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 - 김준호
첫째마당 - 문화 줏대를 세우자, 음식 문화에서 소리가 나온다, 문화를 보는 시각을 바꿔라
흔히 우리는 문화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문화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여러 측면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정치나 경제처럼 딱딱하고 부담 주는 게 아니라서 누구나 편안하게 웬만한 건 다 문화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편안한 문화라는 말을 제대로 쓰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특히 요즘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문화라는 용어를 약간 오용하고 있다. 뭘 보고 문화라고 하느냐면 서구화된 것, 서양 사람들 비슷하게 닮아 가는 것을 보고 문화라고들 한다. 그래서 문화인의 첫 번째 조건이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거다. 개고기를 먹었다간 뭐라고 하는가? 야만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 시각이 아니고 서양 사람들의 시각이다. 서양 사람들은 개를 침대에까지끌어들여 같이 자고 먹고 하기 때문에 개고기를 먹는다는 데 특히 혐오감을 품는다. 그런데 오히려 서양 사람들은 육식 문화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짐승 고기를 먹는다. 원래 요리 기술이 발달한 곳은 옛날엔 먹고 살기 힘들었던 곳이다. 먹고 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요리 기술이 발달한 거라고 보면 된다. 요리 기술이 좋으니까 아무 재료나 가지고도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지금 세계적으로 서양에서는 프랑스 요리, 동양에서는 중국 요리를 으뜸으로 친다. 그런데 프랑스, 중국에서는 뭘 가지고 요리하는가를 보면 참 재미있다. 프랑스에선 달팽이, 지렁이가 고급 요리고, 중국에선 원숭이 골,곰 발바닥이 최고다. 개고기쯤 가지고 야만인이라 한다면 그런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아예 원시인이다. 문화를 우리 시각 위주로 보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들,특히 서양 사람들 시각으로 보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개라고 해서 우리가 복날이면 모두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에서 개를 기르는 민족들은 많지만, 우리 조상들은 개를 여러 가지로 분류해서 길렀다. 사냥개는 전견, 집 지키는 개는 짖는다는 뜻으로 폐견이라고 불렀고, 이런 개들은 잡아 먹지 않았다. 살이 많아 먹기 좋은 개를 식견이라고 불렀는데, 이게 바로 식용 개였다. 그러니까 개를 먹는다고 해서 자기가 기르는 애완견을 생각하고 무조건 펄쩍 뛰는 서양 사람도 문제다. 이렇게 문화를 우리 시작 위주로 보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들, 특히 서양 사람들 시각으로 보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이런 오해는 식생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이른바 혼수 품목 1호라는게 있다. 바로 침대다. 언제부턴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침대 생활을 문화 생활의 일부라고 여기고 있다. 사실 우리 집에도 침대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예 별거를 하다시피 한다. 나는 생긴 것답게 침대를 별로 안 좋아한다. 요즘 텔레비젼을 보면 별별 침대 광고가 다 나온다. 코끼리가 올라타는 것도 나오고, 주사 맞는 것도 나오고, 볼링공을 든 아저씨가 침대 위로 뛰어내리는 것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도 침대를 많이 쓴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침대라는 걸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침대와 한국 사람이 과연 체질상 맞느냐 안 맞는냐 하는 게 문제다. 어떨까? 봄하고 가을은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한국의 여름,겨울과는 잘 안 맞는다. 특히 겨울철에 우리 한국 사람들은 다른 데는 다 추워도 등하고 발만 따뜻하면 아무데나 막 처박혀서도 잘 누워잔다. 그런데 침대가 어디 그런가? 그래서 우리 문화와 침대 문화를 합치고 절충해서 요즘 생겨난 희한한 풍습이 있다. 전기 장판을 위에다 까는 거다. 지구상에 치대 위에 전기 장판을 까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부유층에서 유행하는 돌 침대도 마찬가지다. 서양 사람들이 사용하는 침대는 스프링의 탄력을 아주 높여 놓아서 대단히 푹신푹신하다. 이러면 우린 잠을 잘 수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침대 업자들은 서양 침대보다 스프링의 탄력을 줄여 다소 딱딱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것조차 온돌 방바닥과 같은 안정감을 주지 못하기 대문에 이제 돌 침대까지 등장한 거다. 전기 장판과 돌 침대, 이런 것들은 침대 문화와 우리 문화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모두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문화에는 선진,후진이 없다
외래 문화가 다른 문화와 접촉하면 그 문화를 받아들인 측에서는 외래의 이질적인 문화를 자기네 생활에 맞게 변형시키게 된다. 문화는 원래 생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생활 습성이 다른 곳으로 가면 어떻게든 바뀌게 마련이다. 그렇게 보면 요즘 언론에서나 일상 대화에서나 자주 쓰는 선진 문화,후진 문화라는 말도 잘못이다. 문화에는 선진적이고 후진적이고가 없다. 발달한 문화,미발달한 문화도 없다. 무엇이 선진적이다 하는 말은 비교 대상이 있을 대 쓰는 말이다. 비교하고 평가할 기준이 있어야만 그런 말을 쓸 수 있다. 그런데 문화는 원래 생활에서 나왔다고 했다. 생활을 비교할 수 있는가? 흔히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을 나누지만, 그건 경제적인 면에서 나누는 것일 뿐이다. 한 민족의 생활 방식이 다른 민족의 생활 방식에 비해 낫다든가 못하다든가 이렇게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따라서 한 민족의 문화가 다른 민족의 문화에 비해 낫다든가 못하다든가 이렇게 말할 권리도 없다. 후진 문화,뒤처진 문화, 야만적인 문화 같은 말들은 서양 문화를 선진 문화, 발달한 문화로 보기 때문에 생긴 말들이다. 그럼 그런 말을 감히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문화에 대한 어떤 비교대상,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그 사람들은 서양 문화를 가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개고기를 안 먹는 게 먹는 것보다 선진 문화다, 침대 생활이 온돌 생활보다 선진 문화다, 이렇게 말 하는 사람들은 바로 서양 문화를 모범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 먹는 것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마시는 것 이야기를 해보자. 서양 문화의 원조인 영국에서는 티타임이라 해서 오후 4시만 되면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이건 오랜 옛날부터 계속되어 온 영국 사회의 전통이다. 그래서 영국이 옛날에 지배했던 영 연방 국가들도 아직까지 티타임의 관습을 지킨다. 심지어 인도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에서도 오후 4시만 되면 영화 상영이 중지되고 티타임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영국에서 차를 마시는 관습이 일상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마실 물이 드물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드문 곳에서 요리가 발달하듯이 마실 물이 없는 곳에서 차가 발달한다. 방방곡곡 어딜 가나 깨끗하고 신선한 물이 가득한 우리나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사실 세계 전체를 놓고 볼 때 마음 놓고 마실 물이 많은 곳은 드물다.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대륙 전체가 그리 물이 많은 곳이 아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에게는 차가 사치품이나 기호품이 아니라 수분을 섭취하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수백 년 전 유럽 사람들이 동양을 찾아 동쪽으로 모험을 떠난 것도 차와 향료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와중에서 여러 가지 항로가 개척되었고 칼럼버스가 신륙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서양의 차 문화가 우리나라에 와서 묘한 영향을 주었다, 서양에서는 차가 필수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선진적인 문화를 향유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차 문화가 없었냐 하면 그렇지 않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다. 불교에는 독특한 차 문화가 발달해 있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는 차 문화가 대단히 발달했고, 조선 시대에는 왕실에서 하루 한 차례 다시라는 티타임까지 정해 놓고 차를 마셨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왕실과 양반 사회에서만 성행했으므로 차는 생활 필수품이 아니였다.
서양의 차 문화를 받아들여 이것을 선진 문화로 여기게 된 것은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다. 이때 전국에 다방이 생겼고 서양의 커피와 홍차도 수입되었다. 일본은 원래부터 우리나라보다 더 서양 문화를 선진 문화로 생각하고 추종했다. 서양에서는 차 문화가 생활의 필요에서 생겨난 평범한 서민 문화인데, 이것을 우리나라에서 잘못 받아들여 마치 선진 문화인 것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서양의 고급 용어를 수입해서 하층 용어로 바꾸는 희한한 버릇이 있다. 미국에서는 미스터라고 하면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붙이는 존칭인데, 우리나랑서는 직함이 없는 아래 직원들을 미스터 김,미스터 리라고 막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마담이라고 하면 상대방에 대한 존칭어이고 귀부인이라는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마담이라는 프랑스어를 수입해서 거의 술집 여주인이라는 뜻으로 쓴다. 그런데 차에 관해서만큼은 서양 사람들의 일상 문화를 수입해서 고급 문화로 둔갑시켜 버렸다. 이렇게 서양 문화를 모범이자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선진 문화니 후진 문화니 하는 잘못된 용어들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문화에는 선진이고 후진이고가 없다.
최근에는 서양 사람들의 시각도 많이 바뀌어서 문화를 자기네 중심으로만 보지 않는다. 현대 서양의 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 부족 문화를 과거처럼 원시적이다, 야만적이다 이렇게만 보지 않고,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로 인정하고 있다. 또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 중에는 티셔츠에 도 같은 한자어를 크게 그려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오히려 서양 문화를 향락에 찌든 문화라고 여기고, 동양 문화를 열심히 추구한다. 개중에는 '오리엔트'하면 마냥 신비스럽고 높은 차원의 것으로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 광신도처럼 법석을 떠는 일도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어쨋거나 이렇게 서양 사람들의 시각도 바뀌어 가는 즈음에 우리 자신이 우리 문화를 모른다거나 낯설게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모든 사람이 다 우리 문화를 깊이 연구할 수는 없겠지만,적어도 우리 문화가 어떤 것이구나 하는 것만은 누구나 알아야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문화가 세게 최고야!"하고 세계 만방에 외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너무 지나티면 그런 시각이 나올 수 있는데, 그것은 오히려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아는데 걸림돌이 된다. 그런 편협한 시각은 또다시 선진 문화와 후진 문화를 가르는 잘못된 사고 방식이 되기 쉽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화는 그저 생활의 반영일 뿐,최고도 최저도 없다.
머리 위엔 쇳소리, 목 아래엔 가죽소리가 특효약
그래도 요즘은 세상이 달라진 탓인지 우리 문화도 예전과는 달리 꽤나 대접을 받고 있다. 문화에서 중요한 게 바로 예술이고, 예술에서 중요한 게 바로 음악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우리 음악이 우리 몸에 좋다든가,또는"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따위의 얘기를 흔히 한다. 한동안 무시당하던 우리 음악이 제대로 평가를 받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사실 이 얘기는 굉장히 막연하다. 우리 것이 왜 좋으냐고 물으면 "그냥 좋은 것 같다"정도의 반응이다. 어느 설문 조사에서 청소년들에게 우리 음악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뭐냐고 물었다.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는데,그 중 1위가 뭔고 하니"제비 몰러 나간다"였다. 또 2위는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였고, 3위는 엉뚱하게도 "만나면 좋은 친구 MBC문화방송"이었다. 다행히도 1위는 원래 우리 음악이자만, 불행히도 2위와 3위는 아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는 어느 상업 광고에서 만들어 집어넣은 말이고,"만나면 좋은 친구"는 방송사에서 굿거리 장단 가락으로 만든 요새 노래다. 이걸 청소년들은 모두 원래 우리 음악인 것처럼 알고 있었다. 몰라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는 만큼 느낀다는 말이 있다. 뭐든지 알아야만 정말로 좋은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 음악이 왜 좋은지 모르고서 우리 음악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 우리 음악은 왜 좋은가? 여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먼저 외국과의 운동 경기에 임하는 한국 선수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 선수들은 힘없이 비실대다가도 북이다 장구, 징, 꽹과리 등 우리의 전통 악기 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굉장한 힘을 얻는다. 축구 경기에서는 어느 나라나 다 요란하게 응원을 한다. 독일이나 브라질,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관중들이 북을 치고 피리를 불고 온통 난리다. 그러나 축구 경기는 그럴 수도 있겠다 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경기가 다 그렇다. 양궁같이 조용하고 정숙한 분위기를 필요로 하는 경기에서도 우리나라 선수들은 이 소리에 힘을 얻는다. 이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서 화살을 정중앙 과녁에 연속으로 꽃아 퍼펙트 경기를 펼치곤 하는 것이다. 세계 양궁 선수권 같은 경기에서 이런 장면을 보고 외국 선수들과 기자들은 눈이 휘둥그래지기 일쑤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선수들이 등장하면 응원을 보내는 관중들도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이 나오면 갑자기 북, 장구, 징, 꽹과리 들이 일제히 "따따따따" 하며 장내를 들썩인다. 또 그런 소란에도 아랑곳없이 결과는 백발백중이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나 선수들에게는 소음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게 바로 힘인 것이다.
놀랍게도 이같은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북, 장구, 징, 꽹과리 등 두들기는 악기들을 참으로 좋아하는데, 이 악기들을 크게 나누어 보면 쇠로 만든 악기에 꽹과리에 징이 있고, 그 다음 가죽으로 만든 악기로 장구,북이 있다. 그러데 이러한 악기들이 사실 우리 인체에 굉장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 꽹과리나 징 같은 쇠로 만든 악기를 두들기면 여기에서 나오는 고유 주파수가 사람의 머리 부분을 건드린다. 평소에 만성 두통이 있는 사람은 꽹과리를 하루에 한두 시간씩(또는 징도 괜찮다)한 3개월 정도 두들기면 효과를 금방 볼 수있다. 또 남자들이 간밤에 지나치게 과음을 하고 난 후 아침에 일어나서도 숙취에 시달릴 때 이 방법을 쓰면 좋다. 못 믿겠다면 당장 내일 아침에 일어나 남편이나 아버지를 대상으로 실험해 봐라. 차에 타고서 문을 꽉 닫아 놓고 이 악기들을 10분만 두들기면 술이 확 깨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쇠로 만든 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주파수는 사람의 머리 부분을 울려서 뇌파의 리듬을 활성화시켜 적당하게 흥분시키고 힘을 북돋게 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요란한 꽹과리 소리에서 힘을 얻고 오히려 집중력이 향상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 장구나 북 같은 가죽으로 만든 악기들은 인체에 배와 가 슴을 울린다.따라서 위장이 나빠서 소화가 안된다든지 간, 폐 등이 안 좋은 사람들은 장구나 북 등을 열심히 두들기면 금방 효과를 보게 된다. 장구나 북이 없거나 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음악을 찾아서 들으면 된다.
그러나 오디오를 통하는 그런 음악보다는 생음악의 효과가 더 큰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우리 악기는 허약한 인간들에게는 건강을 되찾아 주는 악기인 데 반해 곤충들은 이들 악기 소리를 너무너무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누에를 키우는 잠실에 들어가서 꽹과리를 10분만 두들기면 누에 수만 마리가 그 자리에서 한 마리도 안 남고 전멸해 버린다. 왜 죽었는지 조사해 보면 누에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내장이 파열되어 죽었다는 결과가 나온다. 누에처럼 사람에게 이로운 벌레는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주어서 죽일 필요가 없지만, 해충이라면 어떨까?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었나를 보여 주는 실례가 하나 있다. 옛날에는 농사를 지을 때 요즘처럼 농약이라는 것이 없었다. 농약이 없던 시절에 우리 조상들은 바로 전통 악기들인 북,장구,징, 꽹과리 소리를 가지고 병충해를 예방했던 것이다. 흔히 농사철에 모를 심을 때부터 김을 매거나 할 때 꼭 빠지지 않고 풍물 장단을 많이 두들긴다. 논 가장자리에서 걱종 악기들을 모아서 소리에 맞추어 장단으로 두들기면 멸구,도열병을 일으키는 해충들이 모두 적어 버려 병충해 예방에 큰 몫을 했다. 전라북도에서 아무개 씨가 이것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실험을 한 번 해보고자 마음을 먹고 한 쪽 논에는 농약을 치고 또 다른 쪽에는 북,장구,징,꽹과리를 치면서 농사를 지어 보았다고 한다. 악기로 농약을 대신 한 논은 농약을 친 논보다 벼의 소출이 조금 적었다.그러나 그 쌀로 밥을 지어 보니깐 밥맛이 비교도 안될 만큼 기가 막히더라는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벼가 음악을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식물도 동물처럼 음악에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과 과학 실험에서도 수없이 입증된 바 있다. 하물며 우리 땅에서 우리 햇볕을 쬐고 우리 물을 먹고 자라나는 벼가 우리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 리 없다. 이렇게 우리 음악은 해충을 죽이는 데만이 아니라 벼를 숙성케 하는 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