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상징세계 - 구미례
제7장
소
2. 풍요와 힘의 상징
우리나라의 민속에는 특히 소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의 민속이 농경사회의 특성을 중심으로 발달되었기 때문에, 농사의 주역인 소가 민속과 깊은 관련을 맺어 온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힘든 농사일을 도맡아 하는 주역이요, 풍요와 힘을 상징하는 소. 우리의 민속, 특히 세시풍속에서는 그 해의 농사가 풍작을 이루어 많은 수확을 거두기를 소망하였고, 이러한 소망은 풍요와 힘을 상징하는 소를 매개체로 하여 다양한 형태의 민속으로 발전하였다. 이들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상축일 풍습
새해가 되면 정월의 첫번째 축일인 ‘소의 날’에 다양한 풍습과 금기가 전하고 있다. 이 날은 명절날로 취급하여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 잘 먹이게 된다. 또한 상축일에는 도마질을 하지 않는데, 이는 쇠고기로 요리를 할 때 주로 도마에 놓고 썰었으므로 이 날만은 이러한 잔인한 행동을 삼간다는 뜻에서 도마질을 꺼리는 것이다. 이 날 연장을 만지면 쟁기의 보습이 부러지고 방아를 찧으면 소가 기침을 한다는 말이 있다. 연장이나 연자방아를 다룬다는 것은 소에게 일을 시키는 것을 연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 밖으로 곡식을 퍼내면 소에게 재앙이 온다고 하여 이를 꺼리고 있다. 곡식의 대부분이 소가 일을 해준 덕분에 얻어진 결실이므로, 소를 위하려면 자연히 곡식까지도 소중히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적인 풍속이 하나이다. 또한 그 해에 풍년이 들 것인지를 점쳐보는 방법으로 ‘소 밥주기’가 있다. 상축일에 밥과 나물을 키 위에 상처럼 차려서 소에게 준 뒤,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라 점쳐보는 것이다. 이처럼 새해가 시작되는 첫 축일에 소의 공로를 치하하고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는 동시에, 새로 시작될 한 해 동안의 풍년을 소망하는 마음을 담았다.
2) 나경
정월 대보름에 관동, 관북지방에서는 예로부터 나경의 습속이 있었다. 나경은 정월 보름날 성기가 큰 숫총각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가 되어 목우나 토우를 몰고 밭을 갈며 풍년을 비는 민속이었다. 땅은 풍요의 여신이요, 쟁기는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다산력을 지닌 대지 위에 남자의 성기를 노출시킴은 풍성한 수확을 소망하는 뜻이 담긴 것이다. 이 나경의 습속이 북쪽지방에만 있고 남쪽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아, 토질이 척박하고 곡식의 결실이 잘되지 않는 북쪽의 자연조건 때문에 풍년을 비는 마음이 더욱 절실하였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된다.
3) 소먹이놀이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전승한 민속놀이 중 소먹이놀이가 있다. 젊은이 두 사람에게 멍석과 종이를 씌워 소로 변장시킨 뒤, 앞뒤로 소의 주인과 머슴이 서서 이를 몰고 마을의 집집을 찾아다닌다. 이 때에는 농악대를 비롯한 청년들이 떼를 지어 뒤를 따르게 된다. 살림이 넉넉한 집에 이르면 소가 ‘음메 음메’하면서 울음소리를 내며, 몰이꾼은 “옆집의 누렁소가 평소에 즐기는 싸리꼬창이(산정)와 쌀뜨물(술)이 먹고 싶어 찾아왔으니 푸짐하게 내어주시오”하고 외친다. 기다리고 있던 주인은 산적과 술을 내어 이들을 대접한다. 이 때 농악대가 흥겹게 농악을 울려서 신명을 돋우면 소는 이에 맞추어 춤을 추고, 마을사람은 물론 주인도 이에 합세하여 흥겨운 춤을 추게 마련이다. 한바탕의 춤이 끝나면 몰이꾼은 이 집의 올해 농사가 대풍이 들고 집안이 두루 평안하리라는 내용의 덕담을 늘어놓음으로써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이 놀이가 베풀어지는 시기는 정월 대보름과 8월 한가위로서, 정월 대보름의 소먹이놀이는 그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기풍의례이며, 한가위의 소먹이놀이는 풍년을 이룩한 데 대한 감사의례의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4) 영산쇠머리대기
경상남도 창년군 영사년에서 전승되어 오는 정월 대보름의 민속놀이 ‘영산쇠머리대기’는 나무를 엮어 소의 형태를 만들고(나무소) 사람들이 이를 어깨에 매어 서로 맞부딪혀서 승패를 가리는 놀이이다. 이 때 사용되는 나무소는 동리사람들이 한 달 전부터 산으로 돌아다니며 적당한 나무를 찾다가, 재목으로 결정이 되면 금줄을 쳐서 다른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나고, 날을 가려 산신제를 올린 다음 베게 된다. 나무소가 다 만들어진 뒤에는, 아들을 못 낳은 여인이 이 소의 몸을 넘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신과 함께, 자기 편의 소를 여자가 넘으면 싸움에 진다고 하여 밤낮으로 이를 지키게 된다. 싸움을 시작할 때 주민들은 줄다리기와 같이 동부와 서부 두 편으로 나누어진다. 해가 뜨는 쪽의 동부는 양으로 남성을, 해가 지는 쪽의 서부는 음으로 여성을 상징한다고 보아서, 출산, 수확을 뜻하는 여성 쪽인 서부가 이겨야 농사가 잘되고 마을이 태평하리라는 믿음도 줄다리기의 경우와 같다. 농사의 주역인 소를 매개체로 하여 준비과정에서부터 놀이가 끝날 때까지 온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정성을 다함으로써, 그 해의 풍년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흥겹고 평화로운 마을놀이라 할 수 있다.
5) 소놀이굿
경기도 양주지방에서는 소의 형태를 취한 곡물령을 모시고 소놀이굿을 행하여 오고 있다. 소놀이굿의 절차는 먼저 동리 당산에서 간단한 산치성을 드린 후 집으로 옮겨, 첫 거리인 행주물림에서부터 열여덟째 거리인 뒷전까지 이어진다. 열셋째 거리인 제석거리와 열넷째 거리인 호구거리 사이에 소놀이굿을 연희하는데, 장구 앞 목두에 소를 위한 공을 수북이 담고 북어 한 마리를 꽂아놓은 뒤 시작하게 된다. 그 내용은 소장수가 굿을 청한 뒤 성주에게 소를 파는 줄거리로, 소장수는 소의 머리, 뿔, 눈, 이, 꼬리, 굽에 대한 치레를 타령으로 장황하게 나열하며 소에게 글자를 가르친 후 다시 소의 굴레 치레를 하면, 무당이 이렇게 좋은 소를 팔라고 권하고 소장수가 승낙하여 소의 흥정이 이루어진다. 악귀를 쫓고 달래는 다른 굿과는 달리 이 소놀이굿은 경사굿, 재수굿으로서 농사나 사업, 장사가 잘되고 자손이 번창하기를 빌어 청하는 굿이다. 소를 부의 풍요로움의 척도로 삼아온 농민들은 소를 위하고 숭상하면 부가 집안으로 들어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은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 대보름과 팔월 한가위를 중심으로 하여, 풍요와 힘을 상징하는 소를 등장시켜 여러 가지 풍습과 민속놀이를 행하여 왔다. 힘든 농사일을 도맡아 처리하여 풍성한 결실을 얻게 해준 소의 노고를 치하하고, 다시 한 해 동안의 풍년과 마을의 평화를 소망하는 마음이 농경사회의 주역인 소를 중심으로 펼쳐진 다양한 풍습에서 잘 나타나 있다.
3. 도가적 은일과 평화의 상징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는 우직하고 순박하며 성급하지 않고 여유로운 천성으로 인해 선조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소의 모습에서는 긴장감이나 성급함을 찾아볼 수 없으며, 순박한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평화롭고 자적한 느낌에 젖게 한다. 소가 현실적으로 효용성이 높은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선비들의 시문, 그림, 고사 등에 자주 등장하였던 것은 소의 이러한 특성이 옛 지식인들의 취향에 맞아 각별한 동물로 여겨 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를 현실적,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소가 지니고 있는 성품이나 속성에서 나오는 도가적인 자적함과 평화로움에 젖고자 하였던 것이다. 일찍이 노자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의 사상을 펴려고 하였으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지당하자,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소를 타고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장자는 ‘여동언여신생지독’이라 하여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되어라. 그것은 오직 무심히 눈을 뜨고 있을 뿐 아무것도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 그와 같은 상태야말로 진정으로 바람직한 인간의 자세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공감과 동경은 특히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전반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도가적 성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소를 타고 가는 기우행을 즐겨 하고 그러한 분위기를 시나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서거정은 말을 마다하고 항상 소를 타고 관에 출퇴근하기를 좋아하였으며, 맹사성도 온양을 왕래할 때 소 등에 의지하고 다녔다 한다. 송질은 이천에 살면서 늘 소를 타고 오갔으며, 김백련은 궁궐 출입할 때 소를 타고 동지를 거느린 채 소요음영하였다고 한다.
소가 먼 거리를 왕래할 때 교통의 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기우행이 걸어서 갈 때의 피곤함을 덜 수 있다는 현실적인 편의성보다 소를 타고 느릿느릿 걸어가면서 무심히 주변의 자연과 사람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고 스스로의 여유와 자족함을 맛볼 수 있는 이상적인 행보의 방법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권근은「기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여, 옛 선비들의 기우행의 참 의미를 깊이 느낄 수 있게 한다. 무릇 물체에 눈을 주시함이 빠르면 정하지 못하고, 더디면 그 미묘함을 다 얻는다... 말은 빠르고 소는 더딘 것이니, 소를 타고 가는 것은 곧 더디고자 함이다... 만 가지 일을 뜬구름같이 여기고 긴 휘파람을 불며 소를 놓아 가는 대로 맡기고 생각하는 대로 술을 부어 마시면 가슴 속이 유연하여 스스로 즐거움이 있는 것이니 이 어찌 사사로움과 누에 구애된자 능히 할 바이랴. 이덕무의 시「기우」에서도 도가적인 은일과 평화를 동경하는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산속 외딴길에 소를 몰고 가니 소 등은 마치 자리처럼 편하구나. 겨우 몸 하나 편안히 붙이고 나니 다시는 공명 생각할 여지도 없네.
소를 타고 가는 선비의 모습은 그림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김홍도의「선인기우도」에는 한 선비가 소를 타고 언덕을 돌아나오는 모습이 주변을 흐르는 잔잔한 물결과 함께 어울려, 도가적인 은일의 세계를 그대로 느끼게 하고 있다. 목동이 소를 타고 가는「목동기우도」 역시 정선, 김홍도, 이경윤, 박제가, 김식 등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이 소재의 그림에서는 목동이 피리를 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소와 목동이 연출해 내는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더하여 선비들이 동경해 마지 않던 도가적 이상세계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외에도 평화롭게 누워 있는 소의 모습을 그린 그림 등이 많이 전하고 있어, 소에 대한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각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소의 성품과 특성이 창출해 내는 도가적인 분위기를 통하여 이상적인 삶에 대한 염원이나 동경을 담았으며, 조선시대 선비들이 추구하였던 정신세계의 한 단면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소에 대하여 인간적인 해석을 시도하거나 인격화한 일화도 많이 전해 오고 있다. 조선시대의 황희 정승이 길을 가다가 두 마리의 소가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물었다. “어느 소가 밭을 더 잘 가는가?”하니 농부는 황희의 옆으로 다가와서 귓속말로 “이쪽 소가 더 잘 갑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이상히 여긴 황희가 “어찌하여 그것을 귓속말로 대답하느냐?”하고 물으니, 농부는 “비록 미물일지라도 그 마음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으니 한 쪽만을 칭찬하면 다른 쪽이 질투를 하지 않겠습니까?”하여 크게 느꼈다고 한다. 또한 김시습은 소가 꼴을 먹는 것과 불자가 설법 듣는 것을 비교하기도 하였다.「삼각행실도」등에는 위기에 처한 주인을 위해 호랑이와 싸운 끝에 주인을 구하고 죽은 소에 관한 전설이 실려 있으며, 이러한 충직하고 의로운 소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지방에서 전해 오고 있다. 즉 개성에는 눈먼 고아에게 자신의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킨 소의 의로운 소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우답동이라 이름을 붙인 마을이 있으며, 경상북도 상주군 낙동면에는 권씨 성을 가진 농부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싸우다가 죽은 소의 무덤과 관련된 전설이 전하기도 한다. 이처럼 소는 의롭고 충직한 동물로 상정되어 인간에게 평화로움과 기쁨을 주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불교의 선종에서는 십우도라 하여, 자신의 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선화가 있다. 소와 동자를 통해 선의 수행단계를 10단계로 도해한 그림으로서, 십우도라고도 한다. 십우도의 대략적인 내용은, 처음 선을 닦게 된 동자가 ‘본성’이라는 소를 찾기 위해 산중을 헤매다가 마침내 도를 깨닫게 되고, 최후에는 선종의 최고 이상향에 이르게 됨을 나타내고 있다. 10단계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1. 소, 즉 본성을 찾기 위해 산속을 헤매다가, 2. 소 발자국을 발견하여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3. 멀리서 소를 발견하고, 4. 소를 붙잡아 고삐를 낌으로서 견성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 때의 소는 검은색을 띤 사나운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아직 삼독에 물들어 있는 거친 본성이라는 뜻에서 검은색으로 소의 빛깔을 표현하였다. 5. 거친 소를 자연스럽게 놓아두더라도 저절로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게끔 길들여 점차 검은색이 흰색으로 바뀌어 가며, 6.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면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이 때의 소는 완전한 흰색으로 묘사된다. 소는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아도 동자와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며, 이 때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게 된다. 7. 집에 돌아와보니 애써 찾은 소는 온데간데없고 자기만 남아있다. 결국 소는 마지막 종착지인 심원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므로, 이제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방편을 잊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8. 소 다음에는 자기 자신도 잊어 버린 상태, 텅빈 원상으로 묘사된다. 주(동자)와 객(소)이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상징한 것으로, 이 경지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일컫게 된다. 9. 주객이 텅 빈 원상 속에는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친다. 조그마한 번뇌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10. 마침내 주인공은 중생에게 복과 덕을 베풀기 위해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내려간다. 본성을 찾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소를 찾는 데 비유한 불교의 십우도. 모든 중생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자성, 즉 본성은 아무것에도 물들지 않고 청정하며 순진무구하다는 불교의 기본교리에 입각하여 볼 때, 소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생활 깊숙한 곳에서 가장 현실적인 효용가치가 높은 존재로 인식되면서도 동시에 순박하고 평화로운 천성을 지니고 있는 소는,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순진무구한 본성에 비유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현실적인 이용도가 높은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넉넉하고 군자다운 성품으로 인해 특별한 상징성과 신성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비들은 소를 통하여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을 음미하고자 소에게 인간적인 해석을 시도하거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불교에서도 소의 천성을 신성하고 귀하게 대우하였다. 소에 대한 인식이 점차 극도로 실용화되어 우유나 고기를 제공하는 가축의 하나로만 인식되어 가는 오늘날, 선조들이 소에게서 느끼고 추구하였던 정신적인 여유와 풍요로움을 되새겨본다면, 좀더 윤택하고 아름다운 오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선인기우도(仙人騎牛圖) - 김홍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