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상징세계 - 구미례
제5장
새
3. 학
우리 민족은 날짐승 중에서 학을 가장 귀한 존재로 생각하였다. 그 이유는 학의 고고한 자태와 함께 새 중에서 가장 장수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깨끗하고 청정한 백색에 긴 목과 다리. 어딘지 모르게 고고하고 고적한 학의 자태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따라서 학을 선학이라고도 일컫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생불사한다는 십장생(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중 하나로서, 기품과 장수를 상징하는 길상의 대표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까치가 우리 민족에게 보다 서민적이고 친근한 존재로서 길상을 나타내는 새라면, 학은 품격이 높고 귀한 존재로서 길상을 나타내는 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학은 고고한 기품을 지닌 십장생의 하나로서 옛 선비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따라서 학을 그리기를 즐겨하고 학을 노래하는 시조를 읊었으며, 복식이나 여러 가지 공예품에 학의 문양을 즐겨 사용하였다.
1) 문양에 나타난 학
현재까지 발견된 우리나라의 유물을 보면 청동기시대부터 여러 가지 공예품에 학의 문양이 나타나고 있다. 이 학문양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매우 성행하여 도자기, 병, 잔, 동경 등에 시문하여 장수와 길상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당시 사람들은 장수를 송축하는 선물을 교환할 때는 그 선물에 반드시 학문양을 넣었다고 한다. 학문양을 기물에 새기면 장수, 행복, 귀인, 기서, 풍요해지는 운이 찾아든다고 믿어 즐겨 쓴 것이다. 이들 문양에 나타나고 있는 학의 모습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다소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고려시대의 학은 날개를 마음껏 활짝 펼치고 다리를 수평으로 쭉 뻗치고 있는 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날개의 윗부분과 다리가 맵시 좋게 약간 구부러진 형태를 취하고 있어 실제의 학 모습에 더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공예품에 나타나고 있는 학의 문양은 크게 몇 가지로 그 유형을 살펴볼 수 있다. 즉 학과 구름을 조화시킨 운학문, 학이 입에다 불로초, 나뭇가지, 구름, 꽃 등을 물고 있는 화손학문이 대표적인 것이며, 그 외에도 학과 소나무를 배치한 송학문 등이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이들 유형의 공통점이 대부분 장생을 의미하는 대상과 짝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구름, 소나무, 불로초 등은 모두 십장생에 속하는 것으로서, 장수를 상징하는 학에다 이들을 배치시킴으로써 불로장생에 대한 의지와 갈망을 더욱 구체화하였다. 문양이 아닌 조각품 중에서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인 청동학구상을 보면, 거북의 등에 학이 직립으로 서 있는 모양을 형상화하여 십장생의 두 동물을 함께 조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불로장생을 기원하고 송축하는 마음을 문양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들 유형중 가장 대표적인 운학문과 화손학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운학문
운학문은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학을 나타낸 것으로, 학문양 중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문양이다. 동양문화권에서는 고대로부터 상운, 선학의 개념이 있어 회화, 조각, 공예 등 조형미술에서 다양하게 쓰여졌다. 고분벽화나 건조물에서는 청상의 길상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구름을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구름 사이에서 학을 타고 내려오는 천신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구름은 ‘상운서일’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학은 다른 이름으로 ‘일품조’라 부르기도 하였다. 구름과 학은 각기 장수를 나타내므로 십장생문의 하나로 모든 공예 의장에서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널리 쓰였다. 이러한 운학문이 그릇 등의 표면 장식무늬로 쓰여진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에서부터 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운학문은 삼강청자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한 쌍의 선학이 구름 사이에서 비무하는 모습, 또는 두 마리의 확인 긴 목을 서로 휘감고 학무하는 형상이 은은한 청자의 바탕색을 배경으로 하여 신비스럽게 새겨져 있다. 또한 고려시대의 동경인 쌍학비운문경에는 학 두마리가 날개를 활짝 편 채 다리를 쭉 뻗친 모습으로 아래 위에 배치되어 있고 좌우에는 구름이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더욱 다양하고 추상적인 운학문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범위도 자기와 그릇에서부터 문갑, 함, 필통, 베갯모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구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운학문은 학문양의 기본형태라 할 수 있다. 즉 학이 있는 곳에는 항상 구름이 함께하는 것이 일반화된 양상이므로, 다음에 살펴볼 화손학문 등도 독립되어 나타나기보다는 운학문과 함께 복합된 양상을 띠는 것이 많다.
(2) 화손학문
‘화손’이란 말은 꽃을 먹는다는 뜻이나, 여기에서는 꽃을 입에 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학이 꽃가지나 나뭇가지 등을 물고 나는 문양을 화손학문이라 한다. 원래 새는 꽃가지에 앉기는 하여도 꽃을 물고 날지는 않는다. 꽃뿐만 아니라 새가 입에 무엇을 물고 다니는 형상은 화조화의 화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그러나 공예품 등에는 이런 화손조문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기원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한나라의 사천성에 있는 침부군석궐에 봉황이 옷감을 물고 있는 문양이 있으며, 주작문화당에 구슬을 입에 문 주작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그 이후 조나라에 석호라는 만왕이 있었는데, 그는 모든 일을 중국의 전통적인 천자의 자리에서 군림하고자 하였다. 중국의 천자란 칭호는 천제의 명을 받들어 천하만민을 다스리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 때 천제가 천자에 대하여 칭찬을 할 때는 여러 가지 길한 징조로 그 뜻을 나타냈고, 경고를 할 때는 천지이변을 내려 이를 깨닫게 한다는 전통적인 믿음이 있었다. 이에 석호왕은 한나라 때의 조형에서 착안, 천자인 자신이 내리는 소가 천제의 대리자의 고시이므로 신성한 것이라 하여 ‘봉소’라는 것을 만들었다. 즉 나무로 만든 봉황에 아름다운 칠을 하여 오색종이에 쓴 소칙을 입에 물린뒤 궁녀를 통하여 높은 대위에서 도르래로 춤추며 내리게 하고, 대의 밑에서는 대신이 경건하게 이 봉소를 받게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새가 꽃 이외의 것을 물고 있는 형상의 문양은 한나라 때부터 있었지만 꽃가지를 물고 있게 된 것은 불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향화공양이라 하여 향과 꽃으로 공양을 하기도 하였는데, 일본 대창집고관에 소장된 남북조시대의 석불광배 등에 화손조의 예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 한나라 때부터 입에 물을 물고 있는 새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불교의 향화공양과 자연스럽게 접합되면서 꽃가지를 입에 문 화손조가 등장하였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이러한 조형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꽃가지보다 주로 장수길상을 상징하는 구름, 소나무 가지, 불로초 등을 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려시대의 동경인 송손학문경은 학이 소나무 잎이 달린 가지 세 개를 물고 나는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학, 소나무, 숫자 ‘3’등 길상과 장수를 상징하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송학문의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2) 복식에 나타난 학
학의 이미지는 이상적인 선비의 기상과 매우 잘 부합된다. 덕망높은 선비의 고결하고 숭고한 기품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전통복식에서는 학을 그 상징으로 삼고 있다. 즉 조선시대에는 학자들이 평상시에 입는 옷을 학의 모습을 본떠 ‘학창의’라 하였는데, 흰 바탕의 창의에 깃, 소맷부리, 도련의 둘레를 검은 색으로 둘러 학과 같이 깨끗하고 기품있는 선비의 기상이 돋보이도록 하였다. 한편, 당시 문무관 관복의 가슴과 등에 흉배를 부착하였는데 문관은 학을, 무관은 호랑이를 각각 품위에 따라 다르게 붙였다. 학은 고고한 학자풍의 문관을, 호랑이는 용맹한 무사풍의 무관을 상징한 것이었다. 문관의 경우 정3품 이상은 쌍학을, 정3품 아래 종9품까지는 단학을 붙였으며 무관의 경우도 정3품 이상은 두 마리의 호랑이를, 정3품 아래는 한 마리의 호랑이를 붙였다. 이처럼 학문을 숭상하는 문인을 학으로 비유하는 상징적인 표현은 관식의 품계를 나타내는 의관제도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관복에 학흉배를 단다 하여 문관인 동반을 학반이라고도 하였다. 문관의 흉배에 수놓아진 학문은 대부분이 불로초나 소나무가지 등을 물고 있다. 또한 학의 주위에는 구름과 장생무늬가 여러 가지 색으로 수놓아져 있으며, 두 마리일 경우에는 아래위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1857년에 이한철이 그린 추사의 초상화에 나타나고 있는 흉배에는 쌍학이 소나무 가지를 물고 있는 형상으로 되어 있다. 이밖에도 예복이나 제복을 입을 때에 뒤에 늘어뜨리는 띠인 ‘후수’에도 학과 구름을 수놓았으며, 주머니, 베갯모 등 여러 가지 물품에도 학을 시문하여 여인네의 정성스런 바느질 한 땀 한 땀으로 길상과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수놓았다.
3) 문학과 민속에 나타난 학
학은 고시조에서 즐겨 다루어진 대상물이다. 조류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새라 천년을 장수한다고 하여 신선으로 상징하기도 하였고, 고매하고 기품있는 자태로 학덕 높은 선비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선비들은 깃이 떨어진 학을 속세에 묻혀 사는 자신으로 읊었으며, 구름 위를 높이 나는 학을 노래하여 선비의 이상을 마음껏 펼치기도 하였다. 송강 정철의 시조 중에는 자신을 학으로 읊은 다음과 같은 작품이 있다. 문득, 긴 깃이 다 떨어지도록 속세에 묻혀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고적해 하는 선비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
청천 구름 밖에 높이 뜬 학이려니 인간이 좋더냐 무삼으라 내려온다. 장지치 다 떨어지도록 날아갈 줄 모르는다.
조선시대의 문관 허정이 지은 시조에서는, 눈이 내린 아름다운 달밤에 학창의를 입고 호수에 모습을 비추어 보는 선비의 자태가 신선과 다를 바 없음을 한 폭의 그림처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서호 눈 진 밤에 달빛이 낮 같을 제 학창을 이미차고 강고로 내려가니 봉해의 우의선인을 마주본 듯하여라.
최호가 지은 시에서는 학에 대한 동경과 신비스러움이 은은하게 나타나 있다.
바다에 배가 지나간 자취를 얻기 어렵고 청산에 학이 날아간 흔적을 보지 못하네.
학이 장수한다는 데서 유래하여 생겨난 여러 가지 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학발동안’이라는 말은, 머리는 학의 깃처럼 하얀 백발이나 얼굴은 붉고 윤기가 돌아 아이들 같다는 뜻으로, 흔히 동화나 전설 속의 신선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된다. 장수를 다른 말로 ‘학수’라고도 하는데, 이는 물론 학이 오래 산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 외에도 학의 목이 긴 데서 나온 것으로 ‘학수고대’란 말이 있는데, 학의 목처럼 목을 길게 늘이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몹시 기다림을 일컬을 때 쓰인다. 또한 학의 고적한 자태를 비유하여 ‘학고’라 하면 외롭고 쓸쓸한 사람을 말하고, 학의 곧은 자태를 비유하여 ‘학립’이라 하면 쪽 곧게 선 태도나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학립과 관련하여 ‘학립계군’이라 하면 여럿 중에서 뛰어난 인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학을 선비로 상징하여 ‘학명지사’라 하면 몸을 닦고 마음을 실천하는 선비를 말하며, ‘학명지탄’이라 선비가 은거하여 도를 이루지 못함을 탄식하는 것을 뜻한다. 한편, 학은 한밤에 울음을 우는데, 그 소리가 맑고 처량하여 학의 울음소리란 뜻의 ‘학려’라는 말이 ‘문장이나 말이 가엾고 처량한 것’을 이르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학과 관련된 속담을 몇 가지 살펴보자. 고본 「춘향전」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본래 기생년 수절 말이 가소롭다. 까마귀 학이 되며 각관 기생 열녀되랴. 이제로 바삐불러 현신시키라.
여기에서 ‘까마귀 학이 되랴’라는 말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근거가 없이는 본시 타고 난 대로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비 논 데 용 나고 학이 논 데 비늘이 쏟아진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훌륭한 사람의 행적이나 착한 행실은 반드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탈춤 중에서 학무가 있다. 새의 탈을 쓰고 추는 탈춤으로서는 유일한 것으로, 고려 때 발생하여 궁중행사나 다례의식 등에서 연희되었다. 다른 동물의 탈을 쓰고 추는 춤인 사자춤 등과는 달리, 이 학춤은 청아하고 운치있는 독특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 민족은 천 개의 종이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아름답고 운치있는 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학을 귀하고 상서로운 새로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과 같은 높고 청하한 경지를 동경하고 이상향으로 삼아왔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이러한 옛 선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학처럼 여유롭고 청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밭을 가꾸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