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 주강현
성적 제의와 반란의 굿
도깨비굿, 반란의 제의
초여름답지 않게 복날 같은 지열이 후끈 달아올랐다. 두어 달 계속된 가뭄으로 논두렁은 거북등이 되었고, 쩍쩍 갈라진 틈새로 일찍 심은 모가 빨갛게 말라붙었다. 마을은 깊은 침묵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이따금 끼니를 얻어먹지 못한 동네 개들이 어슬렁거릴 뿐, 누구 하나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무제봉에서 기우제를 지냈건만 감감 무소식. 빗방울 떨어질 기색도 비치질 않는다. 가뭄에다 역질이 돌아 벌써 세 사람이 절단났다. 마을에는 연신 검불을 태우는 냄새만 자욱했다. 그래도 힘이 남아 있는 장정들이 동원되어 시신을 마을 뒷동산에 옮겨놓고 임시방편으로 거적만 덮어놓았다. 누구 하나 거들떠볼 여력이 없었다. 기우제 지낸 지 열흘째 되는 밤.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부황이 든 아낙들이 누렇게 찌든 낯빛으로 하나둘씩 약속이나 한 듯 정자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이자 굿을 내야 우리가 살제. 도깨비를 잡아 족쳐야제." "암, 도깨비가 날뛰니께 죽을 놈의 가뭄에다 엠병까지 도는 것이제." "도깨비굿을 내제. 이자 방법이 없지라. 농사일도 절단났은게." "그란디, 누구 속곳을 벗기지라?" "아무렴, 새댁하고 과부댁 서답을 벗겨야 효험이 좋제."
황량한 들판의 어둠을 가로질러 요란한 파열음이 터져나왔다. 숫가락으로 두드리는 양푼소리, 북채로 두드리는 놋대야 소리, 젓가락 장단의 꽹과리 소리, 온갖 불협화음들이 그 자체로 묘한 화음이 되어 마을을 시끌벅적 들끓게 했다. 마을 개들도 황망히 저마다 짖기 시작하였다. 오랜 가뭄 탓으로 동네가 시들시들해지자 짖는 것조차 눈치를 보아야 했던 개들이 제철 만난 듯 날뛰었다. 아낙들은 저마다 장단을 두드리거나 외마디 소리를 질러댔고, 긴간대(장대) 끝에 피 묻은 속곳을 내걸어 휙휙 휘두르며 온 동네를 헤적이고 다녔다. 남정네들은 방 안에 틀어박혀 문고리를 꽉 쥔 채로 나오질 못했다. 속곳 휘두르는 여자들 그림자가 창호지에 어른거리자 남자들은 낯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하지만 굿은 그렇게 밤이 이슥하도록 계속되었다. 불볕 가뭄에 겹쳐 역질까지 돈다. 사람의 형편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기우제도 효험이 없고, 무당까지 불러다가 굿판을 열어도 마찬가지. 어떻게 할 것인가.
드디어 여성들이 나선다. 이름하여 도깨비굿이라 부르는 진도 고유의 풍습. 월경서답을 장대에 내걸고 양푼을 두드리며 한바탕 시위를 한다. 달거리 피를 내보이는 성도착적 데먼스트레이션인데 효과는 만점이다. 역질을 몰고 온 귀신도 여성의 은밀한 그것들이 백주 대낮에 내걸리는 데는 어찌해 볼 도리가 있겠는가. 이슥한 밤부터 대낮까지 남자들은 감히 집 밖으로 나올 엄두를 못 내고 방 안에 틀어박혀 꼼짝 못한다. 해방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굿판이 열린 다음에는 영영 사라진 풍습이다.
기성질서를 완벽하게 뒤바꾸어버리는 도깨비굿. 평소에 남성중심으로 사회가 유지 통제되다가 그들이 백기들고 항복. 방 안으로 도망을 치자 동네는 아낙들의 점령지가 되었다. 여성들은 못내 드러내기 어려운 속곳마저 벗어들고 시위를 하니 이제 무서울 게 없다. 우먼파워가 기세등등하게 폭발하는 순간이다 평소에 남성들에게 시달렸던 스트레스도 적잖았을 것이다. 차마 내보이기 힘든 달거리 속곳을 장대에 휘두르는 도깨비굿에 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압축하고 싶다
'반란의 제의, 혹은 제의적 반란'
분명한 반란이다. 일상적 엄숙함, 남녀유별,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권위, 남성들의 제의 독점... . 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반란이다. 영기나 농기가 걸려야 했을 장대에 여성들의 붉은 피가 횃불에 번득인다. 반란은 사회를 엎어버리지만,사회를 정화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반란을 거치면 사회는 혼란과 변화를 통해 새 질서를 수립하지만, 반란이 없는 사회는 썩어 더러운 물이 고일 뿐이다. 그것은 또한 분명한 제의다. 마을공동체 전체가 가뭄과 역질로 위기에 닥쳤을 때. 공동체는 위기를 모면할 출구를 찾는다.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는 제의. 공동체를 살리려는 이 제의에 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최고의 호칭을 엄숙하게 올린다.
'화려한 제의, 광란의 제의, 도착의 제의, 되살림의 제의...'
생식의 힘에서 주술의 힘으로
여성의 달거리는 생식을 상징한다. 매월 여성들은 하나의 통과의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전통시대,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생식조차도 오로지 가부장적 권위에 의해 쉬쉬해야 했다. 그러나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이 닥치자 남자들은 일시적이나마 완전 철수를 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남성들을 대신하여 주도권을 잡은 여성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식의 힘을 주술의 glamd로 바꾸어서 마을공동체의 운명을 구하고자 도깨비굿을 행하는 것이다. 폴란드 태생의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는 뉴기니 북동쪽의 트로브리안드 군도에서 무려 26개월간이나 머물면서 그 조사결과를 <미개사회의 성과 억압 Sex and Repression in Savage Society>에 담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신화에 나타난 조상 집단들이 언제나 여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끔 그들이 형제나 토템, 동물을 동반하는 일은 있어도 결코 남편을 동반하는 경우가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신화 속에서는 최초의 여조상이 자식을 낳는 방식이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녀는 음탕한 자세로 비를 향해서 자신의 몸을 노출하거나, 동굴 속에 누워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거나 물고기에 물어뜯김으로써 자신의 후손을 잇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렇게 함으로써 '열리게'되며 아이의 정령이 그녀의 자궁으로 들어가서 임신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신회는 아버지의 생식력을 대신하여 여조상의 독자적인 생식력을 보여 주고 있다.
여자들의 스스로 생식을 하는 모권사회적 힘. 그 원시적 힘이 도깨비굿에는 살아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유교적 덕목을 높이 산 전통사회에서 도깨비굿 같은 반란의 축제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을까. 마을의 공동제사인 마을곳에서 달거리 있는 여성의 피는 부정한 것에 봉착으로 생각하여 기피대상 1호다. 그런데 정작 마을이 절대적 위기상황에 봉착하면, 달거리 있는 여성들이 해결사로 등장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억눌리던 여성들이 정작 가장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는 주역이 되어 역전의 드라마를 연축하고 만다. 도깨비굿은 평소에는 은폐되어 있던 여성의 성적 상징물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적극적 통로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모권적 생식의 힘이 다시 등장하는 셈이다. 도깨비굿이 진도사회에서 지니는 사회적 의미가 궁금한 사람들은 송기숙의 소설 <어머니의 깃발>을 읽어보라. 미륵을 파가려던 여인에게 진도의 여인들이 양푼을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방 이 소리가 뭔 소린 중 아냐? 옛날부터 우리 동네서 도깨비 귀신 쫓아낸 소리다. 소작 농간하던 마름귀신, 징용 잡아가고 생과부 만들던 징용귀신, 공출 뜯어가고 배 곯리던 공출귀신, 생사람 쏴 죽이던 총잡이귀신, 촌가시네 홀려가던 양공주귀신, 장세 폴아묵은 장세귀신, 이런 귀신, 도깨비 다 몰아낸 소리여!
집단적 환난을 극복하려 했던 도깨비굿의 사회적 성격을 잘 드러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인간의 성을 통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던 이같은 풍습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보편적이라는데 있다. 엄숙하기만한 유교적 덕복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감히 여자들이, 그것도 은밀한 그곳의 증거물을 백주 대낮에 장대에 매달아 휘드르고 다니는 것을 상상해보라! 성이 개방되었다고 하는 지금 시대의 남성들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감히 얼굴을 들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드의 교육 받아온 전통시대의 성관념에 대하여 일차 재고가 필요한 대목이다.
진도 도깨비굿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이런 풍습을 진도만의 특수 사정으로 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다.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본다.
디딜방아 액막이, 성적 유감주술
두 갈래로 갈라진 디딜방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춘향이 생각이 절로난다. 이도령이 춘향을 만나서 취흥이 도도해지자 춘향을 안고서 농탕치면서 사랑가를 부르던 그 대목에서 방아확과 방앗간공이는 성적 은유법의 대명사가 된다. "너는 확이 되고 나는 공이 되어 천년 만년 찧고 말고... ." 우리의 속담에도 '가죽방아 찧는다'는 말이 있다. 성교 장면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그렇듯, 디딜방아는 전통시대 성적 상징물의 으뜸이었다. 디딜방아는 두 갈래로 갈라졌다. 갈라진 방앗다리에 각각 한 사람씩 올라가서 방앗소리에 맞추어 힘을 주면 공이가 확으로 내려가 알곡을 찧게 된다. 갈라진 다리가 성적 상징물임은 삼척동자도 다 알 것이다. 이 디딜방아도 마을에 우기가 닥치면 반란의 제의에 동참한다. 가뭄이 들면, 아낙들이 그 디딜방아를 훔치러 간다. 충청도에서는 이를 '디딜방아 액막이'라 부른다. 불볕 더위로 가뭄이 계속되면 남자들이 나서서 용두레나 고리박으로 열심히 물을 뿜어본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가뭄이 이어지면 여성들이 드디어 나선다. 흡사 진도의 여성들이 그랬듯이. 상복을 차려입고 떼지어 이웃동네로 디딜방아를 훔치러 간다. 이웃 마을에서는 방앗다리 훔치러 왔음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체 묵인한다. 아니,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통스런 가뭄이 줄기차게 이어지는데 이웃동네라고 무사할 수 있는가. 이웃마을 여자들이 방앗다리를 훔치러 왔을 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왜 하필 방아였을까. 여자들이 방앗다리를 훔치는 행위에는 집단적 성관계가 은유되어 있다. 여성들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이 집단적 관계의 공범이 된다. 가뭄같이 절박한 상황은 공동체 전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상조치를 요구한다. 그 결과 마을에 일종의 비상사태가 선포된 셈이다. 훔쳐온 디딜방아는 즉각 길거리로 옮겨진다. 가능하다면 삼거리같이 행인이 많이 다니는 길목일수록 효험이 높다. 방앗다리를 거꾸로 세워서 길거리에 묻는다. 마을의 여성들 중에서 몇몇이 선택된다. 그들 선택된 여성들은 깊숙이 가리고 있던 월경서답을 벗는다. 피는 짙고 강할수록 좋다고 본다. 아무래도 성관계를 못했을 과부의 피가 강하다고 모두들 느낀다. 느낌이 그럴 뿐, 실상 과부의 피가 유난히 붉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속신일 뿐이다. 과부의 속곳이 걸쳐지면, 이윽고 여타 여염집 여인들도 벗는다. 속곳은 방앗다리의 갈라진 곳에 걸쳐놓는다. 하늘이 보고 까무라칠 일이 아닌가. 하늘도 놀랄 지경이라 비를 퍼붓고야 만단다. 방앗다리에 생식을 상징하는 여성의 달거리가 닿았음은 음양이 결합하였음을 의미한다. 바로 성적인 주술의 힘에 의하여 집단의 위기를 탈출하고자 하는 제의 그것이다. 피 묻은 속곳이 걸쳐진 디딜방아는 심지어 돌림병을 막아주는 힘까지도 지녔다고 믿는다.
이들 주술은 왜 힘을 지니는가. 이미 시대의 고전이 된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에서 프레이저(Frazer)는 주술의 기초가 되는 사고의 원리를 분석하면서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 하나는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낳는다는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이전에 서로 접촉이 있었던 것은 물리적인 접촉이 사라진 후 멀리서도 계속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앞의 것을 '유사의 법칙', 뒤의 것을 '접촉의 법칙', 또는 '감염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이 유사의 법칙에 기초한 주술을 유감주술, 또는 모방주술이라 부르고, 접촉에 의한 주술을 감염주술이라고 불렀다. 그의 이론에 따른다면, 디딜방아 액막이류는 '유감주술'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줄다리기굿, 남녀의 집단 상관
성을 통하여 집단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던 풍습이 전국적이었을 뿐더러, 매우 다양하였다는 것은 마을간에 이루어졌던 대동 줄다리기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으나 중부 이남을 중심으로 한 쌀농사지대에서는 널리 줄다리기가 행해졌다. 줄은 하나의 줄로 된 외줄과 두 개의 줄을 연결하는 쌍줄로 나뉜다. 어떤 경우에도 마을을 동서편으로 가르거나, 마을 대항으로 줄을 당기게 된다. 암줄, 숫줄로 남녀를 구별한다. 암줄과 숫줄 사이에는 기다란 통나무로 비녀목을 지르는데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남녀결합의 모양새다. 줄을 결합하려 하면, '좀더 세게 해!'하는 따위의 농지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한바탕 웃게 마련이다. 비녀목 지름은 남녀의 섹스를 상징하기 때문에 쉽게 응낙하지 않는다. 고의적인 실수를 몇 번이고 거듭하여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전라북도 보안면 우동리 반계마을에서는 아예 암줄과 숫줄에 각기 각시, 신랑을 태워서 마을을 한 바퀴 돌게 한다. 사모관대 쓴 신랑, 족두리 쓴 각시를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게 하여 남녀결합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사례다.
남녀의 섹스, 즉 암줄과 숫줄의 줄다리기에서도 반드시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온다는 속신이 전해진다. 그래서 줄을 당길 때, 여자들은 부지갱이, 빗자루 따위로 남자측을 때리거나 일부러 잡아채는 반칙을 해도 짐짓 허락된다. 어린아이들은 사내라도 여자편에 넣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여자들이 이기게끔 되어 있다.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온다는 믿음 속에는 여성을 생산의 상징물로 간주하는 유감주술적인 전통시대의 이론이 담겨 있다.
좀더 많은 생산을 기원하는 농민들의 염원은 줄다리기굿처럼 집단적으로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정월 풍습에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란 속신이 있다. 과수나무의 Y자로 갈라진 틈에 돌을 끼워두는 일이 그것이다. 과수나무가 낮게 양쪽으로 갈라져야 과실이 많이 열린다는 사실은 지극히 과학적인 농법이 아닌가. 옛 사람들은 이같이 뻔한 과학상식을 시집가서 첫날밤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연출시켰던 것 같다. 그래서 <동국세시기> 같은 세시풍속지 뿐 아니라 <산림경제> 같은 농서에도 당당히 대추나무 시집보내기가 '가수'란 농법으로 등재되었다.
도깨비굿과 디딜방아 액막이굿이 위기로부터의 집단적 탈출에 여성의 성적 상징물을 활용한 것이라면, 줄다리기굿은 집단의 풍요를 비는 풍농굿에서 남녀의 상관을 적극 활용한 사례다. 어느 경우에도 집단적 공범의식이 담겨 있다. 적어도 의례기간만은 어떠한 노골적인 성적 표현도 공식화된다. 성적 상징물을 내세운 일탈된 의례를 통하여 성숙한 사회집단으로 성장한다는 측면도 있는 셈이다. 조선시대 지배층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민중들은 그야말로 성을 매개로 한 반란의 축제를 곳곳에서 벌였다. 그 축제는 유교적 가치관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기도 하였으니, 신학자 하비 콕스(H. Cox)가 '바보제'에서 말했던 것처럼, 세상을 바꾸어버릴 '환상'을 여전히 상실하지 않은 제의라고나 할까. 나는 이들 집단적 행위들을 '성적 제의와 반란의 굿'으로 명명하거니와, 우리들이 교과서로 배워온 조선시대 성풍속사가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는 무조건 엄숙하고 도덕적인 사회라 성적인 것들은 늘 '이부자리' 속에서나 이루어졌던 것으로 간주하는 교육에 동의할 수 없다. 무엇이 도덕이고, 무엇이 비도덕인가. 백주 대낮에 여성들이 속곳을 빼들고 장대로 휘둘렀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도덕과 비도덕을 구분지을 수 있을까.
사실 이러한 풍습들은 매우 늦게야 일부 사람들의 눈을 통하여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명색이 민속학자인 나조차도 대학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이 풍습들을 접하며 새삼 민중적 삶의 그 놀라운 반란의식에 놀라고 있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전통시대 성에 관한 담론을 구축하지 못했다. 일생 동안 <풍속의 역사>를 쓰면서 진정 '성풍속의 사회경제사' 같은 것을 꿈구었을 풍속사가 푹스(Eduard Fuchs) 같은 임자를 아직 못만난 탓일까. '음란저속'하다는 이유로 히틀러에 의해 <풍속의 역사>가 분서갱유하다는 비운을 맞으면서도 정작 푹스 자신은 엄격한 모럴리스트였던 사실을 기억해보자. 푹스는 그의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시대의 도덕행위, 도덕관, 도덕률은 어느 시대에서든 그 시대 인간의 성행동의 존재방식을 좌우하는 근본이 되지만 한편 성행동은 그 시대의 발전상을 인식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 속에 그 시대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 민족의 공공생활이든 개인의 사생활이든 성적인 이해관계와 경향을 내포하지 않은 것이 없다... .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의 성행동이 각 시대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로 형성되었고, 그 법칙도 새롭게 변화하여 왔다는 점이다. 그 변화방식의 틀은 한 마디로 천변만화였다.
21세기를 앞두고 우리의 성풍속도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한 시대가 끝나면 일차 정리를 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할 터인데 우리는 지난 시기의 성적 담론조차 미처 정리하지 못하였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디딜방아 액막이 같은 생생한 성풍속의 현장사진 조차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다. 푹스가 밀방앗간집 처녀를 묘사하고 있을 때 우리의 청춘들도 보리밭에서 한 폭의 춘화도를 그리고 있었을 터이니, 그 낙수들을 엮어서 건강한 성의 사회사를 재구축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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