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현들의 풍류기 술. 멋. 맛 - 원융희
꽃으로 술을 빚어 무궁무진 먹사이다
세상에 이해 못할 일이 어디 한 두 가지랴마는 우리가 정말 이해 못할 일 가운데 하나가 등산인가 한다. 휴일에 하루 이틀 소풍 삼아 가족이나 남녀 벗과 더불어 가까운 산에 올라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자연의 고마움과 인정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돌아오는 정상인의 산행이야 누가 이해 못하랴만, 수주일 씩 직장도 팽개치고 떼돈 들여가며 히말라야니 알프스니 하는 험산에 도전하여 꽃같은 목숨을 건다는 것은 얼른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독립투사가 아니고, 종교의 자유와 포교를 위해 목숨을 건 순교자는 더구나 아니다. 통일을 외치며 고층에서 뛰어 내리는 운동권 학생이나 노동해방을 부르짖으며 휘발유 불꽃 속에 산화하는 노동자는 그대로 자기 죽음의 값을 톡톡히 받아 내겠다는 계산이나 있지만,설산의 빙벽이나 험산의 계곡에 몸을 내던지는 등산가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이다. 제1차 세계대전후 유럽의 산사람들이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의 정상인 에베레스트에 군침을 흘리기 시작하여 30여년을 두고 숱하게 도전했으나 매번 참패였다. 그러나, 1953년 5월29일 정오, 영국등반대의 힐러리(Sir E.P.Hillary)란 사람은 드디어 이 일을 해냈다. 참으로 장한 일이었고, 그는 일약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기자가 그에게 당돌한 질문을 했다. "당신은 뭣하러 산에 올라가오?" 턱없이 흥분하여 우쭐거리던 이 친구가 뭐 할 말이 있나. 얼결에 한다는 소리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 (우물쭈물)"이다.
술꾼이야말로 이해 못 할 사람들이다. 돈 버리고 몸 버리고 종종 명예조차 담보하고 가정파탄까지 불가하면서 왜 술을 먹느냐 이말이다. 그것도 식사 때 한두잔 하는 반주나 즐거운 자리에서 기분좋을 만큼 마시는 애주는 이해 못할 바 아니로되, 대취,만취,주야장취 이래서야 직성이 풀린다니 정말 이해 못할 일이다. 등산가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당신은 뭣 하러 술을 마시오?" 는 우문이고, "술이 거기 있기 때문에!" 는 현답이다.
술먹고 비틀걸음 칠제 술을 먹지 말자 맹세하였더니/술 보고 안주 보니 맹세도 허사로다./아이야, 술 가득 부어라 맹세풀이 하자. -실명씨-
술끊기, 담배끊기, 여자 끊기만큼은 맹세하지 말일이다. 외람 되나마 예수님 말씀 좀 인용하자. "옛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마태5:33-34)
술을 내 아더냐 광약인 줄 알건마는/ 잔 잡아 웃음나니 일배 일배 부일배라./ 유영이 이러함으로 장취불성하니라. -신희문-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하는 술이 정녕 광약일시 분명한데,"첫잔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둘째잔은 술이 술을 마시고,세째잔은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부처님이 누누이 타이르셨건만 그걸 알면서도 한 잔, 한 잔 다시 한 잔, 그러다 보니 취생봉사라. 유영이란 이는 중국 진나라 죽림칠현의 하나로 주량기본이 열 말인데다 닷말을 마셔야 비로소 해장이 된다는 술꾼이다. 술꾼들이 매양 "술이 거기 있기 때문에"식 답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름의 핑계가 있다. 그 핑계 중에 대표적인 것이"근심을 잊으려고"이다.
이러니 저러니 말고 술만 먹고 노세그려./ 먹다가 취하거든 먹은 채 잠이 들어/취하여 잠든 덧이나 시름잊자 하노라. -실명씨-
세상 시름이 백팔 번뇌인지 팔만사천 번뇌인지 모르나 어찌 됐건 맨 정신으로는 괴로워서 못 살겠으니 술에 취해 잠든 동안이나 잊어보자는 것이다.
옳은 일 하자 하니 이제 뉘 옳다 하며/그른 일 하자 하니 후에 뉘 옳다 하리/ 취하여 시비를 모르면 긔 옳은가 하노라. -실명씨-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불의에 온 몸으로 부딪쳐 보니 그거야 달걀로 바위 치기지. 그렇다고 역사의 심판을 각오하고 낯두꺼운 속물이 되어 부정한 무리와 같은 배를 탈수는 없다. 그래서 빈허 현진건은'술 권하는 사회'라고 했다. "본 정신 가지고는 피를 토하고 죽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하지, 하루라도 살 수가 없단 말이야. 흉장이 막혀서 못 산단 말이야!"하고 울부짖는 남편. 몸생각 해서 술좀 작작 마시라는 아내. 술을 먹고 싶어 먹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술을 권해서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남편.'사회'가 어떤 술집이름 이거나 작부 이름쯤 되는 줄 아는 숙맥 같은 아내, 이래서 답답한 남편이 갈곳은 다시 술집밖에 없다는 거다.
술을 취케 먹고 두렷이 앉았으니/ 억만 시름이 가노라 하직한다./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하리라. -정태화-
시름의 해소는 앞에서 말한 바 술의 효용 중 소극적 기능이라 하면, 적극적 기능이 또 있다. 말하자면, 기뻐할 일이 있거나 즐거운 자리가 마련됐을 때, 이 기쁨과 즐거움을 강화하고 심화하는 구실이다.
한잔을 먹사이다. 또 한잔 먹사이다./ 꽃으로 술을 빚어 무궁무진 먹사이다./ 동자야 잔 가득 부어라 취코 놀고하리라. -실명씨-
옛날 어떤 사내가 술만 먹으면 하도 주정을 해대서, 시달리던 아내가 한 번은 술 달라는 남편에게 맹물을 주었더란다. 아니나 다를까 맹물 몇 잔 따라 먹고 주정이 태심하니 아내는 견디다 못해 "여보, 그게 술이 아니라 맹물인데 당신을 맹물 먹고도 주정을 하오?"하고 쏘아 붙였단다. 그러자 머쓱해진 사내왈 "어쩐지 좀 싱겁더라니!" 이런 술꾼은 술이 가진 정서적 가치를 몰각한 저질이다. 이에 비하면 꽃으로 술을 빚는 사나이야말로 술멋을 아는 이다. 술 시조라면 송강 정철의 사설시조 '장진주사'를 빼놓을 수 없다. "한 잔 먹세그려... ."이렇게 시작되는 권주가, 이것은 저 이백의 '장진주'와 함께 술의 공허감을 달래주는 수작이다.
인생무상을 느낄 때 생에 대한 집착은 강화되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노, 병, 사, 의 검은 그림자를 보면서 '노세 노세 젊어 노세'의 창부타령과 함께 권주가 한 곡조 아낄 수 없으렸다. 그러나 사람이 술을 마셔야지 술이 사람을 마시는 단계까지 간다면 이는 노, 병, 사를 재촉하는 어리석을 짓일 뿐이다. 과유불급은 주나 색이나 간에 금언이다. 다음과 같은 생각이라면 구제 불능이다.
주색이 폐인지본인 줄 나도 잠깐 알건마는/먹던 술 잊으며 예던 길 아니 예랴/아마도 장부의 하올 일이 주색인가 하노라. -실명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