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상징세계 - 구미례
제7장
소
1. 생활 속의 한 식구
소는 농경생활에 바탕을 둔 우리 민족에게 있어 단순한 가축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농사를천하의 근본되는 일이라 생각한 전통사회에서는 소를 한집안 식구처럼 생각하여 생구라 부르기도 하였다. 생구는 한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일컫는 말로서, 소를 사람으로 대접하여 줄 만큼 소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소는 농사를 짓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서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하여 줄 뿐만 아니라, 무거운 짐을 나르는 운송의 역할도 거뜬히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소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효용성이 높은 가축으로서 민가의 가장 귀한 재산이기도 하였다. 최근 소값 폭락 파동이 있기 전가지만 하여도 농가의 재산목록 제1호였던 소는, 농민이 큰 일을 당할 때 급한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비상금고나 보험통장의 역할을 대신하였다고 할 수 있다. 1950-1960년대의 대학을 우골탑이라 불렀을 만큼, 소는 농촌출신 영재들의 중요한 학자금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소는 지금부터 1800-2000년 전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의 소는 주로 제천의식의 제의용이나 순장용으로 사용되었다.「삼국지」동이전에 보면, 부여에서는 군사가 있을 때면 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발굽의 상태를 관찰하여 벌어져 있으면 흉한 징조, 붙어 있으면 길한 징조라 점을 쳤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후에도 기형이나 이상한 빛깔의 털이 난 송아지가 태어나면 응양오행과 관련시켜 길흉을 예측하는 습속은 계속되었다.「삼국사기」에는 84년 고타군주가 신라 사파왕에게 청우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청우는 털 빛깔이 검은 소로 추정되는데, 중국문헌에서 늙은 소나무의 정이 청우로 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청우는 선인, 도인, 성인의 상징으로 여겨진 듯 하다. 또한 마한에서는 순장에 이용하였고, 백제에서도 소를 기르는 목적이 순장용이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3세기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에 이러한 풍습이 있었고 중국대륙에서도 같은 모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소를 제의, 순장, 점술에 이용한 고대 우리나라의 습속은 북쪽의 대륙에서 전래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농사에 소를 이용한 우경이 시작된 것은 신라 지증왕 3년(502년)이며, 눌지왕 22년(438년)에는 백성에게 소로 수레 끄는 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삼국사기」에 전한다. 우경과 우차를 생활에 적용한 이 시기부터 농업과 운송수단에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고구려의 안악고분벽화에 바퀴가 큰 이륜차의 가마와 여물을 먹고 있는 소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고, 경주 98호 고분에서도 진흙으로 만든 우차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실생활에서 소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를 제의 및 순장용으로 사용한 초기의 풍습은 후대에까지 전승되어, 고려 때에는 궁중의 희생용 동물을 관장하는 관청인 장생서를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전구서, 전생서 등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풍년을 빌기 위하여 농신인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매년 경칩 후 첫 해일에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냈다. 이 때 제물로 소를 바쳤으며, 그 제의 이름을 선농제, 제단을 선농단이라고 하였다.
선농제에 즈음하여 임금에게 바친 헌시 가운데 “살진 희생의 소를 탕으로 해서 널리 펴시니 사물이 성하게 일고 만복이 고루 펼치나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선농제에서 희생의 제물로 바쳐진 소는 의식이 끝난 다음에 탕으로 만들어 많은 제관들이 나누어 먹었는데, 오늘날 ‘설렁탕’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선농탕’에서 유래한 것이다. 소는 농경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귀중한 가축으로서, 한 가족처럼 정성들여 보살펴 왔다. 부엌 가까이에 외양간을 마련하여 통풍이 잘 되도록 배려하고 외양간의 위층은 가마니, 짚 등의 창고로 삼아 보온의 효과를 겸하도록 하였다. 날씨가 추워지면 짚으로 짠 덕성을 입혀 등이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하였으며, 봄이 오면 외양간을 깨끗이 쳐내고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 보름마다 청소를 해주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낮에는 양지바르고 따뜻한 곳으로 내어다 매어 주고, 솔로 빗기고 비로 쓸어 주어 신진대사가 잘 되며 털에 윤기가 나도록 하였다. 먹이는 아침 저녁으로 짚을 잘게 썬 여물로 쇠죽을 쑤어 주며, 수시로 풀밭이나 야산으로 몰고 가 싱싱한 풀을 뜯어먹였다. 이 때 이슬이 묻은 풀은 먹이지 아니하고 힘든 일을 많이 하게 되는 일철에는 특히 콩을 많이 먹였다. 삼복더위에 소를 부릴 때면 야경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먼 길을 갈 때에는 짚으로 짠 신을 신겨 발굽이 닳는 것을 방지하였다. 소를 사들이거나 외양간을 짓는 경우에도 반드시 음양오행에 기초를 둔 택일을 하여 길일을 받아 시행하였고, 특히 소를 사거나 송아지를 들여오는 날을 납우일이라 하였다. 이처럼 소를 한가족처럼 각별히 아끼고 정성을 다하여 보살핀 것은, 그만큼 농사일을 신성시하고 소중하게 생각한 우리 선조들의 심성이 그대로 반영된 것일 것이다.
한편, 어느 정도 자란 송아지에게는 몸체를 꾸미는 소치레를 하게된다. 소치레는 소를 보호하고 잘 부리기 위한 것으로, 먼저 생후 5-6개월이 지난 송아지에게 목사리를 하여 고삐를 매며, 1년이 지나면 대개 음력 5월 단오날을 택해 동구 밖이나 야산에 가서 나무에다 붙들어 매고 코를 뚫은 다음 코뚜레를 한다. 이 때 앞걸이와 목사리를 데고 굴레를 짜게 되는데, 코뚜레에 줄을 걸어 고삐와 연결하고 한두 개의 방울을 단다. 이 방울은 잃어 버린 소의 위치를 빨리 확인하기 위해 달기도 하였지만, 소는 겁이 많고 무서움을 잘 타서 헛소리를 들으면 놀라 크게 동요하므로 이 헛소리를 듣지 못하게 달아주기도 했다. 우직하고 순박하여 성급하지 않은 소의 천성은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융화되어, 선조들은 특히 소의 성품을 사랑하고 아껴 왔다. 다소 미련하지만 술수를 부리지 않고, 재빠르지 않지만 꾸준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며, 거대한 몸집에 순진무구한 눈동자와 길게 여운을 남기는 독특한 울음소리를 가진 초식동물. 소의 이러한 성품과 특성은 우리의 농촌사회를 한층 여유롭고 목가적인 풍경으로 떠오르게 한다. 풀밭이나 야산에서 대여섯 살박이 꼬마에게 긴 고삐를 맡긴 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 꾸준하지만 결코 성급하지 않은 동작으로 묵묵히 앞에서 쟁기를 끄는 소와 뒤에서 보조를 맞추며 따라가는 농부의 모습, 양지바른 토담 곁에 편안히 앉아 긴 꼬리를 천천히 휘둘러 등에 붙은 파리를 쫓아 가며 낮잠을 즐기는 모습, 때로 고개를 젖히며 길게 한 번 울어대는 ‘음메에’소리...
소는 그 어느 동물보다도 농촌에 어울리는,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분위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소는 우리의 생활 가까운 곳에서 가장 친근한 동물로 함께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속담과 관용어 속에서도 그 속성과 성품을 잘 드러내고 있다. ‘소는 농가의 조상’이라 하여 농가에서는 조상같이 소를 위한다는 표현으로 소의 귀중함을 나타내고 있으며, ‘소에게 한 말은 안 나도 처에게 한 말은 난다’는 속담은 소의 신중함을 들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조심하라는 경계를 담고 있다. 소의 근면함을 들어 ‘소같이 벌어서 쥐같이 먹어라’는 속담을 통해 성실히 일하고 절약할 것을 일깨웠고, 인간에게 한없이 유익한 존재임을 역으로 이용하여 ‘소한테 물리다’라고 하면 전혀 뜻밖의 상대에게 해를 입는다는 뜻이 된다. 또한 소의 우직하고 다소 미련한 면을 들어 ‘쇠귀에 경읽기’, ‘소궁둥이에 꼴을 던진다’라는 속담은 몹시 둔하여 깨닫지 못할 사람에게는 아무리 교육시켜도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기’라 하여 우연히 공을 세웠음을 나타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속담 속에서 우리와의 친근한 관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소 잡은 터전 없어도 밤 벗긴 자리는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쇠뿔도 단숨에 빼라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한다 .소 잡아먹은 귀신 같다 .소 탄 양반의 송사 결정이라 .소도 웃을 일이다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한다
이제까지 생활 속의 한식구로서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온 소의 의미와 간략한 역사,소의 특성과 성품 등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소에 대한 우리 민족의 관념은 어떠했는지, 2000여 년 동안 우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 오면서 소가 우리의 민속과 인식세계에게 어떠한 위치로 자리잡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