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 - 김준호
발문
우리 문화에 몰아닥친 김준호,손심심 신드롬을 해부한다. - 주강현
우리 문화의 변법자강을 꿈꾸다.
문화란 무엇일까. 더군다나 '우리 문화'란 무엇일까. 나는 요즈음 식혜에 빠져 있다. 식혜는 가공할 만한 콜라를 뛰어넘어면서 에측 불허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혜는 명절날에나 잔칫날에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식혜가 '깡통'을 차용했을 때, 개벽이 일어났다. 식혜라는 '전략'은 깡통이라는 '전술'을 구사하면서 고정 관념의 '빈틈 찌르기'에 성공했다. 그래서 나는 식혜의 성공을 "청 말의 변법자강책이 우리 식문화에 와서야 성공하였다"고 농을 던지곤 한다. 석굴암을 자랑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전 세계에 석굴암을 세울 수는 없는 일. 그러나 김치를 전 세계 집집마다 냉장고에 들여 놓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의 '고리타분'한 민족 문화관을 완전히 바꿀 때, 어떠한 결과가 초래할 것인가를 식혜는 충실히 보여 준 셈이다. 우리 문화에서 또 하나의 변법자강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텔레비젼에 등장한 김준호와 손심심이라는 젊은부부가 '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뛰어들어 장안의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 부부를 유명하게 만들었을까. 정말 그이들은 '혜성처럼 갑자기'등장한 것일까. 그이들의 이력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결코 '갑자기'라는 단어를 쓸 수 없을리라. 나는 김준호와 손심심이 거둔 우리 소리의 충격이 우리들 고정관념의 빈틈을 찌르는 변법자강이라고 단언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이들에게 경악을 금치 못했고,언론은 찬사를 보냈으며, 그이들을 모셔가기 위한 경쟁에 불을 붙였다. 왜들 그럴까. 한갓 지나가는 '거품'일까. 여기서는 하나의 진실이 있다. 또한 여기에는 그럴 만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이 글에서 그이들이 미덕을 몇 가지만 제시해 본다.
우리 것으로 한판 승부를 걸다
우리 문화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나로서는 김준호, 손심심 같은 30대의 맹장들이 있다는 데 대하여 '동업자'로서의 경의를 표하며, 슬금슬금 배어나는 '승리의 미소'를 참을 수 업다. 왜 웃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이렇다. 사실 우리가 얼마나 우리 것을 우습게 알았던가. 지금도 대학을 외국 학문 수입 오퍼상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고, 우리 소리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날 '끼워 주기'로 잠시 보여 주다가 사라지거나, 남들이 다 잠들어 있는 심야 시간에나 방송한다. 된장조차 일본제를 수입해다가 먹는 판에 우리 문화를 강조함은 '국수주의'따위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이들은 말한다.
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
이제, 김준호,손심심이 부르짖은 '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는 우리 시대의 슬로건이 되어야 한다. 무슨 근거로 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는가. 우리 것을 우습게 보는 시대를 통탄하노라. 그러면서도 그이들 같은 부부가 있다는 데서 '우리 소리의 희망'을 읽는다.
우리 문호의 원형질을 꿰뚫다
온돌, 솟대, 백의, 서낭당, 소리 따위야말로 우리 문화의 알파요 오메가가 아닐까. 가장 흔하고 평가 절하된 것들 속에도 진리와 진실, 권품, 품격 따위는 숨어 있는 법. 솟대와 장승은 마을 마다 있으니 수를 헤아리기 어렵고, 현대화된 아파트에도 온돌문화는 살아 있으니 문화적 지속성에서 견줄 만한 것이 없다. 풍물굿은 세게 무대에서도 손색이 없으니 민족 문화적 특수성과 세게 문화적 보편성을 균형감 있게 보여 준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거창한' 문화에만 강조점을 두어 온 것은 아닐까. '한민족은 소리와 춤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된 연유를 물으면 시원스런 답이 나오질 않는다. 외국인이 우리들의 개고기 풍습을 비난할 때,당당한 답변 대신에 '보신탕'을 '영양탕' 또는 '사철탕'으로 개명시키면서 뒷골목으로 내쫓는 대접 방식. 우리 문화에 대한 '전환 시대의 논리', 21세기는 우리 문화의 고정 관념에 대한 방향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문화에 대한 나의 명제. 쓰여진 문화와 쓰여지지 아니한 문화의 간격을 모르고서야 어찌 제대로 된 문화가 보이겠는가.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 구비 문학과 기록 문학, 구전 역사와 문헌 역사... 우선권을 어디에 두어 왔는가. 문자, 기록, 문헌이 늘 구술, 구비, 구전보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지녔다. 고려 청자의 위대성을 누누이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줄 문화와 숫자 3의 비밀을 좀더 설득력 있게 설명하면 안될까. '쓰여지지 아니한 문화'는 '쓰여진 문화'에서 수수께끼를 풀 것이며, '쓰여진 문화'는 '쓰여지지 아니한 문화'에서 수수께끼를 풀어야 마땅할 일이다. 김준호는 소리하고,손심심은 춤춘다. 김준호는 숟가락이나 꽹과리 같은 간단한 소품을 가지고서 몇 시간이나 강의를 한다. 그 힘은 바로 '쓰여지지 아니한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그이들의 소리와 품, 강의, 이 모든 것이 우리 문화의 원형질에 가깝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리라. 그 동안 잊어버렸던 우리들의 원형질을 그이들에게서 발견하고 사람들은 그네들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 버린 것이리라.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법을 배우자
김준호라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만 손심심이라는 여자를 묶어서 한 묶음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시라. 결코 오늘의 김준호가 손심심이라는 그이 때문에 존재한다는 식의 구분법이 아니다. 흙에 파묻힌 보석처럼 김준호가 지니고 있는 놀라운 저력을 다듬어 낸 손심심의 안목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김준호의 저력은 또 다른 알파와 오메가를 얻어서 이제 바야흐로 우리 소리판을 평정하고 온달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것의 한판 승부로 나설 판이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요즈음 나는 민속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특히 여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손심심에게 진정한 사랑법을 배울지어다!
나는 그들 부부가 만나는 과정을 오늘을 살아가는 다양한 기시가 담긴 스크랩철을 읽어 보았다. 기사마다 논조의 차이가 있으나 결론을 굳이 말하라면,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법이 아닐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잡놈'(김준호 자신의 표현이다)하나가 부산 지역의 극단 예사당에 나타난다. 1988년의 일. 운명처럼 사건이 시작된다. 오갈데 없어서 극단 사무실에서 청소도 하고, 팸플릿 나눠 주는 일도 거들면서 다락방에 빌붙어 살고 있던 김준호, 직업이라고 굳이 표현한다면 소리를 가르쳐 주는 일이 유일한 일거리였다. 김씨를 처음 본 손심심의 첫인상기는 '영락없는 거지 행색'에 땟국이 자르르 흐르는 넝마 같은 승복을 걸친 괴인이였다. 그러나 김준호의 소리를 들어 본 그녀는 운명을 바꾼다. 아니, 운명의 여신은 손심심과 김준호,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꾸었으며,그네들의 운명은 백척간두에서 서성거리는 우리 소리의 운명을 바꾸어 버릴 기세다. 그네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기만 하다. 그래서 늘 스타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관심투성이인 것 같다.
지방에서 중앙을 공략하다
서울은 만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늘 차고 넘친다. 수많은 스타가 있고, 스타 예비생이 있다. 어느날 문득 '김준호와 손심심'이라는 '무명'의 젊은이들이 서울에 스타로 상륙하였다. 서울 상륙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만큼이나 의미 심장하다. 서울 문화가에서의 승리는 곧바로 전국적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서글픈 현상이다. 지나치게 서울로 편향된 중앙 집중화가 만들어 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는 김준호네가 거둔 '승리'를 보면서,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네들은 애시당초 부산, 경남 일대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였던 탓이다. 그곳에서 입지전적인 대중성을 얻은 그네들을 서울의 방송가에서 때늦게 불러들인 결과가 오늘의 김준호,손심심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서울의 힘이 전국적인 힘을 발휘하는 데 요긴한 통과 의례이기는 하나 씁쓸하기도 하다. 아무렴 어떤가. 그네들은 상륙 작전에 성공했다. 나는 서울 본토박이 출신의 민속학자다. 그런 면에서 참으로 객관적을 사태를 읽어 본다. 그네들이 한마디로 '서울'을 '물먹였다'고 내가 주장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네들에게 제발 부탁한다.
진실로 서울 중심의 문화주의를 깨는 하나의 본보기가 되어 달라!
그네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바람을 몰로 온 데 대하여 '지방 자치 시대'다운 발상과 중앙 집중적 문화관을 깰 수 있는 귀중한 모범을 보여 주었음을 격찬할 수밖에!
낮은 것으로 높은 것을 공략하다
김준호는 살아온 삶 자체가 민중의 삶이다. 어렸을 적,들일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고, 승복 입은 거지로 이땅을 누비면서 삶의 밑바닥을 온 몸으로 배웠다. 어느 대학의 어느 국악과를 나와야 자격이 있다는 식의 무슨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강의는 통속적이다. 통속성은 늘 고명하신 '문화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게 마련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진보적인 문화운동을 한다는 이들도 비슷하다. 김준호 자신도 1980년대에는 부산에서 어느 누구로부터도 진정한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문화란 무엇일까. 통속성이란 정말 나쁜 것일까. 나는 그들의 인기를 구가하는 통속성은 서양식의 대중성과는 많이 다른 '우리식의 대중 문화 전술'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동래 학춤 전수자로서의 전문 에인적 기질에서는 장인의 대중성을 느낀다. 이곳 저곳 마당이 마련된 것이면 어디서나 강의를 하고,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놓는 모습에서 유랑 예인 집단의 떠돌이와 같은 대중성을 느낀다. 이야기를 통하여 대중을 사로잡던 이야기꾼의 전통도 이어졌고, 만담가의 전통도 이어졌고,들노래를 부르는 민중의 일과 놀이의 전통도 이어졌고... 그이는 이들을 새로운 통속성으로 재창조하여 변법자강 시킨 것이다. 그 동안 이른바 문화인들이 그들 주목하지 못하였던 까닭이 그러하고, 비록 그네들이 '스타'가 되었지만 아지고 그 진가를 모르는 이들이 일부 있는 까닭이 그러하고,도대체 우리 문화의 힘이 무엇인지를 실감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른바 문화 평론가들의 수입 오퍼상식 평론이 그러하다. 김준호,손심심은 바야흐로 대중들을 우리의 문화의 주인공으로 되돌려 놓는 힘겨운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 문화의 스타를 기다렸다
'스타'하면 그저 대중 문화에 젖은 노랑머리,빨강머리의 스타만을 의미했다. 때로는 건강법을, 혹은 자녀 교육법을 가지고 스타가 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하고많은 문화 중에서 우리문화가 가지고 스타가 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방송에서 보면 우리 문화란'끼워 팔기'로 마지못해 공공 방송의 '체면 유지용'으로 내보낼 뿐이다. 하고많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중에서 우리 문화의 양이 오히려 줄어들었고, 대중 오락물이나 일반 교양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김준호,손심심은 이같은 방송계의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나는 이 진정한 스타의 출현을 기다렸다. 스타 의식에 빠져 소영웅주의로 잘못되어 나가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그이들이 그럴 리도 없거니와 아주 적확한 시점에서 그네들이 '떳다'고 생각한다. 우리 문화로 '뜬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김준호네는 이제 부산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공인'이 되었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라, 김준호의 일대기를 보라. 그가 우리것을 박대하는 잘못된 풍토 속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젊은 시절에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대개 탈춤,판소리,풍물 따위에 경도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밥 빌어먹는 일'로 간주되었다. 어떻게 우리 것을 사랑하는 일이 '미친 짓'으로 간주될 정도에 이르렀을까.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를 손가락질하던 무수한 이들이 있었다면 무언가를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문화를 체계적으로 공부하자면 민속학을 전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인데 사정은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민속학을 가지고 박사 학위까지 두루 할 수 있는 대학이 거의 없다. 국문학과에서도 민속학에서 '고전 문학'의 범주는 더러 학위를 주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찬밥 신세'다. 부산대 국문과를 나온 김준호가 한때 민속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좌절하는 과정도 이같은 현실에서 비롯된다. 지금도 우리 것을 전공하겠다는 학생들이 나의 민족 문화 유산 연구실로 다수 찾아온다. 학문적으로는 지도를 해주어도 막상 그들이 민속학을 전공할 수 있는 길은 어렵기만 하다.
21세기는 대학조차도 경쟁력의 시대다. 명색이 '문화 유산의해'이지만,서울같이 인구 천만이 사는 것에도 변변한 민속학과 조차 없다. 그러면서 무슨 우리 문화 중흥을 꿈꾸는가. 김준호 같은 대중적인 우리 문화 스타를 키우고, 그 스타를 우리 문화의 선봉장으로서, 우리 문화의 듬직한 보루로 만들어 나가는 일은 이제 우리들의 손에 달렸다. 이 책을 최소한 백만 명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준호, 손심심이 책을 낸단다. 내 소원은 이들의 책이 백만권쯤 팔렸으면 한다.
첫째 이유, 우리 문화 이야기도 팔릴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 주어 우리들의 줏대를 살려 줄 수 있는 탓이다. 우리 것을 우급게 보지 말라. 도대체 누구의 앨범은 내기만 하면 백만 장이 팔린다는데, 우리 문화가 그렇게 팔려 나가면 안된다는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방송이 되었건,음반이 되었건,책이 되었건, 아직도 우리 것이 널리 알려져야 하는 '게몽주의 단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둘째 이유, 우리 문화라면 무저건 모조리 사주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변법자강하고 법고창신한 것이라야만 한다. 21세기의 주역이 될 아이들에게 우리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식의 주입식은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재미있고, 의의 있고,유익하고,즐거운 문화여야 한다. 김준호와 손심심이 그 선봉장이 아닐까. 셋째 이유, 나는 그네들이 돈을 많이 벌였으면 한다. 그네들에게 꿈이 있는 탓이다. 그네들은 우리 문화를 살릴 수 있는'메카'를 건설하는 이상을 꿈꾸고 있으며,그런 이야기를 만나는 언론마다 공개했다. 이들 젊은 스타들의 꿈이 단지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사실은 기업들도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한다. 기업과 문화를 연결해 주는 '메세나 운동'이 이들 젊은 우리 문화 지킴이들에게도 곧바로 연결될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명색이 민속학자인지라 발문을 막상 쓰고 있지만, 천만 시청자가 늘 사랑하는 그네들에 대하여 무엇을 더 쓰랴. 나는 그의 이번 출간 작업을 적극 지지할뿐 더러 주위에 널리 알릴 팬의 하나이니,사족이나 하나 더 보태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