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상징세계 - 구미례
제8장
용
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상상의 동물로는 봉황, 기린, 해태를 비롯하여 백호, 주작, 현무 등 신비로운 능력과 상징성을 지닌 많은 동물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용은 그 권위와 조화로운 능력에 있어서 단연 압도적이다. 인간은 용에게 다른 동물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무기를 모두 갖추게 하고, 이에 더하여 무궁무진한 조화능력을 부여하였다. 최고의 권위를 지닌 최상의 동물인 용. 이러한 용의 힘에 의탁하여 인간은 끝없는 이상과 꿈을 펼치기도 하였고 벽사기복과 무병장수를 소망하였으며, 때로 권선징악의 교훈을 스스로에게 깨우쳐 주기도 하였다. 용에 대한 관념은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중국, 인도 등 문명의 발상지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특히 동양에서는 용에 대한 숭배사상이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여, 수천 년 동안 동양인의 마음과 정신세계를 지배하여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용은 우리의 문화와 사상, 생활양식을 논할 때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진 신비의 동물로서, 그 의미와 상징성은 생활전반에 걸쳐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화의 꽃을 피우기에 모자람이 없는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용에 관한 수 많은 신화, 설화, 전설은 용에 대한 신앙, 사상, 문학과 미술의 형태로 발전하여 왔으며, 민속과 민간신앙, 각종 지명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과 의식구조에 가장 밀접하고 깊이있게 자리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라인들은 나라를 지키는 호국룡을 탄생시켜, 우리의 사상사에서 빛나는 호국정신의 극치를 이루기도 하였다. 이처럼 용은 단순히 조화로운 능력자로서만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고 천지의 조화에 순응하는 신성한 영물로서 우리 민족의 의식과 정서 속에 독특한 상징성을 지켜 왔다.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 낸 불가사의한 동물인 용. 용은 창조된 것이기에, 그 설정 자체에서부터 의미부여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통해 옛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사고방식을 더욱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1. 용은 무엇인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에서는 용을 기린, 봉황, 거북과 더불어 상서로운 사령의 하나로 인식하여 왔다. 용은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동물이지만, 오랜 옛날부터 상상으로 정형화된 뚜렷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용’이라 말할 때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려지는 독특한 형태적인 특성은, 구름과 함께 긴 몸을 굽이굽이 틀며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이다. 관련학자들은 용의 모습이 뇌성, 괴운, 회오리바람, 번갯불, 폭우 등과 밀접한 관련하에 탄생되었다고 보고 있다. 용의 이미지가 승천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은나라 때 뇌운문에서 용의 형태가 도상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 등은, 용이 단순한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자연현상이 융합하여 탄생된 신비로운 창조물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중국문헌「광아」익조에 따르면, 용의 모습은 아홉 가지 다른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즉 1. 낙타의 머리에 2. 사슴의 뿔 3. 토끼의 눈과 4. 소의 귀에 5. 목덜미는 뱀과 같고 6. 배는 조개와 같으며 7. 잉어의 비늘에 8. 호랑이의 발 9. 매의 발톱을 가졌다고 하였다. 또한 비늘은 양의 수 9가 중복된 81개(9.9)로 되어 있고, 구리로 만든 쟁반을 울리는 듯한 우렁차고 힘있는 소리를 내며, 입 주위에는 긴 수염, 턱 밑에는 구슬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용의 조화능력에 관해서는「관자」수지편에서, “용은 물에서 나며, 그 색깔은 오색을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조화능력이 있는 신이다. 작아지고자 하면 번데기처럼 작게 오므라들 수 있고 커지고자 하면 천지를 덮을 만큼 부품 수 있다. 높이 오르고자 하면 구름위로 치솟을 수 있고 밑으로 내려가고자 하면 깊은 샘 속의 밑바닥까지 잠길 수 있는 변화유일하고 상하무시한 신이다”라고 하였고,「설문」에서는 “능히 어둡거나 밝을 수 있고 가늘거나 커질 수 있으며 짧거나 길어질 수 있다. 춘분에 하늘에 오르고 추분에 연못에 잠긴가”고 하였다. 이처럼 날짐승, 들짐승, 물에 사는 짐승의 복합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기상천외한 모습과 천변만화하는 조화능력을 가진 용은 뭇 동물 중의 우두머리, 힘과 조화의 최고자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회남자」에서는 ‘만물우모린개개조어용’이라 하여 조류, 수류, 어류, 갑각류의 모든 동물은 용을 조상으로 한다고 하였고,「본초강목」에서는 비늘을 가진 것들의 우두머리라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최고자로서의 용의 위치는 권위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왕권이나 왕위의 상징물로 그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즉 임금의 얼굴을 용안, 임금의 덕을 용덕, 그 지위를 용위라 하였고, 임금이 앉는 자리를 용상, 용좌, 임금이 입는 의복을 용의, 용포, 임금이 타는 수레를 용가, 용거, 임금이 타는 배를 용가라 하였으며, 심지어 임금이 흘리는 눈물을 용루라 하였다. 특히 임금이 즉위하는 것을 용비라 하는데, 조선 세종 때 목조에서 태종에 이르는 선조 여섯 대의 행적과 공덕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은「용비어천가」의 제목과 내용도 이러한 맥락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처럼 임금과 관계된 것에는 예외없이 용과 관련시켰으니, 이는 용의 경이로운 조화능력과 권위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외경심과 신비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용에게는 각기 성격이 다른 아홉 아들이 있다고 하는데, 명나라의 호승지가 쓴「진주선」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들의 종류와 성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비희: 패하라고도 하며, 모양은 거북을 닮았다. 무거운 것을 지기를 좋아하며 돌비석 아래에 놓는다. 2. 이문: 조풍 또는 치미라고도 하며, 모양은 짐승을 닮았다.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해 높고 험한 곳을 좋아하며 화재를 누를 수 있어 전각의 지붕 위에 세운다. 3. 포뢰: 모양은 용을 닮았고, 울기를 좋아하며 범종의 상부 고리에 매단다. 포뢰 용은 특히 바다의 고래를 무서워하므로 종을 치는 당목은 고래모양을 취하여, 포뢰를 겁주어 더욱 우렁차고 힘차게 울도록 한다. 4. 폐안: 헌장이라고도 하며, 모양은 호랑이를 닮았다. 위력이 있으므로 옥문에 세우거나 관아의 지붕에 장식한다. 5. 도철: 치문이라고도 하며,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므로 주로 솥의 뚜껑에 세우거나 식기, 반기에 시문한다. 6. 공하: 범공이라고도 하며, 물을 좋아하여 다리의 기둥에 세운다. 7. 애차: 살생을 좋아하므로 칼의 콧등이나 손잡이에 조각한다. 8. 산예: 금예라고도 하며 모양을 사자를 닮았다. 연기와 불을 좋아하여 향로에 새기며, 또한 앉기를 좋아하여 불좌나 용좌에 쓴다. 9. 초도: 초도라고도 하며, 모양이 나방을 닮았다. 닫기를 좋아하여 문고리에 붙인다.
이 외에도 각종 문헌에는 용의 새끼를 교룡, 뿔이 없는 용을 이룡, 날개를 가진 용을 응룡, 뿔이 달린 용을 규룡, 아직 승천하지 못한 용을 반룡, 물을 좋아하는 용을 청룡, 불을 좋아하는 용을 화룡, 울기 좋아하는 용을 명룡 등이라 하여 그 종류와 성격 및 특성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2. 용신신앙과 물
용은 그 신비롭고 초월자적인 능력으로 인하여 옛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의 뚜렷한 영적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여의주를 문 용이 우주의 운행이나 자연의 온갖 조화로움에 관여할 수 있다는 사실, 특히 구름을 박차고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이미지는 신적 존재로서의 극치를 나타내고 있다. 용은 오랜 옛날부터 미래를 예시해 주고 자연의 조화를 몰고 다니는 신적 존재로 인식되어 왔으며, 특히 물을 지배하는 수신으로 신앙되면서 독특한 용신신앙이 형성되어 왔다. 용이 등장하는 문헌, 설화, 민속 등에서는 용의 출현이 반드시 어떠한 앞일을 예시해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역사의 개설서라 할 수 있는「문헌비고」에는 신라 시조 원년으로부터 조선 1714년(숙종 40년) 사이에 무려 29차례나 용의 출현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 뒤에는 거의 빠짐없이 거국적인 대사가 잇따라 기록되어 있다. 즉 용이 출현하고나서 성인이 탄생하였다던가 군주나 큰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는 등의 기록이 있는가 하면, 농사의 풍흉, 변방군사의 동태, 민심의 흉흉 등의 국가적인 길흉사가 따르고 있다. 또한 「고려사」에서 서해용왕이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에게 ‘군지자손 삼건필의’라 일러준 것처럼 직접 미래를 일러주기도 한다. 「삼국사기」,「삼국유사」,「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에 기재된 용과 관련되는 설화는 무려 86편에 달하고 있는데, 이에 등장하는 용 역시 대부분 예시자의 역할로 설정되어 있다. 이처럼 용은 미래를 예시해 주는 신령한 동물로 숭상되어 왔을 뿐 아니라, 건국 시조와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즉 신라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은 계룡의 왼쪽 겨드랑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삼국사기 권 1), 고려의 시조 왕건의 할머니도 용녀라는 설화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용은 특히 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인식되었다. 용은 바다, 강, 샘, 못 등의 물속에 살면서 물에 관한 모든 일을 주관하는 수신의 역할을 하였다. 이익의「성호사설」천문부에 보면, 비는 용이 성내어 싸울 때 내리고, 벼락은 독룡이 놀라 움직일 때 생기고, 풍수해는 용이 성날 때 생기므로 임금은 이 용의 거동에 따라 정사를 근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관자」 형세해 등에서도 용은 물을 얻음으로써 무궁한 조화의 위세를 떨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용이 미래를 예시하기 위해 나타나는 장소도 바다, 못, 우물 속 등으로 설정된 것을 볼 때, 옛사람들은 물과 용을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용이 왜 물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물의 신의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용의 도상이 뇌운 등에서 도출되었다는 점, 용의 모습과 조화가 물의 속성과 유사하다는 점 등과 긴밀히 연결된다. 즉 용은 ‘물의 원리를 표상화한 것’, ‘물을 상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용의 모습과 유연한 움직임은 물의 흐름을 나타낸 것이며, 비와 관련된 뇌운 등에서 결정적인 도상이 유출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용의 변화무쌍한 형체는 천변만화하는 물의 능력을 관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리고 조용한 이슬에서부터 거센 폭풍우에 이르기까지,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서부터 천지를 집어삼킬 듯한 성난 파도에 이르기까지, 때로 평화롭게 대지를 기름지게하며 때로 파괴적이기도 한 물의 성격과 특성이 그대로 용에게 반영된 것이다.
농사를 생업으로 삼아 온 옛사람들에게 비는 생명과 같은 것이었으며, 홍수, 천둥, 번개, 폭우 등은 불가항력의 두려움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면해 있어, 배를 타는 어민들에게 바다는 생명 그 자체일 만큼 소중하면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이러한 물과 관련된 모든 자연조건을 다스리는 신으로서 물의 모습과 성격이 닮은 용을 탄생시키게 되었고, 물과 관련된 기원과 소망이 간절한 만큼 용은 최상의 위치와 능력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처럼 수신으로서 강력한 위치를 확보한 용은, 더 나아가 다른 모든 것에서도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로 발전된 것이라 볼 수 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50년에 용의 그림을 그려 놓고 비를 비는 화룡제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하여, 용왕에게 제사지내는 일을 관장하는 관청인 용왕전을 두어 사해제, 사독제 등의 용신제를 거행하였다고 한다.「고려사」에서도 고려 현종 12년에 흙으로 용상을 만들어 놓고 비를 비는 토룡제를 지냈으며, 가뭄이 계속된 숙종 13년에는 동, 서, 남, 북, 중앙의 다섯 용왕인 오해신에게 기우제를 지냈다고 기록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국가적인 의식으로 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사가 그대로 전승되어 토룡제, 화룡제 등을 거행하였고, 오방토룡제로써 기우십이제차의 마지막 의식을 끝맺기도 하였다.「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해로서 동해의 양양, 남해의 나주, 서해의 풍천, 독으로서 남에 웅진과 가야진, 중에 한강, 서에 덕진과 평양강, 압록강, 북에 두만강 등이 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중요한 제장으로 지켜져 왔다고 한다. 민가에서도 비가 오지 않으면 특히 ‘용’자가 들어간 연못이나 강, 바다, 산, 바위 등에서 기우제를 지내거나, 그 곳의 물을 병에 넣고 솔잎으로 막아 사립문에 거꾸로 매다는 등 주술적인 방법으로 비를 빌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경기도의 용지, 용두산, 충청도의 용연, 황해도의 용정, 평안도의 구룡산, 경상도의 용수암, 전라도의 용지, 함경도의 장자지 등은 효험이 큰 기우처로 널리 알려져 왔다. 이처럼 조정과 민간의 구별 없이 정성스럽게 용신에게 제를 지냄으로써, 애타가 기다리는 비를 내려 주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의지하였다. 용은 또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어민들에게 가장 지극한 숭배의 대상이 되어 왔다. 바다 밑 용궁에 살고 있는 용왕에게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의 무사함을 기원하고 풍어를 비는 제 또는 굿을 용왕제, 풍어제, 용왕맞이 등이라 한다.
일반적인 용왕제는 주로 어촌에서 음력 정초나 2월초의 만조시를 택하여 해변에 제물을 차려놓고 사해 용왕에게 마을주민과 가족의 안전 및 풍어를 비는 의식이다. 제가 끝나면 자려놓았던 제물을 골고루 조금씩 떼어 네 덩이를 만드는데, 가족 중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을 때는 그의 몫으로 한 덩이를 더 만들게 된다. 그것을 백지로 싸서 한 덩이 한 덩이 바다로 멀리 던지며 용왕으로 하여금 기꺼이 그 제물을 받아 주기를 마음 속으로 빈다. 특히 사면이 바다로 된 제주도에서는 ‘용왕맞이’굿이 유명하다. 큰 굿의 한 제차로 하기도 하고, 바다에서 익사한 영혼을 건져내어 저승으로 고이 보내거나 풍어를 빌기 위하여 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이든 그 중심 제차는 용왕이 오시는 길을 치워 맞아들이고 소원을 비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대 제사상차림에는 용왕이 거느리고 있는 바닷고기를 올리지 않아야 한다. 이 외에도 식수의 고갈을 예방하고자 하는 것으로 농악대가 마을의 우물을 찾아다니며 하는 ‘샘굿’이 있다. 농악대는 우물 주의를 돌며 빠른 농악을 올리다가 갑자기 뚝 그친 뒤, 상쇠잡이가 우물을 향하여 “물 주소, 물 주소. 용왕님네 물 주소, 뚫려라, 뚫려라. 물구멍만 핑핑”하고 기원하게 된다. 또한 농가에서는 음력 6월 15일, 유두일이 되면 논의 물꼬에 보리개떡이나 밀개떡을 한 덩이 쪄다 놓고 마음 속으로 풍년을 빌게 되는데, 이를 ‘유두제’라 한다.
이처럼 용은 물에서부터 탄생한, 물과 델 수 없는 초월자적 존재로서 숭배되어 왔다. 용을 물에서 살며 물을 지배하는 신으로 받들어, 나라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용신제, 용왕제 등을 올리며 용의 조화로운 능력을 믿고 의지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제는 오늘날에도 풍작을 염원하는 농민의 마음과 안전한 항해 및 풍어를 비는 어민들의 소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 땅의 곳곳에서 신비롭고 겸허한 의식으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