 이 멋대가리 없는 남자야 하는 가사다. 그래서 여자가 견 디다 못해 먼저 말을 꺼낸다.
무슨 말을 하든지 하이소.
남자는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니가 불러냈으니 니가 해라.
저 앞에 서울 남자와 여자는 달빛이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부러워 죽겠다.
달이 어데 떠가 있는데? 저기예. 어데 말이고? 아이,저기예. 어데 이 가스나야, 니 대가리를 치워야 달이 보이제.
이런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이다. 이 남녀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해서 신혼여행을 갔다. 서울 남자 여자 부부를 쫓아 제주도로 따라 내려왔다. 서울 여자가 유채꽃으로 만든 아주 좋은 향수를 하나 산다. 경상도 여자가 부러워서 자기도 하나 산다. 서울 여자가 톡톡 뿌리고는 남자에게, 이 향기 어때요? 하니까 서울 남자가 음,향기 좋은데 한다. 경상도 여자가 톡톡 뿌리고는 냄새 한 번 맡아 보이소 하니까 경상도 남자가 하는 말, 또 방귀 꿨구나.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한다.무엇이든 표현자체가 서툴다.
이런 경상도 사람인지라 노래도 굉장히 무뚝뚝하게 표현한다. 영남 지방에 가면 음식이 아주 맵고 짜다. 그에 따라서 노래도 아주 외향적이로 힘차게 센박으로 나간다. 더구나 노래를 꾸민다든지 하는 법이 없다.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꾸밈이 없기 때문에 담백한 맛이 난다는 점이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들으면 경상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를 때도 꼭 싸움하듯이 부른다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까 다른 지방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냐면 멋대가리가 없다 고 한다.사실이다. 그런데 하나가 모자라면 다른 하나가 발달하는 법이다. 경상도 사람은 멋대가리 가 없는 대신에 뭐가 발달햇는고 하니 멋몸뚱어리 가 발달헸다. 몸으로 하는 것,즉 춤추는 것 하나는 끝내 주는 동네가 경상도다. 낙동강을 쭉 따라가다 보면 우리나라 춤의 70퍼센트가 여기에 다 몰려 있다. 낙동강의 상류부터 안동 하회별신굿, 예천 청단놀음,대구 날뫼북춤,밀양 백중놀이, 동래 야류, 수영 야류, 동래 학춤, 고성 오광대, 가산 오광대, 통영 오광대, 진주 검무, 그리고 지금은 연희되지 않고 있는 진주 오광대, 창원 오광대, 마산 오광대, 가락 오광대 등등 춤이 발달했다. 그런 후손들이다 보니 피는 속일 수 없는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관광버스를 관찰해 보면 그 버스가 어느 지방에서 올라왔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관광버스가 조용히 달려간다 싶으면 서울, 충남,충북, 경기,강원 쪽이고, 차가 끄떡끄떡 흔들리는 버스는 춤을 안 추고는 못 견디는 경상도 사람들이 타고 있다. 이렇게 춤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로 경상도 지방 사람들이다. 경상도는 춤을 발달하고 전라도는 소리가 발달했다고, 경상도 사람들은 춤만 추고 전라도 지역은 소리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다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 민족은 항상 일과 소리와 춤이 일체가 되어 붙어다녔다. 하다 못해 제문을 하나 읽더라도 음률을 탔으며 글을 읽더라도 음률을 타야 했다. 그 음률에 맞추어 몸을 좌우로 흔드는데,이러한 큰 덩어리의 우리네 삶에서 구조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으로 춤과 소리와 노동을 분리하는 데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우리 문화에서 지역성이란 이쪽과 저쪽을 완전 분리 시키는 편협한 지역성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을 잘 번영하는 그런 지역성이다. 우리 문화를 이해할 때는 지역성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지역성을 기반으로 우리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물론 서울 사람들은 말씨의 특성상 판소리를 잘 하기가 어렵다. 굳이 판소리는 못해도 좋다. 그 대신 각자 자기 지역에 맞는 그런 노래,자기들의 어투에 맞는 문화 요소들을 발달시키면 되는 거다. 그렇게 계속한다면 우리 문화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성음이 빠지면 재미가 없다.
이번에는 우리 소리에 기본적인 성음이라는 것을 보자. 성음이란 우리 노래를 알기 위해서는 제일 기본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다. 우선 평성이라는 것이 있다. 아- 하고 한 가지 음을 길게 뽑는 것이다. 이건누구나 거의 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 같으면 한 30초 이상은 한다. 그 다음 요성이라는 게 있는데 흔들 요 자 소리 성 자다. 즉 소리를 흔드는 것이다. 소리를 어떻게 흔드는고 하니,평성 음을 기본으로 하면서 아래 위로 진동을 시킨다. 한 번 해보자. 자, 지금부터 골치가 점점 아파진다. 이게 보기에는 쉬운데 굉장히 힘이 든다. 이 소릴 익히면 거의 절반은 한 것과 마찬가지다. 한참 하다보면 얼굴이 노랗게 변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여기서 절대 하면 안되는 게 뭐냐면 입을 오무렸다가 폈다 하는 동작이다. 입은 가만히 두고 목청을 떨어서 떨림을 내야 한다. 그리고 고개를 까딱까딱하는 것도 절대 안된다. 서편제라는 영화를 보면, 그릇을 머리 위에다 올려놓고 노래를 한다. 흔들지 말라는 뜻이다. 또 뽕짝의 울림음처럼 해서도 안된다. 뽕짝처럼 아- 하면 얼추 비슷하게 들릴지 몰라도 요성과는 크게 다르다. 뽕짝 가락은 일본에서 흘러 들어온 일본적인 요소다. 뽕짝으로 요성을 흉내내려 하면 소리의 아래 위로 오락가락하지 않고 아래쪽으로만 떨린다. 즉 소리의 골만 파는 것이다. 일본말고 중국의 요성도 있다. 중국 요성은 굉장히 높고 화려하다. 중국의 민속 예술인 경극에서 배우들의 소리를 들어 보면 중국의 요성을 알 수 있다. 이건 소리를 너무 아래 위로 흔들어서 요사스럽다 싶을 정도로 간드러진다. 이 요성들 중에서 사람을 제일 편안하게 해주는 요성이 바로 우리 한국의 요성이다. 노래에서 이게 빠지면 진짜 재미가 없다. 그냥 평성으로만 부르는 아리랑하고 요성을 섞어서 부르는 아리랑은 천지차이다. 아리랑만이 아니라 팔도강상 모든 노래에 이 요성이 들어간다. 요성은 우리 노래에서 중요한 기교이다. 요성을 가장 많이 쓰는 소리가 바로 경기창이다. 경기창의 경우에는 요성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무슨 소린지 가사를 못 알아 들을 정도다.
조선 시대 실학자 이중환 선생은 [택리지]에 경기도의 특성으로 경중미인이라고 적었다. 여자가 거울 앞에 앉았다는 뜻이다. 그 정도로 장식과 꾸밈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양덕맹산 흐르는 물은 감돌아든다 부벽루로다... 요성을 잔뜩 섞어서 이런 노래를 하면 가사를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경기창을 이렇게 요성을 많이 쓴다. 요성은 노래뿐 아니라 우리 음악 전반에 나타난다. 대금을 불때도,아쟁을 켤 때도 이 소리가 난다. 가야금을 칠 때도 당하고 끊듯이 하지 않는다. 오른손으로 현 하나를 퉁기고 나서는 현을 누른 왼손을 마음껏 흔들어 준다.이렇게 하면 농농한 소리가 난다.이렇게 흔드는 소리,요성이 들어가야 우리 음악은 제 맛이 난다. 그 다음 세 번째는 퇴성이다. 물러날 퇴 자가 있듯이, 이것은 소리가 뒤로 물러나듯이 하는 거다. 이건 비교적 쉽다. 퇴성은 일정한 음이 장단을 타다가 본래 음보다 약간 끌어올려 아래로 죽 내려 빠지는 듯한 기분으로 내는 소리다. 공기 구멍을 통과하여 공기 압력을 점점 세게하여 내는 성음으로 살짝 꺾는 듯이 낸다하여 꺾는목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헤으헤 아리랑 응응응 아리리가 났네
이 대목에서 마지막 줄 '아라리가'의 부분이 바로 퇴성으로 내는 소리다. 산에 올라가서 야호 하는 거도 하지 말자. 그것도 일본식 함성이다. 그런 것 하지 말고 산에 올라가서 이 평성, 요성, 퇴성을 연결시켜 마음껏 소리를 질러 보자. 사실 이건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낼 수 있는 소리다. 평성, 요성, 퇴성 이 세 가지 소리가 우리 노래의 기본이다.자, 이제 정리해 보자. 이 소리들을 기본으로 하고 박자는 어떻게 한다? 센박으로 한다. 호흡과 발음을 어떻게 한다?우리 창법에서는 성대를 울리기 전에 먼저 입 모양을 만든다고 했다. 읍 하며서 숨을 들이킨 상태에서 잠시 동안 이 부분을 지속한다. 지속 다음에는 터짐이다. 입 안에 머물렀다가 딱 터지듯이 소리를 내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