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프로이트 - 김정일
1장 진료실에서 쓴 프로이트 심리학
구순성 성격
내가 팔다리를 움직이거나 아플 때 몸을 움츠리는 것은 내 의지고 가능하다. 내 몸의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이 내 의지와 연결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굴이 붉어지거나 땀을 흘린다거나 속이 쓰리거나 발기가 되는 것은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 그들은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나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은 의식의 통제하에, 자율신경은 무의식의 통제하에 있다고 본다. 자율신경은 땀샘, 내장근, 혈관벽 등 우리의 온몸에 미세하게 퍼져 있다. 그리서 무의식이 불안정하여 자율신경이 자극받으면 온갖 신체 반응이 일어난다. 그래서 신체화 장애(somatization disorder)라는 노이로제에서는 30여 가지의 정신, 신체 증상이 가능하다. 이같이 우리의 정신과 신체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체 장기 중에서 정신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곳은 어디일까? 아무래도 위와 간일 것이다. 신경성 위염이니, 스트레스로 인해 간이 피로하다느니, 우리나라에 위암과 간암 환자가 가장 많다느니 하는 말이 상식처럼 떠돌고 있으니 말이다. 위는 음식물을 받는 것이고 간은 음식물을 대사하는 곳이라면, 결국 음식물과 우리 정신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식물과 정신의 관련성은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1. 음식물은 욕심과 관련이 있다
언젠가 한 전문가가 위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애석해 했다. 그가 쌓은 학문적, 임상적 업적이 지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가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은 것은 어쩌면 그 지대한 업적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양에 비해 너무나 많은 일을 했던 것이다. 일을 많이 한 것과 위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은 욕심이 많다는 것이고 그 욕심은 마음의 위뿐 아니라 신체의 위까지도 부담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욕심은 곧 자기 속으로 자기가 소화하기 힘든 지경까지 집어넣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음식물은 사랑과 관련이 있다
(삼공일 삼공이)라는 영화가 있다. 거식증을 다룬 영화인데 내용은 이러하다. 아파트 301호와 302호에 두 여자가 마주보고 살고 있었다. 그들은 홀로 사는 여자들이다. 한 여자는 요리에 너무 미쳐 남편에 이혼당한 여자이고, 또 다른 여자는 음식물을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여자였다. 요리에 미친 여자는 남편이 사랑해 주지 않자 음식물을 마구 먹어 비만해졌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남편의 애완견을 보신탕으로 만들었다가 이혼당했다. 음식물을 거부하는 여자는 정육점을 하는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실수로 냉동칸에 들어가 얼어죽은 아이를 의붓아버지의 강압으로 토막낸 후 음식에 대한 강한 거부증을 보이게 된다. 두 여자 모두 음식물을 사랑과 섹스에 연결짓는데, 영화가 아닌 실제로도 이런 예는 많이 있다. 남편이 사랑해 주지 않자 그 외로움을 먹는 것으로만 해결하거나, 바람피울 때는 처녀같이 날씬했으나 자식 때문에 가정으로 돌아온 후 욕구 불만에 마구 먹어대는 주부도 있으니 말이다.
3. 음식물은 의존심, 공격심과 관련이 있다
정신분석학에는 유아기에 구순기(oral stage)가 있다고 본다. 유아는 배고픔을 젖 빠는 행위를 통해 해결하므로 입은 신체의 그 어느 부분보다도 rhksta, rkarkr alc 활동의 초점이 집중되는 부분이다. 또 입은 무어뜯는 데서도 쾌감을 제공한다. 이때 처음으로 공격성이 나타난다. 이 공격성은 힘차게 젖을 빠는 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성장하면서 이러한 구순기에 고착이 심했거나 좌절이 심했을 때는 구순 인격(oral personality)이 형성된다고 한다.
구순 인격은 구순 수용성 성격과 구순 공격적 성격으로 나누어진다. 구순 수용성 성격(oral receptive character)은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서 성장한 후에도 우애적이고 낙관적이며, 관대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와 반대로 자랄 때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적개심이 강하고 비판적이며, 시기심이 많고 남 욕하기를 좋아하며, 착취적이고 과도하게 경쟁적인 구순 공격성 성격(oral aggressive character)으로 발달하게 된다. 구순 수용성 성격은 만일 좌절하게 되면 염세주의적이 되고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같이 행동한다. 세상은 항상 자기에게 사랑을 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음을 발견했을 때는 마치 엄마 잃은 아이같이 공허해지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스스로 상실하는 것이다. 어려운 일을 당해 좌절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같이 느끼는 사람은 실제로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고, 자신이 구순 성격형이라 그렇게 과장해서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같이 먹는 것은 욕심, 사랑, 의존심, 공격성 등 우리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많이 먹고 많이 먹이는 것을 유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그러한 음식 패턴이 우리의 삶을 여유 없고 초조하고 급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먹고 싶은 것을 구분할 수 있고 먹고 싶은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항문성 성격
(아침 마당)이라는 KBS의 장수 프로가 있다. 이상벽, 정은아의 콤비로 아침에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는 주부들의 일상을 많이 다루는데, 가끔 정신과 상담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곤 한다. 출연자들이 자기 문제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또 이에 대한 해결책을 공개적으로 토의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식사를 하면서 가끔 그 프로를 보는데, 어느 날 흥미있는 경우를 보게 되었다.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대충 이러했던 것 같다.
아내와 시어머니가 갈등이 있는데, 그 갈 등을 해결하기 위해 남편이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도대체 해결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내는 무척이나 고집이 세서 남편의 중재도 무시하고 시어머니 쪽에서 화해를 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타협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분가해도 마찬가지이다. 아내는 아예 시어머니는 상대도 하지않으려고 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풀지 않는다. 남편은 돈을 열심히 벌어 오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하고, 심지어 때려 보기도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아내를 만족시키거나 바꿀 수가 없었다. 참석한 정신과 의사나 대학 교수들은 한결같이 남편은 좀더 애정을 갖고 노력하고, 아내는 좀 양보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래 봤자 헛일이라고 반발했고, 아내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부인을 가만히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저 부인은 고부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도 남편을 속터지게 할 거라고... 바로 그 부인이 항문성 성격(anal personality)이었기 때문이다.
항문성 성격은 프로이트의 용어이다. 그는 항문성 성격의 세가지 중요한 양상으로 질서와 규율, 완고한 고집, 인색함을 들었다. 항문성 성격은 어린이들이 척수의 유수화(myelination)가 이루어져 항문 괄약근의 조절이 가능하고,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전에, 지나치게 일찍 또 가혹할 정도로 배설 훈련을 시킬 때 발달한다고 한다. 항문성 성격은 한마디로 자기의 항문 속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넣으려고 하는 성격이다. 인색하고 고집이 세고, 청결, 질서, 정돈, 굴종, 세밀함 등의 특징을 보인다. 그들은 상당히 완고한 자기만의 틀을 갖고 있어서 그 틀에 세상이 들어오지 않는 한 절대로 만족하지 않는다. 앞서의 부인의 경우도 남편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오고 시어머니가 항복을 해도 그 부인은 만족하지 않는다. 그 부인은 남편과 시어머니가 완전히 자기 항문 속으로 들어가 자기 마음대로 조절이 되어야 다소나마 긴장을 푸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100% 만족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자기 항문 속으로 집어넣어야 하는 엄청난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자꾸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다. 조금이라도 자기 성에 차지 않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자기 항문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언제까지나 고집을 부리며 상대방을 숨막히게 한다. 그래서 항문성 성격의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들과 함께 사는 남편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 좁은 항문으로 자기를 끼워 맞추려고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두 손 들고 만다. 그래서 항문성 성격의 부인을 가진 남편들은 밖으로 돌게 된다. 하고 싶은 일과 부드러운 여자, 다른 취미 생활을 통해 가정에서 못 받은 따뜻함과 위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영혼의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들의 경우 그 부인이 항문성 성격인 경우가 꽤 많을 것이다. 부인이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부드럽다면 기를 쓰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항문성 성격을 가진 부인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남편이 성공을 해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남편이 완전히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지, 남편이 자기 삶을 성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문성 성격은 남편도 잡고 시집도 잡고 자식도 잡는 대표적인 악처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도 악처라는 것은 알지만 자기도 어쩔 수 없다고 한탄한다. 자리 힘으로 어렸을 때의 왜곡된 악영향을 교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문성 성격의 부인을 가진 남편들이 한 가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자기의 좁은 항문 속에 틀어박혀 살기 때문에 쉽게 바람을 피우거나 돈을 함부로 쓰면서 자유롭게 놀아나는 식으로 가정의 틀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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