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상징세계 - 구미례
제2장
색
색이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현상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빛이 없으면 색을 볼 수가 없다. 모든 물체는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색을 가지고 있으나, 인간의 감각으로는 어둠과 함께 색도 잃어 버리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교에서도 '색'을 형태가 있는 것, 대상을 형성하는 물질적인 것, 넓게는 대상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고, '색증시공 공즉시색'이라 하여 색을 공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궁극의 본질과 연결시켰던 것이다. 색은 감각적인 것으로, 시각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색은 관습보다는 색채감각으로 파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색채를 사용할 때, 그 색체가 우리의 감각에 와 닿는 감정이나 감각에 순수하고 솔직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지식화되고 관념화된 색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머리에 하얀 리본을 달았다고 하자. 이 때 아무런 선입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만을 본다면 사람에 따라서 '깨끗하다', '청순하다' 등의 느낌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습과 사회규범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상을 당한 모양이다' 또는 '머리에 흰 것을 꽂다니 청승맞고 불길하다'등의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순수한 감각, 즉 일차원적인 감각에서 시작된 색감은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하고 사회를 이루어 감에 따라 이차원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색에 대한 연상적 가치가 발전하여 어떤 통념을 형성하게 되면 특정한 빛깔에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부여는 개인적인 색감이나 의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에서, 그 사회에서, 그리고 그 민족 속에서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영위되고 인식되는 색감과 의식이다. 즉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관념화된 보편성'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색채감정은 문화적 특성을 나타내는 독특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색'에 대한 관련자료를 찾아보다가, 우리 민족의 색채 사용에 있어서 모든 결론이 음양오행으로 귀결되어지는 사실을 발견하고 의문을 느끼게 되었다. 과연 그러한 것일까? 물론 음양오행사상이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사상, 사고방식, 생활양식 등의 밑바탕을 이루어 왔으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야기할 때 음양오행의 설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문의 출발은, 색이야말로 원시사회에서부터 인간이 태양, 하늘, 나무, 꽃 등의 자연을 접하면서 가장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미지라는 점이다. 음양오행사상이라는 사고체계가 정립되기 훨씬 이전에도, 인간은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독특한 관점을 형성하여 왔다. 색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태양숭배사상과 영혼불멸사상에서 새를 신성시하였듯이 그들이 숭배하는 태양의 색깔에 대하여 무심할 리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붉은색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느낌과 생각이 음양오행사상을 형성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의식주 전반에 걸친 생활과 의식 및 제도적인 측면에서 음양오행에 따라 색채가 다루어진 부분이 매우 많으나, 그것을 반드시 음양오행이라는 틀에 맞추어진 시각으로 일축해 버린다는 것은 우리 문화의 다양성과 민족 특유의 정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우리 민족의 색채 전체를 가두고 있는 음양오행이라는 틀을 의식하지 않고, 보다 민속적인 차원에서 대다수의 옛 선조들이, 그리고 그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우리들이 (음양오행과의 관련을 포함하여) 각각의 색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졌고 어떻게 사용하기를 즐겨 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민족의 색 : 흰색
최근에 어느 방송단체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색채의식 조사에서, 한국과 한국 국민성을 상징할 만한 색과 우리 선조들의 민족성을 잘 나타내는 색으로 단연 흰색을 꼽았다고 한다. 흰색에 대한 느낌은 민족에 관계없이 순결, 깨끗함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며, 종교적인 복장이나 천사의 상징, 혼례 때의 신부복 등과 같이 성스럽고 순결한 이미지를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만큼 흰색을 숭상하고 생활화한 민족은 드물 것이다.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위지〉동이전 등의 고대 중국문헌에 보면 부여나 변한, 진한 때부터 한민족이 흰옷을 일상복으로 입었다고 적혀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우리의 백의 풍습은 유사 이전으로 소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흰옷의 비경제성 때문에 고려 건국 초 우리나라는 동방에 속하니 오행에 따라 동방색인 청색옷을 입어야 한다고 금령을 내렸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흰옷을 입었다고 한다. 국법 개혁에 가장 과감하였던 조선의 태종도 '흰옷에만는 내가 졌다'고 손을 들었다. 이와 같이 흰옷에 잠재된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일까? 우리 민족의 사상적 밑바탕을 이루어 온 오행사상에서도 동방은 청이며 서방은 백이라 하였다. 이에 따르면 동방인 우리나라의 민족은 청색 옷을 입어야 하는데, 오행사상을 역행하면서까지 흰옷을 고집하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같이 수백 년, 수천 년을 이어 온 우리의 흰옷은 일제 강점기때의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무언의 항거, 무언의 압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백의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시골 장터의 입구마다 검정물을 담은 커다란 가마솥을 설치해 놓고, 장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흰옷에 검정물을 끼얹었다.
떡팔러 장에 갔다 베옷에 먹물탕이라. 옷이야 검었지만 배알까지 검길쏘냐.
일제 때 번진 남도아리랑 가운데 한 대목이다. 검정물 세례를 받은 한 떡장수가 배알, 곧 심지나 정조까지야 검게 할 수는 없다고 민족감정을 토로한 아리랑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백의에의 집념은 억세고 끈질기게 계속되어 왔다. 우리 민족이 흰색, 특히 흰옷을 선호하고 상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의가 되어 왔다. 흰색을 숭상하고 선호하였던 이면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부분들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크게 다섯 가지로 그 이유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밝사상에 근거한 것
우리 민족은 고대인의 특성 중 하나인 태양숭배와 경천사상에 따라, 고유한 밝사상을 형성하였다. 부여, 예맥 등 고대의 부족국가는 자신들의 부족이 밝족 또는 씨족이라 자처하였다. '부여'라는 말은 밝음을 뜻하며, 예맥족은 본래부터 동쪽과 밝음의 부족으로 자칭하였다. 이는 하늘의 태양으로 인하여 밝음과 광명이 생겨나며, 그 태양은 우리나라가 위치한 동쪽에서 떠오르므로 '동-명', 즉 동방의 밝은 곳이라 한 것이다. 이러한 밝은 곧 백을 뜻하며, 흰색을 신성한 색으로 다루게 되었다. 흰빛은 모든 빛깔 가운데 가장 밝은 색으로, 흰빛을 백이라 함은 밝다는 뜻이다. 그 이후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형성된 음양오행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되었다. 오행사상에 따르면 '동방은 청색'이 되지만, 이밝사상은 어느 한 순간도 조금의 흔들림 없이 우리 민족의 전통이 되어 수천 년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지상에 있는 동물 가운데 가장 빠르고 활달한 말을 움직이는 태양과 관련지웠다. 특히 흰색 말인 백마를 태양, 천제의 사자라 하였다. 이에 따라 하늘에 맹세를 할 때는 백마를 희생시켜 그 피를 나누어 마셨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하여 백제를 무너뜨렸을 때 신라 문무왕과 당나라 칙사 유인원, 백제의 왕족이며 웅진도독인 부여융, 이 세 명은 지금의 공주 북쪽에 있는 취리산에 올라가 신단 앞에서 백마를 죽여 강화의 맹세를 하였다. 신 앞에서 신의 천사인 백마를 희생시켜 피를 나누어 마심으로써 그 약속을 절대화시킨 것이다.
2) 우리 민족의 기질, 심성과 관련된 점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청렴결백한 선비상을 꼽고 있다. 권력이나 물질에 대한 집착 없이 맑고 곧은 마음으로 자신을 닦고 수련하는 선비상, 이들의 이미지는 흰색과 청색이다. 흔히 선비는 학에 비유되며 그들이 입은 도포를 학창의라 하였다. 또한 선비들의 지조와 기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가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백과 청은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이상적이고 의미지향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즉 탈감각으로써 높은 인격에 이른다는 한국인 특유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감각이나 감정을 멀리 하고 인격과 규범 등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색은 욕망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였다. 관직에 있는 문무관리들도 대궐에서는 품계에 따라 그에 맞는 색의 옷을 입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흰옷을 입는 것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이는 감정표현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우리 민족의 기질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백자와 청자에 나타나고 있는 우아함과 신비로움도, 이러한 오랜 민족의 정신과 맥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금욕적인 인격완성의 의미 외에, 자연에 동화하고 자연에 귀의하는 심성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흰색은 물감을 들인 색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원색이다. 이런 의미에서 흰색은 곧 무색이며,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간직한 색이다. 무색, 있는 그대로의 색은 곧 자연 그 자체이다. 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동화하며 순리대로 사는 것을 올바른 삶이라 믿었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무색에 굳이 염색을 하거나 칠을 하기를 즐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궐이나 사찰 등을 제외한 일반 민가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기둥이며 벽이며 마루며, 방안의 가구에 이르기까지 자연 그대로의 색이라는 데에 예외가 없다. 국기를 보아도 그렇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 중 흰 바탕의 여백을 남기고 있는 국기로는 태극기와 일본국기 등 몇 나라에 불과하다. 이규태 선생은 태극기가 백지를 본 바탕으로 삼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색채감각의 표현으로, 색에 물들지 않은 태초의 천진 그대로를 숭상하는 정서의 표현이라 보았다.
영어권에서는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다. 구미 문화권에서는 흰색을 미개하고 미속한 것으로 비가치화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우리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오히려 흰 것을 오염시키는 빛깔을 악덕시 하고 비가치화한 것이다. 민속에서 쓰는 길조어에서도 흰색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흰 사슴이 나타나면 상서로운 일이 생긴다. .흰 꿩이 나타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 .아침에 흰 말을 보면 그 날 돈이 생긴다. .꿈에 백발이 되면 그 해에 근심없이 생활한다. .흰 옷을 입으면 남의 초대를 받는다. .손톱에 흰 점이 생기면 재수가 좋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 기질과 심성을 그대로 투영하여 담고 있는 색이 바로 흰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상복의 영향
김동욱 교수는 백의를 숭상한 것이 애초에는 거의가 경제적 요건에 지배되었겠으나 나중에는 의식복장으로서 상복의 영향으로 습성화되었다고 하였다. 먼저 상복을 백색으로 하는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상복은 상중에 입는 예복이다. 상복이 반드시 흰색이어야 하는 데 담겨진 의미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상주로서의 예를 갖추기 위함이다. 상주가 색채 있는 옷을 입는 것은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슬픈 마음과 속죄하는 마음의 표현으로 사자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한 것이다. 인간생활사에서 상사는 가장 슬픈 일이므로 우리 민족은 상주를 죄인이라 간주하였고, 상주들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여 부끄럽게 여겼다. 따라서 사자와 친분이 깊을수록 거친 천에 바느질이 험하고 투박한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의미는 밝은 색인 흰색으로 사자의 저승길을 밝히기 위함이다. 즉 상주가 흰색의 상복을 입음으로써 사자의 영혼이 좋은 세계에서 영생하기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믿음이 담겨져 있다. 이와 같이 상복의 흰색에는 상중에 채색된 옷을 입지 않는다는 예로서의 의미가 선행된 다음, 저승길을 밝혀 좋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한 기원이 함께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유교의 영향으로 관혼상제의 예를 중요시하였고, 특히 상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국상과 친족의 범위가 넓어서 상복을 입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 기간이 길었다. 상복을 입을 기회가 많았다는 것은 흰옷을 입을 기회가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며, 이는 한민족의 백의상습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4) 금색으로 인한 영향
동서고급을 막론하고 유채색은 화려, 장엄, 사치, 권위의 상징으로 권력층의 전유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오행사상에 따라 권력이나 품계를 표시하는 특별한 색의 옷은 일반인이 입지 못하였다. 즉 신분이 낮은 천민(예를 들면, 무당, 기생 등)의 표시로서 사용하게 한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 외에는 극도로 채색된 옷을 제한하였던 것이다. 태종은, 고려 때 회색 옷 때문에 왕씨가 망한다는 예언이 있었는데 그대로 맞았다 하여 회색을 상서롭지 못한 색으로 여겨 회색 옷을 금하였다. 세종은 명나라 천자가 입은 복색이라 하여 노랑색, 보라색, 회색 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다. 이처럼 금색으로 인하여 색채 옷의 선택 폭이 줄어든 데다가 복색으로 존비를 나타냈기 때문에 백성들은 흰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5) 물감이 희귀하고 염료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
지초나 잇꽃, 남과 같은 염료가 우리나라에는 희귀하여 주로 외제품을 써야 했다. 따라서 베 한 필을 물들이는 데 물감값이 베 한 필 값만큼 들었다고 한다. 자연히 서민들은 있는 그대로의 색으로 옷을 해 입을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백의습속으로 이어진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 민족의 흰색 및 흰옷 선호에 관한 여러 가지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논자마다 더 중요한 요인으로 내세우는 것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는 밝사상과 우리 민족의 기질, 심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싶다. 왜냐하면 상복으로 인한 영향은 상중에 흰옷을 입는 두 가지 이유 자체가 밝사상과 우리 민족의 기질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채색된 옷을 입는 것은 상주로서의 예가 아니라는 생각은 우리 민족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고, 흰색의 저승길을 밝혀 준다는 생각은 '하늘과 밝음'이라는 의미로 밝사상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금색과 염료부족의 영향은 실제로 무색인 흰옷을 입게 하는 데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금색'이라는 제도 자체가 세계적으로 공통됨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만 흰색과 깊이 관련된 백의민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언가 타민족과는 다른 문화적, 사상적 특수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염료 부족 역시 일부분의 요인은 될 수 있으나 전체적인 것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느낌이 든다.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리라. 우리들, 우리들의 선조, 또 그들 선조들이 지닌 마음, 심성과 기질, 그것과 깊이 연관된 밝사상 .....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확실하게 단언할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지만, 우리 민족이면 누구든 공감하고 더 많은 비중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와 같은 뜻에서 20세기의 후반을 사는 오늘날에 와서도 우리 민족과 민족성의 상징색으로 서슴없이 흰색을 꼽았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