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상징세계 - 구미례
제2장
3. 음양오행과 색
음양오행사상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문화권에서 우주인식과 사상체계의 중심이 되어 온 원리이다. 먼저 아무런 형체가 없던 무극에서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생겨나 하늘과 땅이 되고, 다시 음양의 두 기운이 다섯 가지 원소를 생산하였는데, 이것이 목, 화, 토, 금, 수의 오행이다. 따라서 오행의 하나하나에는 음과 양의 두 기운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음양오행사상에서는 우주나 인간사회의 모든 현상이 이러한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청, 적, 황, 백, 흑을 오행의 각 기운과 직결된 다섯 가지 기본색이라 하여 오색 또는 오채라 불렀다. 음양오행적 우주관에 의하면 동서남북 및 중앙의 오방이 주된 골격을 이루고 있고, 각 방위에 해당하는 오색을 다음의 그림과 같이 배치하였다. 또한 오색은 오행의 원리에 따라 계절, 오미, 오상, 오장, 오관, 오음 등과 연결되어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 표와 같다.
1) 오색 오색은 각 방위에 해당하는 색으로 정색이라 부르며 모두 양에 해당된다. 또한 오행 중 상충하는 각 방위의 중간에는 간색이 오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음에 해당된다. 즉 서방과 동방의 사이에는 벽색, 동방과 중앙사이에는 녹색, 남방과 서방 사이에는 홍색, 남방과 북방사이에는 자색, 북방과 중앙사이에는 유황색이 오게 된다. 따라서 오정색과 오간색은 우리 문화의 기본색으로서, 우리 민족은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색을 생활에 사용하였다. 이상의 오색을 음양오행사상에 따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청색 청색은 방위로는 동쪽에, 계절로는 봄에 해당한다. 오행 중 목으로, 하늘과 무성한 식물 등을 상징하는 색이다. 해가 떠오르는 동방에 해당되고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인 까닭에, 청색은 청정한 생명을 상징하며 양기가 왕성한 색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적색과 함께 사된 것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벽사기복의 색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성과로는 발생에 속하며 인간의 선함을 관장하는 색이다. 각각 간장, 눈, 신맛과 연결되어 있다.
(2) 적색 적색은 방위로는 남쪽에, 계절로는 여름에 해당된다. 오행 중 화로서, 태양, 불, 피 등을 상징하는 색이다. 온화하고 만물이 무성한 남방에 해당되고 태양, 불, 피 등과 같이 생명력이 충만한 색이므로 가장 강력한 양의 색으로 인식되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적색은 벽사의 가장 대표적인 색으로, 흰색 다음으로 우리 민족과 매우 밀접한 색이라 할 수 있다. 성과로는 성장에 속하며 인간의 예를 관장한다. 인체의 심장, 오관의 혀, 맛의 쓴맛에 각각 해당된다.
(3) 황색 황색은 오색의 중심색이다. 방위로는 중앙에 해당하며 4계절 모두에 연관되어 있다. 우주의 중에 해당하므로 오색 중 가장 고귀한 색으로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천하의 통치권자인 천자를 상징하는 색으로 다루어져, 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임금만이 황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오행 중 토이며, 모든 것을 포용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땅을 상징한다. 인간의 믿음을 관장하고 조화를 대표하며 오장의 비장, 오관의 몸, 맛의 단맛에 해당한다.
(4) 백색 백색, 즉 흰색은 서쪽과 가을에 해당한다. 흰색은 빛을 상징하여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은 모두 흰색을 신성하게 여겼다. 또한 흰색은 순결, 청렴 등을 상징하며 우리 민족의 심성과 기질에 부합되어 한 민족의 대표색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오행 중 금에 해당하며 성과는 수확에 속한다. 인간의 의리를 관정하고 각각 폐장, 코, 매운맛에 해당된다.
(5) 흑색 흑색은 방위로는 북쪽, 계절로는 겨울에 속한다. 오행 중 수로서,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고 스며들기를 좋아하는 물과 같이 음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성과로는 저장에 속하고, 인간의 지혜를 관장하며 은밀하고 현묘함을 좋아한다. 인체의 신장, 오관의 귀, 맛의 짠맛에 해당한다.
2) 음양오행에 따른 색
이상에서 살펴본 오색은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의미가 부여되어, 색의 사용에 있어서 시각적인 이미지보다는 관념적인 의미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따라서 전통시대의 관혼상제 및 생활 전반에 걸쳐 음양오행에 따른 색 사용이 일반화되었고, 특히 의례나 제도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색 자체가 의식화, 제도화되어 법이나 관습의 일부분으로 정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에도 크게 변화되지 않는 채 우리의 고유 문화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사용된 색은 그 유형이나 표현양상에 있어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는 크게 공간개념과 관련된 측면, 색의 사용과 가장 밀접한 분야인 복식에 나타난 측면, 기 외에 기타 건축, 식생활 등에 관한 측면의 세 가지로 나누어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1) 공간개념에 나타난 색 우리 문화에 나타나고 있는 공간개념은, 동서남북과 중앙, 오방위의 수평적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대인들은 우주를 다스리는 제왕과 그 밑에 사방을 수호하는 신수를 설정하였는데, 이 신령한 동물들을 그들이 수호하는 방위에 해당하는 색으로 되어 있다. 즉 동방에는 청룡, 서방에는 백호, 남방에는 붉은빛을 띤 주작, 북방에는 흑색의 현무로서, 풍수지리설에서는 좌청룡, 우백화, 북현무, 남주작이라 하여 가장 중요한 방위 설정의 개념으로 삼고 있다. 이는 예로부터 왕도를 정할 때 기본적인 요건이 되어 왔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상을 모시는 묘자리 설정의 기준이 되고 있다. 나라에서 지내는 다섯 가지 의례인 오례의 의식에서도 모두 이러한 음양오행적 이치에 따랐다. 군례의 예를 보면, 진영의 각 위치에 따라 군기로서 대오방기를 사용하였다. 동쪽에는 청룡기 또는 청색기, 서쪽에는 백호기 또는 백색기, 중앙에는 황색기, 남쪽에는 주작기 또는 적색기, 북쪽에는 현무기 또는 흑색기를 세워 방위신의 보호를 받고자 하였다. 나라의 경사스런 예식인 가례 때에도 중앙에 황룡기(황색 바탕에 황룡을 그린 그림)를 비롯하여 오른쪽에 백호기(흰 바탕에 흰 호랑이 그림)와 현무기(흑색 바탕에 현무 그림), 왼쪽에 청룡기 청색 바탕에 청룡 그림)와 주작기(적색 바탕에 주작 그림) 그리고 홍문대기(적색 바탕에 청룡 그림)을 사용하였다. 이처럼 공간개념에 따른 색채 사용은 음양오행적 이치에 따라 적용되어 왔으며, 특히 국가적인 의례나 의식 때에는 이를 철저히 지켜 국가의 번창과 나라의 평안을 희구하였다.
(2) 복식에 나타난 색 복식분야는 그 시대의 색채문화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분야이다. 우리 민족이 평상복으로 흰옷을 즐겨 입으며 백의민적으로 대표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그러나 혼례 등의 의식이 있을 때나 왕실복, 관복, 사대부가의 의복, 기타 특수작업(기생·무당 등)에 종사하는 이들의 복식에서는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갖추어 입었다. 먼저 색의 기본인 오색 자체를 모두 사용한 경우가 많이 있다. 청, 적, 황, 백, 흑의 오색천을 이어 붙여서 만든 색동저고리가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주로 돌이나 명절 때 어린아이에게 만들어 입힌다. 또한 까치두루마기라 하여 섣달 그믐날 어린아이에게 오색으로 된 두루마기를 입히는데, 이 때도 양 팔을 색동으로 하였다. 이처럼 색동은 오행사상에 따른 오색에서 비롯된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이것이 제대로 시켜지는 예가 거의 드물다. 색도 3색에서 7색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색깔도 검은색을 빼고 자유롭게 쓰고 있다. 원래 색동을 사용한 의미는 음양오행에 따른 다섯 가지 색을 사용함으로써, 오행을 두루 갖추어 사된 기운을 막고 어린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오색의 배치에 있어서도 오행을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열하여 무궁한 발전을 기구해 왔다. 색동처럼 오색을 계속 반속시키면서 이어 붙이는 것 외에도 오색을 이용한 복식은 매우 다양하다. 특히 주머니는 복을 받아들이고 간직한다고 하여 오색을 갖추어 만드는 것이 상례이다. 이 주머니를 '오방낭자'라 하는데, 청, 적, 황, 백, 흑의 다섯가지 색 비단조각으로 만들어 만사평안을 비는 뜻을 담았다. 정초가 되면 첫 해일에 오방낭자를 만들어 왕비가 직접 재상가의 어린이들에게 사송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서는 악공과 무인의 의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악공들은 붉은 비단모자에 새 깃을 장식하고 소매가 큰 황색 옷에 붉은 비단띠를 둘렀으며, 통이 넓은 바지에 붉은 가죽신을 신고 오색 끈을 맸다. 이처럼 삼국시대부터 무복에서도 음양오행설이 바탕으로 하여,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궁중무용에 이르기까지 오행사상과 결부된 형식을 고수하였다. 조선시대 궁중무용인 정재무의 복식 역시 오색을 음양과 상생의 원리에 맞게 사용하여, 무용예술에 고유의 사상을 내포시켜 시각적인 조화와 나라의 무사평안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특히 신라의 처용무에 적용된 오행사상은 조선시대 궁중무용의 창작 또는 개작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연희에 있어서 오광대놀이의 오방신장부 등은 오행사상에 의하여 개작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봉산가면극의 팔먹중이옷도 오색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의 작품에 오색을 모두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복식에서는 갖추어 입는 옷, 장신구 등을 상호간의 음양오행 원리에 적합하게 배치하거나, 입는 사람의 위치나 입장에 따라 적절히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왕복, 왕비복, 관복, 부인복, 아동복 등과 같이 누가 입게 되는가에 따른 대상별 종류와 혼례복, 평상복, 상복, 무복 등과 같이 언제 입게 되는가에 따른 목적별 종류 등으로 그 범위와 대상이 매우 방대해진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복식에 있어서 음양오행의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개관하는 정도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 예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우리의 선조들은 음양의 원리에 따라 몸의 상반신은 양이고 하반신은 음이라는 양상 음하의 원칙을 복색의 기본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의정색 상간색'이라 하여 상의는 양에 해당하는 정색을, 하의는 음에 해당하는 간색을 즐겨 입었다. 또한 길례, 빈례, 가례와 같은 의식에서는 주로 정색 가운데서도 양의 기운이 강한 적색과 청색이 사용되었으며, 흉례 때에는 북현서백의 음이 주가 되므로 백색과 흑색을 주로 사용하고 황색은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남자는 관례 때 청포를 입고, 혼례 때의 신부는 녹의홍상을 입었다. 반면, 문무관이 종묘 제례때 입는 흑단령은 검은색이며 상례때에는 백도포, 소복, 소혜(흰 신발)를 착용하였다. 이처럼 그 목적에 따라 음양오행의 이치에 합당하게 의복을 갖추어 입었다. 또한 연령에 따라 오행설을 적용하여 그에 따른 적절한 색의 옷을 입도록 하였다. 즉 자라나는 어린이는 생기와 번성을 상징하는 녹색 계통의 옷을 입혀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였고, 청장년층은 화기의 상징인 홍색 계통을 주로 입었으며, 노인층은 토기인 황색 계통과 금기인 백색 계통의 옷을 입었다.
왕실과 조정에서는 왕을 중심으로 한 조정 관리들이 복색을 품계에 따라 달리 정하여 전체적으로 조화와 위계를 뚜렷이 하였다. 고려시대의 예를 보면 문관 4품 이상의 복색은 자색, 상참 6품 이상은 비색, 9품 이상은 녹색으로 정하였다. 이 때 자색은 화기의 간색이고 비색은 목기의 간색이며 녹색은 수기의 간색이다. 이것은 수생목, 목생화로 하급관리가 차례로 상급관리를 도와주는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특히 유채색 중에서 신분이 높고 낮음을 표시하는 가장 큰 구별은 정색과 간색의 사용으로 나타냈다. 중국에서는 최고통치자를 황제라 하여 천자의 색인 황색 곤룡포를 입을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왕은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황색 곤룡포를 입을 수 없었다. 황색은 특히 신라시대부터 황제의 색이라 하였는데, 조선 태조 5년에는 황색 옷을 입지 못한다는 금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황색과 비슷한 색인 홍, 토홍, 황할색 등도 금액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 또한 황제가 하례를 할 때 입는 예복인 강사포는 붉은 비단 바탕에 봉황의 황금색 무늬가 그려진 도포이다. 이 때 왕은 도포의 색이 주홍색인 점이 다르다. 치성하는 화덕을 본받아 나라를 다스린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천자가 정색을 쓰는 반면 왕은 간색을 사용하여 차이점을 표시한 것이다. 한편, 혼례 때 신부복이자 부인들의 가례복인 녹의홍상은 모두 오행의 상생과 깊은 관계가 있다. 녹색은 동방 목기에 속하며 붉은색은 남방 화기에 속하므로 목과 화가 상생이 되며 장수하고 부귀가 충만하도록 기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3) 단청과 식생활에 나타난 색 이 외에도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색을 선택, 사용한 예는 생활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색과 무늬로 채색 장식을 하는 '단청'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단청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 등이 그려져 있는 고구려의 고분벽화로 추정되고 있다. 단청의 목적은 건물의 보존과 장식은 물론 외부를 가꾸어 장업의 표현으로 시각적 효과를 얻는 데 있다. 대궐이나 사찰 등에서 채문하여 건물을 돋보이게 하고 장엄한 장식을 베풀어 화려하고 엄숙한 권위를 상징하게 된다. 이 때 오채 : 오색)를 기본으로 하여 장식하였다.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화려한 진채와 화식을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은 건축물에도 상승계급에서만 진채와 화식을 사용하게 하였다. 신라에서는 진골의 사가 이상의 건물에 오채를 베풀었다. 그러나 통일신라 말기에 와서는 일반 서민주택의 단청을 엄격하게 규제하여 왕궁과 사찰에서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식생활에서는 음양의 원리에 따라 사된 것을 물리치는 양의 색, 즉 벽사의 색으로 붉은색을 사용한 것이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 때 벽사의 의미로 사용되는 재료로는 고추, 팥, 대추, 수수 등이 사용된다. 또한 잔칫상에 올려지는 국수는 대개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는데, 이 국수 위에 오색으로 된 고명을 얹어 오행에 순응하는 기복의 의미를 더하였다. 여기에서 고명에 사용되는 다섯 가지 색의 재료를 살펴보면, 청색에는 미나리, 실파, 쑥갓, 오이 등이, 적색에는 실고추, 다호고추, 당근이, 황색에는 달걀 노른자, 흰색에는 달걀 흰자, 흑색에는 표고버섯, 목이버섯, 쇠고기 등이 해당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은 색을 사용할 때 많은 경우에 있어 시각적인 이미지보다는 음양오행에 따른 관념적인 의미에 중점을 두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정과 사대부가, 그리고 민간인들에 있어서도 관혼상제 등과 같이 의례나 제도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상생에 적합한 색 사용이 제도화, 관례화되어 있다. 색채 사용에 있어 보다 시각적인 이미지에 충실하게 된 오늘날에 있어서도 옛 선조들이 이러한 관념적인 색채를 추구하게 된 의미를 되새겨 보고 거기에 담겨진 소망과 염원을 간직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