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2 - 주강현
쌍욕과 쑥떡, 성에 빗댄 야유
모든 것은 배와 넓적다리에서 나온다
'욕쟁이 할머니집'이란 유명세 붙은 집이 전국에 널려 있다. 왜 사람들은 욕을 얻어먹어 가면서까지 제 돈 내고 음식을 사먹는가. 욕설에 어떤 매력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자주 욕쟁이할매 해장국집을 찾는다. 할매의 접대방식은 손님의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반말과 욕이다. 깍두기 한 보시기 더 달라고 해도 잔소리, 술 한 병 더 주문하면 아예 그만 가라는 구박이다. 자기 돈 내놓고 먹는데도 잔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그런데도 연일 사람들로 바글바글 끓고 인근에 널리 알려진 명소가 되었다. 만약 할매의 욕이 없다면 그 집의 매력이 여전할까. 욕에는 나쁜 욕도 있지만 사랑스런 욕도 있다. 동창생을 만나 "야, 짜슥아!"하는 정도는 그야말로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 남성들이 가장 가깝게 여기는 친구를 '불알친구'라 부르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 욕은 사랑반 미움반이다. '욕먹을 짓'을 해서만 욕을 먹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욕을 하기도 한다. 전혀 모르거나 미워하는 사람 사이에는 욕을 함부로 하기 어렵다. "욕에는 맛있는 욕이 있다"고 하였으며, "욕에 정든다"고도 한다. 다산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욕을 이렇게 정의 내렸다. 욕이란 부끄럼이고 굴욕이다. 우리 나라의 풍속은 추악한 말로써 꾸짖는 것을 이름하여 욕이라 한다. 욕설의 꽃은 역시 쌍욕이 아닐까. 욕은 성을 기호화하여 발전해 왔으며, 성을 직간접적으로 암시하는 욕설이 쌍욕의 주종을 이룬다. 그래서 "쌍년, 쌍놈, 쌍소리한다"는 쌍시옷 계열이 주종을 이룬다. 대개 활자문화에서 ***식으로 가려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문명'의 세계를 떠나간 그들 육두문자야말로 욕의 진수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 속담에는 "씹과 좆 빼고 나면 욕할 말 있나"하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왜 그럴까. 에드워드 카펜터가 말했듯이, "섹스가 가장 먼저이며, 손, 눈, 입, 두뇌가 뒤따른다. 배와 넓적다리 한가운데로부터 자아에 대한 지식, 종교 그리고 불명성이 발산되어 나온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야만 할까. 조선 시대는 말할 것도 없이 엄숙한 사회였던 것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그럴수록 쌍욕은 더욱 번성하여 가히 '쌍욕의 르네상스 시대'를 구가했다. 나는 잠시 그들 쌍욕의 세계로 떠나고자 한다.
전통 시대 '좆과 씹'의 담론
욕설의 백미로 역시 성기 자체를 극대화하는 데서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의 쌍욕은 남근, 여근을 구분하여 욕설화하기도 하고, 통합 상태로 직접적 성관계를 묘사하기도 한다. 전통 시대 욕설의 담론에서 가장 많이 쓰인 용례는 역시 '좆과 씹'이 아닐까. 이를 남근과 여근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자. 한자어 남근은 이른바 불알, 좆, 고추, 자지, 음경 등으로 부른다. 그 중에서 '좆과 불알'만큼 많이 쓰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남성 생식기는 태고 이래로 남근숭배의 대상이었다. 어떤 남성이나 지니고 있는 최소한 기본을 이야기할 때, "가진 것이 불알 두 쪽밖에 없다"고 한다. 모든 것을 상실하면 "불알 두 쪽 가릴 힘도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남성답지 못함을 공격할 때, "불알 달린 값을 해라", "불알만 찼다고 다 남자냐", "차라리 불알을 떼버려라"하는 욕설을 가한다. 남근을 강조하고, 어쩌면 가부장적 권위를 '불알'에 위탁한 남성들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많은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남성들은 오로지 '불알 두 쪽에 땀나도록' 뛰어야 하고 '좆대가리에서 땀까지 날' 정도로 일을 해야 한다. 남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불알 긁어준다"는 비난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 사는 게 "좆나게 힘들다"는 푸념을 잊지 않는다. 남성들이 도망칠 때는, "불알 두 쪽 덜렁거리며 뛴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불알아 앞섰거라"하고 내뛴다. 상대편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때도, "불알 잡고 늘어져야"일이 성사된다.
남근의 '위대한 힘'을 지나치게 믿는 잘못된 관념은 곳곳에서 남근을 칭송하는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가을 좆은 쇠판도 뚫는다"고 정력의 위대함을 강조하기도 하고, "꼿꼿하기는 서서 씹하겠다"고 힘을 자랑하기도 한다. 자신의 물건이 "난쟁이 좆만하다"고 자조하면서도, "작은 고추가 맵다"는 대응책도 잊지 않는다. "남자가 머리가 좋은 건 대가리가 둘인 탓이다"는 자부심을 지니면서도 "새벽 좆 안 서는 놈은 외상도 주지 말라"는 말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역시 '좆도 좆 나름'인 셈이다. '좆심'이 좋아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좆빠지게' 일하지만 "좆으로 뭉개도 그보다는 낫겠다"는 비난마저 감수해야 한다. "만만한 게 홍어 좆이다"는 자조 섞인 표현도 자주 나온다. 그리하여 다양하고 푸짐한 욕의 성찬이 '불알'보다는 '좆'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좆'은 남성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좆 같은새끼', '좆 같은 년'에서 보듯 남녀 공용이다. 그러나 남성용으로 많이 쓰인다. 좆 꼴리는 대로 해라, 좆 까고 있네, 좆도 모르고 탱자탱자하네, 좆만한 새끼, 좆 먹어라, 좆으로 까라면 까야지, 좆 짜고 있네, 좆퉁수 불고 있네, 좆나게 팬다, 좆나게 맞는다, 좆도 모르면서, 좆되부렀구먼!......
여근 쪽 사정은 또 어떤가. 여근은 통칭 씹, 보지, 음부 등으로 부른다. 가장 많이 쓰는 '씹'은 종자를 뜻하는 씨와 입의 합성어다. 남성 위주의 중세사회에서 여성을 칭송하는 표현은 드물다. 여성을 남성의 성적 대상물로서 간주하고 비하하거나 공격하는 식으로 편향적이다. 여성은 수동적이어야 하고, 안방 차지나 하고 있어야 함을 역설한다. '여자와 항아리는 내돌리면 깨지기' 때문에 나돌아다녀서는 아니 되며, '여자가 말이 많은 건 입이 둘인 탓'으로 돌린다. '여자 셋만 모이면' 어쩌구 하는 식의 여성 비하 시리즈는 욕설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여성의 몸은 늘 탐색의 대상이었다. 남성의 몸이 욕설에 등장하는 확률보다는 여성의 몸이 훨씬 잦다. "계집 못난 건 엉덩이만 크다", "계집이 젖통만 크다"는 식으로 신체부위별로 비난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글래머' 급에 속하는 여성들이 과거에는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되었음직하다. 여기에도 남성들의 이중적 잣대는 늘 있다. "여자 입이 크면 씹이 크다"는 표현으로 은근히 큰 여성기를 기대하는가 하면, "씹은 작을수록 좋다"는 식으로 은근히 작은 여성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여자와 돗자리는 새 것이 좋다"고 하면서도 "여자는 닳을수록 좋다"는 표현에서 경험 있는 여자를 선호하기도 한다. "니글니글할 정도로 요분질 친다", "요분질을 쳐서 사내 피를 다 말린다"고 하면서도 "요분질 못하는 년은 쓸모가 없다"는 식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여성기 표현의 백미는 역시'씹'이다. "씹 이야기 하면 부처님도 돌아앉아 웃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남성들의 주관심사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성적 만족도를 예측하거나 여성을 오로지 성적 동물로 간주하기도 한다. "사내 싫어하는 계집 없다"는 관용어 말고도 "성에 굶주렸다"는 뜻으로 "씹구멍에 곰팡이 슬겠다"는 표현도 등장한다. 섹스를 많이 즐긴 경우에는 "씹구멍에 불나겠다", "씹두덩에 가래톳 섰다" '사내 받치는 년' 하면서, "씹에는 염치가 없다", "계집은 씹 잘하면 좋은 일 없어도 사흘 웃는다"는 식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씹 마르고 눈물 마르면 계집은 볼장 다본 셈이다"는 식으로 여성기를 강조하며, "좆도 좆 나름이다"는 남성기에 대응하여 "씹도 씹 나름이다"는 표현이 쓰인다. 욕설은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접어든다. "씹창날 줄 알아라" "가랭이를 찢어 죽일 년" "네 년 씹에는 금테 둘렀냐"는 식으로 쌍욕의 극치를 이룬다. 또한 여성기를 빗댄 욕설에서 중요한 것은 과부에 대한 공격이다. 누군들 과부가 되고 싶어 되었겠는가. 과붓집 가지밭에는 다 큰 가지가 없다, 과부 씹두덩은 과부가 씻는다, 과부는 개를 키워도 수캐만 키운다, 과부 서방질은 삼이웃이 먼저 안다, 과부 아이 낳고 진자리 없애듯, 과부 아이 밴 듯, 과붓집 머슴 행세하듯...... 오죽하면 갑오농민군의 폐정개혁안 12조에 과부개가 조항이 혁명 슬로건으로 제시되었겠는가.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 욕설
아주 오랜 옛날, 오누이가 고개를 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비가 내렸다. 뒤를 묵묵히 따라가던 오라비는 깜짝 놀랐다. 누이동생의 흰옷이 비에 젖자 뽀얀 젖무덤이 드러난 것이다. 오라비는 갑자기 성욕이 솟구쳤다. 그러나 누이동생과 할 수는 없는 일. 오라비는 결국 자신의 성기를 돌로 짓이겨서 성욕을 억제하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누이동생은 울면서 이야기하길, "그렇게 죽을 바엔 한번 달라고나 해 보지"라고 하였단다. 그 뒤로 사람들은 오누이를 기려서 그 고개를 '달래나고개'라고 부른다고 한다. 일명 '달래나고개' 전설에는 근친상간을 할 수 없는 금기가 잘 반영되어 있다. 우리 문화의 욕의 근저에는 바로 그러한 근친상간이 가장 중요한 대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니 에미 씹새끼, 니 에미 좆이나 빨아, 니 에미하고 붙을 놈, 니 에미하고 씹할 새끼, 제미 붙을 놈, 제미 밑구멍에 좆 박을 놈 따위의 쌍욕은 어머니와 아들간의 근친상간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네 애비하고 붙을 년"식의 아버지와 딸간의 근친상간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오누이끼리의 근친상간도 욕설에서는 귀하다. 왜 근친상간이 욕설에서 주역으로 등장할까. 평상시에 근친상간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그것을 입 밖으로라도 내놓는 것 자체가 일종의 죄악이다. 그러나 욕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사태는 달라진다. 인간의 심충에 가려져 있던 근친상간의 금기가 장막을 과감히 벗고 모습을 드러낸다. 근친상간의 욕설은 하나의 저주, 신화적 모티브를 지니는 신탁의 소리가 아닐까.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에 나오는 신탁과 같이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은 우리의 욕설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러나 우리 신화로 되돌아오면 '달래나고개' 전설같이 오누이 근친상간형이 주종이다.
예전에 큰 물이 져서 모든 동식물이 절멸당하였다. 높은 산으로 올라간 사람 중에서 마지막으로 오누이만이 남았다. 그러나 오누이가 상관을 할 수 없으므로 신에게 뜻을 물었다. 맷돌을 밑으로 굴려서 짝을 이루면 신의 뜻인 줄 알고 결혼하라고 했다. 실제로 맷돌을 굴린 결과 짝을 이루게 되었다. 오늘의 우리들은 그 오누이가 맷돌을 굴려서 낳은 후손들이다. 이 홍수신화의 모티브에는 오누이 근친상간이 잘 반영되어 있다. 여기서 매개물은 맷돌이다. 암맷돌과 숫맷돌로 짝을 이루는 맷돌의 암수 구별은 늘 성적 매개물이 되어 왔다. 그래서 욕설에서도 맷돌이 빠질 수 없다. "맷돌 씹하냐", "성미 급한 년이 맷돌거리한다", "맷돌 씹에 좆 빠지듯"과 같이 되는 일이 없다는 식으로 맷돌이 쓰인다. 맷돌치기, 맷돌거리로 불리는 체위를 빗대어 욕이 이루어진다.
나는 혹시나 '좆과 씹', 혹은 근친상간 따위의 소제목 자체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에서 영국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가 세세하게 밝혀준 빌헬름 라이히에 관한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라이히는 편집증적 공격성을 보여주었지만 일생 동안 추구했던 급진적 사회개혁사상을 잘 드러내준 '들어라 소인배야'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정신분석학적 성 급진주의자로서 현대 사회의 성이 불행을 초래한 실마리가 생식기의 성-그것의 좌절 혹은 개발-속에 있다고 보았다. 그가 공격한 소인배란 '불쌍하고 옹졸한, 역겹고 무능력한, 완고하고 활력이 없으며 속이 텅 빈' 그런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유를 외치지 못하게 막으려고 안달하면서 자기 자신은 노예가 되는 인간이다. 라이히는 소인배의 신경증이 성적 에너지를 억제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불쌍한 소인배들'이 짐짓 숨기고 있는 것을 이렇게 외쳤다.
나도, 당신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당신이 영원한 성적 결핍의 상태를 맴돌고 있고, 모든 여성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며, 사람에 대해서 친구와 더러운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어느 날 밤, 나는 당신이 친구와 함께 거리에서 이렇게 합창을 하고 다니는 것을 들었다. "우리는 여자를 원한다, 우리는 여자를 원한다!"
그러나 라이히 자신은 그의 적들이 비난한 것과는 달리, 무절제한 성적 방종을 전파한 것은 아니었다. 갈릴레오가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가 세 명의 사생아를 두었다는 사실은 보내는 조소였다. '좆과 씹'이란 표현만 나오면 무조건적인 반사작용으로 엄숙주의를 요구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혹시나 라이히가 말한 소인배가 아닐까...
남녀상열지사 그 자체가 욕이 된다
사람들의 침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침실에서도 분명 남녀간에 욕설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욕설은 상대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동물적인 성적 표현일 뿐이다. 상황이 바뀌어 이들 성적 표현을 뒤집으면 그대로 욕설이 되고 만다. 성애의 욕설과 비난의 욕설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하나의 뿌리를 지니는 표리관계를 이룬다. 정상적인 성관계도 욕설에서 중요한 대목을 차지한다. "사추리 사추리 삿뽀뽀"란 비어는 삿(샅)끼리 이루어지는 섹스를 뜻한다. 씨팔년, 씨팔놈, 씨팔새끼, 씨팔년놈 등은 가장 흔한 욕설이다. 남녀가 성관계를 맺는 일은 인간이 으레 하는 일인데도 '씹하기'가 하나의 터부가 된다. 그래서 '씹하기'는 늘 공격 대상이 된다.
쌍욕은 일반론적 단계를 벗어나서 성관계의 구체적 단계까지 나아간다. 가죽방아를 찧느냐, 디딜방아에 겉보리 찧느냐, 웬 낭자한 감창소리?, 공씹하기냐, 얼마나 급하면 벽치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먼저 올라탈 년이다...... 모두 구체적 성행위를 염두에 둔 말이다. 역시 구체적인 성관계는 "좆이나 빨아라"는 대목에서 압권을 이룬다. 오럴 섹스에 관한 표현은 비단 우리 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욕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덧붙여서 "니 에미 좆이나 빨아라"는 식으로 근친상간에서의 오럴 섹스 단계까지 나가면 욕설을 극에 달한다. 수음 행위도 빠질 수 없다. "용두질 안 치는 사내 있더냐", "손가락 안 집어넣는 계집 있냐"고 하여 마스터베이션이 강조된다. '좆 주무르듯이' 늘 주물럭거리는 모습이 비판의 대상에 오르기도 한다.
성관계에는 변태적인 성도 빠질 수 없다. "비역질이나 해처먹어라"는 욕은 호모를 뜻한다. "아무리 궁하다고 밴대질하겠냐"는 것은 레즈비언을 뜻한다. 호모와 레즈비언도 금기의 대상이지만 막상 욕설에서는 튀어나오고 만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동물과의 변태적 성관계, 혹은 막연하게 동물에 빗댄 욕설도 등장한다. 개년, 개보지 같은 년, 개잡년, 개잡놈, 개좆 같은 인생, 개좆 같은 새끼, 개자지, 개씹에 보리알, 개씹 같은 년, 개씹으로 낳아도 너보다야 낫겠다, 암내 맡은 수캐 싸대듯 따위로 단연 개가 수위를 차지한다. 개는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다. 또한 암캐와 수캐가 하는 관계도 늘상 보는 모습이다. 그러한 친근성으로 개는 욕설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혜원 신윤복은 풍속화첩에 개가 관계 맺는 모습을 구경하는 여인 둘을 그려놓았을 정도다. 또 말씹, 말자지, 말보지 식으로 숫말에게 달린 성기의 위력이 강조되거나 물개좆 식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동물에 빗대는 욕설은 수간이라는 변태적 성풍속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금기되었을 수간이 욕설로 둔갑하여 백주대낮에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엿을 먹이는 이유
우리는 욕설을 한다. 그런데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엿먹어라"면서 '쑥떡질'을 한다. "좆 먹어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는 직접적인 표현보다도 '엿'이 궁금하다. 왜 하필이면 하고 많은 먹을 것 중에서 '엿'을 먹으라고 할까. 엿은 조선 후기의 유랑예인집단이었던 남사당패에서 여자의 '음부'를 가리킬 때 쓰던 은어였음이 밝혀졌다. 대개의 천민집단이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기호를 지녔듯이 남사당패도 다양한 은어를 지니고 있었고, 그 중에는 사람 몸에 빗댄 은어도 많다.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이 수집한 목록을 보니 다음 같은 은어가 눈에 뜨인다. 애초에는 쑥떡질이라는 인간행동이 먼저 생겨났고, 조선 후기에 '엿'이라는 욕설이 뒤따랐음직하다.
머리-글빡.구리대, 눈-저울, 코-홍대, 입-서삼집, 이빨-서삼틀, 배-서삼통, 젖-육통, 손-육갑, 발-디딤, 남자 성기-작숭이, 여자 성기-엿.뽁
얼마 전의 일이다. 내가 탄 차가 포항 시내에서 칠포 쪽으로 올라가다가 다른 승용차와 작은 접촉으로 인하여 시비가 붙었다. 10여 분 사소한 언쟁이 오고간 뒤에 대충 평화와 타협이 이루어졌다. 차가 움직이자마자 상대편 승용차 뒷자석에 탄 청년들 셋이 우리 일행을 향해 일제히 '쑥떡'을 먹이는 것이 아닌가. 기어히 쑥떡을 먹이고서 사라지는 차를 다시 불러세우고 시비를 붙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뿔싸! 우리는 기어코 그 쑥떡을 먹고 말았다. 우리 세대는 모두 쑥떡을 먹고 자랐다. 비오는 날 학교 등교길에는 승용차가 흙탕물을 튀기면서 달려갈 때, 말로만 하는 항의는 필요 없었다. 전달되지 않을게 뻔했기 때문에 일제히 쑥떡을 먹였다. 물론 집에 들어오면 그런 못된 짓은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받았다.
1960년대 후반쯤, 서울 변두리의 아이들도 쑥떡에 관한 한 대단히 다양한 손짓과 표정을 개발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196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인근의 미군부대 병사들이 GMC를 타고 갈 때 껌이나 초콜릿을 주지 않으면 일제히 쑥떡을 먹였다. 나중에는 미군들도 되받아서 우리를 향하여 쑥떡을 돌려주었다. 입으로 연신 무어라고 영어로 떠들어댔는데 틀림없이 쌍욕이었으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휴전이 끝난 뒤에 태어난 세대들은 그렇게 쑥떡을 늘 먹고 먹이면서 자라지 않았을까. 그런데 홰 하필이면 욕먹이는 데 떡이 쓰였을까. 떡은 성적 행위의 노골적인 암시다. '떡친다', '떡치듯 한다', '찰떡꿍 궁합' 따위의 말 뜻은 남녀의 성적 결합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따라서 떡 중에서도 강력한 양기가 듬뿍 든 쑥떡을 먹이는 행위는 성적 공격심을 드러낸다. 행위의 명칭은 쑥떡이고, 먹이는 행위는 여성의 음부를 상징하는 '엿'으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쑥떡을 무조건 '교양없는 짓'으로만 평가절하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교양'을 빙자한 '길들이기'에 익숙해져 있으나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본능적으로 쑥떡을 먹인다. 아무래도 점잖은 사람들은 쑥떡을 비천하게 생각할 뿐더러 에티켓에서 벗어나는 저속한 짓으로 비하하기 때문에 쑥떡 따위는 금기시한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얼마든지 쑥떡을 먹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드러난 손짓과 드러나지 않는 마음 사이의 괴리현상이 보인다. 나는 오히려 21세기의 문턱에서 차츰 사라져가고 있는 '쑥떡문화'를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쑥떡 혹은 드러내놓고 싶은 성
쑥떡은 단순하게 "엿 먹어라"고 욕설을 하기 위한 동작만은 아니다. 쑥떡은 전통 시대 섹슈얼리티의 도발적 표현이 아닐까. 쑥떡의 동작은 이렇다. 주먹을 쥐고 다른 손바닥 위로 불끈 내밀면서 한 손은 손목에 가져간다. 아니면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상대 손가락들을 잡아서 튕기듯이 들이민다. 상대방이 멀리 떨어져 있어 잘 보이게 동작을 확대시킬 필요가 있을 때는 팔뚝에 다른 손바닥으로 받치고서 팔뚝을 흔든다. 팔뚝은 남성기의 끄떡거림을 암시한다. 보다 과격한 행동도 나온다. 아예 한쪽 발을 기역자로 꺾은 채로 들면서 두 손으로 무릎을 훑고 난 다음에 손을 뒤로 뺀다. 이 같은 동작은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여러 번 반복할 뿐더러 차츰 가속도를 붙여서 상대방에게 무언의 적의를 전달한다. 자그맣게 하는 쑥떡 있다. 엄지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고서 엄지가 앞으로 삐쭉 손톱만 나오게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두 손가락 틈새에 엄지가 들어감으로써 삽입된 남근을 상징한다. 사람에 따라서 하는 동작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우리 나라 사람들이 즐겨 쓰는 쑥떡은 그렇다. 이런 쑥떡은 우리 나라에만 있을까.
영국의 유명한 동물행동학자 데스먼드 모리스의 솔직하면서도 흥미로운 <인간동물원>을 읽으면서, 나는 줄곧 우리의 쑥떡과의 관련성을 생각하였다. 네 발로 기어다니다가 두 발로 서게 된 인류는 무엇보다 손이라는 유능한 도구를 얻게 되었다. 모리스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의 앞발 동작이 제한적임에 반하여, 인간은 무려 3천여 개의 제스처를 가지고 있다. 손으로 하는 이들 제스처는 모두 인간이란 동물이 직립하여 앞발이 기어다니는 일에서 해방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인간은 동료들에게 훨씬 더 정확하게 방향을 지시할 수 있게 되었다. 모욕을 주는 손짓도 그 중의 하나다. 영국인들은 손등을 보이는 브이자를 모욕적으로 생각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남근을 상징한다. 고대 로마에서 기원한 '가운뎃손가락 치켜세우기'도 너무나 유명한 남근상징이어서 '외설스러운 손가락' 내지는 '파렴치한 손가락'으로 알려진다. 손을 모아 쥐고 엄지손가락을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 사이로 내밀어 엄지손톱 정도까지만 내보이는 피그 사인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며 방어의 의사를 나타내는 고대의 제스처다.
이런 행동의 기원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사악한 마법을 무력하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 여자들의 성기를 내보내는 의식이 행해졌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까지 소급된다고 한다. 자기를 노출시키려는 정신의학적 증상인 노출행동은 고대 종교적인 제스처의 상징적 변형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제스처를 성적인 모욕이나 성적인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의 용도인 방어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다. 이런 행동의 기원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사악한 마법을 무력하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 여자들의 성기를 내보이는 의식이 행해졌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까지 소급된다고 한다. 자기를 노출시키려는 정신의학적 변형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제스처를 성적인 모욕이나 성적인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의 용도인 방어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다.
나는 우리 문화 속에 자리잡고 있는 "엿 먹어라" 하는 쑥떡도 실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확신한다. 주먹을 불끈 쥐고 상대편을 향하여 성적인 동작을 감행하는 우리들의 쑥떡은 우리 조상의 어느 시대에선가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결과물로 남은 쑥떡의 외설스러움 때문에 오로지 '교양 없는 행위'로만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교양'이라는 두 글자의 한계에서 과감히 벗어난다면, 쑥떡이란 행위 속에는 '성기 드러내기'를 통한 외설의 극대화를 통하여 현실세계의 분노, 격정 따위를 풀어 보려고 하는 인간심리의 심층적인 뿌리를 잘 알 수 있다. 그러한 집단심리는 매우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되어 온 것이며, 밝혀지지 않은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우리 문화를 어떤 고결하고 엄숙하고 아름다운 것으로만 단정하여 귀족적 취향으로만 재단하려는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못마땅한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문화는 늘 그렇듯이 고급이 있으면 저급이 있다. 그리고 고급은 고급대로 저급은 저급대로의 몫과 임무, 각각의 쓰임새가 별도로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들이 무조건적인 '교양인'을 추구하는 동안에 우리 문화는 쑥떡질을 거의 잃어버렸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은 하루에도 열댓 번 쑥떡을 먹이고 있는지 모른다. 쑥떡을 그대로 드러냈던 시대와 쑥떡을 마음 속에서만 하고 있는 시대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들은 '교양인'이 되기 위하여 화가 날 때도 쑥떡 따위는 감히 드러낼 수 없어 속으로만 쑥떡을 먹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속으로만 과대섭취한 쑥떡에 체하여 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자리에서 쑥떡 같은 것을 옹호, 발전시키자는 주의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신체언어를 통제당하고 급기야는 상실해버린 '권위통제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쩜 원초적인 우리들의 신체언어를 회복하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바람이다. 모리스는 우리 인간을 동물로 보고 있다. "우리는 때로는 괴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숭고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동물이다. 아무리 스스로를 날개 잃은 천사라고 생각하고 싶어 해도 우리는 서 있는 원숭이에 불과하다"면서 '신체언어 통제'를 이렇게 들려주고 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가급적 신체언어를 통제하려는 경향의 저변에는 생물학적 이유가 깔려 있다. 영장류나 원숭이 그리고 늑대 집단의 우두머리는 그보다 지위가 낮은 성원들보다 몸을 훨씬 적게 움직인다. 어떤 집단에서건 우위에 속한 동물은 거의 고요한 정적 속에서 거동하며, 순위가 낮은 구성원들이 멋대로 굴 때도 질서를 잡기 위하여 한 번 무섭게 노려보는 것 이상의 동작을 하지 않는다. 구태여 신체언어를 사용하느라고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우두머리는 단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인간사회에서 사회적인 '신체언어 통제의 기초'에 깔려 있는 것이 바로 이 우위의 '냉정함'이다. 침묵의 거의 주술적인 자신감을 나타내며 다른 동료들을 선동하거나 그들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전혀 없다.
대리만족 혹은 배설의 쾌락
우리 시대의 문화적 특징은 '대리만족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탈리아 출생의 세계적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어법을 재활용해 보기로 한다. 우리들은 그람시가 민속문화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곤 한다. 민속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람시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민속적인' 세계관을 넘어서 대중으로 하여금 독자적인 문화를 생산할 수 있게 해주고, 상부로부터 전달된 문화인 지배계층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자발적 요소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속적인 것이 지배적인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민속이란 '신중히 다루어야 할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뿐만 아니라, 모든 민속현상은 다른 세계관과 연관된 사회문화적 상황에 부합하는 '인생관과 세계관'을 포함하거나 나타낸다고 하였다. 민속문화의 주역인 '인민의 세계관'은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공적 세계관'과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반대나 모순, 갈등의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교양 있는 부류나 지배계층 혹은 국가의 특질인 공적 개념은 일반적인 공적 사회가 그러하듯이 민속과 양자택일적으로 경쟁하고 갈등한다. 이는 "민속이란 인민의 문화생활 조건의 반영을 따름"이라는 견해에 이른다.
장황하게 민속에 대한 그람시의 견해를 끌어들인 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욕설'이라는 것도 하나의 민속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욕설은 결코 단순한 욕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한다. 따라서 욕설은 인간의 심층심리와 행동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민속문화의 하나가 아닐까. 이제 문화는 더 이상 '생산의 문화'이기를 멈추었다. 문화 자체가 소비품목이 된 탓이다. 20세기를 마감하는 가운데 거대자본주의가 거둔 가장 중요한 전리품의 하나는 바로 문화라는 소비품목이다. 그 소비품은 더 이상 기존의 일과 놀이 혹은 일과 제의를 벗어난 지 오래다. 오늘의 문화는 배설을 원한다. 그 배설은 포만한 잔치, 끝없는 욕망의 굴레, 되풀이되어 끝내 거부할 수 없도록 포박 지우는 광고선전 등 다양한 종류로 특징지워진다. 화장실은 늘 쾌락한 공간이며 쓰레기장은 늘 넘쳐나며 도시의 하수처리가 사회문제로 된 것은 이미 고전에 속한다. 침실에서 이루어지는 남과 여의 섞임이 밤낮 없는 배설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누구나 그 배설의 기쁨, 경건성, 놀라움, 찬란함 따위에 감탄하고 끝내 자신도 늘 배설하고 만다. 대리만족, 그 배설의 시대에 살면서도 정작 우리는 '교양 있는 계급'을 자처하면서 욕설이 지닌 원초성을 깔본다. 상당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고운 말 쓰기'라는 도식에만 빠져서 욕에 담겨져 있는 원초성을 미처 보지 못한다. 인간이란 그렇게 고상하기 만한 존재인가. '고운 말'을 쓰는 것에 반대하지도 않고, 반대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걸쭉한 육두문자 소멸을 마냥 좋다고만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육두문자가 사라진 그 빈 자리를 음란비디오 따위의 정말 불건전한 매체가 대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매월당 김시습에게서 다시 배우며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참으로 참담한 느낌을 한시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매월당 김시습, 시대를 거역하면서 천하를 주유하던 방랑 시인 김삿갓이 써놓고 간 이러저러한 시편을 들추어보았다. 조선 전기 문학에서 일찍이 그가 이룩한 성애의 당당함과 건강함을 우리는 모두 추방시키고, 값싼 포르노 성애문학으로 대체시켰다. 참으로 참담한 지경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문화 곳곳에 깔려 있는 쌍욕도 무참히 버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김시습이 한때 묵었던 부여 땅 무량사를 찾아갔다. 무량사 오층탑 앞에 서서 "오호, 애재라! 육두문자의 소멸을 통곡하노라!"고 여러 번 외쳤다. 서울로 돌아온 날 그의 시편 중에서 하나를 골라 컴퓨터에 옮기고 누런 종이로 출력하여 책꽂이 옆면에 붙여놓았다. 그리고 호탕하게 늘 그 시를 읽어 본다.
성당은 내좆이고 방 안은 개좆물 같다 생도는 제미씹이고 선생은 내불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