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외의 글을 쓰는 것은 내겐 처음인데,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1993년 가을, 2000년 제 27회 올림픽 개최지선정 표결결과 때문이었다. 중국은 올림픽을 개최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날 밤. 나는 매우 강렬하게 중국인으로서의 비애를 느꼈다. 베이징 상공의 기류는 굳어 있었다. 잠 못 들고 있는 수많은 집의 불빛은 여전히 민족영혼의 창문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이때 또 하나의 신성한 불꽃이 더욱 환하게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어느 누구도 그 불꽃은 꺼트릴 수 없는 것이었다. 오천 년의 찬란한 문명이 만리장성의 봉화대에서 더욱 장엄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중국인은 올림픽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어떤 서구 국가가 스포츠기자재를 이용하여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국항목'을 평가절하한 비열한 속셈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올림픽정신은 배반당했고 베이징으로서는 세계와 광범위하게 교류할 기회를 압살당했다. 스포츠를 정치화하려는 유희는 추악할 뿐이다. 나는 마침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양이 중국의 경제제재에 대해 품고있는 생각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어디에 투표할 것인지는 알고 있지만 되돌아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다. 중국인.더욱 젊어진 중국의 지식인세대-그 중엔 서구의 민주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는 지식인도 포함된다-의 어깨는 거세게 밀려 버렸다, 이제 반격은 정당하다. 개혁개방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길과 목표는 우리 스스로 싸워서 실현시켜야만 한다. 환상을 버리고 공부방에서 뛰쳐 나오자. 현실은 도피할 수 없다. 현실은 늘 그랬듯이 더욱 빠른 발걸음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대단히 자랑스럽다. 이러한 자만심은 어떠한 투표결과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예의지국으로서의 전롱을 가진 중국인의 인내와 관용이 무례한 대우를 받았을 때는, 목이 잘리고 사지가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우리의 의지는 오히려 견고해질 것이다. 아편전쟁 이래 정의의 힘이 중국을 지켜 준 것이다. 나는 나의 개인적인 운명파 사건 및 고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또 중화민족의 역사 속에서 나를 더욱 분발시키는 것들을 배웠다. 56개 민족운명공동체인 중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베이징에서 일하고 생활하고 있다. 백양나무의 찬란한 잎들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깊은 감동을 받곤 한다. '하늘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으니, 군자는 쉬지 말고 강해져야 한다' 역경의말과, 고대 희랍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여전히 우리의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냉전의 구름은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미국은 또 새로운 냉전을 위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과 그 추종자 외에는 그 누구도 이 신호가 세계의 앞날을 밝게 비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월 23일 또 한 차례 중국을 겨냥한 음모가 좌절되었다. 유럽국가연맹과 미국이 넉살좋게 내놓은 '중국인권상황결의초안'은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제네바에서 들려 온 소식은 정의와 공리가 강권정치의 음모를 이겼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미국은 인권을 정치도구로 삼으면 어느 곳에서나 잘 먹혀들 것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또 계속 써먹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편집광적인 방식은 단지 자기 자신의 이익만 축낼 뿐이다. 호전적인 미국에 대해서는 첫째, 충고를 하고 둘째, 곁에서 늘 지켜 보고 있어야 한다. 침묵과 자제는 미국의 판단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비유를 들어 글을 마칠까 한다. '우리는 사자가 조련사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조련사도 이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자는 결코 이 사실을 모른다. 만약 사자가 이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조련사가 여전히 자기의 역할에만 빠져 있다면,그 결과는 어찌 되겠는가?"